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문제 (1)
* * *
일주일 뒤.
‘복 부동산’
잔금일에 맞춰서 부동산에 왔다.
오늘 잔금을 치르고, 등기까지 완료하면 토지 거래는 끝나는 것이다.
똑. 똑.
변 이사가 문을 두드린 후 먼저 들어갔고, 난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중개인이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어머~ 오셨어요?”
“하하. 잘 지내셨어요?
변 이사와 중개인은 서로 악수를 나눴다. 난 중개인을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호호. 네~ 한 달만이네요. 우리 젊으신 사장님.”
중개인은 사교성 있게 웃었고, 나도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오후 1시 50분.
매도인 박대길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2시다.
우리가 10분 일찍 도착했다.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녹차도 있는데.”
중개인이 상냥하게 물었고, 변 이사가 내게 물었다.
“강 사장님 항상 먹던 거로 먹지?”
“네.”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개인에게 말했다.
“믹스로 두 잔 부탁드립니다~ 물 좀 적게 넣어서 진하게 부탁드릴게요~”
“호호. 알겠어요. 찐한 거 좋아하시는구나?”
룰루~ 믹스는 찐하게~ 찐이야~
중개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믹스를 탔다. 정체불명의 곡조와 가사였지만, 어쨌든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오늘 잔금 치르고 나면 중개료 2,700만 원을 받을 테니…….
“여기~ 가져왔습니다아~”
이젠 일상 대화에도 멜로디를 붙여서 말했다.
약간은 오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뭐 기분 좋아서 그러는 것 같으니 참았다.
홀짝. 홀짝.
믹스커피를 마시며, 중개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별다른 주제 없이 그냥 정적을 없애기 위해 나누는 얘기.
궁금하지 않은 중개인 가족사까지 다 들었고.
2시 30분.
30분이 지났지만, 매도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중개인은 우리 눈치를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어머~ 왜 이렇게 안 오실까. 약속 시간은 칼 같은 분이신데.”
“무슨 사고 나신 거 아니에요? 뭐 연락받은 거 없으셨어요?”
변 이사의 말에 중개인은 다시 한번 핸드폰을 켜서 봤다.
“네, 없었어요. 혹시나 해서 다시 봤는데…… 이상하네요. 문자 온 것도 없고.”
“…….”
중개인은 핸드폰을 클릭하며 말했다.
“제가 전화 한번 해볼게요. 그냥 좀 늦으시는 거겠죠.”
우리 또한 별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기다렸다.
통화버튼을 누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개인은 핸드폰을 얼굴에서 떼었다. 황당해 하는 표정…….
“뭐지?”
그리고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 양반 뭐야?”
뭔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변 이사가 물었다.
“왜요? 왜 그러는데요.”
“아니…… 전원이 꺼져있는 것 같은데요?”
스피커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서 들려주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안내음을 들은 변 이사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전원 꺼진 게 아닌데요?”
“…….”
“이 안내메시지는 수신 거부한 거예요.”
* * *
수신 거부?
왜?
진짜?
불길한 기운이 확 느껴져서, 난 확실하게 물었다.
“진짜 이게 수신 거부 메시지에요? 전원 끊긴 게 아니라?”
변 이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전에 영업팀에 있을 때 영세업체에 미수금 독촉 전화하면, 간혹 사장님들이 수신 거부로 돌려놓거든. 확실해. 이건 수신 거부 메시지야. 전원을 꺼놓으면 메시지가 달라. ‘전원이 꺼져있어…….’ 이런 식으로 메시지가 나오지.”
“아…….”
흠~ 휴우.
난 최대한 침착하려고 심호흡했다.
변 이사와 중개인의 표정도 복잡해 보였다.
“자자, 이제 겨우 30분 지났잖아요. 뭔가 사정이 있는 걸지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중개인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고.
지금 우리로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야 뭘 대책을 세우는데, 오리무중이라…….
일단 좀 기다리는 수밖에.
1시간 경과.
전화 몇십 통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전화기, 변 이사 전화기로도 해봤지만, 그래도 안 받는다.
중개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고, 우리 또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30억짜리 거래를.
“아직 뭐 답장 온 거 없어요?”
수신 거부라도 메시지는 받을 수 있기에 중개인이 몇 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중개인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알게 된 게 아닐까?”
변 이사가 내게 넌지시 말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그거 말고는 매도인이 이렇게 나올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차라리 다른 이유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갑자기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핸드폰 고장이라든지…….
일단, 상황 파악을 먼저 해야 할 텐데.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이사님, 매도인 집이라도 찾아가 볼까요?”
“글쎄. 이렇게 전화도 안 받는 마당에 문을 열어줄까? 벨 누르면 인기척도 안 낼 거 같은데.”
난 중개인을 돌아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임 중개 아닙니까?”
“죄, 죄송해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중개인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잔금일에 말도 없이 안 나오다니…… 미쳤지, 진짜. 어쩌려고.”
난 쉴 새 없이 눈을 돌렸다.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가만있다가는 뭔가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사님!”
난 큰소리로 변 이사를 불렀다.
“대안 있죠? 예상 못 했던 일 아니죠?!”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부동산 담당은 변 이사다.
난 그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가장 경험도 많고,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분이기에 부동산을 맡긴 것이다.
변 이사는 굳은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일단…… 선전포고를 해볼게. 일단 정확히 진단을 해봐야 하니까. 이게 싸움을 건 건지, 사고인 건지.”
“뭐든 해보세요.”
* * *
[수신: 매도인 박대길님. 발신: 사랑산성 변성준 이사.]
[귀하는 금일 약속된 잔금일시 14:00에 아무런 통보 없이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메시지 보낸 시간은 15:23분이며, 약속 장소에서 1시간 23분째 기다리는 중입니다. 위 메시지 확인 후 30분 이내로 아무런 연락이 없을 시에는 가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30분 이내로 연락 없으면 어떠한 협의도 없습니다. 위 내용 증명 보내 드립니다.]
변 이사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후 내게 보여주었다.
“내용 증명? 이게 법적 효력이 있어요?”
“없지. 그리고 통상적으로는 우편으로 보내지.”
“…….”
“어차피 법적 효력 없는 건 매한가지인 거고, 내용 증명이라는 게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방편이니까. 우린 지금 빠른 원인 파악이 중요해. 일단 메시지로 압력을 넣는 거야. 임기응변으로.”
그래, 일단 기다려 보자.
10분 경과.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계속 연락 안 받던 사람이 이 정도 메시지에 연락할 거라고는…….
한편으로는 연락을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만약 이 메시지를 보고 연락하는 거라면, 의도가 확실한 거니까.
20분 경과.
위이잉―!
변 이사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박대길.’
핸드폰에 뜬 발신자를 보고 나와 변 이사는 눈을 마주쳤다.
하아…… 젠장.
일부러 안 나온 게 맞았구나.
위이잉―
“이사님, 통화녹음 잊지 마시고요.”
“그래, 메시지 안 보내고 전화로 하는 거 보니 의도가 뻔하네.”
‘통화’, ‘녹음’, ‘스피커’
변 이사는 위 버튼을 차례대로 눌렀다.
“여보세요?”
[야이, 사기꾼들아.]
전화를 받자마자 말이 거칠게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알아차린 것이다.
“박대길 씨 맞습니까?”
변 이사의 말에 박대길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 말하지 마. 이 사기꾼들아. 내가 그 땅을 몇 년을 갖고 있으면서 손해 본 게 얼마인데. 그렇게 나를 싹 속이고서 헐값에 땅을 사?]
“무슨 말씀이신지?”
[분묘기지권 사라졌잖아!]
이 말에 중개인은 깜짝 놀라서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그 땅이 분묘기지권이 없어요?”
난 손을 들어 중개인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나중에 설명해줄게요.”
변 이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런데요?”
[그런데요? 이 인간아! 그걸 왜 말을 안 해주냐고!]
“저희가 그 말을 해줘야 합니까? 왜요?”
[…….]
변 이사의 능청스러운 말에 매도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말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당신이 나라면 기분 안 나쁘겠어? 50억이 넘는 땅을 30억에 판 건데?]
“저는 아무것도 속인 게 없어요. 매수인은 땅을 싸게 사려고 할 뿐이죠. 왜 땅을 싸게 파냐고, 가치를 몰라보냐고 말해주는 바보 같은 매수인은 없을 겁니다.”
[…….]
“본인이 알고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박대길은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었지만, 변 이사는 아주 침착했다.
그가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괜히 영업 20년 짬밥이 아니었다.
“그리고…… 계약 직전에 5억 원 올려 드린 걸로 기억합니다만? 이렇게 매도인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매수인이 어디 있습니까?”
[젠장, 어쩐지. 쉽게 올려줄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영문을 모르는 중개인은 우리 두 사람 눈치를 살폈고.
나와 변 이사는 매도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30분 내로 전화 없으면 협의가 없을 거라고 메시지 보냈었다.
그 안에 전화했다는 건 분명 뭔가 요구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긴말 필요 없고. 10억 더 올려줘요.]
“뭐요?”
변 이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면 난 절대 안 갑니다.]
변 이사는 우리 대화가 들리지 않게, 전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내게 물었다.
“강 사장님 어떻게 할까?”
난 잠시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일단 전화 끊으시죠. 상황 파악 했고, 요구사항도 알았으니까. 우리가 다시 연락드린다고 하세요.”
“오케이.”
변 이사는 가렸던 손을 풀고, 말했다.
“사장님께 보고드린 후에 말씀드릴게요.”
[잘 생각하세요.]
뚝.
전화는 끊어졌다.
휘이잉~
사무실 안에 싸늘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는 것 같다.
전화를 끊자마자, 중개인은 다급히 물었다.
“누가 설명 좀 해주세요. 박 사장님이 왜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변 이사가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고, 중개인은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아…… 애매하네.”
그리고는 변 이사에게 물었다.
“아니, 근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래요? 나도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변 이사는 내 얼굴을 한번 보고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냥 뭐…… 어쩌다가 듣게 된 거죠.”
“하아…… 박 사장님 입장에서는 좀 속이 쓰릴 만하긴 하네요.”
난 중개인에게 물었다.
“근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
“저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속인 적도 없어요.”
“그렇긴 하죠. 그냥 뭐…… 박 사장님이 손해 보는 거래를 한 거죠.”
중개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다가 살며시 날 바라봤다.
“그래도 도의상…… 조금 올려드리는 게 어때요?”
이미 계약할 때 5억 원을 올려주었고, 보육원 부지 매도하면서 양도소득세로 10억 원이나 나갔다.
앞으로의 발생할 비용을 고려할 때 현재 여유자금이 3~4억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근데, 여기서 10억을 더 올려달라고?
글쎄…… 우린 잘못한 거 없고, 이제 자금 여유도 없다.
박대길의 속이 좀 쓰리겠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다.
난 변 이사를 돌아봤다.
“이사님, 이런 상황도 시뮬레이션 해봤겠죠?”
“음…… 최악의 상황은 고려해 봤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후에,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을 해야 해.”
“그렇게 하면 박대길 씨 안 나와도, 등기이전 가능합니까?”
“응. 가능해. 다만…… 시간은 좀 걸리겠지.”
난 고민했고.
변 이사와 중개인은 내 입만 바라봤다.
“…….”
기다리다가 변 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진행해?”
내가 마음 약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인데.
지금의 나로서는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내 아래 딸린 식구가 몇인데, 이건 생존의 문제다. 단순하다.
“최후통첩 날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