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힘 (2)
* * *
‘무연고 분묘?’
김 의원은 그 말을 뱉은 후 가만히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변 이사도 잘 모르는 눈치였고.
나는 ‘분묘기지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죄송한데,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이렇습니다. 묘의 주인이 있고, 그 주인에 의해 분묘가 관리를 받고 있다면 분묘기지권이 성립됩니다.”
“…….”
“하지만 주인이 없으며, 관리되지 않는 묘도 많죠. 이런 걸 무연고의 분묘라고 하는데…….”
김정식 의원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와 협의할 필요 없이 행정절차에 의하여 무연고 분묘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묘기지권이 성립되어 팔리지 않는 땅.
그 땅에 있는 분묘가 만약 무연고 분묘라면, 저렴하게 토지 매수 후 분묘처리 절차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래서요?”
하지만 토지 매매 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 정보 캐치도 못 할까?
돈독 오른 투기꾼들은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수집할 거 같은데?
더군다나 서울 강남구의 땅이라면?
“아까 말씀하신 대모산 자락 토지를 두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설마 그 땅에 있는 분묘가 무연고 분묘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무연고 분묘의 땅이라면, 오랫동안 매도도 안 되며 가격이 저렴했을까?
나의 약간 공격적인 물음에.
김 의원은 살짝 웃고는 대답했다.
“무연고 분묘가 아니었죠.”
“네에?”
난 선뜻 이해가 가지를 알아서 되물었고.
김 의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다시 대답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연고가 있는 분묘였으나, 이제 무연고 분묘가 되었고. 그러니 더 이상…….”
김 의원의 눈이 번쩍였다.
“그 땅은 분묘기지권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난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자세한 내막은 들어봐야겠지만
그러니까 분묘 관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인데.
그럼 분묘기지권이 성립되지 않는 강남구의 토지가 왜 싼 거야?
“설마…….”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에 생각이 다다른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번쩍 떴고.
변 이사도 피식 웃었다.
김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짐작하신 게 맞습니다.”
그는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땅 주인이 아직 몰라요.”
* * *
‘무연고 분묘가 된 걸 땅 주인이 모른다?’
그 분묘가 땅 주인에게는 눈의 가시일 텐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왜 몰라요?”
“현재 주인이 그 땅을 매입한 게 10년도 넘었습니다. 당시에 경매로 그 땅을 매입했는데, 권리관계를 오판했던 거죠.”
“어째, 그렇게 잘 아세요?”
“이 정도는 토지 등기부등본에 나옵니다.”
“아…….”
“분묘는 토지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분묘 부분을 제외하고 토지를 활용하기도 어려웠던 거죠. 게다가 분묘 관리인은 분묘주인의 아들인데, 연세가 칠순이 넘으셨었습니다.”
“아…….”
“이 지역 토박이고, 아버지의 묘를 계속 관리를 해왔습니다. 가족도 연고도 없는 혼자이신데, 돈 욕심 따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거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땅 주인은 분묘 관리인과 협의할 수가 없었겠구나.
“그렇게 성심껏 아버지 묘를 관리하시다가 1년 전, 여든이 되시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
“아, 이 내용은 등기부등본에 안 나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겁니다.”
“그 정도는 압니다.”
“하하. 네. 제가 너무 친절했네요.”
내가 부린이라는 걸 눈치채고, 김 의원은 내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려 했다.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다가.
“근데, 꾸준히 관리해오시던 분의 발걸음이 갑자기 끊긴 건데. 땅 주인이 짐작을 못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약 5년 전쯤부터는 1년에 한 번 내지는 2년에 한 번 정도만 다녀가셨거든요. 아버지의 묘를 관리하는 아들도 너무 연로하셨으니까요.”
왜 무연고의 분묘가 된 건지, 땅 주인은 왜 모르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납득이 안 되는 게.
김 의원이 꽤 오랜 시간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땅 같은데.
왜 매수를 안 하고 두고 보고만 있었을까?
1년이 지나도록?
“왜 안 사시고, 1년간 두신 거예요?”
난 허를 찌른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김 의원은 이 질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무연고의 분묘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분묘라는 게 1년만 관리를 안 해도, 관리받은 느낌이 안 들거든요.”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김 의원은 웃으며 말했다.
“분묘처리 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겁니다. 행정절차 중 필요한 부분인데, 무연고 분묘는 관리 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아…… 네.”
흠…….
김 의원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쨌든 적절한 시기에 태평 님을 만나서 다행이네요. 제 땅을 시세보다 싸게 팔겠다고 했으면 안 사셨을 거 아닙니까?”
“…….”
김 의원은 나와 변 이사를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이 정보…… 가져가시죠.”
* * *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변 이사와 밖으로 나왔다.
“휴우~ 아오, 숨 막혀.”
밖으로 나오자마자, 변 이사는 크게 한숨부터 쉬었다.
“김 의원인지 뭔지. 그 작자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신원은 확실한 거야?”
“확실해요. 인터넷 찾아보니까 서울시 의원 김정식이라고 나오던데.”
“와~ 좀 이상해. 특히 눈이…… 왜 자꾸 뱀 눈깔 마냥 번뜩이는 거야?”
“…….”
“의원이 아니라 무당 아니야?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하여간 여러모로 불쾌해.”
변 이사가 불쾌함을 느낄만하다.
김 의원은 나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해주지만.
사람 자체에 대해서 깔보는 듯한 시선이 있다.
뭐랄까. 인간 존중 자체가 없는 느낌이랄까.
변 이사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놓고 무시했다.
“혹시 김 의원이라는 사람이 자기한테 빚졌어?”
“네?”
“무슨 큰 빚을 진 것처럼 말하던데. 목숨값이 어쩌고…….”
난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지금 그게 급한 건 아니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일단 김 의원이 준 정보를 어떻게 할지 먼저…….”
이 말에 변 이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고민할 필요 있어? 우리한테 딱 필요한 정보잖아. 그 정보를 가져감으로써 우리가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해?”
“아니요. 그런 건 없죠.”
“그럼 망설일 거 없잖아. 항상 서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찬스는 놓치지 말고 빠르게 잡아야 해.”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약간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효심으로 지켜온 분묘인데, 그걸 처리한다는 게 좀…….”
“왜? 우리가 처리하면 미안하고, 다른 사람이 처리하면 괜찮은 거야?”
“네?”
“비즈니스 앞에서 감성 팔지 마. 누가 하든 어차피 일어날 일이야.”
“…….”
“그리고 분묘처리 절차라는 게 묘를 없애는 게 아니라, 이장하는 개념으로 알고 있거든?”
변 이사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우리 손으로 정성 들여서 모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돈독만 오른 사람들이 멋대로 처리하게 두는 것보다는.”
이 말을 들으니, 불편했던 마음이 좀 사라졌다.
하긴…… 언젠간 무연고 분묘라는 게 알려질 것이며, 언제까지고 지금 자리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들어가시죠.”
* * *
문벅스 3층에 올라와 보니.
딱. 딱.
김 의원은 지팡이를 바닥에 두들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흠. 의원님?”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잠겨 있는지, 우리가 앞까지 가도 몰랐다.
“아, 오셨어요?”
김 의원은 지팡이를 테이블에 기대어 놓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두 분 회의는 잘하셨습니까?”
“…….”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난 변 이사와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김 의원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 뜻은…….”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훗. 김 의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태평 님이 사업가 기질도 있으시네요. 기회를 기회로 알아보는 것도 재능입니다.”
“과찬이십니다.”
“흠…… 그럼 제가 대략적인 설명을 해 드리죠.”
김 의원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절차에 대해서 쭉 설명해주었는데.
생각보다 복잡했다.
특히 분묘처리 절차가 상당히 복잡했는데, 장사법에 근거한 처리 절차를 따라야 했다.
또한 단계마다 서울시에 신청 및 승인받아야 할 사항들이 꽤 있었다.
김 의원이 요약하여 설명해주었음에도, 못 알아듣는 용어와 내용도 많았다.
“김 의원님 죄송한데, 녹음해가면서 들어도 됩니까?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되짚어 보려 하는데.”
“죄송하지만, 태평 님이라도 녹음은 안 됩니다. 제가 기록 남기는 걸 좀 불편해합니다.”
“아…… 네.”
일단 최대한 기억하면서 듣고, 나중에 따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공고 기간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걸리겠네요.”
현수막, 안내판,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서 연고자를 찾기 위한 행위를 해야 하는데.
이 공고 기간만 최소 3개월이다.
즉 3개월이 지나야, 그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는데.”
변 이사가 중얼거렸다.
건물 올리는 게 아무리 빨라야 6개월인데, 그 전에 3개월이 묶여 버리면…….
나 또한 진도는 빨리 빼는 걸 좋아해서 약간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3개월 동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겠죠.”
“…….”
“건물 올리는 데 많은 밑 작업이 필요합니다. 토지 용도변경 허가도 받아야 하고, 건설사 미팅도 해야 하죠. 공고 기간 동안 그 작업을 하면 되는 것이죠.”
난 그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그 모든 게 분묘처리가 될 거라는 가정하에 해야 한다는 건데. 만에 하나 분묘처리 불가 방침을 받거나, 일정이 늦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
“확실하게 단계를 마치고, 그다음 걸 진행해야 안전하게…….”
김 의원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면 되는 것이죠.”
“…….”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여, 변수가 없도록 만들면 되죠.”
미래가 어떻게 될 줄 알고?
김 의원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신기했다.
“시간만 필요할 뿐, 모든 건 이미 되게끔 만들어 놓고 진행하는 겁니다. 일이라는 건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하여간 대화를 나눌수록 느끼는 건데.
김 의원은 사람이 다르다.
종류가 다른 사람이다.
이런 걸 난 사람이라고 하는 건가?
난 김 의원에게 말했다.
“어쨌든 첫 단계는 토지 매수를 하는 거네요? 내 토지가 되어야 분묘처리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맞습니까?”
“네.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두르셔야겠죠. 무연고가 된 분묘 상태를 땅 주인이 언제 알게 될지 모르니까요.”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김 의원이 내게 물었다.
“자금은 있으십니까?”
“네. 계약금 정도는 있습니다. 토지도 10% 정도 계약금 걸면 되겠죠?”
“네, 그 정도면 됩니다.”
김 의원이 말했다.
“그럼 바로 약속 잡으시죠. 내일 어떻습니까?”
“아…… 내일은 곤란하고요. 모레 만났으면 합니다.”
옆에 가만히 있던 변 이사가 말했다.
“왜? 뭘 망설여? 마음먹은 거 그냥 빨리하자.”
“내일 일이 있어서 그래요.”
“뭔데?”
정말……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됐다.
“운전면허 시험 봐요.”
면허시험장의 레전드
* * *
다음날.
난 아침에 사랑산성으로 출근하지 않고, 바로 용인 운전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어렵게 시간을 냈다.
연차를 내고 갔다 오면 편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쉬면 런치, 디너 모두 영업을 못 한다. 운전면허 하나 따자고 6,000만 원을 날릴 수는 없다.
토요일도 알아봤는데, 면허시험 일정이 짧기도 하거니와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용인면허시험장이다.
서울의 몇 군데 면허시험장을 수소문해 보았는데, 기능시험과 주행시험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스케줄이 되는 곳은 용인 면허시험장밖에 없었다.
난 오늘 스케줄을 촘촘하게 짰다.
#운전면허 취득 스케줄
1) 가장 빠른 타임으로 기능시험을 치른다.
2) 연습 면허 발급 및 오후 타임으로 도로 주행시험 등록
3) 사랑산성으로 출근하여 점심 영업을 마친 후, 다시 용인 면허시험장으로 출발.
4) 주행시험 합격. 운전면허 발급.
다행히 용인면허시험장은 내곡동의 레스토랑과는 대중교통으로 멀지 않았다.
50분 정도 소요되어, 이런 스케줄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아침부터 진이 빠진다는 거.
“하아~ 아주 여행을 하는구나.”
수유동에서 첫차로 출발했는데, 아직도 가는 중이다.
그래도 긴장을 유지하려 했다.
어떻게 낸 시간인데.
하나라도 삐끗하면 오늘 운전면허 못 따는 것이다.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 하는 거고…….
“왜 이러고 사냐. 진짜.”
도착할 무렵,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용인 운전면허시험장’
접수처에 가서 접수하고, 대기실에 가서 기다렸다.
대기실에는 약 30명 정도 있었는데, 중년부터 젊은이들까지 다 모여있었는데.
다들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 이번엔 꼭 붙어야 하는데.
―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야.
― 아…… T싫어. 젠장 T…….
분위기가 이러니, 나까지도 덩달아 긴장이 됐다.
시작할 때까지 이십여 분 정도 남아 있어서, 난 천천히 채점표를 읽었다.
내가 아무리 금손이어도, 룰은 알아야 한다.
코스 설명 및 채점표를 3번 정도 정독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안전벨트 맨 후에 시작해서. 선 밟지 말고, 20km 미만으로 속도 유지하고, 시동이 꺼지면 안 되고, 코스 지나치지 말고…….”
시속 20km이상 밟아야 하는 구간은 딱 한 곳 ‘가속구간’만 있다.
여기서만 액셀을 세게 밟고, 나머지는 계속 살살 가면 되는 것이다.
계속 주의사항을 되뇌고 있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
삼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주여…… 주의 자녀가 당당히 운전면허에 합격하여 주의 뜻을 이루도록…….”
그녀의 간절한 모습이 재밌어서, 힐끔 보았다.
차선 모양과 글씨들로 빼곡히 채워진 노트를 들고 있었는데.
그 노트를 한번 보고, 기도하고.
“하아…… T.”
그러다가 깊게 한숨을 쉬며 T를 말했다.
왜 자꾸 T라고 하는 거지? 마의 구간 같은 건가?
난 정보를 좀 얻을 생각에 염치불구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음?”
아주머니는 기도하는 손을 꼭 모은 채로 날 바라봤다.
“저요?”
“네~ 제가 오늘 기능시험이 처음인데…… 팁 좀 얻을까 해서. 하하. 계속 T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그게 뭐예요?”
“그것도 몰라요? 학원에서 안 가르쳐줘요?”
“학원을 안 다녔습니다.”
“어머…….”
아주머니는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학원도 안 다니고, 기능시험을 처음 보러왔다고요?”
“네…….”
아주머니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냥 맛보러 오셨구나? 어떤 시험인가 하고.”
“네? 아 뭐…….”
여기서 합격하러 왔다고 말하면 좀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T가 T지 뭐에요. 이렇게 꺾어서 들어갔다가, 후진 주차 하는 거요.”
“아~ 직각주차 말씀하시는 거예요?”
코스 설명 및 채점표에서 봤다.
그걸 T라고 하는구나.
“제가 그 구간 때문에 5번 떨어졌거든요.”
“5번이요?!”
헉……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뭘 그렇게 놀라요? 그 정도는 보통인데.”
“…….”
“이젠 T자 들어간 것만 봐도 지긋지긋해요. 트라우마 생겼어. 트와이스의 TT도 싫어질 정도라니까.”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절망이 느껴졌다.
“…… 기능시험이 그렇게 어려워요?”
아주머니는 시험 대기 중인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이니까 잘 모르나 본데. 한 타임에 30명 정도가 시험 보거든요? 이 중에서 합격자가 2~3명 밖에 안 나와요.”
헉! 그 정도야?!
씨바, 국가고시야 뭐야?
아니지, 이건 절대평가잖아.
시험이 문제야, 사람이 문제야?
[기능시험 시작합니다. 호명하면 나와주세요.]
방송 소리에 아주머니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여…….”
그녀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이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내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고맙고 안타까운 마음에 난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네?”
“시험 잘 보세요.”
난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에?”
그녀는 내 손을 보고 멈칫하다가.
“아, 예.”
얼떨결에 잡았다.
“어머.”
내 손을 잡음과 동시에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고.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난 잡은 손에 더 힘을 꽉 주면서 말했다.
“화이팅!”
밝아졌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네, 고맙습니다.”
* * *
[강태평 님. 강태평 님. 나오세요.]
감독관의 호출.
흡~ 휴우―
솔직히 별로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긴장은 좀 됐다.
일어나서 나가는데.
호명된 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 강태평? 들어본 것 같은데?
― 네모의신님 본명 아니야?
― 맞아 흔한 이름은 아닌데.
그때 갓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고.
“꺅~!”
젠장.
난 시험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머! 어머! 네모의신님이 용인까지 웬일이야~!”
다행히도 여성분은 발만 동동거릴 뿐, 내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데.
하는 행동을 보니.
‘네모천국’ 회원임이 분명하다.
난 살짝 눈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꺅~!]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괴성이 들렸다.
운전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부터 맸다.
[시동 켜세요.]
안내 음성에 따라서 기능시험을 시작했다.
‘빼 먹지만 않으면 돼. 빼 먹는 것만.’
안내 음성에 맞춰서 ‘와이퍼 조작’ 및 ‘기어변환’을 하였고.
왼쪽 깜빡이를 켜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출발하세요.]
휴우~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주차브레이크 해제 후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출발했다.
이어서 경사로 정지, 교차로 통과 등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의 구간. 공포의 T.
직각주차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 * *
감독관실.
감독관들은 영상으로 강태평의 기능시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이번 응시자는 통과하겠는데?”
“괜찮네.”
강태평이 직각주차 구간에 들어서면서, 감독관들은 유심히 화면을 바라봤다.
“헛, 뭐야?”
“저래도 되는 거야?”
강태평은 한쪽 팔을 조수석에 얹혀놓고, 왼팔로 핸들을 사정없이 돌리며 주차진입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학원에서 배운 족보대로 움직이기 마련인데.
눈대중으로 대충 보면서 진입하는 모양새도 신기했지만.
자세가 너무…….
백미러도 안 보고 한 손으로 조수석 잡고 머리를 뒤로 돌리고 후진을 하는데.
강태평의 고개 돌린 목에서 튀어나온 힘줄이 차 내부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저거 감점 아니야?”
“반드시 두 손으로 핸들 돌리라는 채점 요소는 없어.”
“왠지 기분 나쁜데.”
가장 어렵다는 구간을 장난치듯 빠져나가는 강태평의 모습이 은근 약 올랐다.
“10년 된 운전자보다 주차하는 게 더 매끄럽네.”
직각주차 구간부터 감독관들은 눈에 불을 켜고 강태평의 운전을 지켜봤다.
그 이후 코스에서도 완벽하게 해나갔다.
“이 응시자 몇 번째 시험이지?”
“첫 시험인데?”
“…….”
가속구간.
여기서 20km 이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강태평은 이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부아앙~!
기능시험장을 울리는 엄청난 엔진소리.
강태평의 차는 순간 튀어 나갔다.
“저, 저!”
“속도를 얼마나 내는 거야!”
50……70……70km.
끼이익~ 부우웅~
가속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서, 순식간에 속도를 줄이더니.
멈추지 않고, 20km 미만의 속도를 유지했다.
“우와…….”
감독관들은 눈의 휘둥그레졌다.
“혹시 경주용 차 운전하시는 분 아니야?”
“해외면허 소지자?”
놀라워하는 가운데.
어느 한 감독관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10년 된 화물차가 어떻게 저런 성능을 보이지? 시속 70km까지 몇 초가 걸린 거야?”
“…….”
납득은 안되지만, 어쨌든 눈으로 본 일이기에.
모두 할 말이 없었다.
* * *
‘기능시험 합격’
“앗싸!”
점수는 95점.
가속구간에서 4,000rpm을 초과하여, 5점 감점 처리되었다.
RPM까지는 생각 못 했었다.
어쨌든 합격했으니까.
100점보다는 이게 인간미 있고 괜찮지.
난 바로 연습 면허 발급 및 도로 주행시험을 등록했다.
“어디 보자…… 도로 주행시험은 오후 4시 30분……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지금 시각 오전 10시.
이제 사랑산성으로 이동해야 한다.
가방을 챙기고 급히 나가려는데.
“저기요!”
기능시험 전에 만났던 아주머니가 날 불렀고, 날 향해 ‘합격증’을 흔들었다.
“오~ 축하해요!”
난 인사만 하고 바로 가려 했다.
시간이 없다.
아주머니는 날 향해 두 손 겹쳐 ‘네모’를 만들었다.
‘네모천국’의 손 사인.
“몰라봐서 죄송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난 아주머니에게 손을 흔들고는 전철역으로 뛰어갔다.
사랑산성. 11시.
도착하자마자 주방으로 튀어갔다.
“오~ 강 사장님! 어떻게 됐어?”
“헉. 헉. 이따가 영업 끝나고 다시 가야 해요!”
“하하! 역시! 합격할 줄 알았어~ 보통 손이 아니야~”
오 대리가 옆에서 손질한 재료를 주며, 말했다.
“요즘 기능시험 어렵다던데. 학원도 안 다니시고…… 하여간 사장님 대단하세요~”
“뭘~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서두르자고!”
이미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오후 3시.
점심 영업 정리가 끝나고, 난 다시 용인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하아……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슨 극기 훈련하는 거 같다.
오늘만 잘 버텨보자.
운전면허는 한 번만 따면 되는 거니까.
당 충당하려고 산 초콜릿.
3개째 입에 물었다.
입 안에 털어 넣고 수인분당선을 탔다.
용인면허시험장 도착.
도로 주행시험 시작 15분 전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이 아슬아슬하여, 시험방법과 주의할 점은 전철 안에서 숙지했다.
내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요?”
상고머리를 한 중년 남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저 면허시험 감독관입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로.”
감독관은 잠시 날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면허시험 왜 보시는 거예요?”
면허시험을 왜 보긴. 운전면허 따려고 보지.
뚱딴지같은 질문에 난 반문했다.
“네?”
“기능시험 보시는 거 봤거든요. 제가 면허시험장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시험 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
“혹시 해외에서 운전하셨어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거 아닙니다.”
“…….”
감독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보다가, 한마디 건넸다.
“기능시험 보실 때 속도를 잘 내시던데.”
“…….”
“주행시험 보실 때는 과속 조심하세요. 바로 실격이니까.”
전철에서 공부할 때 봤던 부분이다. 나 또한 그 점을 주의하고 있었다.
“네, 고맙습니다.”
[강태평 님. 시험장으로 나와주세요.]
방송에서 내 이름을 호명했고.
“저 이만, 시험 보러 가보겠습니다.”
“건투를.”
그는 내게 주먹을 뻗었고.
난 비장하게 주먹을 부딪친 후, 시험장으로 나섰다.
잠시 후.
도로 주행시험은 끝이 났고.
과속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결과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