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33화 (133/156)

조심해야 한다 (1)

* * *

슥삭. 스삭.

군인이 전쟁이 돌입하기 전 총기 손질을 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서 난 손톱 손질을 시작했다.

손톱깎이로 오른손 검지, 중지, 약지를 깎았다.

그다음 파일(야스리)을 들어, 마무리 손질을 했다.

“오랜만이군.”

고요한 텅 빈,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파일 소리.

슥삭. 슥삭.

그렇게 손톱 모양을 잡아갔다.

검지는 삼각모양.

중지는 원형모양.

약지는 톱니모양.

원래 순서는 종이를 다 접은 후에 ‘다듬기’ 작업 단계에서 손톱 손질을 한다.

하지만 이번엔 작품 규모도 크고, 부분부분 모양을 잡아가면서 만들어야 하기에 미리 손질을 했다.

스케치는 이미 해놨고.

흑연 종이를 256등분으로 접었다.

종이를 다 펼치니, 방 하나가 종이 하나로 꽉 찬다.

256등분 접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흘렀다.

‘할아버지의 일생’을 256등분 접어서 표현했었다.

발전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이번엔 좀 더 섬세한 표현을 하기 위해 등분 수를 올리고 싶었지만.

운용지에 비해 흑연 종이가 너무 두꺼웠다.

작품의 크기와 형태를 고려했을 때, 약간의 투박함은 감수해야 할 듯싶었다.

256등분으로 다 접었을 무렵,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 출근하려면 이제 좀 자야 하는데.

아니, 평소 같으면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는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멈추기가 힘들다.

“휴우~ 그래. 오늘은 시작한 날이니까, 조금만 더 무리하자.”

엔진 ― 내부기관 ― 외관 ― 바퀴

이렇게 구분하여 작업을 진행하려 한다.

이 구분에서 엔진의 규모가 제일 작지만, 가장 중요하다.

자동차의 심장이니까.

짝. 짝.

난 얼굴을 때리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구깃. 구깃.

그리고 내 손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손에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결국, 새벽 3시에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사랑산성.

“오우~ 강 사장님. 괜찮아?”

3시간 자고 나왔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변 이사님…… 안녕하세요.”

“쯧쯧.”

말 안 해도 알겠다는 듯, 변 이사는 내 어깨를 두들기고는 3번룸으로 데리고 갔다.

“11시까지 자. 이따 나와서 조리만 해.”

“그래도…….”

“괜찮아. 사장은 뭐 용가리 통뼈야? 사장도 야근했으면 쉬어야지.”

아…… 아재다운 단어 선택.

난 근데 이런 구수한 단어가 좋다. 용가리 통뼈는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느낌은 아니까.

“직원들은요?”

“직원들은 걱정 말고. 내가 짬으로 누를 테니까. 그냥 아무 걱정 말고 쉬어. 눈치도 못 받게 해줄 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그럼 저 눈 좀 붙일게요.”

변 이사의 배려로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출근해서 3번 룸에서 쉬다가, 딱 11시~2시까지. 3시간만 주방에서 일하고, 3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매일 새벽 2~3시경까지 작품 작업에 몰두했다.

변 이사가 어떻게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은 모른 척해주었다.

‘힘내’라며 파이팅 하지도 않고, 그저 당연한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해 주었다.

눈치로 내가 작업에 돌입했다는 걸 아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산성 점심 영업에 안 나올 수는 없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묻지도 않고 이상해하지도 않으며, 그저 모른 척해주는 게 고마웠다.

그게 마음에 부담이 가지 않으니, 작업하기가 더 좋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하루에 한 개의 구분을 작업하여, 뼈대는 다 만들었다.

오늘이 5일째 되는 날, 다듬기에 들어갈 것이다.

다듬기가 가장 중요하다.

오후 3시. 난 슬그머니 인사하며 주방을 나섰다.

“먼저 들어갈게. 수고~”

“들어가세요~”

덜컹.

* * *

강태평이 나간 뒤.

“힝…… 속상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김지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도와드릴 게 없네요. 무심한 척하는 것도 힘들어요.”

“…….”

“강 사장의 톱니 모양 손톱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서…….”

최경리도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최경리 또한 마음이 불편하다는 게…… 표정에서 느껴졌다.

오 대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는 강 사장님이 아닌 걸…… 강 사장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걸요.”

“…….”

“미안해하지 말고,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면 됩니다. 지금은 변 이사님 지침대로 최대한 부담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인 거 같고요.”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오 대리 말이 맞아.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아. 괜히 잘해주는 것도 신경 쓰일 수 있거든.”

“…….”

“우리 마음이 전해질 거야. 그리고 곧 끝나겠지. 강 사장님은 뭐 만드는 데 오래 안 걸리니까. 여러분도 고생이 많네. 조금만 더 신경 쓰자.”

“알겠습니다!”

* * *

슥삭. 슥삭.

파일(야스리)로 다시 한 번 손톱을 다듬었다.

손질한 지 며칠 지났더니, 손톱 모서리가 뭉툭해졌다.

파트를 완성할 때마다 다듬기를 해왔다. 이제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다.

자동차의 섀시(작동을 맡는 기계 구동부) 부분은 5겹의 종이로 만들었다.

특히 하중이 많이 가는 엔진 프레임, 현가장치(서스펜션), 바퀴와 타이어는 10겹의 종이로 구성했다.

그리고 하나의 종이로 분리 및 결합하지 않는 전통 방식으로 접기 때문에, 이 자동차는 자연스럽게 모노코크 바디(하중을 견디는 구조물과 차체 역할을 하는 부분이 일체화된 형태)로 되어 있다.

꾹. 꾹.

바디와 섀시 연결부에 특히 더 고심하여 ‘다듬기’에 들어갔다.

새벽 2시.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늦더라도 작품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안 되겠어. 속도가 안 나네.”

난 왼손 손톱도 ‘다듬기’ 공구 모양으로 재빨리 깎았다.

아무래도 자동차 다듬기를 양손으로 해야 할 것 같다.

꾹. 꾹.

새벽 4시경.

후우~

배 아래쪽에서부터 깊은 숨을 뿜어냈다.

“됐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무광택 흑연 종이로 만들어진 자동차.

난 이 작품의 이름을 ‘사랑 자동차’라고 지었다. 우리 회사 이름에 걸맞게.

난 준비했던 배터리를 장착하였다.

혹시 무게를 못 견딜까 봐 약간 염려했는데.

“휴~ 다행이다.”

다행히 거뜬해 보인다.

10겹으로 만들 길 잘한 거 같다.

자동차는 1인승이다.

아기들이 앉고, 뒤에서 아빠가 끌어주는 휴대용 유아 자동차와 비슷한 사이즈인데.

그보다 크기는 좀 더 크며, 액셀과 브레이크 등 기계 구동부는 일반 자동차와 동일하다.

“액셀을 밟아 봐야 하는데.”

내가 직접 앉기에는 하중을 못 견딜 것 같았다.

자동 변속기어를 N(중립)에 놓고, 차에 엎드려서 손으로 액셀을 살짝 눌러 보았다.

부웅~!

“하하!”

부웅~ 부우웅~!

“하하하!”

엔진 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작동된다!

빨리 변속기 ‘D’ 놓고 거리를 달리는 걸 보고 싶다.

김지안 정도면 타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하하!”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미친 듯이 웃음이 나왔다!

난 양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 * *

“뭐? 자기 집을 가자고?”

“하하. 네~”

다음 날, 난 변 이사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갑자기 왜?”

“와보면 알아요~”

어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새벽. ‘사랑 자동차’를 완성했다.

나는 만족하지만, 삼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네모튜브의 네모씨나 네모삼촌에게 보여줘 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무래도 전문가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감상을 들어보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고 싶지는 않은데.”

“보여드릴 게 있어서 그래요.”

이 말에 변 이사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아~ 그래? 알았어.”

“넵.”

“대신 집에 돌아갈 때 택시 태워줘야 해~”

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모범으로 태워드릴게요.”

저녁 6시. 우리 집.

난 변 이사를 들이며 말했다.

“좀 누추합니다~”

변 이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들어왔다.

“에이~ 홀아비 냄새.”

“하하.”

“작품 다 만들어서 나 보여주려고 부른 거지?”

“맞습니다.”

“근데, 뭘 집까지 부르고 그래?”

“아~ 그게 좀 커서요.”

“그래? 어딨는데?”

방 한쪽에 천으로 가려진 거대한 무언가를 난 가리켰다.

“이거예요.”

“뭐어?”

천으로 가려져 있지만, 규모가 크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자기 종이접기 한 거 아니야?”

“맞아요. 하하.”

난 더 말 않고, 천을 내렸다.

휘리릭―!

무광택 흑연 종이로 만든 ‘사랑 자동차’

내차 벤스 E클래스를 모델로 만들었다.

매끈한 바디에 강인한 앞모습.

1인승이라서 좀 아담하지만, 모양은 거의 흡사하다.

난 웃으며 변 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어때요?”

“야아…… 이걸 종이로.”

처음엔 경악한 표정이었다가, 점점 얼굴이 새파래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흠…… 많이 놀랐나?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너무 격정적이어서 약간 당혹스러운데…….

“이 자동차~ 기동도 가능하거든요? 종이로 엔진을 만들었어요. 배터리만 제외하고 다 종이…….”

“이런 미친…….”

이제 변 이사는 날 약간 두려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응? 좀 이상한데?

“변 이사님…….”

“야~ 태평아~ 이건 좀 아니잖아!”

* * *

변 이사는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게 사람이 한 짓이야? 이게 진짜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얘 뭐지? 도대체 뭐야?’

꿀꺽. 꿀꺽.

너무 놀라서 마른침만 계속 삼켜졌다.

변 이사의 눈에는 그냥 자동차였다.

처음엔 종이로 만든 지도 몰랐다.

강태평의 설명을 듣고, 몇 번 만져본 뒤에야 종이로 만든 걸 알았다.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할아버지의 일생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는데…… 좀 위험해 보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변 이사님…… 왜 화를 내세요.”

변 이사는 강태평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쩐다. 태평이는 지금 지가 뭘 했는지도 몰라. 이걸 세상에 내놓겠다고?’

변 이사의 생각엔 이걸 세상에 내놓았다가는 언론의 관심 정도가 아니라, 국정원이나 미국 CIA 같은 곳에 납치될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인간의 실력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잘못 판단한 게 아닐 거야. 말려야 해.’

“태평아. 내 얘기 잘 들어.”

변 이사가 강 사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때는 뭔가 심각한 이야기 할 때다.

강태평은 순간 긴장해서 변 이사의 말에 집중했다.

“네, 말씀하세요.”

“내가 정말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다른 의도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믿어줘.”

“…….”

강태평은 변 이사의 말투가 절절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자동차 말이야.”

“네.”

“세상에 나와서는 안 돼.”

“네?!”

“버리자. 그리고 정 필요하면 작고 평범한 거로 다시 만들자.”

강태평은 황당함에 얼빠져 있다가, 겨우 말했다.

“왜 그래야 해요? 저 이거 만드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변 이사는 눈을 부릅뜨고 버럭 소리 질렀다.

“태평아! 내 말 들어! 너 이러다 진짜 큰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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