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43화 (143/156)

가야 한다면 (1)

* * *

“진심이세요?”

채 사장은 황당한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네, 물론 진심입니다.”

“14억짜리 원석을 세공하여 판매한다는 건…… 까르띠에 급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

“우리는 원석 가격만 1억이 넘는 것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난 그의 말을 곱씹어 본 후 물었다.

“가격이 높으면 세공하는 게 더 어렵나요?”

“아니요. 세공은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죠?”

“세공할 때마다 몇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데. 기술이 엄청난 장인이 아니라면 어렵죠. 거기에 강심장도 갖고 있어야 하고요.”

“…….”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만들다가 망친다고 해서 환불되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다간 괜스레 큰 돈을 날릴 수도 있는 거니까.

채 사장은 이제 김지안을 향해 물었다.

“강 사장님께서 방금은 예시로 말씀하신 거겠죠? 어떻게 그 고가의 원석을…….”

하지만 이들 중에서 내 말에 놀란 사람은 채 사장뿐이었다.

김지안과 오 대리는 침착했다.

그동안 봐온 게 있어서, 이들도 이제 적응이 된 것이다.

내가 손대면 기적이 된다는 믿음.

김지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농담 아니실걸요? 맞죠? 사장님?”

“하하.”

오 대리도 웃으며 말했다.

“강 사장님 일할 때는 농담 안 하세요. 아…… 평소에도 농담 자체를 잘 안 하시지. 사회성이 좀…….”

“오 대리.”

오 대리가 쓸데없는 농담을 꺼내려는 것에 난 살짝 주의를 주었고.

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난 채 사장을 향해 말했다.

“다른 걱정은 마시고요. 방법만 알려주세요.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비싼 원석으로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아…….”

채 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런 큰손이 아닙니다. 제 범위 밖이에요. 거래하는 곳을 소개해 드릴 생각이었는데, 그런 초고가 원석을 핸들링하는 곳은 저도 모릅니다.”

“…….”

“원석 구매에 있어선 제가 도움 드릴 수가 없겠네요.”

난 김지안을 향해 물었다.

“김지안 대리. 어떻게 할까?”

“아…… 이건 좀.”

김지안은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는지 당황해했다.

잠시 눈을 굴리다가, 그녀는 채 사장에게 물었다.

“저희는 루트 자체를 모르거든요. 거래처 중에 하는 곳은 없어도…… 그래도 방법은 아시겠죠? 업체에서 듣는 풍문이 있잖아요.”

채 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더 말씀을 못 드리는 거예요. 초고가 원석은 철저히 비밀리에 거래됩니다. 그게 합법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워낙 공급이 적으니까요.”

“…….”

초고가 원석 수급은 돈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배 모양 다이아몬드, 비둘기 핏빛 루비, 수박석 등…… 같은 보석임에도 특징이 있는 게 귀한 보석들이거든요. 이런 보석들이 다 10억 원이 넘게 거래가 될 텐데…… 돈이 문제가 아니죠. 워낙 존귀한 것들이라.”

하지만 최소한의 실마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뭔가 좀 파고 들어갈 수 있다.

일단, 내 손 위에만 올려 주기만 하면 된다. 거기까지만…….

“뭐든 말씀해주세요. 매출 규모가 있는 거래처라거나, 아니면 쥬얼리 대기업과 연이 있는 곳이라든지. 연락처만 알려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의미 없을 텐데…….”

“그건 저희가 판단할게요.”

채 사장은 입맛을 다시고는 핸드폰을 켰고, 난 김지안에게 지시했다.

“사장님이 주시는 연락처 받아.”

“네.”

김지안은 채 사장 옆에서 열심히 연락처를 받아 입력했다. 꽤 많이 입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채 사장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다 알려드리긴 했는데…… 조심하세요.”

“…….”

“보석 업계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깊숙한 아래에 뭐가 깔려 있는지 몰라요.”

그의 경고를 난 귀담아들었다.

“오 대리.”

“네.”

“김지안, 업체 미팅할 때는 꼭 같이 다녀. 혼자 다니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걸로 미팅은 끝났다. 더 얘기할 건 없었다.

한 달 뒤부터 시설을 임대하기로 했고, 사용한 기간만큼만 정산하는 걸로 계약했다.

“기간 정해두지 않고, 계약해도 정말 괜찮으십니까?”

“어차피 안 쓰고 놀리는 공간이에요. 괜찮습니다.”

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종종 찾아와서 직원분들 일하시는 것 좀 보겠습니다. 사용법을 익혀야 해서.”

“하하. 그렇게 해서 익히실 수 있겠습니까? 5년을 넘게 해도 어려운 일인데.”

난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내 금손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럴 때는 그저 웃는 수밖에.

이야기가 빨리 끝나서, 바로 올라가도 될 것 같다.

난 시계를 확인하고는 채 사장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요? 식당 예약해놨는데. 저녁 식사하고 가시죠.”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음에 여유 있게 왔을 때 식사하시죠. 저희 서울 올라가 봐야 해서.”

“아…….”

채 사장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꼭…… 식사할 기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모의 신님.”

“하하. 기회는요. 무슨. 다음에 제가 꼭 모시겠습니다.”

난 바로 나가려 했는데, 채 사장이 붙잡았다.

“잠시만요. 저희 공장에 걸어두려는데,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채 사장은 엄청나게 큰 종이를 가져왔다.

가로 길이만 해도 2미터가 넘어 보이는.

“하핫. 부탁드립니다. 우리 직원들이 좋아하겠네~”

난 두꺼운 매직펜을 들었다.

‘To ㈜지국 쥬얼리,’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평소처럼 ‘네모의 신’이라고만 적으려다가…….

난 살짝 미소 짓고는 이렇게 썼다.

‘네모의 신. 강태평.’

* * *

한 달이 지났다.

부동산은 분묘개장공고 중이고.

레스토랑은 평소처럼 운영되고 있다.

다만, 지난 한 달간 김지안과 오 대리만 유독 분주했는데.

야근 식대를 거의 매일 정산했다.

둘은 밤낮없이 함께 일했고, 사내 커플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최근 아침마다 두 사람의 찌든 얼굴을 맞이했는데.

간혹 3번 룸에서 자고 있는 오 대리를 목격하기도 했다.

진행 상황이 좀 궁금했지만, 때가 되면 보고를 할 거라는 생각에 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조금 안쓰러웠지만,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난 직원 한 명, 한 명이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를 추구한다. 회사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제 몫을 할 수 있는 인재.

직원들은 책임에 대한 걱정하지 말고, 그저 마음껏 일하고, 성과 내고, 그에 맞는 보상 받고.

적어도 내 회사에서는 그런 상식적인 회사 생활을 하기를 바랐다.

내가 직원으로 일할 때 느꼈던 의미 없이 소모되어 가던 갈증.

그런 걸 느끼지 않기를.

똑똑.

[김지안입니다.]

난 여느 때처럼 점심 영업을 마치고, 4번 룸에서 업무 정리를 하고 있었다.

“들어와~”

초췌한 얼굴이 들어왔다.

“…….”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는 게 오랜만일 정도로 김지안은 최근에 정말 바쁘게 지냈다.

“김 대리…… 어디 아퍼?”

얼굴이 좋지 않아서 물었다.

“아니요? 왜요?”

특히 눈 주변도 시꺼멓고, 피부도 푸석해 보인다.

“혹시 담배 피워?”

“무슨 말씀이세요.”

김지안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기분 좀 풀라고 농담한 건데.

타이밍이 아닌가? 아니면 퀄리티 문제인가.

난 당황한 표정으로 김지안을 바라봤고, 그녀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는 말했다.

“사장님, 저 좀 예민해요. 하도 잠을 못 잤더니. 이해해주세요.”

“어…… 그래.”

난 노래방 기기 앞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앉어.”

“네.”

“보고 하러 온 거지? 한 곡 부르고 시작할래?”

“…….”

“미안.”

분위기 좀 바꿔보려고 농담 한 번 더 해봤는데. 안 통하네.

김지안은 지난 한 달간 최고급 원석의 구매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업무 수완이 워낙 탁월한 친구라서, 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어째,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일이 잘 안 풀렸나?

“김 대리. 할 얘기 있으면 해.”

“…….”

“편하게 해. 괜찮아.”

김지안은 인상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일이…… 잘 안 풀렸어요.”

“흠…… 원석 건 말하는 거지? 구매처를 찾지 못한 거야?”

“아뇨, 찾긴 했는데…….”

구매처를 찾았는데, 잘 안 풀렸다?

“근데 왜? 거기서 왜 안 판다는 건데? 아니면 가격이 안 맞는 건가?”

김지안은 도리질을 하고는 말했다.

“아니요. 그 단계까지 가지를 못했어요.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

“왜?”

“그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일이 성사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찾아가 보기엔 너무 멀고. 막상 가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요…….”

난 눈을 말똥거리며 물었다.

“그럼 간단한 거네. 멀더라도 찾아가 봐야 답이 나올 거 같은데? 물건은 확실한 거야?”

“네, 버마(미얀마)산 Pigeon Blood Red(비둘기 핏빛 루비) 8.45 캐럿이에요. 가격은 50~100만 불 정도.”

난 그냥 눈만 말똥거렸다.

사실 이렇게 들어서는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2014년에 이것보다 좀 더 큰 Pigeon Blood Red 루비로 만들어진 반지가 860만 불에 낙찰되었어요.”

860만 불이면…… 99억 원 정도인데.

99억 원?! 그 정도면 건축 비용으로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고 남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가자! 어딘데?! 잘 했어~ 가서 사면 되지!”

협상은 자신 있다.

일단 악수하면서 호감도를 높이고, 그걸로 부족하면 깍지도 끼고 손도장까지 찍으면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정수기 물 한잔까지. 그러면 완벽하다.

휴유―

김지안은 한숨을 쉬었다.

“협상하려면 모곡에 가야 해요.”

“모곡? 그게 어디 있는 회산데? 뭐, 제주도라도 돼?”

“미얀마 북부 산간 지역이요.”

“미, 미얀마? 뭐어?! 나라 말하는 거야?”

김지안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동남아시아 미얀마요.”

미얀마를?!

보석 원산지에 직접 가서 협상해야 한다고?

“모곡이라는 곳에서 원석 중개를 한다는 것까지만 알아냈어요. 대기업 쥬얼리 회사는 현지에 다까마(중개인)가 있는데, 우리 같은 회사는 직접 찾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대요.”

“거기 가려면 비행기 타야 하잖아.”

“당연하죠. 비행기 타고, 내려서 버스도 타고, 어쩌면 배도 타야 할지도 몰라요.”

꿀꺽.

난 속초 버스 재난사고 생존자다.

어딘가에 갇혀서 오래 타는 거. 특히 커다란 거 타는 건 영 자신 없다.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전 비행기 타본 적도 없는데…… 거기다가 정확한 주소지도 몰라요.”

난 눈을 감고 턱을 들었다.

심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난 그 상태로 물었다.

“방법이 없는 거야?”

“네. 없어요. 이것 말고는. 정보를 얻은 건 2주쯤 됐는데, 현지를 찾아가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커서 다른 방법을 계속 알아보느라 야근했던 거예요.”

“…….”

난 눈 감은 상태로 계속 생각했다.

비행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타본 적 없다. 어릴 적엔 궁금하긴 했지만, 속초 사고 이후로는 상상도 안 해봤다.

“김지안 대리.”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대안이 없잖아.

“가자,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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