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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으로 살아가기-130화 (130/156)

생각할 시간 (2)

* * *

중개인은 날 멀뚱멀뚱 쳐다봤다.

나 또한 잠자코 지켜보다가 말했다.

“뭐 하세요? 못 들으셨어요?”

“듣긴 했는데…… 정말이시죠?”

중개인은 재차 확인했다.

“정말 5억 올려서 30억으로 계약서 쓰면 되는 거예요?”

난 땅 주인의 얼굴도 슬쩍 봤는데.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시간을 벌 요량으로 한 말이었을 텐데, 내가 이렇게 바로 수용할 줄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난 공격적으로 말했다.

“네. 30억으로 계약서 써주시면 됩니다. 설마 지금 또 올려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

당황한 땅 주인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뭔가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며.

그 모든 걸 무시할 정도의 철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 아닙니다.”

땅 주인은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리고 중개인을 향해 말했다.

“방금 제시된 가격으로 계약서 꾸며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중개인은 쭈뼛쭈뼛 컴퓨터 앞에 가서 앉았고.

타닥. 타닥.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이 순간이 너무 어색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 시선을 피하고, 커피만 홀짝이며, 벽 한번 바라보고, 바닥 한 번 보고…….

위이잉― 치키. 위이잉― 치키.

드디어 프린터기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던 정적.

휴우―

프린터 소리가 들리자, 변 이사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호호. 오래 기다리셨죠?”

중개인은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두 분 신분증 꺼내시고요.”

난 그의 신분증을 본 후, 얼굴과 대조했다.

‘박대길. 680429―1XXX…….’

신분증의 사진은 지금보다 좀 어려 보이지만, 어쨌든 맞는 것 같다.

근데, 68년생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네.

어쩐지 머리는 하얘도 피부가 탱탱하다 했더니…….

신분증 속 사진의 머리도 하얗다.

“강태평 님 이시군요? 젊은 분이 대단하시네요.”

그 또한 짧은 순간에 내 신상을 확인한 것 같다.

우리 사이에 계약서에 놓여 있었고.

내가 말했다.

“먼저 서명하시죠.”

땅 주인은 계약서를 살펴본 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서명했다.

결국, 그리고 내게 계약서를 건네었다.

“여기요.”

‘매매대금 : 30억 원정.’

‘계약금: 5억 원정은 계약 시 지불하고 영수함’

오늘 계약금 주고 나면 25억 원.

잔금일은 한 달 뒤다.

‘30일…… 바쁘게 달려야겠구나.’

사실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계약금 5억 원을 날리지 않으려면, 죽으나 사나 30일 이후까지 25억 원 마련해야 한다.

“흠…….”

옆에서 변 이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뭐해. 어서 사인해.”

“…….”

“내가 옆에 있잖아.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내가 돌아보자, 변 이사는 날 향해 씩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계속 잘해왔잖아.

잘 되겠지.

‘강태평.’

계약서에 사인 후, 난 바로 5억 원을 이체했다.

땅 주인은 이체된 금액을 확인한 후, 계약서를 챙겨서 바로 일어났다.

“그럼 잔금일에 뵙겠습니다.”

“네.”

그로서는 10년을 넘게 속 썩여 온 땅을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판 것이다.

후련할 만할 텐데도, 표정이 찝찝해 보였다.

“사장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사실, 나도 아주 개운치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 땅 주인만 서로 좀 떨떠름 할 뿐.

나머지 두 사람은 아주 좋아했다.

거래를 성사한 중개사와 성남의 변두리가 아닌 수서동으로 출근하게 된 변 이사.

두 사람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중개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수수료는…….”

“수수료는 잔금 마치고 드려야죠.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아~ 그러시게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호호.”

‘중개수수료: 27,000,000원’

중개인이 준 메모에는 계좌번호와 함께 위 금액이 적혀 있었다.

“부가세는 별도지만~ 위 금액만 받을게요.”

“상한 요율 그대로 적용하셨네요?”

주택 외 부동산은 상한 요율은 0.9%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거래는 우리가 땅을 안 상태에서 찾아온 거고.

중개인은 땅 한번 보여주고, 계약서 중개를 서준 것 말고는 없었다.

거래 금액이 크기도 하고, 상한 요율 그대로 다 받는 건 좀…….

변 이사가 나섰다.

“에이~ 너무 하셨다. 중개수수료는 협의할 수 있는 거잖아요. 30억 원짜리 거래를 했는데, 그대로 다 받는 건 좀 심했다~”

“호호.”

중개사는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살짝 흘겼다.

“그럼 좀 낮출까요?”

보아하니, 이럴 걸 알고 던져본 것 같았다.

돈거래라는 건, 어느 상황에서나 심리가 비슷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고.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은 마음.

“흠~ 그러면 한…….”

변 이사가 네고 할 금액을 말하려 하는 걸,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변 이사님 잠시만요.”

“응?

난 중개사를 바라봤다.

“중개수수료는 알겠습니다. 영수하신 금액대로 잔금 끝나고 지불 할게요.”

“어머~”

중개사는 환하게 웃었다.

“단.”

그리고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지만, 시끄러워질 수 있는 소지를 가진 거래다.

돈 몇 푼 아끼느니, 이런 상황에서는 내 편을 만드는 게 낫다.

“이 거래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책임져주세요.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모른 척하지 말아 주시고요.”

“네?”

“그저 원칙에 따라 계약서대로 잘 이행되도록 옆에서 관리해주시면 됩니다.”

“그야…… 당연하죠.”

내가 워낙 기세 좋게 말을 해서일까?

중개사는 살짝 몸을 사리면서 대꾸했다.

“강 사장님~ 중개료 상한 요율대로 다 낼 필요 없어~ 협의할 수 있는 거야.”

변 이사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옆에서 말렸지만.

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시죠. 얘기 끝났어요.”

“어허~ 이거 참. 흠!”

변 이사의 이런 행동을 보고, 그제야 횡재했다고 생각했는지.

중개사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환송해 주었다.

“호호~ 고맙습니다~ 연락드릴게요~”

내 차 안.

변 이사는 차에 앉은 후 문을 닫자마자 싱글벙글이었다.

“나이스! 휴우~ 땅 주인이 거래 안 할까 봐 조마조마해서 혼났네.”

“하하.”

나 또한 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강 사장님.”

“네~”

“아까 잘했어. 중개수수료 안 깎고 그대로 준거 말이야.”

“엇?”

의왼데? 아까는 안 깎는다고 뭐라 하더니.

설마…….

“하하. 이래서 강 사장과 나는 영혼의 파트너라니까. 척하면 딱, 이잖아. 손발이 잘 맞는 거 같아~”

“아~ 하하. 아까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

“그럼~ 내가 강 사장 의도를 모를까 봐? 분쟁 생길 여지가 있는 거래니까, 중개사 우리 편 만들려고 쿨하게 준거잖아.”

젠장, 나도 속았네.

같은 편도 속게 만드는 연기력이라니.

난 빙그레 웃고는 변 이사에게 말했다.

“변 이사님, 자신 있으시죠? 30일 내로 25억 원 만들어야 하는데.”

“뭐야? 자기가 저질러 놓고 치우는 건 나보고 하라는 거야?”

“하하.”

난 장난스럽게 웃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자~ 그럼 보육원 땅부터 빨리 팔아보자고.”

* * *

다음날 사랑산성.

전 직원이 3번 룸에 모였고.

하얀색 화이트보드 판 앞에 변 이사가 서 있었다.

우리 회사 ‘부동산’ 투자 파트는 변 이사가 맡고 있다.

종이 공예 사업 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해당 시기의 주력 사업에 대해 수시로 직원들과 공유하고.

본인이 맡은 파트가 아니라도, 상황에 따라서 추가로 투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종이 공예 사업 때 김지안이 중간에 투입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 다들 이해했지?”

변 이사는 ‘수서동 프로젝트’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분묘기지권’ 등 민감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이 정보는 ‘대외비’ 수준을 넘어, 1급 기밀이다. 등기 완료될 때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와~ 정말요? 갑자기 강남으로?!”

오 대리는 반색을 하며 물었다.

오 대리뿐만이 아니었다.

직원들의 표정은 얼마 전 성남 외곽지역에 땅 보러 갈 때와 완전 달랐다.

특히 오 대리와 김지안이 난리였다.

“알뜰한 사장님이 웬일이셔~ 호호. 학교 다닐 수 있겠다~”

“우리 사장님 돈 많이 버셨나 봐요~ 요즘 벤스도 끌고 다니시던데.”

최경리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쳇.”

최경리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표정이 안 좋았다.

“성남 거기가 우리 집이랑 더 가까운데…….”

잠시 직원들이 놀라워할 시간을 줬던 변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자자, 집중.”

“…….”

“이제부터가 중요해. 25억 원을 한 달 내에 만들어야 하거든.”

변 이사는 내게 물었다.

“사장님 지금 남은 현금이 8억쯤 되나요?”

“네, 그것보다 조금 더 있는데. 일단 그 정도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최경리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뭐예요? 한 달 새에 17억을 만든다는 거예요? 종이 공예로도 그 정도는 어려울 텐데요?”

변 이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쉬워. 우리가 있는 땅 팔면 되니까. 사장님이 보유 중인 땅 있다고 했었는데. 모두 기억하나?”

“아~”

오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변 이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 땅 매도하면 17억은 충분해. 지금 제시받은 금액이 20억 정도니까.”

“오~”

직원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어.”

“…….”

“잔금을 여유 있게 20일 내로 받아야 하는데, 지금 보육원 인원들은 당장 갈 곳이 없거든. 새로운 부지를 짓는데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걸리니까.”

그렇다.

잔금일 30일에서 벌써 하루가 지났다.

이래저래 시간 소요될 거 생각하면, 20일 내로 잔금 받을 수 있도록 거래 성사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보육원은 갈 곳이 없으므로, 6개월의 유예기간도 필요하다.

등기 완료 후 6개월을 더 살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래서 토지매도 및 단기 임대계약을 체결하려 해.”

직원들은 선뜻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잔금 및 등기이전 완료와 동시에 6개월 임대계약을 하는 거지.”

“아~”

김지안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이해는 되는데요. 그런 계약을 맺으려고 할까요? 쉽게 받아들일 조건은 아닌 거 같은데.”

변 이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김지안 대리 말이 맞어. 쉬운 조건은 아니지. 근데 다행인 게…….”

“…….”

“이 땅을 사고 싶어서 안달 난 매수자들이 많다는 거야.”

여기서부터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변 이사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우리의 거래 조건과 최저 제시 가격을 매수 후보자들에게 보낼 거야.”

“…….”

“그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매수자들로부터만 가격 제안을 받을 거고. 매수자 미팅 및 제안받은 가격을 검토하여 최종 매수자를 선정하려 해.”

호오…….

일종의 비딩을 한다는 건가?

이건 전혀 생각 못 했던 방식이다.

매도 우위가 강한 상황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서류 작업이 좀 필요해서, 한 명이 좀 지원해 줬으면 하거든?”

내가 말했다.

“지원해 드릴게요. 생각한 사람 있으십니까?”

“있지. 서류 작업 칼같이 하고, 공정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

약간의 설명에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을 바라봤고.

변 이사는 입을 열었다.

“최경리 과장. 준비해라.”

최경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로보트처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보육원 토지 매도 전략

1) 아래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매수 후보자로부터 가격 제안받음

― 20일 안에 잔금 처리 가능자.

― 등기 이전 후 6개월간 임대계약 체결 가능자. 임대료 3억 원.

2) 가격제시 최저 가격은 20억 원부터.

3) ‘제시된 가격’ 검토 및 ‘후보자 미팅’ 후 최종 매수자 결정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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