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특권 (1)
* * *
“아…….”
이정수는 의원의 갑작스러운 감사 표시가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약간 고민하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도 고맙습니다…….”
“하하.”
마른 웃음소리.
이 남자가 영웅 옥션과 거래한 지 꽤 되었지만,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영웅 옥션 사장은 신기한 듯 의원과 이정수 팀장을 바라봤다.
의원은 여전히 이정수 팀장의 양어깨를 잡은 채로 말했다.
“지금 시간 좀 괜찮으세요? 사실 이정수 팀장님 만나러 왔어요.”
“무, 물론입니다. 당연히 시간 괜찮아야죠.”
이정수 팀장은 대답할 때마다 자꾸 말을 더듬거렸다.
“조용한 곳 있나요? 단둘이 얘기 좀 하고 싶습니다만.”
“아…… 단둘이요?”
이정수 팀장은 생각했다.
‘진짜, 내가 뭐 실수한 거 있나? 자꾸 쫄리게 왜 이러지?”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거기서 문 닫고 대화하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좋아요.”
이정수 팀장이 앞장섰고, 그 뒤를 남비서와 의원이 따랐다.
영웅 옥션 사장들과 임원들은 병풍이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회의실.
이정수와 의원은 마주 보고 앉았고.
남비서 두 사람이 회의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가 회의실을 지키고 있으니, 꽤 위압적으로 보였다.
회의실 밖의 영웅 옥션 직원들은 이 모습을 보며 술렁였다.
― 도대체 저 실력자가 이곳까지 왜?
― 모습을 드러낸 것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오래 머물다니…… 간혹 와도 차 밖으로는 안 나왔었잖아.
― 이정수 팀장님 사고 친 거 아니야?
― 걱정된다…….
이정수 팀장은 숙련된 영업맨이다. 고객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로 어색한 침묵이 흐르게 두지 않았는데.
홀짝. 홀짝.
지금은 커피만 홀짝이며, 등에 땀방울만 맺혔다.
‘날씨 얘기라도 꺼내 볼까. 왜 보자고 했냐고 물어보는 건 결례일 것 같고.’
“…….”
의원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앞에 놓인 커피도 안 마시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만 흘렀고.
그렇게 한 5분은 지났다.
‘본분에 충실해야지. 뭐라도 하자…….’
이정수 팀장은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올 때 차 많이 안 막혔습니까? 강남은 낮에도 차들이 많아서…… 그래서 전 강북이 좋습니다. 우리 회사도 강북으로 이사하면 좋을 텐데. 아, 강북도 종로 같은 곳도 차가 많이 막히는군요. 제가 말한 강북은 강북구 위쪽으로…….”
“강태평 씨 말이에요.”
의원의 입이 열렸다.
그의 입에서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이름이 나오자, 이정수 팀장은 다시 또 당황했다.
“네?!”
“낙찰받은 작품 주인이 강태평 씨 맞죠? 네모의신 강태평.”
“아…… 네.”
“그분 좀 만나고 싶은데 주선해 주실 수 있나요?”
* * *
‘강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 주선해달라?’
의원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 작가님은 이제 다 오픈된 사람인데. 만나고 싶으면 사랑산성을 찾아가면 되잖아?’
의원은 뚫어져라 이정수 팀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왜 만나고 싶다는 거지? 혹시 작품에 문제라도?’
“저……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왜?”
의원의 짧은 반문에 이정수 팀장은 식겁했다.
“아, 저 그게. 이유를 알아야…… 상대방을 자리에 나오게 하려면 설득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후…… 힘들다.’
말을 마친 이정수 팀장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흠…….”
의원은 살짝 미소 지었다.
“강태평 씨와 친분이 있으신가 봐요?”
“아…… 제가 감히 그분과 친분이 있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강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그래요?”
“네.”
“왜 좋아할까요?”
“사람이 참 괜찮습니다. 담백하다고나 할까요?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 오래 우린 사골국물 같은 느낌?”
강태평 얘기를 시작하자, 이정수 팀장은 순식간에 푼수가 되었다.
“의리도 있는 것 같구요.”
“네, 그런 분이라 다행이군요.”
신나게 말을 쏟아내던 이정수는 방금 의원의 대답이 또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 분이라 다행이다?’
의원이 강태평에 대해 한마디 할 때마다, 뭔가 좀 의미심장한 느낌이 있었다.
“음…….”
의원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개인 사정이라 자세하게 설명드리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좋은 의미로 만나려 하는 거구요.”
“…….”
“직접 한번 찾아가 봤는데. 사랑산성? 맞죠?”
“네. 맞습니다.”
“아주 성지가 되었더군요.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으로 만들어진 산성 같던데요?”
“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요즘 사랑산성은 추종자들에 의한 성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거기다 사설 경호팀도 배치되어 있고.”
“아…… 그 정도입니까?”
“네. 그분에게 접근하는 거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더군요.”
의원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해서 보자고 하면 이상하겠죠.”
“그렇죠.”
“더군다나 저랑 강태평 씨는 낙찰자와 전 주인 사이 아닌가요? 영웅 옥션이 중개해서 만나는 게 모양새가 좋겠죠.”
설명을 다 듣고 보니, 이정수 팀장은 이해가 되었다.
의원이 강태평을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면, 자신이 개입하는 게 가장 적절해 보였다.
“개인 사정이라 말씀하시긴 어렵지만, 꼭 보셔야 한다는 거죠. 나쁜 일은 아니고요.”
“네.”
이정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강 작가님께 의향을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강 작가님이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만나게 해주셔야죠.”
의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고, 이정수 팀장은 당황했다.
“네? 아니, 상대방이 안 만나겠다는 걸 제가 어떻게…….”
“만나겠다는 말이 나오도록 잘 말씀하셔야겠죠.”
의원은 확고했다.
이정수 팀장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더 대꾸해봐야 의미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은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었다.
“이건 자그마한 선물입니다.”
“아, 안 됩니다. 이런 거 못 받습니다.”
이정수 팀장은 손사래를 쳤다.
“돈 아니니까. 받으셔도 돼요. 일 마무리 잘해달라고 드리는 것도 아니고요.”
“…….”
“강태평 씨 알게 해주신 거. 고마워서 드리는 선물이니까.”
이정수 팀장은 그래도 사양하려 했으나, 의원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연락 기다릴게요.”
“아, 근데 강 작가님께는 의원님 신분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낙찰자라고만 하기에는 좀…….”
의원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신분은 제가 만나서 얘기할게요. 낙찰자라고만 소개하기 부족하다면…… ‘속초 기적의 남자’라고 해주십시오.”
“네에?!”
“그럼 가볼게요.”
쾅!
문이 닫힌 후. 이정수는 중얼거렸다.
“뭔 소리야? 갑자기 웬 속초? 기적의 남자?”
휴우―
이정수 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일이나 하자. 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봉투를 보았다.
“이걸 어쩐다…… 진짜 받아도 되나.”
잠시 고민하다가, 봉투를 열어 보았다.
‘솔비치 리조트 평생 이용권.’
* * *
네모의신이 세상에 나온 지 7일째.
내 명성이 올라가면서 사랑산성은 정말 산성이 되었다. 인간 산성.
레스토랑 주변에 인파가 몰리는데, 특히 내가 사랑산성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출, 퇴근 시간은 난리다.
난 가급적 기다려준 팬분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사인도 해드리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고.
모든 사람을 다 해줄 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미움도 받게 된다.
― 우~ 내모의신! 우~
― 이씨! 온종일 기다렸는데. 얼굴도 안 보여주냐!
― 오빠~ 전 기다릴 수 있어요.
오후 1시.
사랑산성 주변도 난리지만, 안에서도 난리다.
― 수비드 안심 언제 나와요!
― 2번룸 샥스핀탕 빨리 나가야 해!
점심 영업 중 가장 바쁜 시간.
이젠 레스토랑에서 바쁜 게 일상이 되어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든다.
지금 받기 시작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도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어젯밤 올린 광고 영상 업로드는 하룻밤 새에 80만 뷰를 넘어섰다.
300만 뷰가 목표인데…….
이 정도 속도면 그 또한 일주일 내에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는 일마다 잘 된다.
그것도 기대를 훨씬 벗어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잘.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옆에서 변 이사가 조언해주는데. 쉽지 않다. 자꾸 몸이 뜨는 기분이 들어서.
그나마 주방에서 정신없이 요리 만들 때는 그런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띠링!
급한 음식들 내보내고 잠시 서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핸드폰 알림음이 들렸다.
“응?!”
[영웅 옥션 입금 : 1,368,000,000]
일, 십, 백, 천……억, 십억!
약 13억 7천만 원!
“나이스!”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와…… 들어왔구나!
진짜로 들어왔구나!
난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낙찰되었을 때보다 더 기뻤다.
실제 현금이 내 통장에 찍힌 것이다.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부들부들 떨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직원들은 이상한 듯 보다가.
변 이사가 먼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들어왔나 보군. 하하.”
드르륵.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정수 팀장’
덜컥.
난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바로 받았다.
[팀장님~ 하하]
[하하. 작가님 안녕하세요~ 낙찰금 잘 받으셨죠?]
[네~ 방금 입금된 거 확인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고맙죠. 하하. 잠깐 설명드리려고 전화를 드렸어요. 낙찰금 19억 원인데 실제 입금된 금액은 차이가 있죠? 위탁수수료 10%, 양도소득세 20% 제한 금액이거든요~ 앞서 설명드렸었는데…….]
[하하. 더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알고 있어요~]
[아, 예. 간혹 금액 차이 때문에 컴플레인 하시는 고객분들이 계셔서. 하하.]
[어련히 잘 알아서 하셨겠죠~ 하하.]
이정수 팀장을 신뢰한다.
자세히 계산은 안 했지만, 일부 제하는 금액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이만…….]
[아, 작가님. 잠시만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이정수 팀장이 잡았다.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지금은 점심 영업이 한창이라 바쁘고, 몸이 붕붕 떠오르고 있어서…….
[좀 긴 얘기인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급한 일 아니시면, 제가 점심 영업 끝나고 전화드려도 될까요? 지금 영업 중이라 정신이…….]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늦게 제가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작가님.]
[네에~]
뚝.
전화를 끊은 뒤에 소리쳤다.
“낙찰대금 들어왔습니다~!”
“우와~!”
내 환호에 전 직원이 큰 소리로 화답했다.
이번엔 최경리도 활짝 웃었다.
약 13억7천만 원.
제로백 컴퍼니에서 변 이사가 했던 성과급 잔치.
난 사장이 되면서 그걸 제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특별한 매출 성장이 없어서 기회만 보고 있었다.
낙찰대금이 들어왔으니, 이제 때가 된 것이다.
“곧 월급날이죠? 모두 기대하세요!”
“우왓~!”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에 사랑산성 주방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