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공고 (1)
* * *
“저……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박대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네? 뭐가요?”
“이 작품의 작가님이…….”
“아~ 네. 네모의 신이요.”
박대길은 턱을 떨고 있었다.
“우와! 진짜 네모의 신님 작품이라고요? 이게?”
의왼데? 박대길이 네모의 신을 아나?
내 주력 팬층은 어린 친구들인데.
“이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박대길은 눈빛을 빛내며 내게 묻는데,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작품 바닥에 ‘네모의 신’이라고 쓰고 있는 날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아…… 여기서 팬을 만난 건가.
이 타이밍에?
전투가 끝난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든 좀 전까지 서로 생존하기 위해 사생결단을 두고 싸웠었다.
갑자기 내 팬이라고 다가오면 좀 민망한데.
“아, 네. 접니다.”
박대길은 한껏 웃으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렇네~ 제가 이름 듣고 자세히 보니까, 네모의 신님 맞으시네~ 하하!”
박대길이 큰 소리로 말했다.
“팬입니다!”
“아…… 네.”
난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박대길이 말했다.
“제가 그간 경황이 없어서 몰라뵈었네요. 간혹 뉴스로 소식 들어도, 외모는 스쳐 지나가듯 나오시니까.”
“하하. 네.”
박대길은 그제야 손에 든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정말 이걸 주신다고요? 얼마 전에 경매하셨던 작품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걸 알아보네?
“아…… 네 잘 아시네요.”
“제가 딸 통해서 우연히 네모의 신님 알게 된 이후로 꾸준히 영상 챙겨 보고 있습니다. 이게~ 묘한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아~ 네.”
“관심이 있다 보니, 뉴스 기사에 나오면 보게 되고요. 이번 경매에서 기록 세우셨던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난 웃으며 박대길이 들고 있는 ‘초미니 사랑 자동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쉬운 대로 돈이 좀 될 겁니다. 원하시면 제가 옥션 소개해 드릴 수 있거든요. 이정수 팀장이라고 굉장히 유능하신 분 있는데…….”
박대길은 손을 들어서 내 말을 막았다.
“아니요. 됐습니다. 이걸 왜 팝니까.”
그리고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걸 얻었다는 듯,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작품을 보며 말했다.
“영구 소장해야죠. 가보가 생겼네요. 하하.”
“…….”
“사실, 딸과 좀 서먹했었는데 네모의 신님 덕분에 딸과 대화거리가 생겼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졌고요. 동일한 우상을 공유하니까, 동질감 형성이 금방 되더라고요.”
그는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리 딸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감사합니다.”
“…….”
좀 전까지 난 그를 강하게 몰아세웠었고, 그 또한 최선을 다해 방어했었다.
서로 으르렁거렸지만.
각자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랬던 것뿐이다.
박대길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네, 들어가세요.”
“아! 맞다.”
박대길은 나가려다 말고, 중개인을 향해 말했다.
“종이랑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박대길은 종이와 펜을 받은 뒤, 내게 건네며 부탁했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하하.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네. 근데, 조금 민망하긴 하네요.”
“하하.”
난 펜을 들고 물었다.
“딸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하윤입니다.”
“네.”
‘To, 박대길 님, 하윤이.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From 네모의 신.’
“여깄습니다.”
그는 사인 된 종이를 받아들고, 허리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박대길이 나간 뒤.
중개인은 슬금슬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도 사인 한 장만…….”
난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개인을 바라봤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중개인은 한 게 뭐가 있나 싶다.
마음이 좋지 않은데, ‘우리 둥글게’ 살자는 사인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못 해주겠다.
“됐고요. 영수증 주세요. 중개료 보낼 테니까.”
“호호. 어머~ 우리 사장님 쿨하시다아~ 매도인 거는요?”
“네?”
중개인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매도인이 중개료 줄 것 같지도 않고요. 저도 달라고 하기 좀 뭐해서…….”
“그래서 저보고 매도인 것까지 중개료 달라고요?”
“재미 많이 보셨으니까…… 그래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도의라는 게 있잖아요.”
변 이사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나서려는 걸 막았다.
이해한다. 나도 순간 ‘이 양아치야.’라는 말이 나올 뻔했으니까.
“제가 까놓고 물을게요. 중개사님 뭐 하셨습니까?”
“네?”
“옆에서 서류 몇 장 떼주고, 2,700만 원 받아 가는 거. 좀 너무하지 않아요? 아, 땅 보는데 함께 가준 게 있군요. 제 차로.”
“…….”
“매도인의 중개료는 난 모르겠고요. 적당히 지혜롭게 하시죠. 저 지금 많이 참고 있거든요.”
중개인은 눈을 깔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체 : 27,000,000원’
‘송금’을 클릭한 뒤 말했다.
“돈 보냈습니다. 갑니다.”
* * *
다음날. 사랑산성.
오후 3시. 전 직원은 3번룸에 모였다.
전 직원 회의는 오랜만이다.
작품 준비와 경매, 부동산 거래까지.
최근에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변 이사 말고는 직원들 얼굴도 제대로 못 봤었다.
“간단하게 준비했으니까, 모두 읽어 봐.”
그리고 변 이사는 전 직원들에게 보고서를 돌린 후 말했다.
#아셀로 보육원 및 사랑산성 사무실 건립 계획
가. 분묘처리 절차
나. 토지 용도변경
다. 건축사무실 미팅
:
언제 이렇게까지 준비한 건지, 변 이사가 준비한 보고서는 꽤 꼼꼼했다.
변 이사는 우리에게 읽을 시간을 주었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모두 다 읽었어? 지금 모든 항목을 자세하게 볼 필요는 없고. 우선 분묘처리 절차에 집중하자고.”
변 이사는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분묘개장공고를 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현수막/안내판 설치를 할 거야.”
최경리가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하나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안내판은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비용 아껴야죠.”
“법이야.”
“아, 네.”
법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지.
“그리고 신문공고도 해야 해.”
“아니 누가 요즘 종이신문을 본다고…….”
김지안이 중얼거렸고, 변 이사가 뭔가 말하려 하자.
김지안은 재빨리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법이겠죠?”
“맞아.”
변 이사는 살짝 웃고는 말했다.
“어쨌든 장사법에 근거한 분묘처리 절차니까. 내가 레이아웃은 최대한 상세하게 줄 테니, 잘 이행해줘.”
“알겠습니다.”
변 이사는 오 대리를 바라봤다.
“우선 힘쓰는 거는 남자들이 하는 거로. 오 대리와 내가 현수막 설치 및 안내판을 맡는다.”
난 살짝 손을 들고 물었다.
“저는요?”
“강 사장님은 깍두기.”
뭐야…… 오십 넘으신 분이…… 멘트가 좀.
아재의 문제점. 젊거나 어려 보이려고 하는 멘트. 이게 문제다. 더 아재 같아 보인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걸 느꼈는지, 변 이사는 재빨리 부연 설명을 했다.
“강 사장님은 왔다 갔다 하면서 감독하면 돼. 아니면 다른 일 보시던가.”
그냥 알아서 하라는 말이지.
“알겠습니다.”
변 이사는 김지안과 최경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뭐해야 할지 알 것 같지?”
“신문공고 내라는 거죠?”
“그래.”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을 거야. 내가 짜준 레이아웃 그대로 넘기면 되니까.”
그리고 최경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최경리?”
“네.”
“언론사 상대할 때 광고비 너무 깎으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해. 적당히.”
최경리는 표정 변화 없이 읊조리듯 말했다.
“전 그저 합리적인 가격을 원할 뿐입니다.”
변 이사는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얘기해 봐야 어차피 최경리는 지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오케이. 그럼 맡은 임무대로 움직여주고. 뭐 문제 생기면 바로 얘기해.”
“알겠습니다.”
그때 오 대리가 살짝 손을 들었다.
“어, 얘기해.”
“근데…… 이걸 굳이 이렇게 직접 해야 합니까? 이 생소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처리해 주는 곳도 있을 것 같은데.”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맞아. 있어. 보통 ‘장묘컨설팅’하는 곳에서 대행해줘.”
“많이 비싼가요?”
“몰라. 근데 아주 많이 비싸지는 않을걸?”
오 대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근데, 왜…… 의뢰 안 하시고, 이렇게 직접…….”
난 그 질문에 살며시 웃었다. 변 이사가 어떻게 대답할지 알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거니까.”
“…….”
“처음 하는 건 직접 해봐야 해. 우리는 특정 분야의 전문회사가 아니잖아. 이것저것 다 하는 종합상사야. 경험이 재산이야.”
오 대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설마, 분묘 처리할 일이 또 있겠습니까.”
“사업은 모르는 거야.”
변 이사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분묘처리 절차를 진행하다가, 우리 회사와 잘 맞아서 ‘장묘컨설팅’이나 ‘납골당’쪽으로 사업을 확장할지 누가 알아?”
“…….”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일에 한계를 짓지 말라니까? 맞지? 강 사장님?!”
난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모두 변 이사님 분부 잘 따르도록 해!”
전 직원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강남구 수서동.
건축 부지에 도착했다.
등기도 완료되었고, 이제 이곳은 완전히 내 땅이다.
분묘 부분만 제외하고 말이다.
“와~ 진짜 좋네요.”
오 대리는 부지에 서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풍수지리 모르는 사람이 봐도 딱 알겠네. 명당이네요. 명당. 올라오는 데 약간 숨차긴 하지만…… 이 정도야 뭐. 주변에 술집도 많고~ 강남 아가씨들…….”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 하기에 난 그의 말을 막고는 말했다.
“됐고~ 어서 일하자. 해지기 전에.”
우리는 현수막부터 설치하려 했다.
내가 나서려는데.
“에헤이. 사장님은 그냥 가만있어. 감독하라니까, 왜 일을 하려 그래.”
“아이…… 그래도.”
“어어? 이러면 부담스러워서 같이 못 다녀? 회사는 직급순이야.”
“…… 알겠습니다.”
오 대리는 변 이사와 함께 끙끙대며 현수막을 설치했고, 난 아래서 구경하다가 필요할 때 살짝 받쳐주는 역할만 하였다.
슥삭. 슥삭.
오 대리는 분묘 뒤에 있는 소나무에 현수막 끈을 매는데.
아…… 뭔가 답답하다.
“제가 군대에서 매듭법 전문이었거든요~ 하하.”
전문이라면서 끈을 저렇게 허술하게 매나?
손이 근질거렸지만, 우선은 두고 보았다.
“자~ 다 설치됐습니다.”
#무연고 분묘 개장 공고
1. 분묘위치 :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114―1
2. 분묘기수 : 1
3. 개장사유 : 토지의 효율적 이용
4. 개장방법 : 공고기간 경과 후 파묘, 화장하여 봉안시설 10년 안치.
5. 안치장소 : 경기도 광주시 매포읍 225
5. 공고기간 : 최초 공고일로부터 3개월
신고처 : 010 ― 4573 ― XXXX
위공고인 : 토지주
변 이사는 날 향해 물었다.
“공고인을 사랑산성으로 할 걸 그랬나?”
“아니요. 토지주가 적절해 보입니다.”
“음. 그래.”
오 대리는 삽을 들고 말했다.
“이제 안내판 설치하겠습니다.”
“오케이~”
팟! 팟!
“내가 군에서 오크레인으로 불렸거든요! 핫핫.”
“…….”
오 대리의 삽질을 유심히 보았다.
입으로는 전문가였다.
“삽의 각도를 이렇게 해서, 땅을 파고들 때 손목에 임펙트를 줘서…….”
답답하다. 손이 근질거린다.
이번에는……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