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기회 (1)
* * *
“무슨 메일?”
난 오 대리가 한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서 되물었다.
뭔가 하나 해결된 것 같아서, 떠 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정말 사업 시작한 이후로 매 순간이 스펙타클하다.
“웰시페니, 네일 브랜드요.”
“갑자기? 이제 와서?”
메일 보낸 지가 10일도 더 지난 것 같다.
영문을 모르는 네모 씨와 네모삼촌.
네모 씨는 우리 표정을 가만히 살피더니.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저녁은 다음에 할까요?”
잠시 생각했다.
흠…….
“아니요. 별일 아닙니다. 어차피 네모튜브와도 상의해야 될 일이니, 잘됐네요.”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예요?”
“식사하면서 설명 드릴게요. 오 대리?”
“네, 사장님.”
“어서 어디든 들어갈 장소 찾아봐. 시원한 곳으로. 오늘 좀 덥네.”
사실 날씨는 선선한 편이었지만, 몸에서 열기가 가시질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오 대리는 충격에서 기쁨으로 감정이 바뀐 듯했다.
그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앞장섰다.
호프집.
치킨과 세트 안주를 시키고 우리는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짠~.
“캬~, 시원하다!”
네모삼촌은 요란하게 잔을 비웠다.
“아~, 큰일 끝내고 마시니까 기분 좋네! 그치? 네모 씨?”
“그러게요. 우리 일도 아닌데, 참……. 하하.”
나 또한 웃으며 농담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이 일 끝나면 네모튜브에 수수료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니까요.”
“하하.”
네모튜브는 정말 자기 일처럼 이 일에 관여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만약 한국시가감정협회에서 네모삼촌이 지랄하지 않았다면, 추정가 3억으로 경매 참여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식사 대접은 둘째 치고,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할 생각이다.
“하하. 하여간 강 사장님 같은 인물을 알게 되어 영광이야. 진짜.”
“그러니까요. 이제 너무 거대한 분이 되셔서 독점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요.”
네모 씨는 웃으며 네모삼촌의 말을 받았고.
우리는 왁자지껄 웃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저, 사장님.”
그때 오 대리가 날 살며시 불렀다.
웃고 즐기며 마시는 와중에도, 오 대리는 계속 뭔가에 신경 쓰고 있었다.
“응?”
“메일 내용 확인 안 하실 거예요.”
“아……. 맞다.”
* * *
네모 씨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급한 일 있으신가 본데,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괜찮아요.”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
네모삼촌은 분위기 깨지는 게 아쉬운지, 넌지시 물었고.
“하하. 오래 안 걸립니다. 메일 내용 보고, 답장 하나만 쓰면 됩니다.”
“응~, 그래.”
난 핸드폰을 켰다.
[re: 광고 제의 수락의 건]
분명 내가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고. 난 이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네모의 신님. 웰시페니 담당자입니다. 메일 회신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신다는 내용 잘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선상으로 안내드리고 협의했으면 합니다. 아래 연락처로 전화 부탁드립니다. 010―XXXX―XXXX.]
“뭐야, 이게 다야?”
난 오 대리를 바라봤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게요. 회신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은 있는데, 왜 늦었는지 설명은 없네요.”
“흠…….”
“어떻게 할까요? 그냥 찔러보고 마는 걸까요?”
“…….”
“마음 같아선 연락 안 하고 싶긴 한데, 그 이후에 다른 곳에서 광고 제의는 없었고요. 쉽게 오는 기회도 아니니까요.”
이들에게 메일 회신 오기 전에 우리는 나름대로 사전 조사를 해봤다.
웰시페니는 호주의 유명한 네일 전문 화장품 브랜드이며, 세계 각지에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글로벌 회사라고 볼 만한 규모인데, 왜 그런 큰 회사가 나에게 접근하여 광고 제의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잖아. 전화는 해보자. 얘기해보면 저의를 알게 되겠지.”
“사장님 핸드폰으로 하세요.”
“…….”
오 대리는 내가 시킬까 봐 재빨리 선수를 쳤다. 아무래도 보이스피싱을 우려하는 것 같다.
“저…… 대화 중 죄송한데.”
네모 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냥 못 들은 척하려 했는데요. 실수하실까 봐.”
“…….”
“광고 들어왔나 봐요?”
네모 씨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물었고.
난 괜히 빚진 듯한 기분에 약간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아, 네. 어쩌다 보니.”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저희 채널을 사용하고 계신데?”
회신 메일이 온 이후에 논의하려 했었다.
“아~, 아직 제의만 받은 상태고요. 아직 광고주와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래요? 방금 수락 메일 어쩌고 들은 거 같은데. 잘못 들었나.”
뜨끔.
난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실수라고 하신 건…….”
“별다른 뜻은 없고요. 아무리 3자에 의한 PPL 광고라도 너튜브 정책이 있어요. 정책 안 지켰다가 너튜브 정지 먹을 수도 있고, 가장 심각한 경우는…….”
네모 씨는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구독자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릴 수 있거든요.”
“…….”
“구독자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놓아버리는 건 순식간이에요.”
생각 못 했던 부분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재빨리 네모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말로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된 건 없거든요. 만나지도 않았고요. 주의 사항 알려주세요. 미팅할 때 참고 하겠습니다.”
“흠……. 일단 ‘동영상에 유료 프로모션 포함’ 체크 박스를 선택하셔서 너튜브에 해당 사실을 통보해야 하고요. 그러면 동영상에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10초 길이의 문구가 추가돼요.”
“…….”
“그리고 광고 형태에 대해서도 아셔야 하는데, 동적 광고가 있는데 이건 아마 해당 사항 없을 거고요. 통상적으로 타이틀 카드, 엔드 카드를 통해 광고를 보이는데…….”
뭐라고 말은 하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광고주와 얘기도 안 해봤는데.
하지만 오 대리는 주의 깊게 들으며, 수첩에 필기하고 있었다.
“일단 간략하게 설명 드렸고요. 자세한 건 나중에 광고 시안 받으시면, 그때 저와 다시 한번 점검해요.”
“…….”
“어쨌건 우리는 너튜브 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을 잘 알고 따라야 해요. 또한 사랑산성 클립은 네모튜브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도 잊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약간은 갑처럼 말하기에 나도 넌지시 한마디 했다.
“혹시 저희가 불편하게 해드린다면, 네모튜브 밖으로 나가도 되는데…….”
네모 씨는 눈을 번쩍 뜨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광고 제의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다 함께 한잔하시죠!”
“하하하!”
네모삼촌 또한 일부러 큰 소리로 웃었다.
* * *
다음 날.
양재역 ABC 스터디 카페.
점심 영업을 끝낸 후, 전 직원을 소집했다.
사실 항상 소집해 있지만, 미팅룸까지 잡아서 정식으로 모은 건 오픈 이후 처음이었다.
“다 모였지?”
“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종이접기 사업이 예상보다 커지려 해서 업무 분담을 다시 하려고 해.”
종이접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던 김지안과 최경리.
두 사람 또한 종이접기 사업의 여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최경리는 오 대리 대타로 뛴 적도 한 번 있기도 하고.
“다들 어느 정도 알겠지만, 지금 종이접기 사업이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어. 하나는 종이 공예품 판매 사업. 다른 하나는 종이접기 광고수익 사업.”
“…….”
“처음엔 둘 중 하나라도 걸리라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둘 다 성사되었고, 게다가 판까지 커져 버린 상태지.”
최경리가 손을 살짝 듣고 물었다.
“광고수익 사업도 진행하는 거예요? 응답 없다고 하지 않았었어요?”
“아, 그게. 어젯밤에 회신이 왔어. 오늘 아침에 통화했고, 내일 만나기로 했어. 근데, 최경리 메일 안 봐?”
“안 봐요. 식당 직원이 무슨 메일을 봐요. 올 데도 없는데.”
“…….”
그리고 난 직원들에게 통화했던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네모의 신입니다.]
[아~, 네. 네모의 신님, 전화 주셨군요. 반갑습니다. 웰씨페니 담당자입니다.]
이상하게도 메일에서처럼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담당자라고만 호칭했다.
근데 나도 익명으로 응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보긴 좀 그랬다.
[메일 봤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전화 드렸습니다.]
[아, 네. 영상 주인공 맞으시죠?]
그는 다시 한번 신원을 확인했고, 난 명확하게 대답해주었다.
[네, 맞습니다.]
[아, 네. 회사 방문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웰씨페니 맞죠?]
나 또한 대답 대신 신원 확인을 했고,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서울 사무소가 어디인가요?]
[양재동에 있습니다.]
오……. 우리 회사랑 가깝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약속 시간을 정하였고.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궁금했던 걸 물으려 했다.
[잠깐만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아, 네.]
[광고 제의에 저희가 수락하겠다고 메일 보낸 거…… 언제 보셨나요?]
[…….]
수화기 너머로 답이 없었다.
왜 답장을 늦게 보낸 건지 물어본 거였고, 내 질문의 의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보내신 다음 날 봤습니다.]
난 굳이 왜 답장을 늦게 보냈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가 덧붙여 설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희 마스터께서 다음 영상도 좀 더 지켜보자고 했는데, 이후로 영상이 계속 안 올라오더군요.]
[…….]
[저희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하긴 영상 한 번 올린 이후, 지금까지 추가 업로드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본격적으로 너튜브를 시작할 마음으로 올린 영상이 아니었다.
그냥 씨 뿌리기 의미였지.
[제안 철회 메일을 보낼까 하다가, 그 올리신 영상이 계속 조회 수가 오르더군요. 마스터님께서 네모의 신님과 해당 영상을 좋아하기도 하시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어제 회신을 드린 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내용 얘기를 마친 후, 변 이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설명을 들으니, 광고주 입장도 이해가 되네. 하긴…… 나 같아도 좀 그렇긴 하겠어.”
오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확고하게 마음을 잡은 걸 겁니다. 그만큼 고민을 하고 결정한 거니까요. 보통 대기업은 고민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결정하면 밀고 나갑니다.”
글로벌 회사 출신 오 대리의 말이라 믿음이 갔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통화할 때 목소리도 그랬고.”
화이트보드에 투 트랙에 대한 인원 배치를 적었다.
# 종이접기 투 트랙 인원 배치
공예판매 사업: 앤더슨 오(주), 변 이사님(부)
광고수익 사업: 김지안(주), 최경리(부)
직원들은 화이트보드 내용을 보았고.
김지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변 이사님과 최경리 과장은 여러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종이접기 사업에서는 오 대리와 김지안 대리가 주도적으로 맡아주었으면 해.”
“…….”
“오 대리는 광고수익 사업 관련 내용 모두 오늘 중에 김지안 대리한테 인계하고, 경매 준비에 집중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난 김지안을 바라보았다.
“김지안 대리?”
“네.”
“내일이 바로 웰시페니 미팅이야. 잘 준비할 수 있지?”
김지안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