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물결 (1)
* * *
내 작품 ‘할아버지의 일생’은 커다란 호숫가에 떠 있는 외딴섬 같았다.
홀 정중앙.
입구에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
어디서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일까.
더 외롭게 느껴졌다.
외딴섬 같았다.
“뭐야……. 왜 아무도 안 봐?”
최경리의 볼멘소리가 들렸고, 난 차마 내 작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왠지 민망하고, 미안했다.
대충 봐도 위치는 좋아 보이는데, 사람들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좋은 자리 아닌가?
홀 중앙에 네모난 기둥이 하나 있고.
기둥의 맞은편과 반대편에 하나씩.
이렇게 2개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의 일생’ 반대편에 있는 작품에는 사람이 몰려 있다.
왜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까.
깜냥도 안 되는 신인 가수를 대국민 콘서트 마지막 순번으로 배정한 기분이랄까.
내가 ‘할아버지의 일생’을 과대평가한 걸까.
민망하고 미안했다.
“사장님.”
그때 변 이사가 내 어깨를 감싸고 밀었다.
“어서 가보자. 이제 시작인걸.”
난 변 이사에게 등 떠밀리듯 내 작품 근처로 갔고.
“왜들 멍하니 서 있어? 어서 따라와?”
변 이사는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나 대신에 직원들을 챙겼다.
두근. 두근.
내 작품을 보기 위해, 기둥 반대편에 있는 인기 작품을 먼저 거쳐야 했다.
# 정물.
작가 김환수
1955. Oil on canvas
39cm*39cm
추정가 13억~18억.
홀 안에는 약 72점의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 경매도록(경매될 예정인 경매 물품에 관한 설명과 정보가 실린 도록)을 통해 봤었다.
이번 경매의 최고 작품이 ‘할아버지의 일생’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내 작품은 말 그대로 들러리.
촛불 아래 가장 어두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아니, 왜 배치를 이따구로…….”
난 내 작품에 기재된 요약 정보를 보았다.
# 할아버지의 일생
작가 네모의 신
2021. Korean paper.
60cm*30cm
추정가 2억~4억
너무 비교되잖아.
비빌 곳에 비벼야지~!
휴우~.
젠장, 좋은 자리 배치할 거라더니. 정말 무지하게 좋은 자리 배정해줬구나.
‘할아버지의 일생’은 마치 김환수 작가의 작품을 빛내기 위한 장식품 같아 보였다.
“오 대리.”
“네.”
“빨리 이정수 팀장님 불러 봐.”
“네? 저기 보이긴 하는데, 대화 중이신 거 같은데…….”
“빨리!”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말했고, 오 대리는 약간 당황해하더니 이정수 팀장을 부르러 갔다.
잠시 후, 이정수 팀장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작가님~, 오셨어요. 하하. 출품 축하드립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네?”
이정수 팀장은 눈을 끔뻑끔뻑 떴다.
“제 작품 좋은 자리 둘 거라고. 눈에 띄게 해주신다더니……. 이번 전시회 최고 작품의 들러리로 세운 건가요?”
하필 김환수 작가의 작품은 그림이고, 내 작품은 공예.
정말 메인을 빛내기 위한 실내 장식품처럼 보였다.
나만 그렇게 보이나?
“…….”
사랑산성 직원들 또한 무언의 동의를 하고 있다.
이정수 팀장은 물 위의 외딴섬 같은 내 작품 주변을 보고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아~.”
웃어? 남은 심각해 죽겠는데.
순간 욕 나올 뻔했다.
“작가님~, 신경 쓰지 마세요. 전시회가 목적이 아니잖아요~.”
“…….”
“우리 목적은 경매라고요. 경매. 지금 전시회 분위기만 보지 마세요. 이걸로만 판단하기엔 허수가 크니까요.”
난 그의 말을 잠자코 들어보았다.
“어차피 돈 지불하고 사실 분들은 정해져 있고요. 그분들은 다 꼼꼼히 보고 계세요. 오늘만 해도 큰 손 두 분이 작가님 작품에 대해 저한테 물어보셨는걸요?”
“그래요?”
“네~ 가치를 알아보는 건 귀신 같은 분들이니까요. 지금 분위기만 보고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좀 납득은 되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은 무시 못 하겠다. 내 작품이 유독 외로워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근데 꼭 저 김환수 작가 작품 뒤에 위치시켜야 했어요?”
“아~, 그게.”
이정수 팀장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 First zone에는 1팀에서 한 작품. 2팀에서 한 작품. 이렇게 두 작품을 위치시키거든요.”
“…….”
“그러니까 각 팀에서 생각하는 가장 중요 작품을 위치시키는 존인데. 1팀에서는 김환수 작가님 작품을 선정했고요. 저희 2팀에서는 네모의 신님 작가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결국, 본인 딴에는 최대한 신경 써서 배치했다는 뜻인데.
“하아……. 정말 고맙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죄송한데, 제 작품 위치를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네?”
“오늘은 전시가 시작됐으니까 어렵지만, 내일이라도…….”
이정수 팀장의 뜻은 고맙지만. 가능하다면 작품 자리를 바꾸고 싶었다.
작품 완성 시기, 출품가, 작가 네임……. 모든 부분에서 너무 비교가 됐다.
“아……. 그건 좀 곤란한데.”
이정수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물러나지 않았다.
“부탁드립니다.”
“흠…….”
이정수 팀장은 고민하다가 팀원을 불렀고.
“이봐! 김 대리!”
김 대리가 다가오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머! 네모의 신이야!”
난 이 소리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고.
사랑산성 직원들도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작품 앞에 있던 한 관람객이, ‘할아버지의 일생’ 작품 정보를 보고 소리친 거였다.
“어머! 어머! 진짜 네모의 신이 작가라고?”
웅성. 웅성
― 네모의 신? 네모의 신이 누군데?
― 나 알아. 네모튜브의 유명한 출연자잖아.
― 너튜브? 에이~, 뭐야. 난 뭔가 했네.
― 신의 학 창조자. 네모의 신 작품이 여기 있다고?
갑자기 홀 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반응은 거의 반반이었다.
네모의 신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 없다는 관람객도 있었고.
방금 비명을 지른 것처럼 난리를 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대애박! 야! 빨리 올려!”
한 관람객이 사진 찍으려 했고, 보안요원이 황급히 제재했다.
“홀 안에서 촬영은 금지입니다.”
“아, 맞다.”
여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옆 사람에게 다시 지령을 내렸다.
“야, 어서 트위치에 글 올려. 빨리! 난 너튜브랑 얼굴북에 할 테니까. 우리가 일빠야.”
“오케이.”
마치 특종을 발견한 기자들 같았다.
두 여자의 손가락은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움직였고.
뭐 하나 할 때마다, 두 여자는 손뼉을 치고 난리였다.
보안요원이 정숙해달라고 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마니아층이 있으시군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이정수가 말했고.
옆에 있던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네모의 신님의 마니아들은 아주 알아주죠. 조심하세요. 이제 겨우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요.”
“겨우 시작이요?”
“하하.”
변 이사는 대답 대신 웃었고.
난 조금씩 외딴섬에서 유원지로 바뀌어 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일생’ 앞자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 여자가 아주 호들갑을 떠니, 홀 안에 있는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내 작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실내 장식품이 아니었구나.
― 괜찮네~. 이걸 종이 한 장으로 접어서 만든 거라고?
― 이건 작품이 아니라 과학 아니야?
― 대단하다, 진짜. 창작력도 대단하지만 기술력이…….
― 우리 아들이 네모의 신 좋아하는데.
네모의 신에게 마니아층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중들이 알아주는 게 신기했다.
“미쳤어~. 미쳤어~.”
“아~, 사진 찍고 싶어 죽겠엉.”
너무 난리 치는 두 여성분.
보는 내가 다 민망했지만.
고마웠다.
“강 작가님?”
이정수 팀장이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어떻게…… 오늘 밤에 작품 자리 옮길까요?”
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안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정수 팀장 또한 활짝 웃었다.
* * *
변 이사의 예상이 맞았다.
두 여자의 호들갑은 시작일 뿐이었다.
네모의 신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간혹 이렇게 이질감을 느낀다.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어서…….
우르르.
COEX B홀 입구로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는데.
분명 한 무리의 일관된 웅성임이었다.
― 제보자 어딨어?!
― 네모의 신님 작품 어딨냐고!
그때 ‘할아버지의 일생’ 앞에서 핸드폰 붙잡고 손을 놀리던 두 여성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고.
20~30여 명의 무리는 순식간에 내 작품 앞으로 모여들었다.
대부분 10~20대였으며, 간간이 장년층도 보였다.
성비는 비슷한데, 여자가 약간 더 많아 보였다.
“뭐, 뭐야?!”
난 이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관되어 보이고, 네모의 신을 좋아하는 사람들 같긴 한데.
일행 중 변 이사와 설수민만 제외하고 다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등장했구만.”
“그러게요.”
변 이사의 말에 설수민이 웃으며 받았다.
“엇……. 설마. 설 사장님도?”
“훗.”
변 이사가 뭔가 아는 듯 보여서, 난 그의 어깨를 밀치며 물었다.
“뭔데요?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요.”
“드디어 ’네모천국’이 등장했군.”
“뭐요? ‘네모천국’이요?”
변 이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모의 신 팬클럽 ‘네모천국’.”
# 네모천국: 네모의 신 팬클럽
네모의 신이 만든 종이 세상 속에 살아가고 싶다는 뜻임.
간혹 열혈 추종자가 ‘네모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기도 함.
김밥헤븐과는 상관관계 없음.
“내가 팬클럽이 있었어요?”
“몰랐어? 하긴, 하도 음지에서 활동하니까.”
“왜 음지에서 활동해요? 팬클럽이 부적절한 일을 하나요?”
“몰라. 그냥 성향인 거 같던데. 설 사장님 왜 그러는지 알아요?”
변 이사가 설수민을 지목하길래,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팬클럽 성향이 네모의 신 따라가는 게 아닐까요? 다른 연예인들 팬클럽들도 보면 그렇던데.”
“…….”
“네모의 신님도 자신을 안 드러냈잖아요. 음지에서 활동했다는 표현은 좀 안 어울리긴 하지만.”
설수민이 뭔가 잘 아는 듯 보였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네모천국’도 밖으로 나오는군요. 네모의 신님이 나오시니까.”
― 우오오~!
― 흑……. 네모의 신님 작품을 실물로 접하다니.
급기야 눈물을 흘리는 소녀도 일부 보였고.
― 아~! 돈 벌고 싶다. 젠장! 내게 3년만 더 있었어도! 어떻게든 벌어서 내가 살 텐데. 흑…….
너무 격정적이었다.
왠지 눈 마주치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 네모의 신님을 직접 영접하는 날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꿀꺽.
내 모습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는데.
작전 수정해야 하나.
갑자기 엄두가 안 나네. 기세가 너무 무섭잖아? 만나면 왠지 머리 뜯길 것 같은데.
“사장님.”
“응?”
오 대리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저~기요.”
오 대리가 ‘네모천국’ 무리 중, 한 여자를 가리켰다.
“저번에 호프집에서 사인해줬던 분 아니에요?”
흠?! 맞는 것 같다.
그때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 대리가 가리키는 손끝을 본 것이다.
“어머. 어머.”
젠장.
난 재빨리 뒤로 돌았고.
곧바로 COEX B홀 출구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오 대리! 나 먼저 간다.”
난 뒤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