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34화 (134/156)

조심해야 한다 (2)

* * *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럴까?

눈이 붉게 충혈 되어선 뭔가 다급해 보였다.

작품 보여주고 평 좀 받아보려고 데리고 왔더니.

왜 버럭 이지?

그리고 이 자동차를 버리라고?

아이디어 준 사람이 누군데, 왜 막상 만들어 놓으니까 버리래?

“자, 잠깐 변 이사님.”

난 우선 변 이사를 진정시키기 위해, 물을 한잔 내렸다.

“물 한잔 드세요.”

원룸에 집은 변변치 않지만, 건강을 위해서 정수기를 두고 산다.

변 이사는 나의 금손으로 내린 정수기 물을 한잔 들이켠 뒤.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진정 좀 하시고요.”

“…….”

“이사님 저 이 자동차 진짜 힘들게 만들었어요. 거의 일주일 내내 밤잠 못 자고 만든 거 아시잖아요.”

“…….”

“근데 그걸 버리라고요? 왜요? 그리고 도대체 뭐가 큰일 난다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변 이사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묻는 말이.

“’할아버지의 일생’은 하루 걸려서 만들었었지?”

“그렇죠.”

“지금 만든 자동차는…….”

“사랑 자동차에요.”

“사랑…… 그래. 자기 사랑 참 좋아하는구나. 투자한 시간으로 비교해 보면 어때?”

음…… 시간으로 비교해 봤을 때?

“그렇게 치면, 사랑 자동차가 할아버지의 일생보다 3배 정도 더 들인 거 같네요.”

“3배…… 3배라.”

변 이사는 내 방안을 살피다가 한 곳에 집중했다.

“이거 말이야.”

꼴 보기 싫어서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기념 삼아서 몇 개 놔둔 ‘신의 학’이었다.

변 이사는 자세히 신의 학을 보다가 물었다.

“왼쪽 거랑 오른쪽 거랑 차이가 있어?”

“차이요?”

난 두 신의 학을 바라보았다.

차이? 차이라…….

“왼쪽 거는 네모튜브 처음 출연했을 때 만든 거고, 오른쪽 거는 얼마 전에 사랑 산성 광고 영상 촬영할 때 만들었던 거 같은데요.”

오른쪽 신의 학은 네버랜드 홈브리지에서 촬영 시에 만든 거였다.

“시간과 숙달의 차이…….”

변 이사는 어떤 상관관계를 찾으려는 듯싶었다.

“자기는 타고난 손재주도 뛰어나지만, 숙달 능력이 어마어마한가 보다.”

“네?”

“신의 학이 다르잖아. 자세히 보라고.”

난 신의 학을 자세히 볼 일이 없었다. 내게 학 접기는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눈에 집히는 대로 빨리 접고 던져버렸을 뿐.

변 이사의 말을 듣고 자세히 바라보니, 왼쪽 신의 학은 속눈썹이 없고, 오른쪽 신의 학은 속눈썹이 있었다.

그 외에도 디테일에서 차이가 꽤 났다.

“그런 사람이 원래 보다 세배의 시간을 투자했고…… 종이접기 경력 또한 2년이 다 되어 가잖아?”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끝나고 바로 시작했으니. 거의 2년이 다 된 게 맞다.

“나 진짜 농담하는 거 아니야. 잘 들어.”

처음엔 변 이사가 오바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들을수록 나도 뭔가 좀 심각해지고 있었다.

“자기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나야 모르지만…… .”

“…….”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자기 종이로 생명체도 만들 거 같아.”

“풉!”

어이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하지만 변 이사는 웃지 않았다. 매우 진지했다.

“아니야. 웃을 일 아니야. 이거 심각해.”

“…….”

“냉정하게 생각해봐. 종이로 혼자 움직이는 자동차를 사람이 탈 수 있을 크기로 만들어 냈어. 그것도 5일 동안 퇴근 후에 좀 꼼지락댄 거로 말이야.”

변 이사는 검지로 자동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생각해?!”

* * *

“태평아. 능력 발휘를 좀 적당히 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돼~”

“…….”

“자기는 그냥 작품에 빠져 열심히 만들기만 하니 모를 수 있어.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한번 생각해 봐. 이게 과연 사람들이 놀라워할 수준인지, 경악할 수준인 건지.”

그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기능을 발휘하는 종이 공예?

들어본 적도 없고, 내가 처음 종이 공예를 접했을 때도 상상해보지 않았었다.

“이건 거의 미친 수준인 거지.”

아, 근데. 내가 이 차를 왜 만들었더라.

“이사님께서 저한테 아이디어를 주셨잖아요. 종이 자동차가 스스로 굴러가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한을 걸지 말라고.”

“야! 그건 그냥 하는 소리지!”

변 이사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제한 두지 말라고, 할아버지 인생 작품이 심장 뛰게 해보라고 하면 할 거냐?”

“에이~”

내가 콧방귀 뀌자, 변 이사는 살짝 머뭇거렸다가 말했다.

“그리고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 같은 걸 말한 거지. 내가 언제 사람 타는 전기자동차 얘기했냐?”

“그거야.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장난해? 좋은 게 좋아? 상황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맞지는 않다. 변 이사가 자꾸 세게 얘기하니까, 그냥 한번 뻗대보고 싶었다.

“흠…….”

난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는 잠자코 있었다.

방금까지 변 이사와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그리고 자동차를 한번 보고, 한숨 한번 쉬고. 자동차 보고, 한숨 쉬고.

이 행동을 반복했다.

그의 말이 일리 있다는 건 납득 했다.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해 보니,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이 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빠져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어떡하나.

변 이사는 내 눈치를 살피고는 살며시 말했다.

“좀 아쉽겠지만…… 이 차는 관두자.”

“…….”

“만들면서 즐겼잖아. 결과물도 봤고, 여기 눈으로 봐준 증인도 있고. 그걸로 만족하자.”

난 다시 한번 자동차를 봤다.

흑연 종이로 만든 매끈하게 빠진 ‘사랑 자동차’

무광택의 고급진 종이 세단을 보고 난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그래. 그리고…….”

변 이사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종이접기는 이제 그만하자.”

“네?”

“자기 그거 안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잖아.”

“아니, 한번 만들면 10억 넘는 사업을 관두라고요?”

변 이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야 할 거 같아. 사업 특성상 종이접기는 좀 위험해 보여.”

“…….”

“이건 완전히 창조하는 분야잖아. 자기 손재주에는 딱 좋지만. 그만큼 너무 리스크가 커 보여.”

종이접기를 관둔다?

네모튜브는?

“그럼 네모튜브는 어떡하구요.”

“음…… 그건 해도 괜찮지 않을까? 네모삼촌이 만들어 온 거를 자기가 따라 만드는 거잖아. 자기가 창조 하는 게 아니라.”

“…….”

“하지만 그것도 오래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무리 봐도 종이접기는 좀 위험해. 능력이 허용치를 넘어가면…….”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이건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그건 차차 생각해 볼게요. 근데, 어쨌든 지금 당장 자금이 필요한데…….”

보육원 토지 매도 및 ‘할아버지의 일생’ 경매 수익으로 어느 정도 자금은 마련됐지만, 돈이 좀 부족하다.

특히 건축자금 예산을 대략 11억 정도로 잡았지만, 정확히 얼마 들지는 아직 모른다.

넉넉하게 15억 정도는 마련해 두는 게 좋다. 그리고 토지용도변경 및 분묘처리 절차에서 분명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이번에 토지매도를 예상보다 5억 원 더 비싸게 했잖아. 그리고 건축비용 등은 우리 예산에 맞추면 되는 거야. 너무 부담 같지 마.”

“…….”

“그리고 정 안 되면 다른 사업으로 돈 마련하면 되는거고.”

“이 단기간에요?”

“…….”

이 말에 변 이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만들게요. 좀 작게 해서. 그냥 딱 7~8억 정도로만 낙찰될 수 있게.”

“글쎄…… 그게 자기 맘대로 될까?”

난 차를 보며 말했다.

“일단 사람은 못 타구요. 좀 더 투박하게 하려구요. 그리고…… AA 건전지 4개 넣어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 흑연 종이 전기 자동차 컨셉은 유지하구요.”

“흠…….”

변 이사는 신음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그래, 지금 당장 자금이 필요하니까.”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 잘 만들면 안 돼.”

* * *

그날 밤.

흑연 종이를 좀 작게 오린 후.

작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변 이사가 나눈 얘기를 기억하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냥 만들었다.

#사랑 자동차 축소 버전

전장 : 496mm

전폭 : 187mm

전고 : 148mm

축거 : 297mm

이 정도면 크다고 하진 않겠지?

기어도 없기에 엔진도 간단한 형태로 만들었고, 건전지는 AA 2개면 충분했다.

섀시가 종이라 가볍기에 전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수준을 조절하면서 만드는 게 더 어렵다.

만들면서도 계속 자기 검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런 생각.

새벽 2시.

대충 3시간 정도 작업했을까.

다듬기까지 모두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사랑산성.

변 이사와 마주쳤다. 우리 사이에 약간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변 이사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손에 무언가 쥐여주었다.

‘여명 800’

“강 사장님, 피곤해 보인다. 좀 마셔.”

“…….”

비싼 거로 사셨네.

근데, 어제 술 마신 것도 아닌데.

“네, 고맙습니다.”

변 이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힘내~ 도울 거 있으면 얘기하고.”

‘여명 800’과 몇 마디 말에 어색함은 단숨에 사라졌다.

난 웃으며 변 이사에게 말했다.

“오늘 이정수 팀장님 만나기로 했어요. 그냥 빨리 끝내 버리게.”

“벌써 다 만들었어?”

“네 어젯밤에요. 타이머 걸어놓고 만들었어요.”

“하하.”

이 말에 변 이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역시 강 사장님 스마트 해~”

종이 공예 담당 오 대리가 날 불렀다.

“사장님~ 가셔야죠. 시간 됐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

난 가방을 들고 변 이사에게 말했다.

“먼저 갑니다~”

“수고~”

* * *

영웅 옥션.

이정수 팀장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로비 앞에까지 나와 있었다.

근데, 이번엔 이정수 팀장 혼자가 아니었다.

미술경매1팀 팀장인 성민식.

미술경매 사업본부장도 함께 나와 있었다.

“강 작가님~ 어서오십시오.”

이정수 팀장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큰 소리로 인사하며 허리를 숙였다.

내가 네모의 신이며, 강태평 사장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는 항상 날 ‘강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옆에 있던 성민식 팀장과 사업본부장도 허리를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나 또한 깍듯이 인사하며 말했다.

“뭘 이렇게 다 나오셨습니까. 처음도 아닌데.”

한번 해봤던 일을 하는 건데, 뭘 이렇게까지 다 나왔는지 모르겠다.

“하하. 아닙니다. 강 작가님 오시는데, 인사드려야죠.”

사업본부장은 깍듯하게 말했다.

“이번에도 저희 영웅 옥션을 선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난 이정수 팀장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하하.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왜 연락 안 하셨어요?”

“바쁘실 것 같아서요. 하하. 작가님께 자꾸 연락하는 거 안 좋습니다. 전 그저 스탠바이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정수 팀장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난 이정수 팀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이동하고 있는데.

사업본부장과 성민식 팀장이 계속 뒤에서 쫓아왔다.

“저……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뒤돌아서 두 남자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네? 아, 아니…….”

“할 말 있으시냐고요.”

“아닙니다. 딱히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가셔서 일들 보세요. 이정수 팀장님과만 대화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정수 팀장은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

사업본부장과 성민식 팀장은 얼굴이 붉어져서는 눈만 깜빡거렸다.

기다릴 겁니다

* * *

덜컹.

회의실에 들어왔다.

이정수 팀장, 오 대리, 나.

이렇게 세 명이었다.

사업본부장과 성민식 팀장은 내가 대놓고 얘기를 하니, 그제야 떨어졌다.

오늘은 이정수 팀장과 개별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하하. 이거 황송하네요. 저만 찾아주시니.”

이정수 팀장은 민망한 듯 웃으면서도 좋아했다.

“요즘 옥션 어때요?”

난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고.

이정수 팀장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어려워요. 근데, 원래 강렬한 이벤트가 있고 난 뒤에는 분위기가 사그라드는 법이거든요. 저희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아~ 요즘은 뭐 이벤트가 없었나 봐요?”

“네. ‘영웅 옥션 X 디자인 컴퍼니 living with art’ 이후에 두 번 더 옥션이 있었는데요.”

이정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0억 이상 낙찰되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어요. 업계가 모두 네모의 신님이 재등장하길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 부동산 때문에 전혀 신경을 못 썼었다.

이정수 팀장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강남옥션이 최근에 왜 내게 무리해서 접근했었는지 좀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이정수 팀장은 날 다정하게 보며 말했다.

“왜요? 제가 작품 거래는 이정수 팀장님과만 한다고 했었잖아요. 빈말인 줄 아셨어요?”

“하하. 아니요. 빈말하실 분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는 오 대리가 들고 온 케이스를 보고 말했다.

“이렇게 빨리 작품 준비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작가님들이 다작을 해도 1년에 한 작품 정도인데…… 하하.”

‘할아버지의 일생’이 낙찰된 지 아직 두 달도 채 안 되었다.

난 눈을 흘기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불만이세요?”

이정수 팀장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하하! 아니요! 아니요! 너무 좋습니다. 강 작가님 오신다니까 사업본부장님이랑 성 팀장님까지 다 마중 나온 거 보셨잖아요.”

“하하.”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요. 이번 것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강 작가님.”

난 오 대리를 불렀다.

“오 대리.”

“네.”

“작품 좀 꺼내 볼까.”

“알겠습니다.

꿀꺽.

이정수 팀장은 침을 삼켰다.

* * *

슥삭. 슥삭.

오 대리는 케이스를 열어서, 안에 든 충격 완화 용 종이 부스러기를 먼저 꺼내었다.

슥삭. 스삭.

종이 부스러기를 다 거둬낸 후.

오 대리는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꺼내었다.

“오…….”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정수 팀장은 눈을 빛내며 탄성을 자아내었고.

강태평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무광택의 매끈한 검은색 바디.

0.5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자동차는 실제 자동차와 거의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금은 더 특별한 걸 기대했던 이정수로서는 조금 의아했다.

‘의외인데. 이건 그냥 자동차잖아. 특수한 종이를 쓴 거 같긴 한데…… 그거 말고는…….’

세 사람 가운데 놓인 자동차.

이정수 팀장은 강태평의 설명을 기다렸다.

“어때요?”

“멋집니다.”

“하하. 그게 다예요? 약간 실망하신 눈치인데요?”

강태평의 말에 이정수 팀장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강태평은 손을 자동차 위에 올리며 말했다.

“‘사랑 자동차’라고 합니다. 저희 회사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그러면서 살짝 아리는 표정을 지었다.

‘크기보다 1/5로 줄였고. 원래는 기아도 있고, 탑승도 가능했었지.’

강태평은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제 차를 모델로 만들었는데, 최대한 실제 자동차처럼 만들려고 했습니다.”

철컥.

그리고 난 본네트를 열었다.

“우와…… 역시!”

본네트 내부를 보고 이정수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냉각수 보조 탱크, 워셔액 탱크, 구동 벨트, 배터리…….”

“오~ 팀장님 잘 아시네요?”

“하하. 네. 제가 차를 좋아합니다. 웬만한 건 손볼 줄도 알아요.”

“아~ 전 이거 만드느라 처음부터 공부했는데.”

이정수 팀장은 본네트 내부를 하나하나 살피며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똑같이 만드셨네요? 너무 현실감이 있어서 진짜로 구동도 될 거 같은데요? 하하.”

이 말에 나와 오 대리는 마주 보고 씩 웃었다.

“오 대리 건전지 끼워볼래?”

“네.”

오 대리는 주머니에서 건전지를 꺼내었고.

이정수 팀장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커지고 있었다.

“설마…….”

좀 놀란 거 같다.

“이 종이가 TCG―34라고 불리는 흑연 종이인데. 흑연의 특성상 전기가 잘 통해요. 그래서 이 종이를 사용한 거예요.”

이정수 팀장은 입술을 떨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하지 마.”

오 대리는 자동차 바닥에 AA 건전지 2개를 장착하였고.

스위치 버튼을 올리자,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부우웅―

일반적인 장난감 자동차들과는 소리가 달랐다.

이 ‘사랑 자동차’는 진짜 자동차의 구동부와 동일하게 제작된 것이다.

본네트를 연 상태에서도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다 작동을 하죠? 고심 많이 했습니다. 하하.”

“…….”

이정수 팀장은 이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와…… 진짜. 하하!”

그 모습을 보면서 강태평은 생각했다.

‘변 이사님 말이 맞았네. 이 정도만으로 이런 반응인데. 원래 거 보여줬으면…….’

강태평은 오 대리에게 말했다.

“오 대리 저기 앞으로 가봐. 자동차 가는 거 보여드리게.”

“알겠습니다.”

강태평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팀장님. 아무래도 종이라서 바디 강도가 약하거든요. 앞에서 누가 받아줘야 해서…… 양해해 주세요.”

“…….”

부우웅―

“간다~ 잘 잡아.”

“네!”

툭. 자동차를 내려놓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쌩~

“스투~라이크!”

오 대리는 쏜살같이 달려온 자동차를 잡은 후,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이정수 팀장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때요?”

넋 나간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이정수 팀장의 입만 움직였다.

“저…… 이 자동차. 진짜 종이로만 만든 건가요? 예전의 ‘할아버지의 일생’처럼 결합 분리하지 않고 종이 한 장으로 다 접는 전통 방식으로요?”

“아쉽지만…… 배터리는 종이가 아니네요.”

“그야 당연하죠! 배터리 제외하고요. 쇠붙이 같은 거 하나도 안 들어간 거예요? 엔진도?”

강태평은 간결하게 끄덕였다.

“네. 종이만 들어갔고, 전통 방식입니다.”

짝짝짝.

이정수 팀장은 갑자기 박수를 치며, 고개를 젓더니.

강태평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의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하게 모시겠습니다.”

* * *

‘사랑 자동차’를 테이블 한쪽에 놓아두고,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이정수 팀장이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좀 마이너하죠?”

난 작품을 보며 물었고, 이정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요. 사실, 얼핏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긴 하거든요.”

이정수 팀장은 정중하지만 할 말은 한다. 난 그런 점이 좋다.

“근데, 자세히 보면 가치가 있으니까요. 작품 특징에 대해 잘 설명하면, 아주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 작가님의 첫 작품이 아니잖아요.”

이정수 팀장은 살짝 미소 짓고는 말했다.

“이 작품은 인증된 네임드 작가의 이름으로 출품될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대중은 주목할 겁니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품은 여기 두고 가실 거죠? 바로 위탁계약서 작성하실까요?”

“네. 좋습니다.”

이정수 팀장은 이미 계약서를 준비해놨다. 내가 무슨 작품을 위탁하든 계약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위탁수수료는 이번에 5%로 낮춰드리려 합니다. 최소한 경쟁사 제안에는 맞춰드려야죠.”

“엇…… 어떻게 아셨어요?”

강남 옥션이 날 찾아온 걸 아는 건가?

이정수 팀장은 간단하게 답변했다.

“작가님~ 이 바닥 좁거든요. 다 알게 됩니다. 하하. 의리를 지켜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마음 같아선 더 낮춰드리고 싶은데…… 제가 사업본부장이 아니라서.”

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난 위탁계약서에 서명한 후, 오 대리에게 말했다.

“오 대리.”

“네, 사장님.”

“미안한데, 잠깐만 자리 좀 비켜줄래. 이 팀장님이랑 나눌 얘기가 있어서.”

내 말에 이정수 팀장과 오 대리 둘 다 고개를 갸웃했다.

“알겠습니다. 얘기 끝나면 전화 주세요.”

“그래.”

덜컹.

오 대리가 나간 뒤 이정수 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 *

오 대리가 나간 뒤.

이정수 팀장은 잠자코 내 말을 기다렸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정수 팀장님.”

“네, 작가님 말씀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네?”

이정수 팀장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고.

난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종이 공예는 그만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이건 비공식적인 얘기에요. 공식적으로는 계속한다 안 한다 그런 의견 표명은 없을 겁니다.”

이정수 팀장은 정신이 나가 보였다. 멍하니 있다가.

“아니…… 갑자기 왜?”

그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했다.

“아, 당황해서 말이 짧았네요. 왜…… 그만두시려는 건지. 작품 준비에 서두르긴 하셨는데…… 힘드시면 천천히 하시면 되잖아요.”

“…….”

이정수는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솔직히 옥션 직원으로서 강 작가님을 통해 성과 올리고 싶은 마음. 당연히 있습니다. 근데, 그 이유만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정수 팀장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강 작가님 작품 계속 보고 싶어요. 전 순수하게 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강 작가님의 팬이기도 하고요.”

“…….”

“그렇게 칼같이 자르지 마세요.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안다. 진심이 느껴졌다.

나도 관두기 싫다.

처음엔 돈 벌려고 손댄 색종이였는데.

어느샌가 나도 진심으로 빠져버렸다.

종이를 접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내 손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보면 볼 때면 행복했다.

보통은 취미가 일이 되는데, 내게 종이접기는 일이 취미가 되어버린 경우였다.

하지만 변 이사와의 대화를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할 시기임을 깨달았다.

글쎄…….

혼자 취미로 만든다면 모를까.

앞으로 대중에게 창작 종이접기를 선보이는 일은…… 위험하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습니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서, 더 미안했다.

“아…….”

“제가 이렇게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요. 이정수 팀장님만 알고 계셨으면 해서입니다.”

“…….”

“회사에는 얘기하지 마세요. 그래야 이정수 팀장님께 함부로 못 할 게 아닙니까.”

이정수 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거고요. 위에서 제 작품 계획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작품 준비 중인 것 같다, 라고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

이정수는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난 잠자코 기다렸다.

휴우―

그는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정이 있으시겠죠. 근데……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이정수 팀장은 날 바라보고 힘주어 말했다.

“저랑 안 해도 좋으니까요. 꼭 돌아오세요. 전 강 작가님 작품 기다릴 겁니다.”

“…….”

“이게 마지막이라는 말씀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오래 쉬시는 거라고…… 전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난 이 말에는 뭐라고 대꾸할 수 없었다.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오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잠깐 들어가도 됩니까?]

[왜?]

[김정식 의원님께 전화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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