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15화 (115/156)

이대로 간다 (2)

* * *

헉. 헉.

다행히 여직원이 오기 전에 문은 닫혔다.

“와~ 이거 은근히 무섭네요. 하하.”

오 대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마주친 여직원의 눈빛.

‘그냥 가면 어떡해~!’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쏟아지는 순식간에 집중된 시선들.

“아오, 다음부터 혼자 와야지. 사장님이랑 같이 못 다니겠어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면서 오 대리가 툴툴거렸다.

“오늘도 굳이 함께 오실 필요 없다니깐.”

“알어~ 그래도 최종 검수하는 날인데, 같이 와야지.”

본의 아니게 이들에게 폐 끼치는 게 미안해서, 난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이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딱히 하는 거 없어도.”

“…….”

변 이사에게 배웠다.

#변 이사의 직장생활 백서

1) 이 회사 네 거 아니다. 주인행세 하지 마라.

2) 일은 못 해도 최선을 다해라.

3) 약속 시간 못 지키더라도, 예의는 지켜라.

4) 땀 냄새 나도 좋으니, 영업맨은 정장을 입어라.

5) 회사에서 놀더라도, 출퇴근 시간은 지켜라.

흠…… 변 이사가 출퇴근 시간은 잘 못 지켰었는데.

언행일치가 안 되는 부분에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변 이사는 다음 가르침을 줬었다.

6) 사수가 모든 걸 잘하는 건 아니다. 올바른 길을 아는 것일 뿐. 따지지 말고 너나 잘하면 된다.

이래서 난 그에게서 뻔뻔함도 배울 수 있었다.

“히죽거리면서 무슨 생각 하세요?”

“뭐? 히죽?”

내가 날카롭게 반문하자, 김지안은 뜨끔해서는 재빨리 말했다.

“단어 선택이 좀 이상했나요?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요.”

“…….”

난 변 이사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안은 요즘 최경리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 사이에 거리 좀 두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띵동! 20층.

웰시페니 사무실에 도착했다.

드르륵.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서, 저스틴 윌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에브리원. 어서와요.”

“호호. 잘 지내셨어요? 저희 오는지 알고 계셨어요?”

김지안은 유창한 영어로 화답했고.

저스틴은 웃으며 말했다.

“리셉션에서 난리더군요. VIP 올라가니까, 절대로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하하.”

“하하.”

그의 말에 오 대리와 김지안은 빵 터져서 웃었고.

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여직원이 알렸나 보군.’

난 핸드폰 번역기를 켜서, 한 손에 붙잡고 말했다.

“저스틴. 이분은 처음 보죠? 저희 회사 직원 앤더슨 오입니다.”

“와우~ 어메이징 번역기! 하하.”

오 대리는 저스틴을 향해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오 대리의 발음에 저스틴은 단번에 알아봤다.

“미국 사람인가요? 한국분 같아 보이기도 하고.”

“Hm…… half and half? Haha.”(흠~ 반반입니다~ 하하.)

“Oh…… I got it. Nice to meet you.”(아, 알겠어요. 반가워요.)

이중국적자라는 걸 눈치챈 건지. 더 묻지 않고, 저스틴은 쾌활하게 웃었다.

외국인에게는 그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나 보다.

“네모의신님? 뉴스 잘 봤습니다. 이번에 큰일 내셨던데요?”

회의실을 향해 걸어가던 중. 저스틴이 가볍게 물었다.

“아 보셨어요? 하하.”

“당연히 봤죠. 저희 거래처인데요.”

거래처라…… 훗. 글로벌기업의 거래처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그때 서둘러서 계약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하!”

흠…… 그때 계약 안 하고.

만약 경매 끝나고 계약을 했더라면…….

속이 살짝 쓰려지면서, 제이엠인터내셔날 생각이 떠오르려 했다.

‘아니야. 그때와는 달라. 이번엔 단건 계약이야.’

난 생각을 지워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 해서 사람 약 올리게 하네.

나도 한마디 했다.

약간의 기 싸움이랄까?

“걱정 마시죠. 다음엔 훨씬 좋은 조건 아니면 안 할 거니까요?”

“왓? 푸하하.”

저스틴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그런 거죠. 원래 비즈니스란 몸값 따라서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나도 큰 소리로 웃었다.

덜컹.

저스틴은 회의실 문을 열고는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들어가시죠.”

* * *

오 대리는 빔프로젝터와 노트북 연결을 시킨 후.

편집된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김지안은 발표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Okay.”

띡.

‘네모의신 with 웰시페니 네일 솔루션.’

타이틀 카드로 위 문구가 떴고, 정확히 4초간 보인 후 사라졌다.

“영상 보시면서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타이틀 카드로 브랜드 네임을 넣었고요. 너튜브 정책에 따라서 5초 이내로 보이게 했습니다.”

“…….”

“지금은 나오지 않지만, 실제 너튜브에 영상 게재될 때는 왼쪽 하단에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문구가 뜰 겁니다.”

“오케이. 알고 있습니다.”

저스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김지안의 설명은 이어갔다.

“이후로 엔드 카드가 나오기 전까지 기획된 컨텐츠 영상이 이어질 거고요. 중간에 동적 광고 형태로 네모의신님이 매니큐어를 바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호~ 기대한 것보다 적극적이신데요?”

김지안은 저스틴은 향해 물었다.

“광고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건너뛸까요? 매니큐어 나오는 영상 부분이 바로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저스틴은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쭉 보죠. 어차피 10분밖에 안 되는데요. 그리고 궁금합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일생’의 제작과정부터 영상은 이어졌고.

저스틴은 영상이 나오는 내내 진지한 태도로 집중해서 봤다.

특히, 모텔 방구석에서 여명을 비집고 작품이 탄생한 순간에는…….

“오 마이 갓! 지저스!”

당시 모텔방에서는 사진만 찍었었기에, 사진에 일부 영상을 따서 편집한 거였는데도.

반응이 아주 격정적이었다.

광고주의 검토라고 하기에는 너무 감상하는 분위기.

김지안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곧 광고 영상 나옵니다.”

이번엔 영상 왼쪽 상단에 문구가 표시되었다.

‘광고입니다. 광고 건너뛰기 6:34’

어색한 이정수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품만큼이나 손톱이 멋지시네요.]

[그렇죠? 이번에 웰시페니에서 한국에 런칭한 비건 네일 매니큐어인데요…….]

약간은 생뚱맞다 싶을 정도로 나의 광고 멘트가 시작되는데.

상당히 민망했다.

[냄새가 역해서 못 바르시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 별이 다섯 개!]

광고주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민망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악몽 같은 30초가 지나갔고.

살짝 곁눈질로 보니, 저스틴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영상 막바지에 이르렀고.

김지안이 말했다.

“마지막 엔드카드 입니다.”

‘웰시페니 비건 매니큐어 http://wealthy…….’

‘적립 코드 square―god을 적으시면 포인트 적립.’

픽!

화면이 검게 변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김지안은 허리 숙여 인사했고, 우리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 그리고 적립 코드는 그냥 예시로 넣은 겁니다.”

저스틴은 웃으며 대답했다.

“Square―god. 네모의신 부분 말씀이시죠?”

“호호. 네.”

저스틴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

그리고는 미소 지은 표정 그대로 가만있었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아서, 우리는 잠자코 기다렸다.

“…….”

좀 시간이 길어지자, 김지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타이틀 카드와 엔드 카드의 경우는 원하시면 수정 가능합니다. 계약 사항도 그렇게 되어 있…….”

“이대로 가시죠.”

“……!”

저스틴은 김지안의 말을 끊고, 짧게 말했다.

“적립 코드명도 그대로 가고요. 다 마음에 듭니다.”

저스틴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주셔서요. 잠시 고민했던 게, 너무 노골적이나 않나 싶어서 그런 건데.”

“…….”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추세이기도 하고.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저스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늘은 오후 일정이 바빠서요. 식사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다음에 제가 좋은 곳으로 전 직원 모시겠습니다.”

지금이 전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영어 울렁증 있는 변 이사와 최경리는 저스틴과의 식사 자리에 안 나올 것이다.

“하하. 네 그러시죠.”

“그럼 영상 업로드는 언제로?”

“그건 웰시페니 측 요청 따르겠습니다. 저희는 언제든 상관없으니, 원하시는 날짜 알려주세요.”

“아~ 그럼, 오늘 올리시죠.”

이 아저씨 볼수록 화끈하네.

모든 게 속전속결이구나. 결정하는 것도 시원시원하고.

“괜찮으실까요?”

저스틴의 물음에 난 김지안을 바라봤고.

그녀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제없습니다.”

“오케이~”

저스틴은 회의실 문을 열며 말했다.

“업로드 하신 후에 저에게 메시지 하나만 보내주세요~ 플리즈~”

“오케이~ Sir.”

문 앞에 선 저스틴과 악수하며 말했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의뢰 주세요.”

“물론이죠. 기회만 주신다면.”

저스틴은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 * *

영웅 옥션. 현관.

길 다란 검은색 세단 두 대가 섰고.

차 앞에 영웅 옥션의 사장 이하 임원진이 도열 해 있다.

덜컹.

조수석에서 남자 비서가 나와 뒷문을 열어 주었고.

금빛 사자 장식이 있는 검은색 지팡이가 문밖으로 나왔다.

“의원님 제가…….”

“됐다.”

“네.”

남자 비서는 부축하려던 손을 놓았고.

의원이라고 불린 남자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영웅 옥션 사장과 임원진이 일제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뭘 나오셨습니까.”

의원은 사장의 인사를 무미건조하게 받았다.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의원은 주변을 살피다가 다짜고짜 물었다.

“이정수 팀장님 계십니까?”

“…….”

“안 계시나 보네?”

그때 본부장이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미술경매사업부 본부장입니다. 팀장급들은 안 나왔습니다. 사람 많은 거 싫어한다고 하셔서…….”

“난 이정수 팀장님 만나러 왔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의원은 본인이 할 말만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본부장은 전화를 했고. 그때 사장이 말했다.

“바로 앞인데, 뭔 전화를 해. 빨리 뛰어가!!”

“아, 알겠습니다!”

본부장은 사무실을 향해 뛰어갔다.

잠시 후.

헉. 헉.

이정수 팀장이 얼굴이 새하얘진 채로 달려왔다.

‘아니, 김 의원님이 왜 날 찾아? 내가 뭐 실수했나?’

이정수 팀장은 식겁한 표정으로 의원 앞으로 다가왔다.

“차, 찾으셨습니까? 의원님.”

영웅 옥션의 대부분의 직원이 의원이라고 부르는 남자를 잘 아는 듯했다.

날카로운 칼 같은 눈매.

포마드로 빗어 넘긴 새하얀 머리.

강인한 턱선.

터벅. 터벅.

의원은 금빛 사자 장식의 지팡이로 묵직하게 땅을 누르며 이정식 팀장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머지 분들은 일 보셔도 됩니다.”

의원은 시선을 이정식 팀장에게 고정한 채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묵직했다.

영웅 옥션의 사장과 임원들은 어찌해야 할지 우왕좌왕하자,

“이정수 팀장님.”

묵직한 부름.

이정수 팀장은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았다.

“아, 네, 네. 의원님.”

“이번에 강태평 씨 작품을 위탁받으셨었더라고요?”

“네? 아, 네. 네모의신님 작품 말씀이십까? 네, 맞습니다. 이번에 낙찰받으신 거 추, 축하드립니다.”

이정수 팀장은 자꾸 말을 더듬거렸다.

저벅.

의원은 이정수 팀장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고.

한쪽 입술을 살짝 올리며 이정수 팀장의 양어깨를 잡았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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