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영향력 (2)
* * *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를 탄 후 십여 분 정도를 간다.
버스에서 내린 후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내가 사는 집이 나오는데.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들린다.
‘김밥헤븐.’
저녁 식사로 이곳에서 김밥 두 줄을 싸간다.
요즘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밖에서 먹는 저녁은 대부분 기름지거나 고가의 음식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녁 약속이 없을 때는 김밥을 먹는다.
돈이 없어서 아니다.
속도 편하고, 먹기도 간편하고.
“안녕하세요~”
단골집이다 보니, 아주머니가 알아본다.
“어~ 어서 와. 요즘 잘 안 오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3번은 왔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도 잘 못 오는 것 같다.
“그러게요~ 하하.”
아주머니는 날 물끄러미 보다가.
“오늘도 참치 앤 김치야?”
“넵. 그렇게 두 줄 주세요.”
참치 김밥과 김치 김밥.
내 최애 메뉴다.
저녁 시간인데도 식당 안이 한적하다.
아주머니 옆에서 핸드폰을 보며 기다렸고.
돌. 돌.
아주머니는 김밥을 말다가.
“총각 요즘 얼굴 좋아진 거 같아?”
“그래요?”
아주머니의 시선은 여전히 김밥에 머물러 있다.
“애인 생겼나?”
“네에?”
난 황당하여 웃으며 대답했다.
“애인은요~ 무슨. 하하. 회사 다니느라 정신없는데요.”
“무슨 일 해?”
“…….”
레스토랑, 너튜브, 종이접기 공예…….
하는 일은 많은데, 분야가 다 다르다.
아주머니의 가벼운 질문에 난 순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백수는 아닌 거 같은데…… 안 좋은 일 해?”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내가 당황해하니, 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에이~ 합법적인 일 하고 있어요.”
“사채업자도 말은 그렇게 하더라고. 호호.”
난 괜히 켕겨서, 급히 말했다.
“종합상사에서 일해요! 종합상사.”
사람의 경험은 어쩔 수 없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진일상사를 생각했다.
돈 되는 건 다 하는 종합상사.
“아~ 그래?”
아주머니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 여기.”
검은 봉지에 김밥을 싸서 내게 건네었다.
“회사 다니는 건 알고 있었는데, TV에 나오길래 뭐 하나 싶었지~”
“네? 아…… TV동방 보셨어요?”
이 말할 때의 아주머니가 날 보는 눈빛은 예전과 좀 달랐다.
신기함? 혹은 거리감?
딱히 정확하게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렵지만, 분명 달랐다.
그 와중에 홀에서 오므라이스 먹고 있는 남성도 힐끔 날 쳐다봤다.
“그 TV 나온 사람 총각 맞지?”
신기하다는 듯 다시 날 뚫어지게 보며 물어본다.
“하하. 네. 맞아요.”
“어이쿠야. 부자 되겄네.”
“네? 아. 하하.”
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낙찰 금액까지 인터뷰에 나왔었으니까.
“저, 그럼 가볼게요~ 잘 먹겠습니다.”
“잠깐~”
아주머니는 종이를 한 장 내미셨다.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약간 수줍어하며 종이를 건네셨다.
“사인 한 장만 해주고 가.”
민망해하는 표정.
“어여. 빨리해줘~”
자주 보는 사람에게 이런 요청 받는 나도 민망하다.
재빨리 펜을 들어서, 사인했다.
‘To. 김밥헤븐.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네모의신.’
* * *
경매 끝난 지 이틀이 지났다.
낙찰대금 들어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이정수 팀장 말로는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한 달 내에 받는다고 했었다.
돈이 들어오면 어떤 기분일까?
그 거액이 들어오면, 이 점심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튜디오 사업을 떠나보낸 것처럼, 점심 영업도 보내야 하나?
가성비를 따지자면 그렇게 하는 게 맞긴 한데…….
사랑산성의 점심 영업은 손님들도 많고, 디너 영업까지 연결되어 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매 결과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지.”
어쨌든 변화가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안정적일 때가 가장 위험한 거라고 변 이사 사업할 때 가르쳐줬었다.
“엇. 사장님 오셨어요?”
출근하여 4번룸으로 들어서자, 김지안이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겼다.
“어, 김 대리. 다들 왔네?”
지금 시각 8시 40분.
직원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어두워? 조명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변 이사가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빙구야 뭐야? 선글라스 끼고 어둡다고?”
“하하하.”
직원들은 다 함께 웃었고.
난 재빨리 선글라스를 벗었다.
어제 평소처럼 출근했다가, 지하철에서 알아보고 난리가 났었다.
얼굴 다 드러내고 인터뷰를 한 것도 있겠지만. 네모의신 영향력이 정말…….
그래서 어제 퇴근하던 길에 급하게 선글라스 하나 샀다.
이제 평소처럼 출퇴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하. 이런. 선글라스를 써본 적이 없으니까. 하하. 영 어색하네.”
나 또한 민망함에 웃었다.
“차라리 마스크를 쓰는 건 어때요?”
오 대리 말에 난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난 답답한 거 싫어서. 숨 막혀.”
“하긴…….”
최경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를 사면 되죠. 돈도 많으면서. 그 돈 뒀다가 어디 쓰려고요?”
“내가 면허증이 없어.”
“면허증 처음부터 갖고 태어나는 사람 있어요? 따야죠.”
하여간 똑같은 말을 해도…….
변 이사가 말했다.
“그래~ 간만에 최 과장이 옳은 말했네. 사장님 면허증 좀 따지 그래?”
면허증…… 왠지 무서운데.
“사장님 손재주면 금방 딸 거 같은데.”
“하아~ 글쎄요.”
이제는 똥손 시절과 다를 거라는 걸 확신하지만, 운전은 아직 좀 무섭다.
버스 타고 가다가 절벽으로 번지하기도 했었고, 똥손일 때 차 사고를 많이 겪어 봐서…….
“이제 괜찮아~”
변 이사는 마치 뭔가 아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제 내 표정만 보고도 마음을 읽는 것 같다.
“면허증도 따고, 좋은 차도 하나 뽑아~ 이제 돈도 좀 써보면서 살자. 벌지만 말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 * *
오후 4시.
내 집무실인 3번룸에서 일 보던 중, 직원들 뭐하나 싶어서 4번룸으로 가봤다.
덜컹.
“응?”
4번룸에는 변 이사 혼자 있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영상 최종 편집한다고 나가던데?”
“아~”
웰시페니 광고 영상 말하는 거군.
촬영은 끝났고, 배우는 이제 더 할 게 없다.
스태프가 뒷마무리하느라 바쁠 것이다.
오 대리와 김지안은 그렇다 치고.
“최경리는요?”
“몰라~ 외근 간다고 하고 그냥 나갔어. 뭐 볼일이 있나 보지.”
최경리라기에 그러려니 싶었다.
최경리는 절대로 농땡이 부릴 사람이 아니니까. 뭔가 일이 있겠지.
“아이고~ 그럼 변 이사님께 보고나 받아봐야겠다~”
난 웃으며 변 이사 앞에 앉았고.
“에이~ 이런. 나도 외근 나갔어야 했는데. 잘못 걸렸네.”
변 이사 또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변 이사님이 맡은 과업 어떻게 되고 있어요?”
“뭐야? 진담이었어?!”
보고 받겠다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나 보다.
변 이사가 맡은 개인 전문 과업은 ‘사무실 준비 및 부동산 투자’였다.
“가볍게 얘기해 보세요~ 내심 궁금하긴 했는데, 챙길 여력이 없었어요~ 변 이사님이니까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지 싶기도 했고요.”
“허~ 참. 이런 식으로 웃으면서 부담감 주네. 누구한테 배운 거야?!”
“하하!”
내 사수 변 이사에게 배웠지, 누구한테 배웠겠는가.
“수녀님한테 얘기 못 들었어? 조만간 거래하려고 매수자들과 저울질 중이거든.”
“매수자들이요?”
한 사람이 아니라고?
“어. 원하는 곳들이 많아서.”
“아…….”
“땅 파는 건 문제도 아닌데, 좋은 가격에 팔려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새로운 보육원 부지는 의정부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
“현재 보육원과 가깝네요?”
“응. 전철역 가까운 쪽으로. 우리 사무실도 들어가야 하니까.”
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중심지로 나올 일이 많은데…… 의정부는 좀 불편하지 않을까요?”
“서울 시내는 너무 비싸고. 서울 근교 중에는 여러 곳 알아보는 중이긴 한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아.”
난 곰곰이 생각한 후 말했다.
“후보지가 문제네요. 변 이사님, 가격도 중요하지만, 지역은 한번 다시 잘 보시죠. 너무 멀면 지쳐요. 사무실은 주요 업무지구와 너무 멀지 않아야 해요.”
내가 지금 겪고 있다.
매일 수유역에서 내곡동까지 죽을 맛이다.
의정부에서 내곡동?
워우…….
“그래~ 후보지 더 추가해서 조만간 보고할게.”
“네, 저도 함께 알아볼게요.”
변 이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간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미팅이 있어서.”
“미팅? 갑자기 어디?”
“네모튜브요.”
“오늘 녹화 날 아니잖아?”
난 눈을 찡긋하고 말했다.
“네모씨 좀 만나고…… 줄 것도 있어서요.”
“아하~”
변 이사는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갈까?”
“하하. 좋죠.”
* * *
네모튜브 사무실.
띵동!
[어?]
정카는 인터폰으로 강태평 일행을 확인 후 문을 열었다.
“엇? 웬일이세요?”
“하하. 위로해 드리려고 왔죠. 네모씨 있어요?”
“아~ 하하. 네.”
정카는 실내를 향해 소리쳤다.
“네모씨~ 태평 씨 왔어!”
“…….”
네모씨는 소파에서 일어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네모씨와 강태평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얼마 전 경매장에서 작품 주인과 응찰자로 만났던 사이.
강태평은 네모씨가 경매장에 나타나서 응찰할 줄은 전혀 생각 못 했었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네모씨는 강태평의 물음에 쓴 웃음을 지었다.
응찰할 거라는 얘기를 왜 안 했었는지 묻는 말.
“그런 말을 굳이 왜 해요. 서로 민망하게.”
“만약 낙찰됐으면요?”
“‘만약’이 어딨어요. 어차피 내 손 안에 안 들어왔는데.”
강태평은 궁금했었다. 네모씨의 진짜 의도를.
“정말 작품 갖고 싶어서 응찰하신 거였어요? 혹시 경매가 올려 주시려고.”
“하하.”
네모씨는 이 말에 웃었다.
“10억 넘어가는 작품을 어떻게 구매할 마음도 없이 입찰을 해요. 낙찰받고 결제 안 하면 위약금 물어요~”
“하하. 그렇죠?”
강태평 또한 본인이 묻고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고 계셔서. 혹시 또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주신 건 아닐까 해서. 하하. 진심이셨다니, 더 안타깝네요.”
휴우―
네모씨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욕심이 났어요. 네모의신 첫 작품. 소장하고 싶었는데.”
강태평은 그런 네모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른손에 든 네모 박스를 건네었다.
“얼마 전에 광고 계약 건도 그렇고…… 제가 감사 표시한다고 했었죠? 여기요.”
“…….”
딱 크기가 케이크 박스 만했다.
정카가 보면서 물었다.
“뭐에요? 케이크?”
잠자코 지켜보던 네모삼촌도 말했다.
“혹시 돈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강태평은 웃으며 말했다.
“돈은 사과 박스에 넣어야 제맛이죠. 영화에서 그렇게 하던데. 하하.”
그의 가벼운 농담에 다 함께 웃었다.
“고마워요. 무엇이든.”
네모씨는 고개를 숙이며 받았다.
“열어 보세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서걱. 서걱.
네모씨는 상자를 열었고.
“아니…….”
내용물 확인 후, 박스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정카도 놀라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거 저 아니에요?!”
“하핫. 맞네~ 나도 있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정카.
책상 위에 앉아 집토끼를 접고 있는 네모삼촌.
큐시트를 들고 있는 네모씨.
노란색 운용지로 만든 네모튜브의 세 사람이 있었다.
“헤헤. 어제 급하게 만들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밤새 진심을 담아서 만든 거예요~”
선물을 든 네모씨의 손이 계속 떨렸고.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말하는데,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잘 간직할게요.”
이를 지켜보며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네모삼촌만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평 씨.”
“네.”
“이거 네모씨한테만 주는 선물 아니지?”
“그럼요. 세 분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네모삼촌은 네모씨를 바라봤다.
“이거 못 해도 10억은 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