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22화 (122/156)

감사 표현 (2)

* * *

최경리가 집은 것은…….

“사장님이 찍으신 사진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는 독사진.

눈가의 주름이 클로즈업되어, 그가 살아온 인생을 형상화하는 듯한 사진이었다.

“이거 사장님 스타일인데. 독사진 찍을 때 꼭 얼굴로만 꽉 차게 찍으시잖아요.”

내가 찍은 사진이 맞다.

할아버지와 헤어지던 날,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줬었고, 인화하여 소포로 보내줬었다.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놓으신 듯한데.

“마치 영정사진처럼.”

최경리의 마지막 한 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집안은 썰렁하면서도 을씨년스러웠고.

얼굴만 꽉 찬 사진이 탁자 정중앙에 놓여있으니…….

뭔가 좀 싸한 느낌이 들었다.

“…….”

혹시…… 할아버지께서…….

아무도 먼저 말은 안 하지만, 나와 비슷한 우려를 하는 것 같다.

“흠!”

변 이사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강 사장님.”

“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여든은 넘으셨다고 들었어요.”

“아…… 그럼 언제 가셔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네.”

변 이사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이런 시골집은 왕래가 잘 없으니까. 어딘가 누워 계시는데, 발견이 안 됐을지도 모르거든?”

“…….”

“실례를 무릅쓰고…… 일단 나눠서 집을 살펴보자고. 김지안 대리와 최경리 과장은 여기에 있고. 오 대리?”

오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휴우.

자꾸 배 아래 깊숙한 곳에서 울렁거림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난 계속 심호흡을 했다.

불과 몇 달 전, 해맑게 웃으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사진 속 모습 그대로 웃으셨었는데.

변 이사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강 사장님도 여기서 기다릴래? 둘러보고 올 테니까.”

내 기억의 시작은 보육원이었고, 부모의 모습도 사진도 본 기억이 없다.

피로 이어진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으며, 김성애 수녀님과 강레오 형님. 그리고 보육원 아이들이 전부다.

내 삶은 시작부터 ‘상실’이었으니, 살아오면서 ‘상실’을 겪을 일도 없었다.

손도 만지고 대화도 나눴던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어졌다는 것.

불과 반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할아버지 같은 특별한 감정을 느껴서일까.

눈물까지 나지는 않았지만.

자꾸 어깨가 떨렸다.

“금방 올게.”

변 이사와 오 대리는 집 안 곳곳을 수색했다.

휴우~

난 진정하기 위해서 계속 심호흡을 했다.

좋은 날씨. 충주 살미면의 푸른 하늘이 더 이상 눈에 안 들어온다.

잠시 후.

“변 이사님! 이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 대리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고.

곧이어 변 이사도 나타났다.

“그러게, 이쪽도 없네.”

“그런데…….”

“흠…….”

변 이사도 뭔지 알겠다는 듯 깊은 숨이 섞인 소리를 냈다.

“방 안에 짐이 다 싸져 있네요.”

“……!”

“지금…… 정리 중인 거 같아요.”

꿀꺽.

진짠가? 돌아가신 건가?

이제 직원들은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하…… 젠장. 조금만 더 빨리 올걸.

기쁜 소식도 알려드리고, 용돈 많이 드리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변 이사는 손을 털며 말했다.

“면사무소 한번 가보자. 그래도 조그만 마을이니까, 어디에 모셨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

난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변 이사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미안하네. 강 사장.”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혼자 왔어야 했는데.”

“아니야. 함께 오길 잘했어.”

우리는 변 이사의 차에 탔고.

출발하려는데…….

“누구여?!”

울타리 낮은 대문 밖에서 누군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음?!

꾸부정한 허리. 팔자걸음. 하회탈 같은 웃는 표정.

헤어 스타일은 좀 바꼈다. 좀 길었는데, 지금은 짧은 스포츠머리다.

난 바로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할아버지!”

분명 할아버지였고, 난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꼭 안았다.

“하하. 할아버지.”

난 안도감이 들어서일까.

그를 힘껏 안고 큰 소리로 불렀다.

“허허. 이게 누구여. 어째 왔는가?”

“할아버지~ 건강하셔서 다행이에요. 하하.”

“하하. 웃는 거여, 우는 거여.”

그는 거친 손길로 내 눈가를 훔쳤다.

손길은 거칠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 * *

상 위에 놓인 과일과 커피.

우리는 상 주변에 둘러앉아서 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미술품 경매에서 대박이 났다는 얘기를 해드렸는데.

이해를 못 하시는 듯했지만, 좋은 일이라는 건 알아서일까.

그저 신나게 맞장구를 치시며 칭찬만 하셨다.

“잘했네~ 잘했어! 어이쿠야! 장하구만!”

그리고 할아버지의 얘기도 들었는데.

“아, 그러니까, 곧 이사 가셔서 이렇게 짐을 싸놓은 거라고요?”

변 이사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그랴~ 하~ 아들놈이 어찌나 성화인지. 그냥 냅두라는 데도, 안 올라오면 손자들 볼 생각 말라며 협박을 하는데…….”

아마도 자식들이 계속 요청했지만, 할아버지가 버텼던 모양이다.

“원체 시력이 안 좋았는데, 두 달 전쯤부터 거의 까막눈이 됐어~ 그거 알고 나서부터 아들놈이 난리를 치는 겨.”

“그럼 가셔야죠. 앞도 잘 안 보이시는데, 위험하시잖아요.”

“위험하긴 무슨. 집 주변이 휑한데, 위험할 게 있나? 도시가 더 위험하지.”

“…….”

“마누라 떠나 보낸 집이고, 내 자식들 다 키운 집이여. 난 이 집에서 살다가 가고 싶은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겄어.”

자식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염려되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는 마음일 것이다.

할아버지 또한 이 집에서 살고 싶은 게 진심이실 것이고.

“서울로 가세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고.

“아녀~ 서울 근처라는데, 뭐? 승남?”

자녀들이 성남시에 사나보군.

“저희와 가까운 곳으로 가시네요. 자주 인사드릴게요.”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고.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젊은 사람들이 일해야지. 뭘 자주 인사를 와. 가끔 안부나 전해줘. 나 가거든 향 피우러나 한번 오든가.”

“하하. 할아버지도 참.”

죽음을 소재로 농담치는 걸 보며, 우리는 어이없어서 웃었다.

“아, 할아버지. 이거요.”

난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었다.

혹시 사양할까 봐, 난 일단 그의 주머니에 먼저 꽂아 넣었다.

봉투에는 300만 원 넣었다.

5만 원권 60장.

“이것이 뭐여?”

“할아버지 덕분에 돈 많이 벌어서요. 용돈 드리는 거예요. 아드님한테 절대 비밀로 하시고, 비상금으로 쓰세요.”

할아버지는 돈 봉투를 만져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고맙긴 한데, 너무 두둑한 거 아니여? 자네 쓰지. 난 돈 쓸데도 없어~”

“너무 많이 벌어서 전혀 부담되는 금액 아니니까요. 하하. 편하게 쓰세요~”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고 씩 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고마워~ 잘 쓸게.”

“감사합니다. 받아주셔서.”

“받아야지. 고맙게 받아야지.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 같은데.”

시간이 늦어지고 있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항상 건강해. 웃으면서 살고. 알았지?”

“네,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 자네 장가갈 때까지는 살아야겠구만. 목표가 생겼어~”

할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다 함께 웃었다.

“연락드릴게요~ 건강하세요~”

“어이~”

차는 점점 멀어졌고.

할아버지가 점점 조그맣게 보인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지키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직원들과는 충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헤어졌고.

난 시외버스를 타고 바로 단양으로 향했다.

단양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단양 수도원에 도착했다.

강레오 형님과도 이 성과급을 반드시 나누고 싶었다.

단양 수도원…….

내 종이접기 역사의 시초이자, 네모천국 팬들에게는 성지가 된 곳.

오랜만에 와보고 싶기도 했다.

“형님~!”

강레오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태평아~ 하하.”

우리는 반가움에 보자마자 손을 마주 잡았다.

“어서 와라~ 우리 태평이 유명 인사 되고 나서부터 자주 보네?”

1년 만에 보는 것이다.

하긴, 1년 전에 만났던 게 보육원에서 헤어지고 거의 10년 만에 본 거였으니.

“하하. 형님. 1년 만에 보는 건데, 자주 본다고 하기에는 좀.”

“아~ 그런가? 하하. 어서 들어와라. 밥부터 먹자.”

저녁 시간이었고, 몹시 출출했다.

강레오를 따라 들어가는데, 꽃바구니 등 여러 선물이 식당 주변에 보였다.

수도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뭐에요? 누가 왔다 갔어요?”

“왔다 간 거는 아니고. 뭐라더라? 네모천국?”

헛!

“그분들이 이것저것 보내주시던데? 특히, 몸 챙기라면서 건강식품 많이 보내시더라.”

이곳에도 선물 보내는 거야?

사랑산성은 이미 팬들이 보내온 선물로 발 디딜 곳이 없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네모의 신 때문인 걸 알고서 받기로 했지.”

“…….”

“야, 근데 내가 네모의 신도 아닌데 이 정도면. 하하. 당사자는 어떻게 사니? 신경 많이 쓰이겠는데?”

그렇다. 네모천국의 마니아적 성향. 부담스러워 죽겠다.

우리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고, 김레오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산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태평이 팬들 덕분에 좋은 거 많이 먹고 있다~”

“하하. 네.”

그날 밤. 식사를 마치고.

강레오는 신의학 2,500마리 접었던 방으로 안내했다.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어떠니?”

“끔찍하네요. 과연 잠이 올지.”

“하하. 잘 자거라.”

다음날. 일요일 아침.

수도원에서 간단히 미사를 마치고. 갈 채비를 했다.

“벌써 가려고?”

“네. 내일 출근하잖아요.”

그리고 난 봉투를 꺼내어 김레오에게 내밀었다.

“이번에 성과급을 많이 받았거든요~ 동생이 형한테 주는 용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300만 원 들어 있었다. 5만 원권 60장.

“너무 두둑한 거 아니니? 얼마나 넣은 거야?”

김레오가 봉투를 열어보려 하기에, 난 손으로 막았다. 금액 확인하고 나면 안 받을 것 같아서.

“에이~ 나중에 저 가고 나거든 확인하세요.”

“응? 하하. 그래.”

끼익.

택시가 도착했고, 난 깍듯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형님~ 그럼 건강하세요. 다음엔 형님이 한번 놀러 오세요.”

“알았다~ 조심히 가거라~”

부우웅~

날 태운 택시는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김레오는 멀어지는 택시와 봉투를 번갈아 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형은 돈 쓸 곳도 없고~ 태평이 이름으로 헌금이나 해야겠다~ 불쌍하고 착한 우리 태평이.”

측은한 표정으로 강태평의 간 방향을 좀 더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 * *

다음날 여느 때처럼 출근했고. 평소처럼 점심 영업은 바빴다.

월요일 오후 5시.

의정부의 한 카페.

나와 변 이사는 점심 영업을 끝마친 후 바로 왔다.

김성애 수녀님을 만나기로 했다.

“정말 그곳들이 괜찮을까요?”

“괜찮다니까~ 셋 다 부동산 전망도 좋고, 위치도 괜찮아.”

“근데 일부 지역은 대중교통이…….”

“버스는 다녀~ 그리고 직선거리가 괜찮잖아. 그리고 대중교통이 중요해? 보육원은 어차피 내부에서 주로 생활하는데.”

“직원들이 좀 불편하지 않을까요?”

“이제 다들 차 한 대씩 사야지. 그 성과급 받아서 어디다 쓰게.”

보육원 신설 및 사랑산성의 사무소 설립.

이제 그 계획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일단, 수녀님 의견을 들어보자구.”

“네.”

검은색 수녀복을 입은 여성이 환하게 손을 흔들며 카페를 들어왔다.

“태평아~”

후보지

* * *

“어머니~”

난 한달음에 다가가 수녀님을 꼭 안았다.

“아이고~ 태평아 잘 지냈니?”

“하하. 그럼요~ 나오게 해서 죄송해요. 찾아뵀어야 했는데.”

“아니다~ 가까운 걸 뭐.”

김성애 수녀님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잠시 바라봤다.

그녀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얼굴이 좀 상했는걸? 그래도 표정은 밝아 보여서 다행이구나.”

“하하. 그럼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좀 쉬엄쉬엄하렴. 엄마 걱정된다. 너 TV에도 나오고 하던데.”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엄마 동방 TV 자주 보거든.”

그리고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육원 동생들이 난리란다. 태평이 형…… 아니지, 네모의신 님 언제 오시냐고.”

“하하. 그래요?”

“그래~ 오늘 너 만나러 온다니까, 애들이 어찌나 따라오겠다고 난리던지.”

난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몇몇 꼬맹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핑크색 티셔츠도 입고 다니더라? 가슴에 ‘네모천국’이라고 쓰여 있던데.”

“하하. 이거 참…….”

수녀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민망했다. 아무리 내게 어머니 같은 분이긴 하지만.

변 이사가 옆에서 씩 웃으며 끼어들었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강 사장님 회사 직원 변성준 이사라고 합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변 이사님.”

수녀님은 대뜸 악수를 청했고.

변 이사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전화 통화를 여러 번 드렸는데, 드디어 만나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 근데…….”

변 이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리 안 아프세요? 지금 오시자마자 선 채로 10분은 대화 나누신 거 같은데.”

“어머. 내 정신 좀 봐~호호.”

김성애 수녀님은 큰 소리로 웃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변 이사는 의자를 뒤로 끌며 말했고.

수녀님은 앉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태평이도 어서 앉으렴.”

* * *

“요즘엔 어때요? 사람들 많이 찾아오나요?”

변 이사의 물음에 수녀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난리예요. 난리. 가면 갈수록 심해요. 사업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까.”

“…….”

“저는 가타부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든요. 공동 소유주와 확인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등기상 토지 소유주는 나이지만, 어쨌든 건물은 ‘아셀라 보육원’ 소유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공동소유로 소개하라고 했다.

내가 전면에 나서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았고, 공동소유자라고 해야 좀 더 진심으로 적극적으로 가격 제안을 할 테니.

“찾아올 때마다 가격이 바뀌더라구요. 내가 한 건 대꾸 하지 않고 돌려보낸 것밖에 없는데, 알아서 가격을 계속 올려요. 호호. 평단가가 매주 몇십만 원씩 오르고 있다니까요?”

“그게 전략입니다. 수녀님께서 잘해주고 계신 거예요.”

변 이사는 수녀님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제 우리 강 사장님이 급한 일은 끝나셨고, 이제 보육원 이전에 관심을 주기 시작했거든요?”

난 멋쩍은 미소를 지었고, 변 이사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주도적으로 할거긴 한데, 그래도 보육원이 들어설 부지에 대해서는 두 분께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나와 수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큰 범위로 지역 후보지를 몇 군데 설정했고요. 오늘 두 분과 상의해서 결정하려고 합니다.”

변 이사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었고, 그것을 펼치기 전에…….

“아! 수녀님.”

“네.”

“죄송하지만, 의정부는 후보지에서 제외했습니다. 보육원 겸 사무소로 만들려는 계획인데, 저희 식당이 서초구 내곡동에 있지 않습니까. 좀 제한사항이 있을 것 같아서…….”

수녀님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랜 기간 있던 지역에서 벗어난다는 게 좀 어색했던 건데……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출퇴근할 일은 없으니까요. 환경만 좋다면 지역은 상관없을 것 같아요.”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수녀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 저도 의정부가 좋아요. 하지만 여러 가지 고려했을 때, 어쩔 수가 없었어요.”

토닥. 토닥.

수녀님은 알겠다는 듯, 대답 없이 내 손을 두들겼다.

“자 그럼 후보지입니다.”

#보육원 이전(사무실 건립) 후보 지역

1. 과천시

2. 의왕시

3. 성남시

변 이사가 펼친 보고서에는 지역명과 지도가 함께 펼쳐져 있었고.

각 지역에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빨간 점은 현재 매물로 확인된 곳을 표시한 겁니다.”

빨간 점은 대로변에도 있고, 산지, 농지에도 있었다.

“지역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선 레스토랑과 멀지 않은 지역으로 선정했습니다. 모두 자가용으로 30분 이내 거리입니다.”

“훗. 일단 서울은 없네요.”

내 말에 변 이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서울은 힘들어요. 하하. 특히나 남쪽 서울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생각하시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과천부터 말씀드릴게요.”

#과천시

“과천은 서울 강남과 접근성이 좋고, 주변 환경도 아주 괜찮죠. 정부청사가 있으며 관악산과 청계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입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저도 능력만 된다면 살고 싶은 동네인데요.”

변 이사의 사심이 느껴졌다.

“흠! 어쨌든 세 후보지 중에서 레스토랑과 위치도 가장 가깝습니다. 대중교통, 자차 모두요.”

과천…… 좋지.

과천이 좋은 거 모르는 사람 있나?

부동산 잘 모르는 나도 알 정도인데.

하지만 좋은 건 그만큼 값을 한다.

“비싸지 않아요?”

“비싸죠. 사실 과천은 경기도로 보지도 않죠. 지역번호도 02고.”

의아했다. 예산을 고려해서 후보지를 선정해야 할 텐데.

변 이사가 경제 관념 투철한 스타일인데.

“과천의 중심지 같으면 토지매입 비용만으로도 저희 예산 다 써도 부족합니다.”

“뭐에요? 바램을 담은 건가요?”

“아니죠.”

변 이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천에서도 저희가 살 수 있는 땅이 있습니다.”

나와 수녀님은 고개를 쑥 내밀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여기. 관악산 인근.”

그가 표시한 곳 주변에는 등고선이 빽빽했다.

“여기 산 아닙니까?”

“산이죠. 산의 아래.”

괜찮을까? 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단점이 뭐예요?”

장점은 충분히 들었고, 말 안 해도 알 것 같으니 단점을 물었다.

“매일 등산을 해야 한다는 거.”

“…….”

“오래는 아니고, 20~30분 정도.”

“…….”

“자연스럽게 등산하면서 심폐기능도 좋아지…….”

확실히 사심이 느껴졌다.

과천은 후보지로 넣으면 안 될 곳인데, 변 이사의 로망이 있나 보다.

“다음 거 보시죠.”

난 그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흠! 네. 다음은 의왕시.”

#의왕시

“의왕시는 과천 인근부터 서수원 근방까지 위아래로 길게 이어진 도시입니다. 제가 목표지로 본 곳은 북의왕입니다.”

변 이사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안양시와 과천시 경계 부근이었다.

“이곳에서 레스토랑까지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자가용으로는 30분 이내입니다.”

평지였으며, 지도상으로 봤을 때 주변에 녹지도 많았다.

주변에 안산이라는 야트막한 산도 있고, 아파트 단지도 꽤 보였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좋은데요?”

“그치? 괜찮지?”

변 이사는 씩 웃었다.

난 수녀님을 돌아보며 물었다.

“수녀님은 어떠세요?”

“…….”

어라? 수녀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수녀님?”

수녀님은 굳은 표정으로 변 이사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인덕원사거리와 가깝지 않나요?”

“아, 네. 아주 가깝진 않지만 거기서 좀 더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해요.”

수녀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태평아 저곳은 싫구나.”

“저기 어딘지 아세요?”

“알지. 가끔씩 가는 곳인데.”

의정부에서 의왕시까지? 왜?

“서울구치소 인근이란다.”

“구치소요?”

“그래.”

난 대답 대신 변 이사를 바라보았고.

“아셨어요?”

“당연히 알았지. 그게 뭐 중요하나? 인근에 아파트도 있는데?”

변 이사는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수녀님에게 구치소란 어떤 의미인지.

“태평아, 우리 다른 지역으로 보면 안 되겠니?”

“그렇게 할게요.”

아무리 수녀님이 정성을 다해도, 보육원 모든 아이에게 친부모처럼 정성을 들이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미성년자 법적 나이를 벗어나면 보육원에서 나가야 한다.

갓 스무 살에 밖으로 내몰리는 미성숙한 성인은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러다 보니 나쁜 길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수녀님에게는 몇몇 아픈 손가락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변 이사님, 설명은 제가 나중에 드릴게요. 다음 후보지 보여주시죠.”

“왜, 왜 이래? 나 뭐 잘못한 거야?”

변 이사는 수녀님과 내 표정을 보고 기가 죽은 모습이었고.

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잘못 하신 거 없어요.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으응. 알았어.”

#성남시

“혹시 분당구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하하. 당연히 아니지.”

변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성남시가 강남과 접근성이 괜찮거든. 물론 분당구가 가장 좋긴 하지만……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도 있잖아. 거긴 현재 우리 수준엔 어렵고.”

“훗.”

변 이사의 말에 김성애 수녀님이 피식 웃었다.

“중원구와 수정구. 특히 산지와 인접한 쪽에 괜찮은 후보지들이 있더라고. 사실 내가 봤을 때, 우리 수준에서 가장 선택지가 많은 곳은 성남시라고 봐.”

현재 보육원 부지만 100평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새로 이전 하는 곳은 이보다는 크게 들어갈 생각이며, 최소한 200평 이상을 고려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토지를 15억 이하에 구할 수 있는 곳.

잘 없을 것이다.

성남…… 성남시라.

잘 모른다. 어린 시절은 경기 북부에서 지냈으며.

스무 살 이후부터 수유동에 자취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강 아래는 나와 익숙지 않다.

“수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뭐 꺼릴게 있니? 그저 사람 너무 붐비지 않고, 자연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구나.”

이 말에 변 이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자연과 가까운 곳만 봐야 해요. 땅값 때문에. 하하. 그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흠…….

“강 사장님, 어때? 한번 답사 가볼래?”

난 수녀님에게 물었다.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같이 가보실래요?”

“아니~ 아이들 놔두고 자리 자주 비우면 안 돼~ 그냥 네가 알아서 하렴. 난 결정하는 대로 따를 테니까.”

하긴…… 수녀님이 자리를 자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최종후보지 결정되고 나면, 그때 모실게요.”

“그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 이사는 허리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했다.

“수녀님. 그럼 다음에 뵐게요.”

“네~ 이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난 품에서 봉투를 꺼내었다.

사실 오늘 수녀님을 만난 목적은 이것 때문이다.

“어머니. 저 이번에 성과급 많이 받았거든요? 어머니 용돈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300만 원이 든 봉투를 김성애 수녀님께 건네었다.

이걸로 성과급 2,700만 원은 다 썼다.

“어이쿠~ 그래! 고맙구나. 동생들이랑 잘 쓸게.”

“네~ 다음엔 더 많이 드릴게요.”

수녀님은 드리면 잘 받으시고, 좋은 곳에 잘 쓰신다.

그래서 좋다.

“어머니,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태평아 다음에 보자.”

김성애 수녀님이 나간 뒤.

나와 변 이사는 의정부 카페에서 좀 더 얘기를 나눴다.

“그럼 내일 수정구부터 가자. 영업 끝나고 바로 가는 거로. 레스토랑에서 얼마 안 걸리니까.”

“알겠어요.”

“근데…… 강 사장님.”

이런저런 부동산 얘기를 나누다가 변 이사는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예산은 얼마나 봐야 해? 지금 보육원 땅값 얼마 올랐는지는 아는 거지?”

바늘 찾기

* * *

“회사 매출이야 어느 정도인지 아니까 대략 짐작은 되지만…… 강 사장님 재산도 있잖아.”

‘사랑산성’은 내 개인사업이다.

내 재산이 곧 회사 재산이며, 회사 재산이 곧 내 재산.

“뭐……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요.”

아무리 변 이사라도 내 개인 재산을 있는 그대로 오픈하기는 껄끄럽다.

“알았어. 그럼 총예산을 얼마 정도 잡아야 하는데?”

“우선…… 아까 하려던 얘기 해보세요. 보육원 땅값이요.”

“아…… 그거.”

변 이사는 말하려다 말고, 피식 웃었다.

“강 사장님이 한번 맞춰볼래?”

난 보육원 부지를 평단가 150만 원에 매입했었다.

의정부 서북쪽. 양주와 파주 경계에 위치해 교통도 좋지 않다.

그나마 좋은 건 자동차로 1시간 내 서울 북부 접근이 가능하며, 한적하고 공기 좋다는 것?

그런 땅에 개발계획이 들어서며 갑자기 땅값이 치솟았다.

평당 6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었다.

토지 투자자들은 날 타짜로 안다는 말도…….

“뭐…… 한 700만 원이요?”

“하하.”

발표 난 지 한참 지났을 때 600만 원이라고 했었으니, 기껏 올라 봐야 100만 원 정도 더 오르지 않았을까?

“놀라지 말어.”

변 이사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지금 매수 희망자들이 평단가 1,000만 원까지 제시했어.”

“네에?!”

씨바, 무슨 그 변두리 땅이…….

도대체 몇 배 오른 거야?

“그거 좀 많이 과한 거 아니에요?”

“글쎄. 아직도 오르는 중인데? 앞으로도 오를 일만 남았고.”

내가…… 도대체 어떤 땅을 산 거야.

평단가 150만 원짜리가 1년 반 새에 1,000만 원이 되었다고?

매수자들이 찔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시세는 실거래가 이루어져야 진짜가 되는 것이다.

“정말로 그 금액에 살 의향이 있대요?”

“의향이 있다마다. 실감이 안 돼?”

“단기간에 너무 올랐잖아요.”

“음…….”

변 이사는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내가 주변 부동산중개소 파고 있거든? 우리와 비슷한 조건의 땅이 지난주에 1,050만 원에 거래됐데.”

“…….”

“우리가 매도를 마음먹고, 거래 협상을 시작하면 1,000만 원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뜻이야.”

비슷한 조건의 땅이 1,000만 원에 팔렸다면…… 그럼 더 말할 필요 없다. 진짜 시세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200평을 평단가 150만 원에 매입하여 총 3억 원을 들이밀었는데.

200평에 평단가 1,000만 원으로 계산하면…….

“20억?!”

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변 이사는 웃으며 악수를 건네었다.

“축하하네. 강 사장님.”

그는 다른 말 하지 않고, 그저 악수를 건네었고.

난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잡았다.

시세차익 17억.

1년 반 새에 토지 매수로 17억 원의 수익을 낸 것이다.

* * *

다음날.

성남시 수정구로 향하는 변 이사의 차 안.

사전 답사 때문에 변 이사는 차를 가지고 왔다.

덜. 덜. 덜.

차에서 힘겨운 엔진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면허증 언제 딴다고 했지?”

“안전교육 먼저 받고요. 필기시험은 이번 주 금요일에 받기로 했어요.”

“그래…… 빨리 따자. 내 차 힘들다.”

주변은 점점 녹지로 바뀌고 있었고, 점점 언덕 위로 올라갔다.

‘남한산성’

도로변에 표지판을 보았다.

“이 길 맞아요?”

“내가 얘기했잖아. 녹지 있는 곳으로 알아봤다고.”

“…….”

상당히 깊이 들어가네.

그러고도 차는 한참을 들어갔다.

“그러니까 예산은 34억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거지?”

“네.”

보육원 예상 매도액 20억 원에 미술품 경매 수익 13억7천만 원.

이 두 항목만 더해서 예산을 34억으로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보육원 매도액이 커서 4억 원 정도 더 여유가 있었지만, 그 금액까지 오픈하지는 않았다.

“토지 매입은 되도록 15억 이내로는 해야겠군.”

“너무 적나요?”

“아니야. 그 정도 예상했었어. 강 사장님이 부잣집 아드님은 아니잖아. 가지고 있는 목돈은 눈에 보였으니까.”

“그럼 지금 보러 가는 곳도…….”

“응. 면적 220평 14억.”

난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서울 근교에 이 정도 되는 규모의 땅이 잘 있지도 않을뿐더러…… 굉장히 저렴한 거야.”

약간의 산길로 들어갔고.

“맞는 거죠?”

의심스러워서 몇 번을 물었다.

“맞을……걸.”

그의 목소리에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끼익.

그리고…… 네비가 가리키는 위치로 도착은 했는데.

이건 좀…….

“변 이사님. 여기 와봤던 거 맞죠?”

“와보진 않았지…… 근데 중개소에서 이런 말은 없었는데.”

똥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 똥 냄새도 아니고, 거름 냄새도 아닌데.

이건 분명…… 어릴 적 많이 느꼈던 그 향이었다. 경기 북부에서 종종 느껴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축사가 있나 본데요.”

“…….”

냄새의 농도로 봤을 때, 축사가 크진 않을 것 같다.

어쩐지 주변에 인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다.

“아니 이런 큰 도시에 축사가 있어?! 이러면 안 되지 않나?”

“냄새가 증명하잖아요. 위장 축사라는 것도 있어요.”

“위장 축사? 강 사장님 뭘 그렇게 잘 알아?”

어릴 적 많이 봐왔으니,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냥 좀 알아요. 여기는 재끼시죠.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직원들 출근 안 할 수도 있어요.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살아갈 곳으로서는…….”

“그래. 그래. 바로 스킵하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로 창문을 올려버렸다.

변 이사가 봐둔 후보지 세네 군데를 더 가봤는데.

위치가 좋으면 가격이 높고, 가격이 좋으면 위치가 안 좋았다.

등산을 해야 할 정도로 높은 곳에 있거나,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몇 차례 허탕을 치자, 변 이사도 짜증이 나는지 중개소에 전화를 했다.

[아니, 왜 개발제한구역 얘기는 안 하신 거예요?]

[저에게 토지가가 얼마인지만 물었지, 용도에 대한 이야긴 없으셨잖아요. 투자 목적으로도 많이들 사시니까.]

할 말이 없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두웠다.

“더 볼 거야? 밝을 때 보는 게 좋겠지?”

“그러시죠.”

내일 다시 보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 * *

성남시 중원구.

어제와 별다를 건 없었다.

위치가 좋으면 가격이 높고, 가격이 좋으면 위치가 안 좋고.

위치와 가격 모두 괜찮아서 기대하고 가면 개발제한구역이었다.

약 오르는 기분이 들면서, 짜증이 점점 올라왔다.

변 이사의 표정 또한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말했다.

“강 사장 미안해. 내 맘 같지 않네.”

이게 변 이사 탓이겠는가.

난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쉽지 않아. 처음부터 부동산 중개인이랑 같이 다닐 걸 그랬나.”

“아니에요. 그런다고 뭐 달라졌겠어요. 어차피 중개소 정보 받고 온 거잖아요. 그냥 토지라는 게 변수가 많은가 봐요.”

“휴~”

변 이사는 심호흡하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럴 때일수록 힘내야 한다. 난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다음 장소로 움직이시죠!”

중원구 도춘동.

도심을 지나 여수천을 따라 들어가니 숲으로 둘러싸인 주거단지가 나왔다.

“오…… 깔끔하네?”

“여기도 택지 개발한 곳인가 보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우리는 여수천을 따라 주거단지를 지나 산기슭까지 들어갔다.

“왠지 또 느낌이 오는데요~”

“…….”

또 개발제한구역 느낌이 와서, 난 말했고.

변 이사는 어금니를 깨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파트 주거단지는 산기슭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었고, 아파트 앞 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진입했다.

오리고기, 숯불고기 등 큰 규모의 음식점이 나타났고.

도로의 끝부분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네비는 도로 끝을 지나 임야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와…… 이 정도면 거의 절벽인데.”

난 기가 차서, 주소지를 보며 혀를 찼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허탈함에 산비탈만 바라봤다.

짜증이 올라오려 했지만.

휴~

상황 때문에 예민해지지 말자.

이럴 필요 없지.

난 먼저 변 이사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님! 가시죠.”

“그래.”

“시간도 늦었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맥주 한잔하는 거 어때요?”

“차는?”

“제가 대리 불러드릴게요.”

“콜.”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씩,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약간 외지긴 했지만, 주변은 조용하고 좋은데.”

“그러니까요. 주거단지가 바로 앞에 있으니까 안정적인 느낌도 들고요.”

“여기서도 내곡동까지 차로는 30분이면 가거든.”

“…….”

이런 말 해봐야 소용없다.

매물도 없고, 그나마 있는 매물은 산비탈에 있고.

끼이익!

변 이사는 갑자기 급정거했고.

비포장도로 위라 천천히 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순간 몸이 앞으로 쏠렸다.

“이사님?! 왜요! 고양이 나왔어요?”

“아, 아니. 저기 봐봐.”

변 이사가 가리킨 곳은 오리고깃집이었는데.

‘토지‧건물 일괄 매도. 문의 010―XXXX―XXXX’

건물 유리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넓은 주차장과 널찍한 1층의 건물.

자세히 보니 영업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띵!

뭔가 느낌이 확 왔고.

난 오리고깃집을 빠르게 스캔했다.

건물은 다시 올릴 거니까, 볼 필요 없고.

부지와 위치만 봤을 때는…….

일단 규모는 현재 보육원보다 넓어 보였으며.

위치는 아파트 주거단지 바로 앞이라 오리고깃집 앞까지 도로포장이 되어 있었다.

앞에는 고불산. 뒤에는 영장산.

무엇보다도 대규모 아파트단지 바로 앞이라서, 초등학교가 가까운 게 가장 맘에 들었다.

“강 사장님…….”

“변 이사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서로 마주 봤고.

말이 필요 없었다. 이심전심이었다.

“바로 전화해볼게.”

“빨리해보세요.”

변 이사는 스피커폰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드르륵. 드르륵.

신호음이 다섯 번 정도 울렸을 때,

덜컥.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목소리가 굵직한 남성 목소리였다.

[오리고깃집 사장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건물에 붙인 연락처 보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잠시 남자는 생각하는 듯하더니.

[사시려고요?]

[조건이 맞다면요.]

변 이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단 몇 가지 여쭤봐도 괜찮으시죠?]

[네…… 뭐가 궁금한데요?]

건물에 붙인 연락처를 보고 전화했으니, 물건은 이미 본 것이고.

궁금한 건 뻔하지 않은가?

오리고깃집 사장은 짐짓 모르는 척 대꾸했다.

[대지 평수가 어떻게 됩니까?]

변 이사는 사장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질문을 먼저 했다.

사실 우리에겐 이 부분도 중요하다.

오리고깃집 부지 규모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10평 정도 됩니다.]

불끈.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딱 우리가 원하는 규모.

조용히 하라는 듯, 변 이사는 웃으며 검지를 입 앞에 댄 후 다시 말했다.

[그렇군요. 가격은 얼마에 내놓으셨습니까?]

[30억입니다.]

헛…….

그렇게 비싸다고? 이 지역은 성남 변두리인데.

충격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그때 전화기에서 마른 웃음소리가 들렸다.

[허허. 제 바람은 그렇고요. 진짜 매수 의향 있으시면 만나서 얘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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