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01화 (101/156)

또 다른 기회 (2)

* * *

미팅을 마친 후.

김지안과 오 대리는 남았다.

“두 사람 야근하는 거야?”

“사장님 뭐에요? 지금 일 시켜놓고서 놀리시는 거죠?”

김지안이 코 먹은 목소리로 말했고.

난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너무 늦게까지 하진 말고, 오 대리, 인수인계 확실히 해줘.”

오 대리는 김지안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이 지금 놀리시는 거 맞는 거 같은데.”

난 씩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야근 수당 신청하는 거 잊지 말고~. 비싸도 괜찮으니까 저녁 맛있는 거 먹고, 영수증 첨부해. 야식 먹어도 되고.”

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스터디 룸을 먼저 나왔다.

사장이 되고 난 후 느낀 점 중에 하나.

진일상사에서는 왜 그렇게 경비를 아끼고자 안달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직원이란 본인의 젊음과 시간을 들여서 회사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회사 매출에 비하면, 직원들 저녁 식사나 야식 정도 비용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내 회사를 위해서 늦게까지 일해주는 건 참 고마운 거 아닌가?

겨우 밥값 정도 내면서 생색낼 수 있는 것 또한 사장의 손쉬운 특권 아닌가?

직원일 때는 내가 사장이 아니라서,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장이 되고 나니, 더 이해를 못 하겠다. 왜 그렇게 직원에게 돈 쓰는 걸 아끼려 하는지.

직원에게 월급을 천만 원 단위로 주는 것도 아닌데.

다음 날 오후 3시.

점심 영업을 마치고 웰시페니 미팅에 가기 위해, 김지안과 함께 사랑산성을 나섰다.

영 입맛이 쓰다.

김지안의 얼굴을 보는 게 불편했다.

“사장님, 아직도 삐지셨어요?”

“야, 삐지긴 뭘 삐져.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어이가.”

“…….”

“무슨 저녁 식사 비용이 70만 원이 나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아침에 오 대리가 들이민 영수증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저녁 식사 50만 원, 야식 20만 원.

더군다나 야식 비용에는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장님께서 가격 신경 쓰지 말고 먹으라고 하셔서.”

“그래도 그렇지!”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던 건 사실이기 때문에.

“오 대리님이 잠실 타워 코스 요리 먹자는 거 일부러 좀 싼 데 간 거였는데.”

아오, 뒷골 땡겨.

“야근 식대로 코스 요리 먹는 직원이 어딨어! 잘 먹어봐야 짜장면에 탕수육이지!”

“우리는 30만 원 넘는 음식 파는데, 저녁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요? 회사 비용으로 먹는 건데도요?”

따박따박 말대꾸 잘하네.

김지안도 말 좀 하는 스타일이구나.

“됐다. 말을 말자…….”

내가 이상한 건가?

이 정도면 사장으로서 황당할 만한 거 아니야?

스스로 다시 묻고 생각해봐도 내가 심한 건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지난 일이니, 잊기로 하고.

이 일을 교훈 삼아, 다음부터는 가격 제한을 걸던지 아니면 나도 같이 야근을 하든지 해야겠다.

“사장님, 다 온 거 같아요.”

웰시페니는 양재동에 있어서, 도착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난 김지안을 보며 물었다.

“준비 잘했지?”

“네.”

김지안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 * *

고층의 종합업무빌딩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가, 리셉션 앞으로 갔다.

층별 안내를 보니, 웰시페니는 20층에 위치해 있었다.

김지안은 리셉션에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웰시페니 미팅 있어서 왔습니다.”

“아, 네, 잠시만요.”

리셉션 직원은 터치패드를 살펴보고는.

“오후 3시 30분, 네모의 신. 미팅 예약되어 있으시네요. 네모의 신…….”

리셉션 여 직원은 말을 뱉고 나서는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어머! 네모의 신?! 종이접기? 네모튜브?”

그녀는 김지안과 나를 번갈아 보았고,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우리도 덩달아 놀랐다.

접신한 사람처럼, 갑작스러운 호들갑이어서.

김지안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어머~, 미쳤어! 네모의 신!”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쳐다보려 해서, 난 황급히 그녀를 진정시켰다.

“쉿―! 조용히 좀 해주세요. 익명으로 활동 중인 거 아시잖아요. 네모튜브 구독자이신 거 같은데.”

“맞아요! 네모의 신님 완전 팬이에요!”

광신도의 눈빛이었다.

그녀의 눈이 내 얼굴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리셉션 여 직원답게 단아한 미인인데.

그런 그녀의 폭발적인 반응이 참…… 신기했다.

“사인해 주세요!”

“아……. 제가 지금은 중요한 미팅 때문에 좀 그렇고요.”

“…….”

“미팅 끝나고 와서 나갈 때 해드릴게요. 그러면 되죠?”

“힝~, 그땐 근무자 바뀌어 있을 수도 있는뎅. 교대 근무거든요.”

“아, 그래요?”

그녀의 외모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TV 아나운서를 닮았다.

“그럼 연락처를…….”

확―!

“아얏!”

팔뚝이 불에 덴 듯 따가워서 깜짝 놀라 봤더니.

김지안이 꼬집고 있었다.

“뭐야?! 아파!”

“그냥 사인해 주세요. 얼마나 걸린다고…….”

리셉션 여 직원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방금 하시던 말씀 뭐에요? 연락…….”

그녀의 말을 김지안이 잘랐다.

“종이 주세요. 네모의 신님이 사인해 주신대요.”

“꺅~! 신나! 여기요!”

준비된 여자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A3 커다란 용지를 펜과 함께 들이밀었다.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 둥글게 살아요. 네모의 신.’

사인한 후, 여자에게 건네었다.

“여깄습니다.”

“어머~, 감사해요! 글귀 너무 좋다아~.”

“하하.”

리셉션 여 직원은 웰시페니 담당자와 통화한 후,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보통은 게이트만 열어주고 마는데, 제가 담당자한테 통화해서 말해놨거든요. 네모의 신님 오셨다고.”

“…….”

“20층 올라가셔서 담당자 찾느라 헤매지 마시라고요. 헤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리셉션 여 직원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영상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올라가서 일 잘 보셔요.”

“네~, 수고하세요.”

* * *

엘리베이터 안.

“너 아까 왜 꼬집었어?”

“여자 외모 보고 헤벌쭉해서는…….”

김지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겨우 21살의 김지안.

나와 11살 차이가 난다.

나 대학 입학할 때, 김지안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까불래? 어디 삼촌뻘한테.”

“그런 게 어딨어요. 민증 나오면 다 똑같은 성인이지.”

받아치고 싶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난 이치에 맞는 말에 약하다. 갑질을 싫어해서 그런 걸까?

나이로 윽박지르며 누르는 것도 갑질처럼 느껴진다.

“에휴. 됐다. 그냥 좀 아쉽네.”

“칫.”

띵동!

엘리베이터는 20층에 도착했다.

드르륵.

문이 열렸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모의 신님 맞으시죠?”

나이는 한 30대 초반 정도.

내 또래 정도로 보였다.

그는 김지안과 날 번갈아 가면서 물었다. 네모의 신이 누군지 모르니.

난 그 앞에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네모의 신입니다. 웰시페니 담당자님입니까?”

“하하. 네, 맞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고, 김지안은 목례로 인사했다.

담당자는 웃으며 말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하~, 영광은요. 무슨.”

“진심입니다. 저도 네모튜브 구독자거든요.”

이럴 때 네모튜브가 꽤 인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마 너튜브 하는 분들. 특히 젊은 친구 중에는 네모튜브 모르는 사람 잘 없을 거예요.”

난 대답 대신 살며시 미소지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복도를 걸어갔고, 나와 김지안은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 벽면은 모두 불투명 통유리였는데, 유리 뒤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개방된 듯하면서도 완전하게 가려진 인테리어.

그러니까, 복도에서는 절대로 유리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유리로 되어 있어서인지, 폐쇄적인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자, 다 왔습니다.”

‘A―7.’

룸 위에 이런 표시가 되어있다.

“담당 마스터님께서 안에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안에 들어가셔서 미팅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돌아가려 하기에 난 붙잡고 물었다.

“담당자님은 안 들어가시나요?”

“아, 네. 저는 컨택 담당자입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아…….”

“지금부터는 마스터님과 업무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때, 김지안이 물었다.

“마스터? 그렇게 호칭을 해야 하나요? 왜 마스터입니까?”

혹시 실수할까 봐, 만나기 전 확실히 하고자 묻는 것 같다.

“아, 저희 회사는 사업 영역 책임자를 ‘마스터’라고 호칭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만나시는 분은 SNS 광고 책임자. 즉, 마스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담당자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마스터님께서 기다리실 테니, 그럼 전 이만.”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똑똑.

문을 두들기자.

회의실 안에서 정말 예상 못 한 이상한 음성이 들렸다.

“Please, Come in!”(들어오세요!)

웬 영어?!

김지안도 살짝 당황한 눈치였으나.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혹시나 했는데…….

“Welcome. Nice to meet you!”(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데.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노란 머리 외국인이었다.

* * *

“…….”

외국인은 손을 내민 채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난 완전 얼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있었다.

“Are you ne―mo―ui―sin? Right?”(당신이 네모의 신인가요?)

시퍼런 눈깔이 날 내려다보는데.

오금이 저린다.

동남아 사람은 똥손 시절에 주방 알바 하다가 만나본 적 있는데.

서양 사람은 처음이다. 만나본 적도 대화 나눠 본 적도 없다.

“사장님…… 뭐 하세요.”

김지안도 당황한 눈치였지만, 나 정도는 아니었다.

“영어 못하세요? 그래도 나이스 투 밋 츄는 하실 수 있죠?”

그 정도는 하지. 하지만 영어는 못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피킹을 못 한다. 대학 다닐 때 토익 900까지 찍었었고, 리딩과 리스닝은 자신 있지만.

“나이스 투 밋 츄. 하우 아 유 투데이?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풉!”

김지안은 갑자기 뿜었고.

앞의 외국인도 미소지었다.

“왜 웃어?”

“당황하셨어요? 왜 혼자 묻고 답하세요.”

젠장, 하우 아 유 투데이 한 다음에 답변 들은 후에 아임 파인 땡큐 했어야 했는데.

스피킹은 생각한 대로 잘 안 나온다. 이래서 어렵다.

외국인은 웃으며 말했다.

“Great. Thank you for coming today. I'm sorry for contacting you late.”(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연락을 늦게 드려서 미안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난 토익 900점이니까.

하지만…… 말은 못 하겠다.

그때, 옆에서 유창한 버터 발음이 들려왔다.

“I thought you changed your mind because of the late contact. Anyway, it’s good to see you.”(네 연락이 늦어서, 마음이 바뀌신 줄 알았어요. 어쨌든 뵙게 되어 좋습니다.)

김지안이었다.

내가 말은 못 하지만, 들을 줄은 안다.

긴 말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망설이지 않고, 이 정도 길이의 문장을 치고 들어간다는 건.

꽤나 실력자라는 얘기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건 면접 때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김지안의 대답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자유롭게 프리 토킹을 했고.

난 순식간에 소외되었다.

금붕어처럼 끔뻑끔뻑 지켜만 보다가…….

그래, 나에겐 금손이 있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번역기 어플을 켜고,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잡고 말했다.

차가운 기계음이 두 사람의 대화를 파고들었다.

“I heard the explanation from the person in charge of the delay in contacting you. I wonder exactly why you decided to contact me.”(연락이 늦어진 이유는 담당자님께 설명 들었습니다. 연락을 결심하게 된 정확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헉!

번역기에서 속도가 내가 말하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고.

영어 내용 또한 내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나만 놀란 게 아니라, 외국인과 김지안도 놀란 표정이었다.

역시, 내 금손은…….

“Great!”

외국인은 날 향해 환히 웃었다.

# 핸드폰 번역기

Before: 한국말 할 때보다 상대방이 더 못 알아들었었다. 사람 환장하게 하는 버퍼링.

After: 완벽한 번역. 동시통역 속도를 넘어선 말보다 빠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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