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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으로 살아가기-129화 (129/156)

생각할 시간 (1)

* * *

사랑산성. 오후 3시.

점심 영업을 마치고, 난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빵― 빵―

경적을 올린 후, 변 이사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이사님, 안 나오고 뭐 하세요?]

[응? 지금 어딘데.]

[정문이요. 빨리 나오세요. 좀 있으면 차 막혀요.]

[차? 웬 차?]

[아, 일단 나오세요.]

후훗.

난 운전석에 앉아서 씩 웃었다.

면허 딴 지 이제 하루 지났지만.

운전 정도야 뭐…….

오늘 그냥 차를 몰고 나왔다.

전철보다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올 때 차 좀 막히고, 운전대 잡고 있느라 딴짓을 못 하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편하긴 했다.

만원 전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없고.

선글라스 안 끼고 다녀도 되고.

유명세만 아니라면 전철이 더 편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지금으로서는 자가용이 더 편한 것 같다.

“엇?!”

변 이사가 얼굴을 조수석 창문에 들이대고, 차 안을 살폈다.

난 창문을 열며 말했다.

“어서 타세요!”

“차 가져온 거야?”

“보셨으면 뭘 물으세요!”

“이야~”

덜컹.

변 이사는 조수석 문을 열고, 앞자리에 탔다.

“차 좋구만! 하하!”

“하하. 그쵸? 좋긴 하네요~”

내 생애 첫차가 외제 차, 그것도 벤스라니.

김정식이 리스해준 차니까, 온전히 내 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 맘대로 운용할 수 있으니까.

“수서동에 차 끌고 가는 거야?”

“네~ 앞으로 웬만하면 차 가지고 다니려고요. 아침부터 선글라스 끼고 전철 타기 너무 불편해서요.”

“하하. 그치. 자기는 그렇겠네.”

변 이사는 날 힐끔 보며 말했다.

“근데, 강 사장님 진짜 대단하다. 어제 면허 땄는데, 차를 가지고 오다니.”

“왜요? 운전하려고 면허 따는 거 아니에요?”

“…….”

“이러면 안 되는 건가?”

“아니~ 안 될 건 없지. 난 일반적인 시각에서 말하는 거야. 하하. 보통은 면허 따도 연습 좀 하고 운전하거든.”

난 그의 말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안전벨트 하세요.”

“밟을 거야?”

“밟아야죠. 속도위반만 조심하면 되잖아요. 이사님은 규정 속도 다 지키고 다니세요?”

“응……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안전 운전하자.”

변 이사는 뭔가를 생각한 듯,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세게 달리지 마.”

“하하. 염려 마세요. 안전 운전 할 테니까.”

부웅― 부웅―

공회전을 몇 번 한 후, 기아를 드라이브에 놓았다.

꿀꺽.

변 이사는 침을 삼키고는, 조수석 천장에 있는 손잡이를 잡았다.

“갑니다~”

“헉!”

부아앙―!

* * *

강남구 수서동.

이틀 전에 만났던 문벅스를 지나, 대모산 자락으로 계속 올라갔다.

“김 의원님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김 의원님이요? 오늘 안 오는데.”

“어?”

변 이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팁 줬으면 됐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요.”

“강 사장님이 못 오게 한 거야?”

“아니요. 오겠다는 말도 없었고, 저도 당연히 안 오는 거로 생각했는데요.”

변 이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중얼거렸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난 당연히 같이 오는 거로 생각했는데.”

‘복 부동산’

길 좁은 로터리에 있는 부동산.

그 앞에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예요?”

“응.”

아주머니 옆에 가서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연락드렸던 변성준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복 부동산입니다~”

이분이 중개인이구나.

우리는 계약까지 속전속결로 할 생각이었으므로, 바로 중개인에게 접근했었다.

“물건지까지 차로 갈 수 있나요?”

언덕 위로 이어진 길이 좁아 보였다.

“네~ 좀 더 들어갈 수 있어요.”

“타세요!”

중개인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시 이동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내곡동에서 왔습니다~”

변 이사는 사는 곳 말고, 회사 위치를 말했다.

“호호. 네~ 좋은 곳 사시네요.”

중개인은 아주 상냥했다.

“땅 주인은요?”

“사장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30분 뒤에 만나기로 했어요~ 땅 먼저 보고 싶다고 하셔서.”

“네.”

중개인은 변 이사를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난 잠자코 운전하면서 듣기만 했다.

“근데, 여기가 어떤 땅인 건 아시는 거죠? 왜 가격이 싼 건지도…….”

중개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고 땅 사려는 건 아닐지 염려하는 것 같았다.

하긴, 다짜고짜 연락해서 땅 사겠다고 했으니.

“네, 대략 압니다. 분묘기지권 말씀하시는 거죠?”

“알고 계시네요.”

그러면서 중개인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 왜 사냐는 생각이겠지.

“혹시 이곳을 어느 용도로 쓰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혹시 변 이사가 말을 할까 눈치를 봤지만.

“글쎄요. 하하. 좀 더 들어 가야 하나요?”

역시, 변 이사 답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질문을 씹었다.

중개인은 앞을 보더니.

“이쯤에서 세우시면 돼요. 다 왔어요.”

“네.”

덜컥.

우리는 차에서 내려 중개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다.

“여기예요.”

“오…….”

야트막한 언덕.

수서동 전체가 내려다보이는데.

희한하게도 경사져 있지는 않았다.

연속적인 평탄한 지형이었고, 진입로만 잘 정비한다면 토지를 뒤집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릴까요?”

“한 15분 정도 걸리겠는데.”

좀 멀긴 하지만, 못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다.

산을 등에 진, 남동향이었고.

남동향 정면으로는 큰 나무 하나 없이 탁 트여있다.

햇볕이 잘 드는 평탄한 언덕.

그리고 그 언덕 정 가운데에…….

분묘가 있었다.

* * *

“토지 위치도 기가 막히고, 분묘 위치도 기가 막히네.”

분묘 위치를 확인한 변 이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풍수지리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이다. 하루 종일 볕 잘 들겠어.”

“…….”

“확실히 묘 위치 때문에 이 땅에서 뭘 하기도 애매하겠네.”

우리는 중개인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중개인이 묘한 눈길로 분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네?”

“묘 상태가 왜 이러지? 이 정도로 관리 안 된 상태인 적이 없었는데.”

뜨끔.

중개인이 미심쩍은 눈길로 분묘를 바라봤고.

나와 변 이사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변 이사가 재빨리 쉴드를 쳤다.

“오랜만에 오셔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까요? 언덕배기에 있는데, 뭐 얼마나 묘 관리가 잘 되겠어요.”

“그런가…….”

중개인은 가까이 다가가 분묘를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고.

난 변 이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사님 땅 사도 되겠죠?”

“응. 난 맘에 들어. 자기는?”

“저도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럼, 이만 가시죠.”

생각했던 건 이상으로 좋다.

더욱이 역과의 위치도 괜찮고, 사랑산성과도 가깝다.

거기다가 서울 강남의 이 정도 가격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사장님~ 사무실로 가시죠.”

변 이사는 중개인에게 말했다.

“아, 네네. 벌써 다 보셨어요?”

“네~ 맘에 듭니다.”

가자고 하는데도, 중개인은 계속 시선을 분묘에 두고 있었다.

“어서요~”

우리는 차를 향해 걸어가며, 중개인을 재촉했다.

“네~”

중개소에 도착했다.

아까 지나칠 때는 없던, 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소렌토 초창기 모델.

오래된 차지만, 관리를 잘한 듯 깔끔했다.

“사장님 도착하셨나 보네.”

차를 보더니, 중개인이 말했다.

변 이사는 차에서 내리며 넌지시 물었다.

“땅 사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네? 뭐…… 괜찮아요.”

“뭐가 괜찮은데요?”

“뭐……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건 이유가 있다.

별로라는 뜻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흉볼 수는 없으니까.

중개인은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 오세요.”

* * *

중개소 안으로 들어오니.

머리가 새하얀 남성이 앉아 있었다.

머리는 새하얀데, 얼굴은 탱탱하다.

묘한 이질감에 신기해서 그 남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어차피 중개소에는 젊은 여직원과 이 남자밖에 없었고.

남자는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땅 주인일 거라고 바로 짐작이 되었다.

그 또한 나와 변 이사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사장님~ 시간 맞춰 오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중개인의 말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니요. 좀 전에 왔습니다.”

중개인은 우리를 인사시켰다.

“구매하겠다고 연락을 주신 분들이에요.”

변 이사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굳이 통성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계약서에 다 쓰여질 거고, 잔금까지 끝나면 안 볼 사이니까.

난 말은 안 하고,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했다.

땅 주인은 날 유심히 보며 말했다.

“어디서 뵌 거 같은데.”

“…….”

“혹시 유명하신 분 아니세요?”

흡! 이런!

난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닙니다.”

“그래요? 이상하네…….”

변 이사는 어서 진행하라고 중개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 네. 사장님, 그러니까. 구매 결정하신 거죠?”

“네.”

중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땅 주인에게 말했다.

“토지 매입하고 싶으시다는 데요. 매도하실 거죠?”

“네.”

중개인은 최종적으로 가격을 확인했다.

“매매가 25억2천만 원. 계약금은 2억 5천만 원으로 할게요. 모두 이상 없으시죠?”

“……네.”

“그럼 계약서 바로 가져올게요.”

중개인은 계약서 출력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땅 주인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말했다.

“잠시만요.”

땅 주인의 제지에, 중개인은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

“네? 왜요?”

“…… 두 분 중에 누가 매수자이신가요?”

난 살며시 손을 들었다.

“접니다.”

“어머, 이쪽 사장님이 아니시고요?”

중개인과 땅 주인은 묘한 눈길로 날 바라봤다.

서른 초반의 남성이 25억 하는 토지를 매매 한다고 하니……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

“이 땅 왜 사시려고 합니까?”

땅 주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사업상 필요해서요. 자세한 말씀은 드리기 곤란합니다.”

“제 땅에는 분묘기지권이 설정되어 있고, 개발하는 데 제한이 있습니다. 물건에 대한 하자는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땅 주인은 참 꼬장꼬장해 보였다.

“네, 그래서 그 값어치를 하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값이 저렴하지 않냐는 의미를 에둘러서 표현했다.

“왜요? 막상 파시려니까, 좀 망설여지십니까? 꽤 오랜 시간 소유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기회에 처분하시는 게 속 시원하지 않으실까요?”

땅 주인은 기묘한 눈길로 날 바라봤고.

그가 궁금해하는 걸, 물어보기 전에 난 말해주었다.

“큰 금액 드는 토지를 매입하는데, 등기부등본 정도는 열어보고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땅 주인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계약하실까요?”

땅 주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좀 급한 감이 있는데…… 우리 하루만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때 변 이사가 나섰다.

“아니요. 지금 아니면 거래 안 합니다.”

“네?”

“지금 결정하세요. 하실 건지 안 하실 건지.”

예전에 처음 사진기를 들고 활약을 시작했을 때, 육아 앨범 제작 스튜디오에서 배운 것이다.

‘망설일 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변 이사는 바로 그 스킬을 시전했다.

“흠…….”

땅 주인은 깊은 신음을 내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말했다.

“30억이면 거래 하겠습니다.”

“30억이요?! 갑자기 5억을 올려 버려요?”

변 이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고.

중개인도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땅 주인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는지.

흔들리지 않았다.

되면 하고, 아니면 안 한다는 표정이었다.

“하하.”

차라리 잘 됐다.

계속 마음이 좀 불편했는데.

우리는 알지만, 땅 주인은 모르는 정보.

사기를 치는 건 아니지만, 내내 마음이 좀 불편했다.

너무 싸게 사는 것 같아서, 좀 그랬는데.

차라리 가격을 올려 버리니, 마음이 편하다.

30억이라지만, 시세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니까.

“좋습니다.”

난 중개인을 향해 말했다.

“계약서 30억으로 해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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