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표현 (1)
* * *
[아아. 다들 모이셨습니까.]
서울대공원 근처의 야유회장.
나를 포함한 사랑산성 5명의 직원과 설수민이 운영하는 디너 영업직원 10명.
총 15명의 사랑산성 직원들이 모였다.
금요일 오전. 햇살이 가득한 날.
룸으로 둘러싸인 ‘사랑산성’이 아니라, 햇살 밝은 곳에서 모든 직원을 만난 것이다.
음지에서만 보다가, 양지에서 만나니 항상 보던 사람들인데도 새로워 보인다.
특히 디너 영업직원들은 햇빛 받아 만개한 꽃 같았다.
[사랑산성의 사장. 강태평 인사 올립니다.]
확성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하자, 직원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 꺄~ 사장님 멋지다!
― 네모의신님!
― 강 작가님! 호호.
대부분의 환호성은 디너 직원들이었고, 변 이사 포함 런치 직원들은 가볍게 박수만 쳤다.
설수민도 맞은편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제가 오늘 무리해서 여러분들을 모신 이유는.]
직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냥 좀 놀려고요. 우리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만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에 직원들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런치, 디너. 그동안 영업시간 맞춰서 바통 터치만 하느라 서로 잘 모르고 지냈죠? 오늘 얼굴도 익히고 앞으로 더 가깝게 지내보죠!]
“좋습니다!”
오 대리가 큰 소리로 대답했고.
변 이사는 입을 가리며 좋아했다.
디너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고, 단란주점 출신이라서인지 다들 외모가 아주 출중했다.
[참고로 오 대리는 여자친구가 많고요, 변 이사님은 딸 둘입니다.]
난 흘리듯 말하며 넘어갔는데.
두 남자는 날 째려보았고.
“호호.”
여직원들은 재밌어했다.
[이런 자리를 진작에 마련했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달리느라 늦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가질게요. 물론 야유회 날은 유급이고요.]
― 좋아요!
― 사장님 너무 좋아~
디너 여직원 중 일부는 핑크 티셔츠 ‘네모천국’을 입고 있었다.
환호해 주는 방청객이 있으니, 앞에서 사회 보는 데 힘이 됐다.
[자~ 그럼 지금부터 오후 1시까지는 먹고 마십니다!]
난 한 켠에 출장 뷔페를 마련해두었다.
[단! 테이블에 이름표 적어놨거든요? 그 자리에 앉아서 드셔야 합니다.]
끼리끼리 놀지 말고, 서로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난 지정석을 만들었다.
노는 자리에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들어가야 더 재밌게 논다.
― 아이~ 부끄러운데.
― 나 낯가리는데~
이런 말과는 달리 다들 웃으면서 지정석으로 갔다.
[1시간 동안은 지정석에만 드시고. 그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아시겠죠?]
“네~!”
[오후에는 게임 할 거니까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하하. 그럼 즐기세요~]
내가 받은 성과급 2,700만 원.
그중 400만 원을 들여서 최고급 호텔 출장 뷔페를 섭외했다.
― 아니! 무슨 뷔페에 랍스타가 있어?!
― 이거 푸아그라 아니야?
인원수가 많지 않아서, 400만 원이면 충분했다.
고급 위스키와 와인. 소주. 맥주.
술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김지안 대리!”
“네, 사장님.”
난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준비 잘했어. 괜찮네.”
“금액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거로만 준비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보다 쉬운 주문이 어딨어요. 헤헤.”
김지안 대리는 혀를 쏙 내밀며 웃었다.
말 그대로 축제.
이런 자리를 가져도 될만한 성과를 사랑산성은 얻었고.
내 직원들.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기쁜 일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니.
* * *
“사장니임~ 제 잔도 받으셔야죠~”
대낮 정오.
도대체 몇 잔째인지 모르겠다.
지정석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마시기 시작한 이후부터, 더 많은 잔을 받았고.
나도 잔을 피하지 않았다.
확실히 디너 직원들은 단란주점 경력이 있어서일까.
잘 마시고, 잘 놀았다.
술을 잘 마시는 건지, 아니면 몰래 흘리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잔을 채워주면 금방 사라졌고,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나를 포함한 런치 직원들만 맛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주량이 아니라, 스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양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여자.
설수민과 김지안.
사이 좋은 자매처럼 즐기고 있는데, 난 궁금해서 물었다.
“설 사장님.”
“네?”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디너 직원들 지금 술 버리고 있는 거죠?”
설수민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셔요. 비싼 술은 안 버려요~”
“아니 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지. 왜 버려요?”
“술잔은 받아야 하잖아요.”
설수민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직업 습관이에요. 주는 술잔은 무조건 받아야 했으니까요…….”
“아…….”
“하지만 지금 술 버리는 목적은 완전 다르죠.”
설수민은 행복에 겨운 직원들 표정을 보며 말했다.
“예전엔 손님 접대하고 매출 올리느라 그랬다면, 지금은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스킬 시전 하는 거니까요.”
그녀는 날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직원들 웃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술 취해서 그런가? 더 예뻐 보이네.
설수민의 눈빛에 홀릴 것 같아서, 난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흠. 어쨌든 이제는 레스토랑 직원들이니까요. 옛날 버릇은 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술잔은 받고 싶을 때만 받으면 돼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넵. 알겠습니다. 강 사장님.”
나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가 이미 훌쩍 넘었다.
“김지안 대리.”
난 옆에 있는 김지안을 불렀다.
“넹~ 사장님. 술 더 드려용?”
김지안은 혀 짧은 목소리로 내 부름에 화답했다.
술 좀 들어간 것 같다.
“아니. 다음 행사 준비해야 하는데.”
“아잉. 그냥 술이나 한잔 더해여~”
김지안은 술 한번 버리지 않고, 다 마신 거 같다.
“호호. 얘가 그새 직업정신을 다 잃어버렸네. 남자 옆에서 이렇게 취한 모습을 다 보이고.”
설수민은 그런 김지안을 보며 웃었다.
“남자는요. 무슨. 사장이죠.”
그녀의 말에 난 이렇게 대꾸했다.
“무슨 행사인데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설수민은 웃으며 말했고, 옆에서 김지안은 계속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아 네. 간단한데…… 제가 앞에서 사회 볼 때 잠깐 상품 판넬만 들고 있다가 건네주시면 돼요. 크기만 크지 별로 안 무겁거든요.”
“알았어요~ 그 정도야 뭐.”
난 준비를 마친 후 단상에 올랐다.
[아아. 여러분 주목~]
확성기 소리에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살짝 잠잠해졌다.
[재밌게 즐기고들 계십니까?]
[네에~!]
[하하. 오후에는 게임 할 거라고 했죠?]
직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바라봤다.
[피구, 족구, 이어달리기, 발야구]
― 뭐야, 이게 무슨 게임이야?’
― 갑자기 운동회?
― 토하게 하려고 맛있는 거 먹인 건가?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 대리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사장님! 분위기와 너무 안 맞습니다. 차라리 술 게임을 하시죠. 제가 사회 볼 수 있습니다!”
― 맞아~ 맞아요!
― 그런 게임은 술 마시기 전에 하던가~
난 다리에 알 좀 배더라도 이럴 땐, 직원들이 밝은 곳에서 운동하기를 바랐다.
매일 어두 컴컴한 사랑 산성 안에서 요리하고, 서빙만 하고.
[안 됩니다. 계획대로 갑니다. 놀라운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동기 부여가 될 겁니다.]
그래도 직원들 표정은 탐탁지 않았다.
“설 사장님?”
그때 옆에 서 있던 설수민이 웃으며 판넬을 건네었다.
‘50만 원.’
― 음?!
‘50만 원’이라고 쓰인 판넬을 보고 직원들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이제야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남녀 섞어서 두 팀으로 나눌 거고요. 이기는 팀에게는 전원 50만 원 상금이 부여됩니다.]
― 팀 당 50만 원이 아니라, 한 명당 50만 원?
― 에이~ 설마.
[이 상금은 모든 경기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4게임을 모두 이기면 200만 원의 상금을 가져갈 수 있겠죠?]
― 어머! 어머!
― 강 사장님 통 크다.
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판넬 위에 5만 원짜리 묶음을 쌓아 올렸다.
5만 원권 280장.
10장씩 묶어서 올려놨으니, 총 스물여덟 묶음이다.
― 어머! 진짜야!
한 팀당 7명이며, 한 게임당 35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는 것이다.
총 4게임이니, 총상금은 1,400만 원.
[즐거운 게임이 되겠죠?]
― 네에~!
목소리 크기가 확 올라갔고.
대낮임에도 눈빛 번쩍거렸다.
[자~ 그럼. 우리 직원들 살림살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하하. 피구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2,700만 원의 내 성과급 중, 뷔페와 상금으로 1,800만 원을 사용했다.
이제 900만 원 남았다.
* * *
다음날 토요일.
난 집 앞에서 변 이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지 않게 변 이사의 차가 도착했고.
“엇?!”
차 문을 열고 놀랐다.
뒷자리에 최경리, 오 대리, 김지안도 앉아있었다.
“다들 어쩐 일이야?”
오늘 충주시 살미면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라고, 어제 변 이사에게 말했었고.
변 이사는 본인 차로 함께 가자고 했다.
최경리가 말했다.
“어쩐 일은요? 왜 변 이사님하고만 가세요?”
“일부러 가자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었지, 내가 먼저 가자고 한 건 아니었다.
“인사는 저희도 드리고 싶거든요? 할아버지 덕분에 성과급도 많이 받았고.”
오 대리와 김지안도 날 향해 빙그레 웃었다.
토요일…… 쉬어도 되는데 굳이.
고마웠다. 함께 가줘서.
“뭐해? 어서 안 타고.”
변 이사의 말에 난 앞자리에 앉았고,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덜. 덜. 덜.
고속버스를 나온 뒤, 산길을 넘어가는데 차가 힘들어 보였다.
10년은 넘은 차다.
“강 사장님. 빨리 면허 따. 벤스 놔두고 이런 차 타야겠어?”
“네네. 이미 예약했어요.”
교통안전교육부터 해야 한대서, 일단 교육 접수부터 했다.
학원은 안 다닐 생각이다.
내 손이라면…… 필기시험만 합격한다면 뭐.
“여기 경치 진짜 좋다. 호반과 산의 조화가 장난 아니네.”
변 이사의 말에 김지안은 창밖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저 서울 밖으로 나와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변 이사는 국도를 따라서 계속 달리다가.
“근데…… 강 사장님?”
“네.”
“언제까지 가야 해?”
“…….”
분명 내비를 찍고 왔는데, 눈에 익은 장소가 아니었다.
우리는 몇십 분째 주소지 주변을 뱅뱅 돌았다.
“변 이사님. 여기서부턴 좀 천천히 가주세요.”
“이미 시속 30km야. 어떻게 더 천천히 가.”
뒤에 따라오던 차들은 몇 대째 우리 차를 추월하고 있었다.
변 이사는 답답한 지 내게 물었다.
“면사무소라도 가볼까? 자기 할아버지 사진 있잖아.”
“자! 잠깐만요!”
그때 익숙한 길이 보였다.
분명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한 고개 넘어왔던 그 길이었다.
논두렁 사이를 가르는 길.
“아~ 걸어왔던 곳을 자가용 타고 오니까 알아보기 힘들었네요.”
“흠…….”
논두렁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길.
그 길은 얕은 산등성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내리시죠.”
삼십여 분을 걸어갔고.
직원들은 묵음으로 ‘씨바’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울타리 없는 마당.
청록색 기와지붕에 색바랜 하얀색의 벽면.
분명,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하하. 도착했네!”
다행히 맞게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난 목소리가 올라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난 마당 안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큰 소리로 불렀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집 안을 둘러보며 소리를 쳐봤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다.
이상하다.
처음엔 귀가 어두우셔서 못 들으시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
함께 집 안을 둘러보던 최경리가 뭔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