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38화 (138/156)

생존의 문제 (2)

* * *

내 말에 변 이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로?”

“…….”

“더 생각 안 해봐도 돼?”

망설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네, 빨리하세요.”

“아, 알았어.”

30억짜리 소송.

그에 대한 최후통첩을 날리는 것이다.

[금일중으로 잔금 처리를 완료 하지 않으면,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 및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 진행합니다. 이 부동산 거래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다시 한번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양자 간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없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6시까지만 기다리겠습니다.]

변 이사는 메시지를 적은 후 내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낼까 하는데.”

“…….”

난 다 읽은 후, 물끄러미 변 이사를 보았다.

“왜 이러세요?”

“응?”

“이렇게 해서 박대길 씨가 나오겠습니까?”

“…….”

“변 이사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마음 약해지셨어요?”

“흠…… 아니…… 그게.”

변 이사는 뭐라고 대꾸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저 변 이사님한테 일 이렇게 안 배웠습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해야 한다고 저한테 입버릇처럼 가르치셨었는데.”

“…….”

“서로의 사정이야 어쨌든, 지금 전투에 돌입한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끄응…….

변 이사는 입맛만 다시고는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줘보세요.”

변 이사의 핸드폰으로 받은 후, 중개인에게 물었다.

“박대길 씨, 집 멀어요?”

“아니요. 이 근처에요. 차로 한 10분 정도?”

난 메시지를 적어 나갔다.

[이 메시지를 받으신 후 30분 내로 부동산으로 오지 않으면,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 및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 진행합니다. 그에 더불어 피해보상 청구 소송도 진행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거래입니다.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이미 오래 기다렸습니다. 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변 이사는 이 메시지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와…… 너무 쎄다.”

“…….”

“강 사장님…… 진짜로 해볼 생각인 거야?”

“그럼 빈말인 줄 아셨어요?”

“아니…… 소송이라는 게 간단한 게 아닌데…….”

누구는 소송하고 싶나?

상대방은 이미 싸울 태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세가 바뀌길 바라는 건 헛된 기대다.

그러다가 된통 당하는 거다.

이왕 부딪힐 거면, 뒤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어서, 보내세요.”

변 이사는 약간 망설이다가…….

결국 ‘전송’ 버튼을 눌렀다.

강태평은 벽시계를 본 후 말했다.

“지금 시각이 4시 5분이에요. 두 분 다 보셨죠?”

“…….”

“앞으로 딱 30분. 4시 35분까지만 기다립니다. 혹시 박대길 씨에게 연락이 오더라도 받지 마세요. 이 자리에 오는 거 아니면 의미 없습니다.”

그런 강태평을 보며 변 이사는 생각했다.

‘간혹 보면…… 참 무섭단 말이야.’

강태평은 어금니를 깨물며 중얼거렸다.

“경우 없게…… 도대체 몇 명을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거야?”

* * *

위이잉―

위이잉―

벌써 5통째.

이제 15분 지났다.

메시지를 보낸 이후로 박대길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 있었다.

위이잉―

“강 사장님, 이번에도 받지 마?”

“받지 마세요.”

“…… 아, 좀 불안하다.”

“불안해 할 거 없어요. 이미 많이 배려했습니다.”

“…….”

위이잉―

잠시 후, 이번엔 내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박대길’

위이잉―

변 이사가 계속 전화를 안 받으니, 나한테 한 것 같은데.

‘4시 25분.’

이제 10분 남았다.

흠…… 이제는 전화를 받아도 될 것 같다.

[여보세요?]

[야이 씨! 왜 전화 안 받아?! 누구 맘대로 소송을…….]

어쩌고저쩌고 뭐라고 쏟아 내는데.

난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넌지시 말했다.

마치, 박대길 전화인지 몰랐다는 듯.

[박대길 씨였군요. 10분 남았습니다. 전화 끊습니다.]

[야아~!]

난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끊은 후, 박대길을 ‘수신 거부’로 돌렸다.

옆에서 그걸 지켜본 변 이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쎄다. 쎄. 자기 원래 이렇게 독한 사람이었어?”

독하게 살아야만 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똥손 시절.

난 그냥 싱긋 웃고는 다른 걸 물었다.

“근데, 변 이사님.”

“응?”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은 뭔지 알 것 같은데,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은 뭐에요?”

“하하. 뭐야. 내용도 모르면서 메시지 보내라고 한 거야?”

변 이사는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매도인이 해당 부동산을 제삼자에게 처분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거야.”

“아~ 그러니까. 우리랑 계약한 상태에서 그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다? 그러면 완전 막장 아니에요?”

“개막장이지.”

“만약 그런 경우엔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야 있겠지만…… 엄청 일이 꼬이지. 제삼자도 피해자일 수 있으니까. 나도 거기까지는 잘 몰라.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변 이사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흠…….”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여차하면 부동산 금지 가처분 신청부터 최대한 빨리해야겠네요.”

“그렇지. 근데……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

“그렇죠. 하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

‘4시 33분.’

이제 2분 남았다.

난 시계를 본 후, 변 이사에게 말했다.

“상담받았던 변호사 있으시죠?”

“있지.”

“연락할 준비 하세요. 4시 35분 되면 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갑니다. 이미 너무 많이 양보했어요.”

“흠…… 알았어.”

부웅~ 끼이익.

그때, 차 소리와 함께.

다다다다.

다급해 보이는 뜀걸음 소리가 들렸다.

덜컹!

“헉. 헉.”

4시 35분.

박대길이 나타났다.

* * *

“안녕하세요.”

변 이사는 박대길을 향해 인사했다.

“너무 늦으셨네요. 그래도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씩. 씩.

변 이사의 말에도 박대길은 그저 거친 숨만 들이쉬고 있었다.

박대길의 눈에 독기가 가득 차 있는데, 숨소리가 거칠고, 뭐라도 터질 것 같았다.

꿀꺽.

중개인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저 바들바들 떨면서 이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책임 중개하셔야 하는데…….

“이 나쁜 놈들…….”

씩. 씩.

거친 숨만 내 쉬며 ‘나쁜 놈’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팽팽한 대치 상황.

그렇게 서로 한참을 마주 선 채로 있다가.

변 이사가 눈치를 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우선…… 잔금 입금부터 할까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박대길은 변 이사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사기꾼보다 더 한 놈들아!”

그는 변 이사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법이라는 미명 하에 지능적으로 사기를 쳐?! 이 나쁜 놈들! 천벌을 받을 놈들!”

변 이사는 멱살을 잡힌 채, 풍선 인형처럼 흔들렸다.

“이런 법이 어딨어! 어딨냐고!”

“자, 잠깐만. 이것 좀 놓고…….”

“당장 물어내! 돈을 올려주던지! 계약 물으라고!”

박대길은 이성을 잃었다.

‘소송’이 무서워서 이 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마음은 전혀 내키지 않는 것이다.

멱살 잡힌 변 이사의 얼굴은 점점 빨개져 가는데, 그럼에도 박대길은 놓을 생각을 안 했다.

“박대길 씨!”

난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계약서상 매수인은 여기 있습니다! 놓고, 저랑 대화하시죠!”

이 말에 박대길은 날 바라봤다.

“이, 이, 새파랗게 젊은 놈이……. 그래! 네가 사장이라고 했지?”

그는 변 이사의 멱살을 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치 멧돼지 같았다.

들이 받히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내 멱살을 향해 뻗어올 때.

척!

내 손은 그의 손과 깍지를 꼈다. 살포시.

“어…… 어?”

깍지를 낀 후,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조금의 틈도 없도록 꽉 맞잡았다.

“야아…….”

내 금손과 맞닿은 박대길의 손.

그의 눈빛이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이거 놔아…….”

“먼저 진정 좀 하시고요…….”

난 손을 깍지 낀 채로, 그와 팔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흡~ 휴우~ 심호흡하세요. 따라 하세요.”

중개인은 이런 우리를 이상하게 보면서 중얼거렸다.

“뭐야…… 갑자기 건강체조…….”

변 이사도 이런 우리를 황당한 듯 바라봤다.

깍지 낀 채로 박대길의 팔을 오무렸다 펴면서 심호흡을 시킨 뒤.

난 부드럽게 물었다.

“이제 진정 좀 되셨어요?”

“모르겠어요. 지금 진정되는 게 이상한 건데. 아 머리 아퍼.”

급격한 기분 변화로 박대길은 두통이 찾아온 듯싶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정수기 물 한 잔 드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난 조심스럽게 깍지를 풀어서 그를 자리에 앉힌 뒤, 정수기 물을 따르러 갔다.

다행히 중개소에는 정수기가 있었다.

“계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중개인의 말에 변 이사가 대신 대답했다.

“가만히 계세요. 강 사장님이 직접 물 내리셔야 해요. 훗.”

변 이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으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 * *

꿀꺽. 꿀꺽.

강태평이 따라 준 물을 마신 후, 박대길의 표정은 더 평온해졌다.

휴우―

한숨을 크게 쉬고는 박대길은 죽을상을 지었다.

휴우―

또 한숨을 쉬었고.

강태평은 마주 앉아서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미안합니다. 아마추어같이.”

“…….”

강태평은 말없이 물을 한 잔 더 건네었다.

“한 잔 더 드세요.”

“네, 물맛이 기가 막히네요. 이 집에 물 마시러 종종 와야겠어요.”

박대길은 쭉 들이켰고.

중개인은 그저 신기한 듯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강태평은 이제 그가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아서 천천히 운을 띄었다.

“박 사장님.”

“네.”

“마음이 많이 쓰리시죠.”

“…….”

“우리…… 잠시 입장 바꿔서 한번 생각해볼까요? 저희도 그렇게 할게요.”

박대길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강태평은 그래도 말을 이어갔다.

“아무 말 없이 딱 5분 정도만요. 저도 사장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5분간.

중개소 안은 현자 타임이 되었다. 모두 명상에 들어갔다.

박대길은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나라도…… 그런 정보를 알았다면, 횡재다 싶었을 거야.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정보도 재산인 시대인데.’

강태평 또한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했다.

‘법을 어기거나, 박대길 씨를 속인 건 아니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어.’

시간이 흐른 뒤.

박대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지금 잔금 처리 하겠으니, 제가 실례를 범했던 건 없었던 일로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돈을 더 올려달라던지, 생짜를 부리지 않았다.

강태평은 물끄러미 그를 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어쨌든 제가…… 결정한 계약인데, 감수해야죠.”

“…….”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중개인은 그런 박대길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강태평이라는 사람…… 무슨 심리학을 배웠나? 어쩌면 저렇게 단시간에 사람을…….’

강태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당연히 저도 괜히 문제 일으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개인은 박대길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감사하다고? 미쳤나?’

강태평은 갑자기 일어나서 가방을 들고 오더니, 뒤적거리며 말했다.

“제가…… 마음 같아서는 거래대금을 좀 올려드리고 싶은데, 저희도 지금 형편이 빠듯해서…… 대신에.”

변 이사는 강태평이 가방에서 꺼낸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저건…… 사랑 자동차?!’

강태평은 손바닥만 한 사랑 자동차를 박대길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가 얼마 전까지 종이접기 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기념하기 위해 만든 건데…… 이거 드릴게요.”

“종이접기? 그런 걸 받아서 뭐 한다고!”

박대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변 이사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강 사장님! 차라리 돈을 드리는 게 낫지!”

‘저거 팔면 못 해도 10억이 넘을 텐데. 더군다나 네모의 신 소장 작품이라고 하면…….’

강태평은 그만하라고 손을 든 뒤 말했다.

“작가는 ‘네모의 신’입니다. 작품 바닥에 작게 표시해 둘게요.”

박대길은 눈을 크게 떴다.

‘네모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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