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99화 (99/156)

물꼬가 트이다 (2)

* * *

직원들의 성화에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통화했다.

[그럼 작품 저희에게 맡기시는 겁니까?]

어차피 우리로서도 선택지는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신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건 미팅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뵙자고 하셨으니까요.”

난 이렇게 대답했고,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좋습니다. 그러면 감정 및 계약 절차를 설명드려야 하는데……. 뵙고서 설명드리는 거로 할게요. 괜찮을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네, 그럼 실물 작품을 저희 영웅옥션에 입고시켜야 주셔야 하거든요.]

“입고요?”

[네~, 어차피 감정 절차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물은 일단 입고되어야 합니다.”

“그럼, 저보고 가지고 오라는 말씀이시죠?”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냥 물어본 거였다.

근데…….

이정수 팀장은 당황한 듯 일부러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위탁자가 직접 운송하는 게 원칙이기는 합니다만…… 강태평 작가님께서 번거로우시다면 저희가 직접 가지러 가겠습니다!]

“왜 이렇게 들이대? 좀 불안한데?”

변 이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난 검지를 입 앞에 갖다 대고 말했다.

“쉿―, 들려요.”

“앗차. 스피커 폰.”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 못 들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작품이 무거운 것도 아니라서요. 어차피 미팅하러 갈 거니까,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진짜 저희가 모시러 가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이게 편합니다.”

[넵, 알겠습니다. 작가님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럼 약속 시간은…….]

우리는 약속 시간과 영웅옥션 주소지를 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럼 그때 뵐게요.”

전화 통화만으로도 느껴졌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스타일이네.

“먼저 끊으세요~.”

[네네~, 작가님~.]

뚝.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모두 밝았다.

아직 아침이고, 영업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같이 갈 사람?”

번쩍! 전 직원이 손을 들었다.

“하하. 일단 알았으니까, 영업 준비하자고. 이따 오후에 가려면 서둘러야지.”

기다림에 지쳤다.

괜히 뜸 들이고 싶지 않았고, 오늘 오후에 영웅옥션을 찾아가기로 했다.

* * *

오후 4시.

난 집에서 작품을 챙겨 가기 위해, 회사를 좀 일찍 나섰고.

영웅옥션 정문에서 오 대리를 만나기로 했다.

“와, 진짜 다 왔네?”

오 대리만 필수 참석이었고, 나머지 자율에 맡겼는데.

전 직원이 함께 왔다.

“사장님, 왜 이렇게 늦었어용~.”

김지안이 애교 섞인 말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마 영웅옥션이 동대문에 있어서 빨리 온 거야. 내곡동에서 수유 찍고 온 건데.”

사랑산성은 내곡동에 있고, 내가 사는 곳은 수유.

서울을 반 바퀴 돌았더니, 피곤하다.

“그럼 들어갈까요?”

“가즈아!”

변 이사가 큰소리로 외치며, 앞장섰다.

정문에 들어서니, 한 남자가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약간 광빨이 나는 회색 정장을 입고, 초승달 눈썹이 인상적인 남자.

배가 살짝 나온 거로 봐서는 보안요원 같아 보이진 않는데.

약간 이상한 느낌에, 다른 직원들도 그 남자를 흘기듯 바라보며 지나쳤다.

“강태평 작가님?”

회색 정장의 남자는 고개만 돌려서 우리 쪽을 바라봤다.

몸은 정문을 향하고, 고개만 돌렸는데…… 모가지가 90도 이상 돌아간 것 같다.

“네? 저요?”

무심결에 내가 대답하자, 회색 정장의 남자는 몸을 홱 돌려서 내게 다가왔다.

성큼. 성큼.

보폭이 아주 컸는데, 걸음걸이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선이 고운 듯하면서도 박력 있는.

순식간에 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쳤다.

“하하. 안녕하세요. 전화로 먼저 인사드렸었는데~, 이정수 팀장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기다리신 건가요?”

“그럼요~.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기다려야죠~. 근데 좀 많이 오셨네요?”

사랑산성 5명. 모두 함께 왔다.

“하하. 네. 저희한테 중요한 일이라서 회사직원들 다 함께 왔습니다.”

“아~. 개인 소장이 아니라 기업 소장이시구나아~.”

이정수 팀장은 활짝 웃었다.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자, 따라오시죠.”

회의실.

테이블, 의자, 벽 모두 새하얀 인테리어로 되어 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드시겠습니까?”

“아무거나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변 이사가 대답했지만, 이정수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음~, 아니죠. 원하는 걸 드려야죠.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별을 따서라도 갈아 드리겠습니다.”

“…….”

처음엔 이 사람에게 느껴지는 부담감이 비즈니스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나눌수록 그냥 사람 자체가 부담인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5잔 주세요. 모두 괜찮지?”

내 물음에 최경리만 손을 들었다.

“전 돌체라떼 아이스요.”

“…….”

그 외엔 아무 말 없었고, 이정수 팀장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호호. 저도 돌체라떼 좋아하는데.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이정수 팀장은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했다.

“어, 김 주임. 돌체라떼 두 잔. 아아 4잔. 10분 내로 준비해. 다들 목말라 하셔. 뭐? 사 오든지 만들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10분이다.”

뚝.

우리에게 말할 때와는 완전 다르네.

“앉으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빨리 준비해달라고 했으니깐.”

“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정적이 이어져서 내가 먼저 말을 걸어봤다.

“미술경매팀 팀장이시라고…….”

“네~, 팀장입니다. 정확하게는 2팀장이에요. 미술경매팀이 1, 2팀으로 나뉘어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제 작품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감사하죠.”

덥석.

그는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떨리는 눈망울로 말했다.

“비록 사진으로 보긴 했지만…… 정말 매료됐습니다.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

“제 모든 걸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작가님께서 만족할 만한 성과. 반드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어우 씨, 부담스러워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눈물도 살짝 맺혀 있었다.

똑똑.

[팀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직원 두 명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와, 커피를 한 잔씩 놓아주었다.

커피를 놔주는 동안,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왕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 * *

후르릅. 이정수 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우선 저희와 진행 하기로 결정해 주신다면, 오늘 하실 건 끝났습니다.”

“네?”

“일단, 작품 입고만 받고요. 해당 작품을 저희가 감정해서 수일 내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또 감정을 받아?

‘감정’이라는 단어에 최경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경매하는데, 굳이 감정을 받아야 합니까?”

“출품가(내정가)를 정해야 하니까요.”

아……. 그렇겠네. 0원에서 시작하는 경매가 아니라면.

“그러면 영웅옥션에서 정한 감정가에 맞춰서 제 작품의 출품가가 정해지는 겁니까?”

난 약간 거부감 띤 어조로 물었고.

이정수 팀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이건 엄연히 고객님의 작품을 위탁받는 겁니다. 저희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건 없고요. 감정한 가격을 말씀드리고, 작가님과 상의하여 출품가를 정합니다.”

“…….”

한국시가감정협회와는 일하는 방식이 좀 다르구나. 하긴, 실제 작품가를 정하는 건 경매에 참여하는 분들이니까.

“그럼 계약서는…….”

“출품가를 확정한 다음에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그 뜻은…….

“네, 저희와 의견이 다르시면 그때 가서 관두셔도 상관없습니다. 출품가 중요하죠. 작가님께서 만족하지 않는 출품가라면, 내놓지 않는 게 맞다고 봅니다.”

너무……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니,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직원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작품 맡겨 보시겠습니까?”

이정수 팀장은 손을 비비며 물었고.

난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 대리. 작품 건네드려.”

“네, 사장님.”

“아~, 작가님이 사장님이시구나.”

이정수 팀장은 놀랍다는 듯 날 다시 보았다.

오 대리는 보자기로 씌운 투명 케이스를 건네었고, 이정수 팀장은 내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작품 지금 한번 봐도 됩니까?”

“물론이죠.”

이정수 팀장은 살며시 보자기를 벗겼고…….

“오…….”

그의 동공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더니, 이리저리 마구 움직였다.

순식간에 작품 구석구석을 스캔하는 것 같았다.

“오……. 맙소사. 역시…….”

그는 투명 케이스를 돌려서, 다시 또 작품 전체를 스캔했다.

“무리수를 두길 잘했어. 역시…… 내 눈이 맞았어.”

그는 우리가 있다는 것도 잊은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저…… 팀장님?”

“오…….”

“팀장님?”

“네?! 아, 네! 죄송합니다.”

그는 정신 차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날 바라봤다.

“네, 말씀하시죠.”

눈빛에 혼이 나가 있다.

정신이 이미 ‘할아버지의 일생’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감정 결과를 좀 빨리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기다리는 데 지쳐서요.”

“아, 그래요? 어디 보자…….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다음 주 월요일 오후 어떠세요?”

생각보다 빠른데? 이렇게 빨리 되는 거였어?

“아, 네, 알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빨리 걸릴 건데, 서면 심의는 왜 그렇게 오래…….”

정확히 일주일 걸렸다.

내 물음에 이정수 팀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과 의견 조율하느라, 좀 늦어졌습니다.”

“…….”

“어쨌든 서면 심의 통과된 작품이니까요. 감정은 빠르게 보면 됩니다. 제가 월요일에 결과 나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알려 드릴게요.”

“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정수 팀장이라는 사람.

내 작품에 관심 있고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 * *

주말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고.

월요일은 금세 다가왔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난 월요일이 제일 기다려진다.

이것도 내가 직원일 때와는 많이 다른 점이다.

“오 대리, 굿 모닝.”

“사장님, 잘 쉬셨어요?”

“아, 혹시.”

“안 왔습니다.”

“그래.”

출근하면 광고 수락 메일 왔는지부터 묻는다.

오늘은 물어보기도 전에 오 대리가 대답했다.

“사장님, 이제 그쪽은 신경 끄는 게 좋겠습니다. 2주가 다 됐습니다.”

“그래야 하나…….”

여느 때처럼 영업 준비로 정신없었고.

점심 오픈 시간인 11시를 10분 정도 남겨둔 시점.

전화벨이 울렸다.

‘영웅옥션 이정수 팀장’

음? 오후에 보기로 했었는데.

[네, 전화 받았습니다.]

[강 작가님, 저 이정수입니다.]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아, 네. 감정가가 어느 정도 나왔는데요. 오후에 뵙기 전에 한번 여쭤 보고, 아니다 싶으시면 좀 더 고민해서 만나 뵈려고요.]

빠른데? 그의 열정이 부담스러웠지만, 배려해줘서 고마웠다.

[네, 말씀하시죠.]

[아, 네. 흠……. 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이정수 팀장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첫 작품이시고…… 신인이시라서요.]

한국시가감정협회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으니까요. 그냥 가격만 빨리 말씀하시죠. 괜찮습니다. 저 지금 많이 바빠서요.]

[저희가 생각한 감정가는…… 3억입니다.]

.

.

.

.

뭐?!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대꾸도 안 하자, 그는 당황하여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추정가를 2~4억으로 하여 출품했으면 하거든요. 이건 말 그대로 추정가고, 전 충분히 이 금액 이상으로 응찰이 가능할 거라고…….]

3억…….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정 불만족스러우시면 1억 정도 더 올리는 방안도…….]

그가 뭐라고 말은 계속하는 것 같은데…….

지금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출품을 결심하다

* * *

휴우― 휴우―.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금액에 쉽게 진정이 되질 않는다.

3억……. 3억이라니!

3억이면 서울은 어렵지만, 지방의 아파트를 살 수 있고.

고가의 수입차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얼마 전 3억으로 서울 근교 200평 땅도 샀었다.

그 3억을 만들려고 일주일 내내 손톱이 빠질 정도로 종이학 2,500마리를 접었었는데…….

내가 하룻밤 새에 만든 게 3억이라고?

그것도 신인 작가라서 낮게 책정된 거라고?

[강 작가님? 아니…… 사장님이라고 부를까요? 왜 아무 말씀이…….]

[……. 아 네 죄송합니다.]

하아, 영업 준비해야 하는데.

수비드 안심 스테이크 재워놔야 하는데.

상어 지느러미 손질해 놔야 하는데.

두근. 두근.

가슴이 진정 되질 않는다.

휴우―.

이건 그냥 출품가야. 낙찰가도 아니고. 오바하지 말자.

[언제 다시 방문하면 되겠습니까. 계약서 써야 하죠?]

[네? 아, 네. 편하실 때 아무 때나.]

[오늘 당장 찾아뵙겠습니다.]

오바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내 몸은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출품가는 이 정도 선에서 괜찮으십니까?]

지금은 사전포석이라든지, 밑밥 까는 등의 그런 머리는 굴러가지 않았다.

그냥 본능이 앞섰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 금액은 내게 아주 크게 느껴진다.

[좋게 평가해주셔서 고맙고요. 그 출품가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저자세에 이정수 팀장은 당황한 것 같았다.

[혹시…… 마음에 안 드셔서.]

오히려 좀 불안해하는 것 같다.

[아니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흠!]

그는 헛기침하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뵙고서 얘기 나누시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출품가는 조정 가능하니까요. 이따 뵙고서 확정하는 거로 하시죠.]

[네.]

[그럼 꼭 오세요. 꼭 오셔야만 합니다~.]

[네, 꼭 갈게요.]

[…….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네.]

뚝.

수화기를 귀에서 떼었고.

여전히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주방 안 풍경을 보았다.

다들 정신없어 보인다.

영업 개시 5분 전.

주방 안에는 최경리와 오 대리만 있었고.

변 이사는 정문에서, 김지안은 홀에서 대기 중일 것이다.

휴우―.

지금…… 이 상황을 직원들 모두에게 당장 말하고, 이 기분을 나누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사랑산성의 사장이고, 이들의 리더라는 사실이 참도록 만들었다.

어째 힘든 일보다 좋은 일 참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입이 근질거려서 미칠 것 같다.

* * *

― 우왓!

― 미쳤어! 미쳤어~!

― 그것도 미안하듯이 말했다고요?!

오후 3시.

점심 영업 마무리된 뒤에 영웅옥션의 감정 결과를 말해주었다.

예상대로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 잘못 얘기한 거 아니야?”

변 이사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저도 그럴까 싶어서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봤는데, 맞아요.”

“진짜 대박이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오 대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한국시가감정협회에서는 5,000만 원. 강남옥션은 서면 심의에서 불합격. 영웅옥션은 3억…….”

세 기관이 다 다르다.

다른 정도를 넘어서서, 차이가 너무 컸다.

“확실한 건…… 강 사장님 작품이 뭔가 있긴 있나 보다.”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뜨거운 감자. 말 그대로 딱 그거 같은데? 출품해서 대중들에게 선보이면 어떤 이슈를 불러일으킬지……. 하하.”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그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좋아해 주시겠죠?”

“지금 세 기관의 상황으로 봤을 때, 약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오 대리가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네요. 그것도 극명하게.”

변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관없어. 어쨌든 높은 가격에 팔리면 되는 거야. 많은 사람에게 관심받는 게 뭐 그리 중요해. 가치를 지불할 수 사람이 좋아해 주면 되는 거지.”

“…….”

“영웅옥션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응찰자가 나타났으면……. 아니, 꼭 나타날 거야.”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

난 재빨리 가방을 챙기고 오 대리와 변 이사에게 말했다.

“서두르세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영웅옥션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지만, 두 사람은 눈치를 챈 듯 더 묻지 않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영웅옥션 사옥 앞.

“에이……. 진짜 미안하게.”

네모 씨와 네모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품 경매 아이디어를 제안한 게 네모튜브였다. 아무래도 일이 성사되는 것을 알리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는데.

이렇게 또 함께 온다고 할 줄은 몰랐다.

“미안하긴! 지난번 왔을 때는 왜 연락 안 했어? 기다렸잖아~.”

네모삼촌은 내게 핀잔을 주고는 변 이사와 오 대리에게 인사했다.

“두 분도 하시는 일이 있는데, 미안해서 그렇죠. 제가 수고비 드리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혹시 수고비 달란 말 할까 봐.

“누가 뭐래?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부담 갖지마~. 신경 쓰이면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줘.”

“그야 물론이죠.”

네모 씨가 웃으며 말했다.

“영웅옥션은 오랜만이네요. 전 주 거래처가 강남옥션이어서요. 하하. 어쨌든 출품가가 높게 책정되었다니 축하드려요. 한국시가감정협회에서 자리 박차고 나오길 잘했네요.”

“고맙습니다.”

네모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정말 잘됐어.”

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들어갈까요?”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도 이정수 팀장이 로비 정중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처럼 열중쉬어 자세였다.

“뭐야? 경비원이야?”

이상해 보였는지, 네모삼촌이 한마디 했다.

정중앙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이 경비원으로 보일만 하다.

네모삼촌의 말에 난 피식 웃고는 이정수 팀장에게 다가갔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나와 계셨군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하. 어서 오십시오, 작가님.”

그는 날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오늘도 여러분 오셨군요. 처음 뵙는 분도 있으시고.”

이정수 팀장은 네모 씨, 네모삼촌과 인사를 나누었다.

“엇?! 혹시, 큰손 조동수 씨…….”

이정수 팀장은 인사를 나누다가, 네모 씨에게 아는 척했고.

네모 씨는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현재 익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네모 씨라고 불러주세요.”

“아……. 네.”

이정수 팀장은 네모 씨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강남하고만 거래하지 마시고, 저희 영웅옥션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자자, 그 얘기는 나중에. 지금은 그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니까요.”

이정수 팀장은 내 눈치를 살핀 후, 활짝 웃고는 안내했다.

“자, 모두 이쪽으로 오시죠. 드시고 싶은 음료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엔 기다리시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 *

자리에 앉은 뒤, 곧바로 직원이 커피를 내왔다.

정말 2분도 안 기다린 것 같다.

“출품가는…… 이견 없으신 거죠?”

이정수 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없습니다. 감정하신 출품가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희와…….”

이미 마음먹고 온 것이다.

“네, 영웅옥션과 위탁계약서 작성하겠습니다. 잘 부탁…….”

“나이쑤!”

이정수 팀장은 벌떡 일어나서,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면서 좋아했다.

“좋아! 나이쑤! 해낼 줄 알았어! 유후! 이정수 컴온!”

그는 앞머리가 흐트러질 정도로 어퍼컷 수십 방을 날렸다.

“…….”

오바가 심해서 우리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정수 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너무 바라던 일이 성사되어서…… 잘 부탁드립니다! 강 작가님!”

“아……. 네.”

난 그와 악수를 했고.

그는 손을 세차게 흔들며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급기야 네모삼촌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왜 저러는 거야?”

“몰라요. 처음 본 날도 저랬어요.”

네모삼촌과 안면이 있는 오 대리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해주었다.

“자아~, 그럼 계약서 모시겠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준비된 계약서를 꺼내었다.

‘위탁계약서’.

한 장짜리였는데, 내용은 매우 단순했다.

이정수 팀장이 말했다.

“위탁 수수료 부분만 주의해서 봐주시면 되고요. 나머지는 특별한 내용 없습니다.”

# 위탁 수수료

1) 낙찰가 3백만 원 이하의 경우 낙찰가의 15%를 적용.

2) 3백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한 금액에 대하여 10%를 적용.

단번에 이해되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정수 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본 계약서는 이렇지만, 계산하기 복잡하잖아요? 금액에 대한 제한 없이 전체 10% 적용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굳이 요청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서비스를 해주네.

“10% 이하로는 안 됩니까?”

그때 오 대리가 불쑥 물었고.

이정수 팀장은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네? 아……. 그렇게 하는 경우는 없는데. 그럼 요청을 받아 본 게 처음이라서요. 낮춰 드려야 할까요?”

해달라면 진짜 낮춰줄 것 같았다.

부담스럽다. 난 재빨리 말했다.

“아니에요. 됐습니다. 10%로 하시죠.”

“낮춰야 하시면 낮춰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전체 10%도 서비스 해주신 거잖아요. 그냥 그렇게 가요.”

너무 고객 친화적이니까, 부담스럽다 못해 거부감마저 살짝 느껴진다.

내가 완강히 거절하자, 이정수 팀장도 더 얘기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요율 조정 필요하시면 얘기하세요.”

“…….”

그는 대금 지급 방식, 앞으로의 일정 등에 대해 설명했다.

“출품작들을 모아서 행사를 하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가장 빠른 일정으로 진행해보고 싶은데.”

“좋습니다. 저희도 바라는 바입니다.”

“네, 영웅옥션에서 디자인 컴퍼니와 콜라보하여 전시회를 열 계획이거든요. 전시회 정식명칭은 ‘영웅옥션×디자인 컴퍼니 living with art’입니다.

‘영웅옥션×디자인 컴퍼니 living with art’.

Living with art라……. 이름 멋지네.

“그 전시회에 국내외 대작들이 함께 출품됩니다. 거기에 ‘할아버지의 일생’도 함께 출품하여 진행하겠습니다.”

“국내외 대작들이요? 제 작품이 눈에 잘 안 띄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First zone에 위치될 거고요. 전…… 제 감을 믿거든요. 분명 작가님 작품은 고객들 눈을 사로잡을 겁니다.”

“……네, 그럼 일정은?”

“2주 뒤입니다.”

진짜 빠르네?

“알겠습니다. 그럼 작품은 여기 두고 가면 될까요?”

“네. 3중 장치 금고에 보관될 거니까요.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고맙고요. 2주 뒤에 뵙겠습니다.”

할까 말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이 작품. 제게는 생명 같은 아이이거든요. 첫아이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에 이정수 팀장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물론입니다. 제게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저 또한 이 작품에 운명을 걸었으니까요.”

운명?!

난 그의 눈을 보았는데, 이번엔 오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나.

어쨌든 뭐,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다뤄주면 된 거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 * *

“홀가분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한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했다.

이제 2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 간단하게 한잔할래요? 네모튜브 어때요?”

“좋습니다!”

네모 씨와 네모삼촌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 대리! 근처 식당 좀 알아봐봐.”

“…….”

“오 대리?!”

오 대리는 넋 놓고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 대리! 뭐해? 내 말 안 들려?”

“저……. 사장님.”

오 대리는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고 수락 회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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