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유롭게 (1)
* * *
[아…… 만나서요?]
그냥 문의하려고 전화한 건데, 대뜸 만나자고 하니 부담스러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변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으로 수화기를 막은 채 작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음…….
이틀 동안 열심히 다녀본 결과, 가격을 떠나서 이곳만큼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었다.
보육원과 사무실을 고려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다.
“일단, 한번 만나보죠.”
만난다고 해서 바로 계약하는 건 아니니까.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화기를 덮은 손을 풀었다.
[어디서 뵐까요?]
[지금 물건지 근처에 계신 거죠?]
[네, 맞습니다.]
[물건지 바로 앞 도로가 판교로거든요? 그 길 따라서 서북쪽으로 5분 정도 쭉 내려오시면 도춘중학교 보일 거예요. 그 학교 지나면 바로 도춘사거리가 있는데요.]
[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더 가면 ‘런던 바게트’가 있습니다.]
그냥 런던 바게트 도춘점이라고 알려줘도 될텐데. 네비 찍고 가면 되니까.
[찾아오실 수 있겠어요?]
[도춘중학교 인근의 런던 바게트라는거죠?]
[하하. 네 맞습니다. 말귀 잘 알아 들으시네. 똑똑하신 분이군요?]
[…….]
갑작스러운 칭찬에 변 이사는 황당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갈까요?]
[지금 오세요. 저 지금 런던 바게트 근처에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고 나서, 변 이사가 말했다.
“아~ 좀 독특하다. 몇 마디 안 했지만.”
“그러게요.”
“그치?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지?”
처음에 목소리는 굵직했는데, 말을 이어갈수록 가늘어졌으며.
뭔가 좀 부연 설명이 많았다.
“어쨌든 나보고 똑똑하데. 오랜만에 칭찬 들으니까 기분 좋은데?”
변 이사는 나 들으라는 듯, 혀를 삐죽 내밀며 말했고.
난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똑똑한 것과 일 잘하는 건 다르죠.”
“어쭈?”
“변 이사님 명석하시다는 뜻이에요. 하하. 어서 가시죠.”
“하아~ 강태평이 진짜. 필요한 말만 하던 인간이 이제 농담 따먹기도 하고.”
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재미없었나요?”
“재밌지는 않았어. 근데 뭐 농담도 자꾸 시도하면서 느는 거니까.”
변 이사는 피식 웃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 * *
난 유심히 변 이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번 주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본다. 어플을 통해서 간간이 공부하고 있는데.
필기시험 합격한 후 기능시험과 주행시험도 봐야 하니까.
학원 안 다닐 생각이지만, 그래도 작동 방법은 알아야 해서 운전하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눈으로 보면서 익혔다.
다만 앉은 자리에서는 발이 잘 보이지 않아서, 좀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자동차 페달 순서가 어떻게 돼요?”
“응?”
변 이사는 뜬금없는 질문에 되물었고, 난 웃으며 말했다.
“저 면허시험 보잖아요. 변 이사님 운전하는 거 보면서 익혀두려는데, 아래는 잘 안 보여서요.”
“아~”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계속 운전하는 거 보고 있었던 거군. 이상하다 했네.”
“하하.”
“1종? 2종?”
“1종 보통이요.”
“어려운 거로 했네?”
“남자는 그걸로 해야 한대서요.”
“누가 그래?”
“인터넷에서 봤어요.”
변 이사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수동 운전은 별로 할 일이 없거든.”
“지금 수동변속 운전하시면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건 좀…….”
변 이사 차는 수동 변속기였고, 운전하는 동안 그의 오른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는 특이 케이스고. 자기 택시 타거나 다른 차 탈 때 수동 본 적 있어?”
“아니요.”
“강 사장님 차 벤스도 오토잖아.”
“그렇긴 하죠.”
어쨌든 1종 보통으로 신청한 상태다.
“수동이…… 좀 어렵거든.”
“아 그래요?”
“응. 수동은 클러치라는 걸 변속하거나 멈출 때마다 밟아야 하거든. 즉 왼발을 써. 오토는 오른발만 쓰거든.”
그리고 변 이사는 클러치를 밟아야 하는 시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말은 쉬운데…… 밟는 타이밍과 느낌도 중요하거든. 그게 제대로 안 되면 시동이 꺼져.”
느낌이라…….
그건 좀 변수가 될 수도 있겠네.
부우웅―
그때 갑자기 변 이사가 차를 꺾었다.
“엇? 어디 가세요?”
“마침 공터가 보여서. 서울에서는 이런 공터 찾기 힘들어.”
차 한두 대 있는 텅 빈 공터였다.
변 이사는 차를 세우며 말했다.
“말 나온 김에 잠깐 연습해보자.”
덜컹.
문을 열고, 변 이사와 자리를 바꿔 앉았고.
난 천천히 핸들 위에 손을 올렸다.
후우―
느낌이 온다.
핸들을 잡으니, 차를 이해할 것 같았다.
“눈 감고 뭐해? 시동부터 켜봐.”
“아, 네.”
* * *
강태평은 천천히 키를 잡았다.
“어디 한번 해봐. 터보 이빨이 뭔지 보여줄라니까. 멘탈을 옥수수 털 듯 털어버릴라니까.”
변 이사는 악랄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차와의 교감에 집중하는 이 순간.
변 이사가 무슨 말을 하든 강태평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시동을 켜고.”
브레이크를 밟고, 키를 돌렸다.
부아앙―
엔진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응? 소리가 왜 이래?”
변 이사가 몰 때는 덜덜거리던 시동음이 확연히 달라졌다.
철컥. 철컥.
부아앙― 부아앙―
“변 이사님 꼭 잡으세요. 갑니다.”
“응? 어, 어.”
끼이익―
공터에 흙먼지를 날리며, 앞바퀴가 힘차게 돌았다.
강태평의 손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스틱 위로 신들린 듯 움직였다.
철컥.
2단.
철컥. 철컥.
3단. 4단.
기어 변속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강태평의 속도에 엔진이 완벽하게 부응했다.
부아앙―!
“히익!”
엄청난 순간 속도에 변 이사는 안전벨트를 꼭 잡았고.
강태평은 멈추지 않았다.
철컥.
5단!
부앙―! 부아앙―!
성난 울음소리를 내며, 변 이사의 똥차는 순식간에 공터를 갈랐다.
계기판이 시속 100km를 찍을 때쯤.
부우웅― 끼이익―!
강태평은 차의 속도를 급격히 멈추며, 180도 회전시켰다.
푸아악―!
흙먼지가 자욱했고.
변 이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말 그대로 Zero to 100.
지금 제로백을 해버린 것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 공터에서.
강태평은 웃으며 말했다.
“운전 재밌는데요? 하하. 와~ 이 재미를 몰랐네? 진작에 면허 딸 걸~”
부릉― 부릉―
차는 야수가 낮게 울부짖는 듯 그르렁 소리를 내고 있었고.
변 이사는 강태평의 이런 운전 솜씨도 놀라웠지만, 차 상태가 달라진 것이 너무 신기했다.
10년을 넘게 탄 차다.
지금은…… 변 이사가 알던 차가 아니었다.
‘예전에 제로백 컴퍼니 사업 구상할 때 홍지아가 태평이를 F1 내보내자고 했던 말이…….’
변 이사는 놀란 눈으로 강태평의 옆 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한 사람이구나. 홍지아가 강태평을 제대로 알았던 거야.’
손재주가 좋은 건 알았지만, 손대면 물건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좀 무섭다. 이건 인간계가 아니야.’
“변 이사님. 공터 반대편까지 한 번 더 가봐도 돼요?”
운전면허 따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인 최초로 F1 우승이 가능할 수도 있는 인재.
더 이상 연습은 필요 없었다.
“내려.”
“네?”
“어서 가야지. 런던 바게트.”
“아직 연습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10분 정도는…….”
변 이사는 자리를 바꿔 앉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 운전
Before : 사고날까 봐 무서워서 운전대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After : 운전대를 잡는 순간, 차가 돌변한다.
* * *
달. 달. 달.
다시 차는 출발했고, 변 이사가 핸들을 잡는 동시에 엔진 소리는 예전으로 돌아왔다.
“허허. 참 나.”
변 이사는 공터에서 출발한 이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꾸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만 지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궁금하다 못해 물었다.
“…….”
내 물음에 변 이사는 입을 꾹 다물었고, 내 쪽을 보지도 않는다.
‘도춘사거리’
거의 다 온 듯하다.
우회전하자, 바로 런던 바게트가 보였다.
근처에 주차한 뒤, 차에서 내리기 전 변 이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네모의신이잖아.”
“…….”
“혹시…… 진짜 신이야?”
“네?”
갑자기 뭔소리야?
내내 아무 말도 없다가, 한다는 소리가.
“어디 안 좋으세요? 미팅은 미루고 오늘은 이만 집에 갈까요?”
변 이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아, 아니야. 어서 들어가자.”
변 이사는 앞장서서 런던 바게트를 들어갔다.
오리고깃집 사장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는데.
눈에 확 띄는 사람이 있었다.
등산복 바지에 폴로 티셔츠를 입었고, 신발은 뾰족구두.
귀찮은 가운데 억지로 격식을 차린 듯한 옷차림.
고깃집 사장님 느낌이 왔다.
눈이 가늘고 얼굴이 하얀 남자. 그 또한 정장을 입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변 이사는 그에게 가서 말을 건네었다.
“혹시 오리고깃집 사장님 되십니까?”
“아, 네네. 맞습니다.”
“갑작스럽게 뵙네요. 하하. 좀 전에 전화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변 이사는 넉살 좋게 웃으며 명함을 건네었다.
‘사랑산성 변성준 이사’
“반갑습니다. 변성준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사님이시군요.”
난 옆에서 목례만 했고, 명함을 건네거나 통성명은 하지 않았다.
들어오기 전에, 변 이사의 부하직원처럼 보이기로 입을 맞췄다.
‘네모의신’ 유명세가 가늠이 안 되기도 하고, 만약 알아볼 경우 가격 결정하는 데 불리할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존재감 없도록…….
나중에 실제 진행하게 되었을 때, 내 신분을 드러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제 물건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오리고깃집 사장은 먼저 운을 띄었다.
“아 네. 저희가 후보지를 보러 이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사장님 건물도 보게 됐습니다.”
변 이사는 다른 대안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매수우위가 강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법이니까.
“아, 그러시군요.”
“네, 물건지 가격이 30억이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변 이사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오리고깃집 사장은 살짝 눈치를 보고 물었다.
“비싸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변 이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제 기준에는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오리고깃집 사장은 잠시 말없이 변 이사를 보다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대지 210평. 거기에 건물도 있습니다. 이걸 다 포함해서 30억인데.”
변 이사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네네~ 그렇죠. 근데 저희가 건물은 필요 없거든요.”
“건물이 있다는 건 전기, 배관 공사는 되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건 아시죠? 새로 건물을 올리실 건가 본데, 인허가도 빠를 거구요. 토지 용도가 이미 ‘대지’로 되어 있으니까.”
“…….”
“잡비용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 후보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성남시 여기저기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서 땅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개발제한구역이거나, 혹은 임야일 텐데.”
“…….”
“임야에 건축하려면 토지형질도 변경해야 하는 거 아시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거고. 건축 인허가는 과연 쉬울까요?”
그는 성남시의 상황과 주변 시세를 들며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인상은…….
건물 내놓은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주변 상황과 시세까지 이렇게 빠삭할 수 있을까?
오리고깃집 사장의 긴 일장 연설이 끝날 때쯤. 변 이사가 말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30억인가요?”
“네. 전화보다는 직접 뵙고 설명해 드려야 이해가 빠를 것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사장은 협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보자고 한 것이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난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가 15억 이하 매물을 알아보고 있거든요. 서로 생각하는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솔직하게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이야기하였다.
“네?!”
“아무래도 어렵겠죠? 혹시 추후에라도 협의가 가능하시면 연락주세요.”
악감정은 없다. 서로 원하는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 그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난 몸을 들썩였다.
“자, 잠깐만요.”
오리고깃집 사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