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18화 (118/156)

기적의 남자들 (1)

* * *

[이, 이 팀장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속초?

갑자기 속초가 왜 나와?

기적의 남자?

그건…… 날 말하는 건데?

[네? 왜 갑자기 큰 소리를…… 속초 기적의 남자요. 그분이 이렇게 얘기하면 만나실 거라고 해서.]

그 일이 있은 지 1년 반이 좀 넘었다.

거의 2년이 다 되어 간다.

살아서 진일상사에 막 돌아왔을 때만 해도 많이 듣는 말이었지만.

‘기적의 남자’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죽을 뻔했던 기억.

물론 그 덕에 금손을 얻기는 했지만.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던 끔찍한 일이었다.

결코…… 내게는 좋은 기억이 아니다.

[만나고 싶다는 분이 절 그렇게 부르던가요?]

속초 기적의 남자는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네?]

내 물음에 이정수 팀장이 반문했다.

[아, 아니요.]

[…….]

[저도 영문은 모르지만, 그분이 본인을 정 궁금해하면 그렇게 소개하라고…….]

무슨 말이지? 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속초 기적의 남자라고?

[…… 강 작가님?]

난 통화 중인 것도 잊고,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뭐지?

그 사람이…… 속초 기적의 남자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난 당시에 깨어나자마자, 생존자 인터뷰에 정신이 없었고.

다친 곳도 없어서, 며칠 안 있어서 바로 퇴원했다. 회사에도 빨리 출근해야 했고.

[작가님? 혹시 끊으신 거 아니죠?]

[아…… 네.]

[갑자기 말씀이 없으셔서.]

[혹시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그분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죠?]

[그냥 50대 남성입니다.]

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면서도 도저히 모르겠다.

누구지. 누굴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팀장님. 잠깐만요. 제가 5분 내로 다시 전화 드릴게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뚝.

난 전화를 끊고. 퇴근하려고 들었던 가방도 내려놨다.

바로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 켜서 검색창에 타이핑 했다.

‘속초 기적의 남자.’

주르륵. 수많은 기사가 이어졌고.

질끈.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서, 난 잠시 눈을 감았다.

버스 잔해 옆에서 봤던 끔찍한 사체들. 시체 타는 냄새.

내겐 트라우마다. 초록 창에 이 문구를 검색하게 될 줄이야.

휴우―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떴다.

[속초행 빗길운전. 12명의 사상자.]

[고속버스 절벽 밖으로 추락.]

[안전벨트도 소용없었다. 끔찍한 대형사고.]

[구조대원. 시체 수습에 난항.]

:

아…… 제목만 봐도.

난 빠르게 제목만 보며 스킵했다.

[유일한 기적의 생존자. 강ㅇㅇ, 김ㅇㅇ.]

어? 클릭.

[이런 끔찍한 사고에서도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몸에 상처 하나 나지 않은 생존자인데요. 생존자 강모 씨입니다. 또한 그는 탈진으로 들려 나가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렸는데요.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 또 다른 생존자 김모 씨가 있었으며,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 직전 김씨는 강 씨 덕분에 목숨을…….]

맞아…….

생존자가 나 혼자가 아니었지.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리를 크게 다쳤었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혹시 그 사람이 날…….

난 재빨리 이정수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팀장님.]

[아, 네 작가님.]

[혹시 저 만나고 싶다고 하신 분. 다리가 불편하신가요?]

[엇!]

이정수 팀장은 ‘엇’ 소리와 함께 약간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네 맞습니다.]

그 사람 맞구나.

근데…… 왜 이제 와서 나를.

[아무래도 아시는 사이 같은데, 한번 만나 보시죠. 그분이 간절히 원하시더라고요.]

흠…….

궁금하기는 하지만, 왜 이렇게 꺼려질까.

그 사람 만나면 사고 기억이 떠오를까 봐 그런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피하는 건 안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 작품의 낙찰자이기도 해서, 좀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약속 잡으시죠.]

* * *

그 남자의 이름은 김정식이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 단둘이 만나기로 했고. 그 남자의 이름만 받았을 뿐 연락처는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엇갈리면 어떡할 거냐 물었더니,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만약 못 찾게 되면 본인에게 전화 달라고 이정수 팀장이 말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토록 조심스러워하는 걸까.

“나 오늘 먼저 좀 나가볼게.”

“외근이에요?”

오 대리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니. 개인적인 일이야.”

“와우~ 우리 사장님이 개인적인 일이 다 있어요? 하하.”

오후 4시경 사랑산성을 나와서.

꽃집에 들렀다.

김정식과 어떤 인연 때문에 재회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는데.

빈손으로 가기가 좀 그랬다.

꽃바구니나 하나 사 가야지 싶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꽃집에 들어서자, 수염이 텁수룩한 산적 같은 아저씨가 날 맞았다.

“허허. 어서 오세요.”

아저씨 얼굴을 확인하고, 순간 잘 못 들어왔나 싶어서 둘러봤다.

주변에 꽃이 많은 걸 보니 그건 아닌 거 같다.

“꽃바구니 하나 사려고 왔습니다.”

“아, 네. 용도가 어떻게 되나요?”

“용도요? 아 뭐……. 그냥.”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문병도 아니고…….

“그냥 축하용입니다.”

“아 네. 이걸로 가져가시면 되겠네요.”

아저씨는 순식간에 꽃바구니를 만들어서 건네었다.

“포인세티아 꽃바구니인데요. 축하, 행복, 희생의 꽃말을 가지고 있어요.”

“아~”

“기분 좋은 만남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이래서 용도를 물어본 거였군.

꽃집 아저씨의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흰 이빨이 빛났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그렇게 건강하신 거 축하한다고 전하며, 기분 좋게 만나면 되는 거지.

“별말씀을요. 근데 네모의신님이 축하해 주실 분도 있어요? 누구신지 몰라도 영광이겠는데요.”

“네? 아~ 네??”

헛…… 알아본 거야?

“너튜브 잘 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아는 척하는 건 부담 안 되시죠? 자연스러웠나요? 하하.”

아저씨가 외모와 달리 참 넉살이 좋다.

“아~ 하하. 네. 진짜 사려가 깊으시네요.”

“얼마 전에 경매 기사 봤어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네. 고맙습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불쑥불쑥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24시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닐 수도 없고.

보통날 알아본 시민들의 반응은 꽃집 아저씨 같지 않아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이렇게 편하게 알아봐 주시면 전혀 부담 안 되는데.

꽃집 아저씨가 말했다.

“저, 괜찮으시면 제가 꽃 하나 선물 드리고 싶은데.”

“에이~ 아니에요. 파셔야 하는 건데. 그러지 마세요.”

난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하얀색의 복실복실한 꽃 여러 송이를 묶어서, 내 정장 재킷 가슴에 꽂아 주었다.

“행운목 꽃이에요. 행운,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죠. 오늘 하루 행운이 깃드시라고.”

“아~ 하하.”

“이 정도는 전혀 부담되지 않으니까 받아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꽃바구니 가격을 치르고, 꽃집을 나서려다가 물었다.

“혹시…… 사인해 드릴까요?”

“좋죠!”

‘To. 꽃집 사장님.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네모의 신.’

* * *

종로구 청운동.

택시에서 내렸다.

부우웅―

택시가 떠난 뒤,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무슨 경복궁이나 창경궁 온 거 같다.

물론 규모는 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청화옥’

커다란 대문에 위에 써진 이름.

이정수 팀장이 알려준 곳이 맞다.

네박사 지도에 식당명으로 치면 안 나온다고 해서, 주소를 찍고 왔다.

“맞겠지?”

뭔 식당이 이렇게 위압감이 느껴지나…….

잠시 망설이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7시.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있는 시간.

청화옥 대문 안에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연못, 분수대, 그리고 잔디밭.

잔디밭 사이에 평평한 돌로 박아 놓은 인도가 있었고.

인도 사이에는 노란 조명이 길을 밝혔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운치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본관에 도착했고.

한복을 입은 미인이 날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시는 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아, 안녕하세요. 네. 주소 찍고 와서요.”

인사가 기계적이지 않네.

단 답도 아니고.

“잘 오셨습니다. 제가 모실게요.”

미인은 꽃향기를 풍기며 앞장섰다.

근데……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건가?

“김정식 님은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아~ 일찍 오셨네요.”

알고 있구나. 혹시…….

“네모튜브 보세요?”

“네? 그게 뭔가요?”

내 팬은 아닌 듯한데. 어떻게 날 알고 있지.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호.”

미인은 가볍게 웃었고. 난 그녀를 따라서 몇 개의 방을 지나쳤다.

미인이 말했다.

“오늘 좀 더웠는데, 저녁 되니까 시원하고 좋아요. 그쵸?”

“아 네. 여기 청화옥이 정원이 넓게 뚫려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녀는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이런 것도 아마 직원 교육을 받아서 그런 거겠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전통 한옥 문살로 된 방문 앞에 섰고.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문 양쪽에 서 있었다.

“강태평 님 어서 오십시오.”

두 남성은 날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미인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네~ 고맙습니다.”

후우―

난 짧게 심호흡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들어갈게요.”

“네.”

한 남자가 방문안을 향해 말했다.

“의원님. 강태평 님 오셨습니다.”

쇳소리가 섞인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모셔라.”

드르륵―

방문이 열렸고.

머리 위에 새하얗게 새치가 내린, 중년 남성이 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

우리는 마주 본 체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랄까.

좀…… 충격적이었다.

왜 충격적인지는 모르겠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마주한 순간.

분명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동질감?

혹은 연민?

아니면…… 나와 같은 부류?

우리는 미동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본 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김정식이 먼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태평 님.”

“…….”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

그는 지팡이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몹시 힘겨워 보였다.

문 옆에 있던 한 남자가 급히 방으로 들어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의원님, 제가.”

“놔라.”

“…….”

김정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앞에 서서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 늦게…… 찾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더니.

힘겹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게 아닌가?

난 황망해서 재빨리 방에 들어가 그의 팔을 잡았다.

“왜, 왜 이러세요?!”

하지만 김정식은 완강했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아 보이는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 미치겠네.”

어쩔 수 없어서, 나도 똑같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태평 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고, 새 인생도 살게 됐습니다.”

김정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고.

난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다 보답할 겁니다.”

“…….”

“이 세상에 강태평 님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도록 만들어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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