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35화 (135/156)

굿바이 (1)

* * *

“기다려. 내가 나갈게.”

난 문밖을 향해 소리치고 이정수 팀장에게 말했다.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제가 자리 피해드릴게요. 어디 가서 통화할 만한 곳도 없어요.”

아…… 하긴 여긴 영웅 옥션이니까.

“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이정수 팀장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 대화도 다 했잖아요. 계약서 서명도 했고요.”

이정수 팀장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바쁘실 텐데 전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도 바빠서요. 하하.”

내가 미안해할까 봐 이정수 팀장은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제 자리 아시죠? 혹시 뭐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 주시고요.”

난 그와 악수하며 말했다.

“그럼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일정만 좀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네.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잡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강 작가님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많이 묶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똑. 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정수 팀장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김 의원님 전화 오래기다리시겠네. 인사가 너무 길었네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연락 주세요.”

“네~”

덜컹.

이정수 팀장이 나가고, 오 대리가 들어왔다.

“사장님, 뭐예요? 차라리 전화 끊으라고 하시지. 나중에 전화한다고.”

“어쩌다 보니, 그랬어. 어서 줘.”

오 대리는 전화기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사장님 전화가 안 돼서 저한테 전화 주셨데요.”

“아…… 그래.”

난 오 대리 핸드폰을 받았다.

오늘 영웅 옥션을 만나기 전 김 의원에게 전화를 했었다. 경매를 하기 전에 그에게 꼭 부탁할 말이 있었기에.

[여보세요?]

[…….]

[김 의원님? 전화 끊겼습니까?]

[태평 님, 안녕하세요. 김정식입니다.]

한참 뒤에 말했다.

[저야말로 전화가 끊긴 줄 알았습니다.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였는데.]

[아…… 죄송합니다. 회의 중이었는데, 급하게 끊느라 좀 걸렸습니다.]

김 의원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전화 주셨던데…… 제가 못 받았었습니다.]

[아 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아니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오호…… 태평 님이 제게 부탁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말씀하세요.]

내가 ‘부탁’이라는 말을 꺼내자, 김 의원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네. 제가 조만간 다시 작품 경매를 들어가려고 합니다.]

[오…… 빠르네요. 전 시간이 한참 더 걸리실 줄 알았는데.]

[네, 그래서 말인데…….]

김 의원에게 꼭 하려고 했던 말을 난 천천히 꺼내었다.

[이번 경매에 참여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

[이게 제 부탁입니다.]

* * *

옆에서 잠자코 있던 오 대리도 의아해했다.

김 의원이야말로 큰 손이고, 내 작품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입찰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왜 경매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는지 의아스러울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 그게 부탁이라고요?]

[네.]

[…….]

수화기 너머 아무런 말이 없었다. 김 의원은 할 말을 정리하는 듯싶었다.

[실례지만,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간단합니다. 김 의원님께서 경매 참여하시면 낙찰되실 게 뻔하니까요.]

[뭐라고요?]

[전 제 작품이 한 사람에게 독점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 의원님이 제 작품에 보이는 적극성은 순수한 의도로만 보이지 않아서요.]

[순수한 의도요? 그럼 제가 입찰하는 데 무슨 나쁜 의도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난 한숨 돌린 후, 말을 이어갔다.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 그 이외의 것이 있는 것 같아서요.]

[…….]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상심리? 혹은 맹목적인 호의?

고맙긴 하지만 난 순수하게 작품만을 보는 사람에게 내 작품이 낙찰되기를 바랐다.

아무런 대꾸가 없는 김정식에게 난 말했다.

[어떤 의도로 말씀드린 건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아쉽네요. 만나서 설명을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그 눈으로 뭔가를 또 보려고 했었겠지.

그래서 통화로 얘기하는 것이다.

아마 만나서 얘기했다면, 내가 종이공예를 관두려 하는 것도 알아챘을 것이다.

[부탁 들어주시는 겁니까?]

[흠…….]

김 의원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부탁이라고 하셔서 좀 거창한 걸 기대했는데…… 영 마음에 안 드는 부탁이네요.]

[…….]

[태평 님 부탁인데 들어야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에 출품하실 때는 이런 부탁 하지 않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데, 전 경매 참여할 때 순수한 의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물론, 그게 100%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솔직해서 좋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더 할 말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네.]

뚝.

전화를 끊고, 오 대리는 내게 핸드폰을 받으며 물었다.

“얘기는 잘 되신 거예요?”

“누구?”

“두 분, 모두요.”

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것 같아.”

오 대리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왜? 아쉬워? 성과급 줄어들까 봐?”

“잘 아시네요.”

“하하.”

난 오 대리의 헤드록을 걸면서 말했다.

“걱정 마~ 또 다른 사업이 있겠지. 계획만 하고 아직 시작 안 한 사업도 있잖아. 김지안 대리가 준비하고 있는 거.”

“아~ 그거요.”

오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종이공예는 갑자기 왜 그만두신다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이 얘기는 누구에게도 해줄 수 없다. 그렇게 하기로 변 이사와 얘기했었다.

그때는 변 이사가 오바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냥~ 지겨워져서. 가자!”

* * *

10일 뒤. 코엑스 C홀.

영웅 옥션은 기존에 기획되어 있던 일정을 특별 기획전으로 바꾸었고.

특별 기획전에는 내 작품과 더불어 10여 개의 작품만 출품되었다.

경매 당일, 난 경매에 직접 참석했다.

고민하다가, 내 마지막 작품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무리해서 참석하긴 했는데…….

― 강태평 씨!

― 오 마이 god! 네모의 god!

― 네모의 신!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공개 석상에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는 건 지난 경매일 이후 처음이다.

기자도 많았지만, 그것보다는 추종자들이 정말…… 엄청났다.

― 네모천국! 불신지옥!

― 네모천국! 불신지옥!

― 네모천국! 불신지옥!

핑크색 티셔츠 ‘네모천국’의 향연.

내가 눈짓 한번 보낼 때마다.

네모천국 티셔츠 입은 분들은 거의 쓰러질 듯했다.

― 엄마악!

― 어머, 나 죽어.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이래서 열혈 추종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닉네임은 네모의 ‘신’.

팬클럽은 네모‘천국’.

구호는 ‘네모천국 불신지옥’.

그리고 광신도와 같은 추종자들.

사이비 종교로 오해받기 딱 좋다.

[모두 정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특별 기획전 with 네모의 신’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 우와악~!

어느 여성분의 괴성 소리가 들렸다.

[경매가 시작된 이후에 소란을 피우는 분은 퇴장 조치 됨을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퇴장되시면 네모의 신님의 작품을 보실 수 없겠죠.]

이틀 전에 열린 이번 특별전시회의 프리뷰에서 내 작품은 없었다.

‘사랑 자동차’ 프리뷰는 경매 당일 행사 날에 무대를 꾸며서 하기로 했다.

‘네모의 신 쇼케이스’처럼 경매가 시작된다.

영웅 옥션은 대중의 관심과 이런 기획전의 특성을 고려하여 좀 더 넓은 C홀로 행사장을 잡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경매사 홍은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짝짝짝.

[특별기획전을 찾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오늘 총 10개의 작품이 출품되고요. 경매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면으로 경매 순서를 보여주었는데, 내 작품은 가장 마지막 순서다.

[지금부터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30여 분 흘렀을까.

이번 기획전 작품 수가 적어서 경매는 금방 지나갔다.

드디어 내 작품 차례가 되었다.

[오늘의 특별 기획전! 메인 출품작인 네모의 신 작가의 ‘사랑 자동차’…….]

― 우왁~!

― 네모천국 불신지옥!

[쉿!]

경매사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입에 갖다 대었다.

[경고는 이번 한 번뿐입니다. 정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흠. 메인 출품작인 ‘사랑 자동차’ 경매에 앞서 프리뷰가 있겠습니다. 모두 홀 중앙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실내가 점점 어두워지고.

팟!

조명이 홀 중앙을 비쳤다.

조명이 비친 곳에는 투명하고 작은 트랙이 있었다.

그 트랙은 홀의 끝에서 끝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었고.

그 트랙의 끝에…….

팟!

무광택의 검은색의 잘 빠진 자동차가 한 대 서있었다.

[소개해 드립니다! 네모의 신 작가님의 ‘사랑 자동차’입니다.]

― 오~~

경매사의 소개와 함께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 뭐야? 움직여?

― 저거 종이 아니야?!

[네모의 신님은 종이공예 작가로 유명하시죠. 아시다시피 이 ‘사랑 자동차’는 종이로 만들어졌습니다. 배터리 외에 100% 분리 결합 없이 종이 한 장으로 만든 정통방식 오리가미 작품으로서…….]

홀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사랑 자동차’는 순식간에 트랙 끝까지 갔고.

부웅―!

트랙 끝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고 싶어 했다.

종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힘든 굉음을 내며, 계속 울부짖었다.

[사랑 자동차는 실제 전기자동차와 싱크로율 99%입니다.]

홀 전면에 프로젝터로 사랑 자동차의 섀시, 바디, 보닝 안 구성에 대해 상세 화면이 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더해갈수록 홀 안은 정적을 넘어 경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젠 경매사가 정숙 하라며 주의를 줄 필요도 없었다.

‘네모천국’ 팬들은 손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통성기도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묵상기도로 바뀌어 있었다.

팟!

전체 조명이 켜지면서 장내는 환해졌고.

이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잠시 꿈을 꾼 듯한 기분이리라.

[네모의 신 작가님의 ‘사랑 자동차.’]

경매의 시작을 알리려 했고.

홀 안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경매 5억에서 출발하여, 5,000만 원씩 올라갑니다.]

‘할아버지의 일생’이 3억에서 시작했었다.

출품가는 협의해서 정하는 것이지만, 난 그냥 이정수 팀장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겼었다.

아…… 근데 이렇게 높은 가격부터 시작할 줄은…….

똑딱. 똑딱.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계 초침 소리.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경매사는 손을 뻗치며 날카롭게 외쳤다.

[자! 경매 시작합니다. 5억 5천 있으십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패들이 올라갔다.

[5억 5천!]

[6억!]

[6억5천!]

:

그냥 미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난 그저 입이 벌어져 버렸고.

김 의원에게 굳이 전화할 필요 없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텀이 없었다.

패들은 쉴 새 없이 올라갔고.

경매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19억 5천!]

‘할아버지의 일생’ 낙찰가를 깨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