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공고 (2)
* * *
“이야~ 오 대리 삽질 진짜 잘하네~”
난 답답해 죽겠는데, 옆에서 변 이사는 잘한다며 격려를 해주고 있었다.
팟! 팟!
오 대리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삽질을 이어나갔다.
팔뚝에 힘줄이 불끈불끈하는데…… 뭐, 오 대리가 몸은 좋으니까.
근데 저렇게 힘만 쓴다고 될 게 아닌 거 같은데.
진짜 저게 잘하는 걸까?
변 이사가 잘한다고 부채질하는 거 보면, 잘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변 이사가 오 대리 시켜 먹으려고 요령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변 이사님.”
난 열심히 삽질하고 있는 오 대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저게 삽질 잘하는 거예요?”
“응? 보면 몰라? 잘하잖아.”
진심이었구나.
“왜? 옆에서 보니까 쉬워 보이지? 삽질이 겁나 어려운 거야. 몸 전체를 써야 하며, 흙을 파고드는 각도와 땅에 삽이 닿을 때 파고드는 임펙트, 파워. 삽이 잘 들어갈 자리를 보고 쑤셔대는 눈썰미.”
“…….”
“삽질이야말로 막노동의 집합체라고. 힘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삽질이 그렇게 심오한 건가?
“후우~ 아하~ 힘들다.”
표지판은 크게 ‘내용판’과 ‘기둥’으로 나뉘어 있는데, 산등성이라 바람도 많이 불고 자주 올 일이 없기에 튼튼히 심으려고 기둥을 좀 길게 제작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땅을 좀 깊이 파야 했다.
“휴~ 한숨 돌리겠습니다~”
오 대리…… 한쪽 팔을 삽에 걸쳐놓고, 왼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서 있다.
다른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아주 표정이…… 거만하다.
내가 보기엔 삽질 못 하는 거 같은데.
어느덧 산 주변이 어수룩해지고 있었다.
“아이고~ 서둘러야겠구나.”
오 대리는 다시 삽을 잡았다.
“저 아니었으면 해지기 전에 일 못 끝낼 뻔했네요. 하하.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확 끝내버릴 거니까.”
팟! 팟!
삽질하는 소리와 함께.
꼬르륵.
내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배고프다. 못 기다리겠다.
결국 난 앞으로 나섰다.
“오 대리, 삽 줘봐.”
“네?”
오 대리는 내민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신나게 응원하고 있던 변 이사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그의 시선 또한 내 손에 고정되어 있다.
오 대리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은데, 제가 더 빨리해서 끝낼게요.”
“내가 안 괜찮아. 더 못 기다리겠어.”
“아잉…… 괜찮은데.”
오 대리는 뭐 때문인지 나한테 삽을 안 넘기려 했고.
거의 반강제로 빼앗았다.
“이리 달라니까.”
“…….”
삽을…… 잡았다.
“아…….”
어디선가 탄식 소리가 들렸다.
난 좀 전에 오 대리가 하던 대로,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를 잡았다.
“이렇게 잡는 거 맞지?”
“네? 아…… 네.”
이제는 시작하기도 전에 확신이 생긴다.
손에 닿으면 느낌이 온다.
삽질을…… 무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팟! 팟! 팟!
격렬한 삽질은 시작되었고.
변 이사와 오 대리는 옆에서 멍하니 강태평이 삽질을 지켜봤다.
“아…… 이사님. 저 이제 강 사장님 좀 무서워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래.”
“삽 달라며 뻗은 손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져서…….”
변 이사는 강태평의 삽질을 유심히 관찰했다.
엉덩이는 뒤로 쭉 빼고, 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런 자세로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땅에 들어가는 삽의 각도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삽질 한 번도 안 한 티가 난다.
근데도…….
땅은 빠른 속도로 파지고 있었다.
삽질은 느리고 어설프지만, 땅이 파여가는 속도는 오 대리의 10배쯤 될까.
강태평의 삽을 잡는 순간, 삽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
LV1이 EX급 삽이 된 듯.
삽이 땅에 닿기만 하면 땅이 푹푹, 파였다. 땅이 삽을 갈 자리를 알아서 비키는 듯했고, 삽 끝은 날카로운 칼이 된 것 같았다.
삽으로 사과 껍질을 벗겨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삽질을 한 번 했을 때 삽 위로 퍼지는 흙의 높이가 거의 강태평의 허리 높이 정도였다.
변 이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씨…… 이건 뭐 진기명기도 아니고…….”
강태평의 손이 닿은 순간부터, 삽은 특별해졌다. 운명적인 만남.
토르가 망치를 만난 것처럼.
강태평은 오늘 삽을 만났다.
“놀랍다 놀라워…… 어떻게 된 게 갈수록 능력이 더 해 가는 거 같아.”
“세상에 이런 일이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
변 이사는 넋 놓고 보다가, 오 대리에게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대리, 어디 가서 강 사장님 한 걸, 본 거 그대로 얘기하면 안 된다.”
“알아요. 알아. 어차피 말 해줘도 안 믿어요. 이걸 누가 믿어.”
“…….”
두 사람은 묵묵히 강태평의 삽질을 구경하였고.
표지판 기둥 자리를 파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삽
Before : 잡는 순간 삽자루가 분리됐었다.
After : 전용 아이템을 만났다. 토르의 망치 안 부럽다.
* * *
동방 일보 16면 하단.
<무연고 분묘 개장 공고>
:
일주일 뒤, 신문에 우리가 낸 개장 공고가 실렸다.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는데, 틀린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난 동방 일보를 접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내용 이상 없네. 다른 한 곳은 어디야?”
‘분묘 개장 공고’는 최소 2개 이상의 일간 신문에 공고가 되어야 한다.
“광주일보에 올렸어요. 안치 장소요. 중앙일간 신문은 한 군데만 하면 된다고 해서요. 비용 차이가 꽤 많이 나더라고요.”
난 흐뭇한 얼굴로 김지안을 바라보았다.
“김 대리도 이제 알아서 잘하네. 그래~ 그렇게 해야지. 불필요한 비용은 최소화하는 게 맞지.”
비용 절감은 곧 수익이다. 구두쇠와 절약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필요한 곳에는 아끼지 말고 써야 하지만, 불필요한 지출은 아주 작은 거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직원들의 이런 태도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이래서 기업문화가 중요하다.
정도가 좀 심하긴 했지만, 어쨌든 진일상사 시절에 배운 것이다.
“당연하죠. 어떤 회사인데요. 비용 최소화 해야죠. 저에게 사랑산성은 회사 이상이에요.”
김지안의 눈빛에 충성심이 아른거린다. 아직 어린 친구라 순수해서…….
사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직장생활 선배로서 한마디 했다.
“열심히 해주는 건 좋은데, 회사는 회사야. 너무 회사를 믿지는 마. 자기 자신을 잘 챙겨야 해.”
“호호.”
김지안의 눈빛에 충성심이 더 강해졌다.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열심히 안 할 수 있겠어요.”
“…….”
눈빛 좀 부담스러운데. 어디선가 많이 봤던 맹목적인 눈빛이다.
“김 대리…… 자기 혹시 네모천국은 아니겠지?”
에휴.
김지안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됐어요. 근데 저 삽은 뭐에요?”
내 책상 옆에 놓인 허름한 삽을 보고 물었다.
“호신용이야.”
“삽을 호신용으로 써요? 간혹 야구방망이 두는 경우는 봤지만…….”
“응…… 내 손에 잘 맞더라고.”
“…….”
김지안의 날 보는 눈빛이 묘했다.
“흠! 그럼 공고는 다 끝난 건가?”
“변 이사님께서 40일 이후에 한 번 더 일간지에 공고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 그래? 꼭 40일이어야 한대?”
“네, 법이요.”
그렇다면 따라야지.
“그럼…… 이제 분묘처리는 일단 공고 기간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진행해야겠네.”
“맞아요.”
분묘 개장 공고 기간은 3개월이다.
흠…… 앞으로 3개월.
“변 이사님 계셔?”
“네, 3번룸에서 업무 중이세요. 오시라고 할까요?”
“아니야. 다 같이 얘기해야 하니까. 3번룸으로 가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덜컹.
3번룸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내가 들어왔는데도 모르고 다들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다.
“똑. 똑.”
난 입으로 소리를 내었고, 그제야 변 이사가 고개를 들었다.
“어~ 강 사장님~ 왔어?”
“네, 뭐 하세요?”
“아~ 건축 구상을 좀 해놔야 할 것 같아서. 3개월 동안 놀 수는 없잖아.”
역시…… 변 이사와 나는 이심전심이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만나려고 했는데.
“분묘처리는 문제없이 잘 되겠죠?”
변 이사는 자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문제 될 게 뭐 있겠어? 철저하게 법에 맞춰서 진행하고 있는데.”
변 이사는 법이라는 게 뒤탈이 무서운 거라며, 아주 조그만 부분까지도 변호사와 상의하며 꼼꼼하게 법에 맞춰서 진행했다.
“갑자기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문제 될 거 전혀 없어.”
연고자…… 연고자는 없지.
“연고자 없잖아요?”
“김 의원님 말대로라면 없지. 그분 믿을만한 분이잖아. 그치?”
“그렇죠.”
“그럼 문제 될 거 없어.”
만약 연고자가 나타난다면?
물어볼까 하다가, 가능성 없는 일에 괜히 부정적인 에너지 쏟기 싫어서 관두었다.
“설마 건축도 직접 하자는 건 아니죠?”
난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물었고.
이 말에 변 이사는 큰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못해. 못해. 그건 너무 전문적이라. 업종 변경을 하지 않는 한.”
그리고 내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건축은 강 사장님이 활약할 게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워서 싫어.”
이 말에 다른 직원들도 씩 웃었다.
“그럼 건축사무소에 의뢰할 거라는 거죠?”
“그렇지.”
“사무소 선정은 어떻게 해요? 이번에도 비딩으로 하나요? 아니면 뭐 아는 곳 있어요?”
내 말에 최경리가 손을 들고 말했다.
“비딩이 좋다고 봅니다. 이번에 토지 매도 건으로 비딩을 해보니까, 효과도 좋았고요. 공정하고요.”
나도 최경리의 말에 무언으로 동의했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도했고, 뒤도 깔끔했다.
하지만 변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공정은 얼어 죽을. 최 과장 공정 너무 좋아하지 마. 우리가 뭐 관공서냐?”
“네?”
“회사에 이득 되는 게 최우선이지. 토지 매도 때와는 달라. 그땐 적정 가격을 모르니까, 부득이하게 비딩을 했던 거고.”
“…….”
“그리고 비딩 때문에 가격 협상을 더 할 수도 없었잖아. 가격 정보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협상을 통해서 하는 게 훨씬 이득이지. 우리가 협상력이 부족한 조직도 아니고 말이야.”
변 이사는 툴툴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간 허비되는 건 어떻고 어우~ 난 일 복잡하게 하면서 시간 끄는 게 제일 싫어. 결론이 뻔한 걸, 뭘 자꾸 이런저런 절차를 만들고…… 아~ 싫어. 싫어. 강 사장님~ 비딩은 안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아 뭐…….”
“비딩 안 해도 가격, 퀄리티 경쟁력 있게 잘할게. 괜히 일거리 만들지 말자.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근본에만 집중하자고. 합리적인 가격에 건축만 잘하면 되는 거잖아.”
가만히 듣다 보니, 변 이사가 이미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변 이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 직원이 잘 들리도록 말했다.
“보통 첫 번째가 퀄리티, 두 번째가 가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랜드마크를 만들 것도 아니고, 퀄리티는 중간 이상만 하면 돼. 가격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바가지만 안 쓰면 되고.”
변 이사는 검지를 펼치고 심각하게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건축사무소와 우리가 얼마나 협업이 잘 될 것이냐야. 우리를 얼마나 잘 이해해줄 것인가.”
아무래도 생각해 둔 곳이 있나 보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어딘데요? 생각한 곳 있으시죠?”
변 이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길 건너 옆집 있잖아. 우리 점심 단골 박 사장네.”
이웃사촌
* * *
“박 사장님이요?”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고, 다른 직원들도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박상국 사장.
조그만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분인데, 사랑산성의 단골이다.
간간히 혼자 와서 식사하기도 하고, 미팅이 있을 때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이웃사촌이기도 하고, 초창기부터 자주 찾아온 단골이기에 우리 직원들은 박상국 사장을 잘 알고 있다.
“꽤 큰 사업 건인데…… 그분이 잘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난 미심쩍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 내곡동 사랑산성 주변에 작게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작은 사업체들이 빌라를 임대하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박상국 사장의 사무실도 길 건너 빌라 1층에 있다.
그냥 구멍가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 이름도 모른다.
“강 사장님~ 모르는 소리 하네. 박 사장이랑 얘기 한 번도 안 해봤지?”
“제가 손님이랑 얘기할 여유가 있나요. 홀에 나올 일이 잘 없는데. 주방에서 음식 만들기 바쁘잖아요.”
“아…… 하긴 그렇겠구나.”
말을 편하게 말하는 걸 보니, 변 이사는 박 사장과 꽤 친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둘이 연배도 비슷해 보인다.
“박 사장이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나랑 잘 맞더라고.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많이 나눴는데, 사업 꽤 크게 하던데?”
“그래요?”
“그래~ 건축사사무소는 사실 사무실이 그다지 클 필요가 없어. 자금력이 중요하지. 내가 어제 신용평가조회 해봤거든?”
그러면서 변 이사는 내게 신용평가서를 내게 내밀었다.
“언제 이런 걸 다…….”
“별거 아니야. 이용료 좀 내고 인터넷으로 조회하면 다 나와.”
매출 규모, 직원 수, 부채비율…….
난 찬찬히 보고서를 보았다.
‘건축사사무소 금강’
여기서 중요한 건 부채비율이 얼마인지, 근래 직원 수에 큰 변화가 있었는지, 주거래처가 어디인지 체크하는 것이다.
오…… 의왼데?
난 신용평가서를 보고 좀 놀랐다.
꽤 탄탄했다.
직원 수의 변화도 크지 않고, 매출 규모도 괜찮고, 부채는 거의 없다.
“괜찮네요?”
“그렇다니까.”
“오 대리도 한번 봐봐.”
난 신용평가서를 오 대리에게 건네었다.
글로벌 기업 출신이니 좀 더 정확하게 보지 않을까 싶었다.
오 대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신용평가서를 보더니.
“여기서 뭘 봐야 하는 거예요?”
“…….”
“뭐? 이런 거 본 적 없어?”
“전 회사에서는 거래처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혹은 자회사를 쓰던지요. 이런 거 볼일은 잘…….”
오…… 완전 의왼데? 이런 것도 볼 줄 몰라? 큰 회사 출신이라고 다 잘 아는 건 아니구나.
난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영세한 회사들만 상대할 일이 많았고, 신용평가서뿐만이 아니라 별의별 방법을 통해 그 회사가 안전하다는 걸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돈 받고 나면 잠수를 타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신규 거래처와 일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했다.
신용평가서 정도는 슥~ 보면 안다.
“최 과장이 한번 봐봐.”
난 최경리에게 신용평가서를 건네었고.
“음…….”
최경리는 보고서를 보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만 보면 되니까.
“괜찮네요. 만나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최 과장?”
“네.”
“김지안 대리랑, 오 대리한테 보는 법 좀 알려줘. 이 정도는 볼 줄 알아야지.”
“알겠습니다.”
변 이사는 날 향해 물었다.
“그럼…… 미팅 잡을까?”
“네.”
“좋았어!”
변 이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하하. 뭘 그렇게 좋아하세요? 혹시 커미션 받기로 하신 건 아니시죠?”
“에이~ 큰일 날 소리.”
변 이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냥~ 박 사장이 우리 가게 와서 많이 팔아줬거든. 개업 초반에 손님 없을 때도 와줬었고, 중요한 미팅 있으면 꼭 우리 가게에서 식사하고.”
변 이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웃끼리 상부상조해야지~”
* * *
수서동 건축 부지.
박 사장은 첫 미팅을 현장에서 하자고 했고.
나와 변 이사는 먼저 와서 박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휘이익―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내 뒤에 있는 분묘를 스쳐 지나갔다.
눈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니까.
막상 건축 미팅을 하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사님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어허, 다 끝난 것처럼 얘기하네. 이제 시작인데.”
“하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빵 터져서 웃고 말았다.
변 이사 말이 맞다. 이제 시작이다.
심지어 첫 삽 뜨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 설계를 하는 단계니까.
“그러게요. 변 이사님 말이 맞네요. 아~ 근데 왜 이렇게 지치는 기분이 들까요?”
내 말에 변 이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자금 마련하고, 토지 구매하는 게 좀 쉽지 않긴 했어. 근데 난 좋게 생각해~ 초반에 어렵게 풀어가야, 뒤에 술술 풀리거든.”
“…….”
“초반에 잘 풀리다가, 뒤에 가서 꼬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렇죠. 훨씬 낫죠.”
부우웅―!
그때 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언덕을 올라오는 검은색 무소 스포츠.
“오셨네.”
끼이익.
차가 멈춘 후, 운전석에서 소갈머리가 훤한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렸다.
차체는 높은데, 키가 작아서 내리는 게 좀 불안해 보인다.
키가 160 정도 되려나.
조수석에서는 이십대 초반 정도 보이는 남성이 내렸다.
두 사람은 곧 가까이 다가왔고.
박 사장은 날 향해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먼저 인사했다.
“강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나 또한 깍듯이 인사했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개업 초기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하하. 그러게요.”
“그때는 강 대리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사장이 되셨네요~ 하하.”
“하하…….”
재미는 없지만, 난 억지로 웃어 주었다.
“변 이사님~ 안녕하세요~”
“응~ 박 사장. 왔어?”
두 사람은 싱긋 웃으며 손만 살짝 들어 인사했다. 한눈에 봐도 꽤 친해 보인다.
근데, 변 이사가 나이가 더 많은 건가?
와…… 박 사장님…… 페이스가 장난 아니시네. 현장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나.
변 이사도 동안은 아닌데…….
“옆에 분은 누구 신가?”
변 이사의 물음에 박 사장이 소개했다.
“제 아들입니다. 요즘 일 가르치려고 함께 다니고 있어요.”
“아~ 그래?”
박 사장 아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서문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올해 나이가 몇이에요?”
“21세입니다. 네모의 신님과 일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악수를 내민 내 손을 박서문은 두 손으로 떨면서 잡았다.
“하하. 잘 부탁해요.”
이젠 놀랍지도 않다. 20대 초반으로 보여서, 아마도 날 알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박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 사장님, 잘 부탁해요.”
악수를 건네는 박 사장의 손을 잡았다.
손이 작은데도 두껍고, 손바닥은 굳은살 때문에 거칠었다.
손을 보고 나니, 더 믿음이 간다.
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니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 사장은 손을 풀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분묘 중심으로 주변 180평이 부지라는 거죠?”
“맞습니다.”
변 이사에게 설명을 들었던 건지, 박 사장은 분묘가 정 가운데 떡 하니 있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변 이사님, 분묘 개장까지 앞으로 3개월이요?”
“맞아.”
“음…… 그럼 일단 시간은 좀 있네.”
박 사장은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고.
변 이사가 내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 설명했어. 웬만한 건 안 물어 볼 거야. 어젯밤에 둘이 소주 4병 깠거든.”
“아…… 네. 사전 미팅을 하셨군요.”
“하하. 그런 셈이지.”
박 사장은 박서문을 불렀다.
“서문아. 분묘 주변이랑 저쪽 진입로, 남향 부분 자세하게 사진 찍고, 부지 전경 다 나오도록 저기 바위 위에 올라가서 찍고.”
“알겠어요.”
박서문은 바쁘게 움직이며 사진을 찍었다.
“강 사장님.”
박 사장이 날 불렀다.
“네.”
“건물 하나에 보육원, 사무실을 같이 넣으실 겁니까, 아니면 사무실을 별채로 구분하고 싶으십니까?”
엇…… 어려운 질문이다.
“아…… 글쎄요.”
아직 진지하게 생각 안 해봤다.
내가 대답하기 어려워하자.
박 사장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직 생각 안 해보셨군요?”
“네…… 거기까지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둘 다 만들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자.
“예상 모형을 만들어서 보여드릴 건데요. 그거 봐가면서 말씀하시죠. 독채, 별채 각각 준비할게요.”
“아~ 네. 좋습니다.”
현장에서 인사 나눈 지, 한 20분 지났나?
“서문아~ 다 찍었냐?”
“네~”
“차에 타라. 가자.”
박 사장은 살짝 목례 하고는 말했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한 7일 정도 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부우웅―!
박 사장은 곧바로 가버렸다.
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차를 보며 말했다.
“깔끔한데요?”
“거봐, 사람 괜찮다니까.”
* * *
5일 뒤.
점심 영업 마무리가 다 되어갈 때쯤. 변 이사가 와서 말했다.
“강 사장님.”
“네?”
“금강에서 연락이 왔거든? 준비 다 됐다고, 오늘 올 수 있냐고 물어보던데.”
“오늘요? 일주일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변 이사가 씩 웃고는 말했다.
“약속 지키고 싶어서 날짜를 여유 있게 말했나 봐. 꼭 오늘 오라는 건 아니고, 준비됐으니까 편할 때 오래.”
음…… 처음엔 가까운 곳에 있는 조그만 사무소라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일하는 태도 덕분에 조금씩 ‘금강’과 ‘박 사장’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 갔다.
“그럼 오늘 가야죠~ 궁금해 죽겠거든요. 하하.”
“아, 김성애 수녀님 안 모셔도 돼? 첫 미팅인데.”
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염려 마세요. 저한테 알아서 해달라고 일임하셨으니까요. 제가 20년 살았던 보육원인데, 뭐가 필요하고 부족한지 다 알죠.”
“아…… 하긴 그렇겠네. 하하. 그럼 가자.”
“네.”
‘건축사사무소 금강’
빌라 1층에 자리한 사무실.
필로티 형태로 된 빌라의 1층 주차장 옆에 사무소가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띵동’
덜컹.
“어서 오세요~”
박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우릴 맞이했다.
난 인사하며 말했다.
“일 처리가 빠르시네요?”
“하하. 요즘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무실 안이 분주해 보이는데, 일이 없기는…….
잘난 척하며 내세우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박 사장을 볼수록 뭔가 ‘장인’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변 이사보다 어린데도 10살 위 형처럼 보이는 외모도 그렇고.
“우선 큰 틀부터 정하고요. 외장이나 디테일한 부분을 정할 거거든요?”
우리는 박 사장의 안내에 따라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우와…….”
분주한 사무실과는 달리, 구분된 방 안에는 각종 모형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여러 형태로 구상해 봤거든요.”
커다란 테이블에는 십여 개 정도의 모형이 있었는데…….
“이거 다 저희 거예요?”
“물론이죠. 약간 동쪽으로 튼 남향. 그러니까 남동향으로 위치를 잡았어요. 지금 부지 지형에서는 그게 채광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사무실을 별채로 구분하게 되면 공간이 안 나와서 위쪽으로 살짝 틀었고요.”
박 사장은 간략하게 설명한 뒤 말했다.
“마음에 드는 형태로 골라보세요. 아니면 하나를 고르신 후에 변경하고 싶은 부분을 말씀 주셔도 됩니다.”
난 찬찬히 10개의 모형을 살폈다.
정성 들여서 참 준비를 잘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왜 자꾸 손이 근질거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