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94화 (94/156)

평가를 받다 (1)

* * *

“오…… 오…….”

네모삼촌은 오바를 넘어선 주접을 떨고 있었지만.

그가 이러거나 말거나, 다들 관심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할아버지의 일생’을 감상할 뿐이었다.

“네모삼촌…….”

“이건…… 기적이야. 기적. 어떻게 이런…….”

이 진지해야 할 상황이 네모삼촌으로 인해 쌈마이가 되어 가는 분위기.

난 어쩔 수 없이 그를 잡아 일으켰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봐야 하니까.”

“오…….”

그는 입만 뻐끔거릴 뿐 대답도 못 한다.

결국 내가 몸으로 밀어내고서야, 자리로 돌아갔다.

“…….”

난 사람들을 돌아보며 작품설명을 해주었다.

“붉은색 운용지를 사용한 종이 공예품이에요. 82세의 노인의 일생을 담고자 했어요.”

“…….”

“보시다시피 9명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할아버지 8살 때부터 10년 단위의 모습을 종이 한 장에 담은 거예요.”

누군가 말해주기를 원했지만, 4번 룸 안에는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설명은 이 정도로 할게요. 보는 사람의 감상이 중요한 법이니까. 제 작품 의도가 잘 느껴질지 모르겠네요. 하하.”

스스로 작품이라고 표현을 하기가 멋쩍어서 난 헛웃음을 지었다.

“…….”

다들 멀뚱히 보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왜 다들 말이 없어요? 뭐라고 평을 해줘야지. 설명 더 필요해요?”

“…….”

그래도 아무 말이 없기에, 여기서 가장 객관적일 것 같은 최경리를 불렀다.

“최경리 과장?”

“네.”

“작품 어때? 종이접기 사업으로 만든 첫 작품인데.”

“왜 하필 저예요?”

“왜긴. 말이 제일 많으니까 그렇지. 뭐든 좋으니까, 아무 말이나 해봐. 악평도 좋아.”

“칫.”

최경리는 눈을 굴리기만 할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왜 이래? 최경리답지 않게?”

“악평할 거리 생각 중이에요. 떠오르는 게 없어서.”

“…….”

최경리 과장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악평할 게 없으면 그냥 칭찬해줘도 되잖아.

“나중에 떠오르면 얘기할게요.”

“좋은 얘기 해줘도 괜찮아.”

“아니요. 좋은 얘기는 발전이 없어요. 그건 다른 사람한테 들어요. 저 아니어도 좋은 얘기 해줄 분은 많은 것 같으니까.”

그래……. 말을 말자. 내가 또 실수했다. 괜히 말 걸었어.

“김지안 대리!”

“네! 사장님.”

“자기가 보기엔 어때?”

“음…….”

김지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여~”

“응?”

“그냥 좀 경이롭고 신기해서요. 이걸 종이로 접어서 만들었다고? 계속 이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헤헤.”

“…….”

“경이롭다는 생각만 드니까, 이게 멋진 건지 아름다운 건지 이런 개념에서는 생각을 못 하겠어요.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종이접기를 잘 안 접해봐서 그런 건가? 그러니까, 그냥 신기하다는 거지?

“오 대리는?”

엄지 척!

그는 아무 대꾸 없이 엄지만 치켜세웠다.

“할 말은 없어?”

“말이 필요 없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해도 될 것 같습니다.”

“메트로폴리탄? 그게 뭐야?”

“제 고향 뉴욕에 있는 가장 큰 미술관이에요.”

“아……. 오바는.”

“진짠데?”

엄지 척!

아직까지는 평들은 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은 받을 수 있었다.

“변 이사님은 어떻게 보세요?”

우선 종이접기 전문가들의 평을 듣기 전에 일반인들의 생각을 묻고 싶었다.

아무래도 네모 씨나 정카가 한마디 하면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에.

선입견 없는 시각이 궁금했다.

“난 그래도 꾸준히 네모튜브를 봐왔잖아.”

“…….”

“비교 자체가 안돼. 이런 종이 모형은 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해봤어.”

그는 날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짜 인정이야. 강 사장님 실력은 정말 놀라워.”

네모튜브에 나온 종이접기만 봤으니,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창작 종이 공예를 봤을 때도 평가가 비슷할지 궁금했다.

“이사님, 이거 한번 보실래요.”

난 핸드폰을 켜서, 변 이사에게 류진(龍神)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

“어때요?”

“기가 막히네. 사진으로만 봐도 장난 아니구만.”

변 이사는 사진을 확대, 축소해 가며 자세히 보다가, 고개를 살짝 들고 날 보았다.

“이게 경쟁 작품인가?”

“네? 뭐 경쟁작이라기보다는 종이 공예 쪽에서는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에 하나죠.”

“아, 그래? 그럼 걱정할 거 없겠는데?”

“…….”

“강 사장님 작품이 한 수 위야.”

변 이사는 확신에 찬 듯 말했다.

“방금 자기가 보여준 건 기술적으로는 아주 훌륭해 보여. 근데 예술품이라는 건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은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

가만히 듣고만 있던 네모 씨가 변 이사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자네 작품은 종이 한 장을 접어서 만든 거지만, 이야기가 있어. 작품만 봐도 할아버지의 일생이 느껴진다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훌륭하고. 내가 기술은 잘 모른다지만……. 어쨌든 디테일하니까. 눈가의 주름 변화가 보이니까.”

내가 작품 포인트로 잡은 걸 변 이사는 정확히 캐치하고 있었다. 잘 안 보일까 봐 염려했는데.

변 이사의 말이 끝난 뒤, 다시 4번 룸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네모 씨를 부르려 하는데.

“바로 감정 평가 받아보면 될 것 같아요.”

네모 씨가 말했다.

“말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바로 평가받아 보죠.”

* * *

동산? 감정 평가?!

“다들 아시다시피, 자산에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죠. 부동산, 무형자산, 동산.”

“…….”

“미술품은 동산에 포함됩니다. 종이접기 공예품 또한 크게는 미술품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겠죠.”

네모 씨는 설명을 이어갔다.

“감정을 전문으로 평가하는 기관이 있고요. 감정평가사를 통해 작품의 가치가 정해지거든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태평 씨가 만든 작품은 시가 감정으로 들어갈 거예요.”

네모삼촌이 손을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근데, 이 작품을 굳이 감정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유통하는 게 더…….”

네모 씨는 고개를 저으며 네모삼촌의 말을 잘랐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에요. 우선 전문기관에서 감정을 받아보죠. 초창기에는 약간 돌아가더라도 정석대로 가는 게 좋다고 보거든요. 작가의 평판도 생각을 해야 하니까.”

“…….”

“전문 기관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고 등재가 되면, 다음 작품 감정 시에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요.”

“흠…….”

이 말에 네모삼촌은 입을 다물었다.

작가라…….

날 부르는 호칭으로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단어였다.

기분이 묘했다.

“그러니까 네모 씨가 보시기에도 제 작품이…….”

“아까 오 대리님이 그러셨죠. 그분 의견과 동일합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엄지 척!

“쌍 엄지 드립니다. 엄지 엄지 척입니다.”

네모 씨는 그러면서 두 손으로 엄지를 펼치고 까딱까딱 움직였다.

“네모의 신은 괜히 신이 아니었어요. 아홉 난쟁이가 혹시 심장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만져보고 싶은 기분인데요? 하하.”

“헛. 나랑 똑같은 생각이네.”

정카도 웃으며 말했다.

휴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작품 주제가 너무 고루해 보이진 않을까 염려했는데.

“쇠뿔은 단김에 빼자~. 시가 감정 바로 신청할까?”

네모삼촌이 나섰다.

“근데, 종이접기 공예품도 감정을 받아줄까요?”

오 대리의 물음에 네모 씨가 대신 대답했다.

“감정협회도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일이거든요. 의뢰하면 다 합니다.”

“아…….”

지금 시간이 오후 4시.

어느덧 미팅한 지 1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감정에 필요한 절차랑 준비물만 전화로 먼저 물어보고. 준비해서 내일 방문하자.”

난 오 대리를 향해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난 사랑산성 직원들과 네모튜브를 향해 물었다.

“혹시 내일 함께 가실 분?”

최경리를 제외한 전원이 손들었다.

* * *

다음 날, 종로구 인사동.

한국시가감정협회.

먼저 도착한 나와 오 대리는 정문 앞에서 네모튜브를 기다렸다.

대규모 인원이 갈 곳은 아니라서, 오 대리와 둘이 왔다.

네모튜브의 도움을 받는 게 좀 부담스럽긴 한데, 본인들이 원하는 일이라며 굳이 오겠다고 하여 내버려 두었다.

“태평 씨~.”

멀리 네모삼촌이 손을 흔들었고, 그의 옆에 네모 씨가 있었다.

내가 인원수를 좀 줄여달라고 했더니, 정카만 안 오기로 했나 보다.

“아홉 난쟁이는?”

“여기 있습니다~.”

오 대리가 손에 든 걸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여기 와 본 적 있으세요?”

“아니~, 처음이지. 얘기만 들어봤어. 좀 딱딱하고 권위적이라고.”

“아~, 네.”

네모삼촌은 자신 있게 앞장서며 말했다.

“자~, 어서 들어가자고.”

한국시가감정협회 로비.

건물 내부 분위기가 한국종이접기협회와 비슷했다. 회색 바닥에 회색 벽. 무미건조한 인테리어에 어두웠다.

오후 4시경임에도, 이미 밤이 찾아온 것 같은 실내 분위기.

“흠……. 어째 사람이 안 보이네.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한참을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말총머리를 한 여 직원을 만났다.

오 대리가 물었다.

“길 좀 물을게요. 감정 신청하려는데, 어디로 가야 해요?”

“앞으로 쭉이요.”

쌩~.

더 물어볼 새도 없었다. 바로 가던 길 가버렸다.

네모삼촌은 불만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어디 앞으로? 우리 앞으로? 건물 앞으로? 로비 앞으로? 왜 주어를 빼먹어?”

“기본이 안 되어 있네요.”

네모 씨도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하고는.

“일단 가던 길 그대로 가보죠.”

“…….”

‘총무과’.

좀 더 걸어가자, 팻말이 보였다.

똑똑.

“실례합니다~.”

“…….”

응답이 없어서 살며시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무실 안에는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근데 인기척이 이렇게 안 느껴지나?

이건 뭐 유령도 아니고…….

오 대리는 출입문 가까이 있는 여 직원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감정 신청하려고 왔는데요.”

타닥. 타닥.

여 직원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타자를 치느라 정신없었다.

오 대리의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여기가 맞…….”

“신청서 주세요.”

“네? 아, 네.”

맞게 찾아왔구나.

오 대리는 얼떨결에 감정신청서를 내밀었고. 여 직원은 오 대리 뒤에 있는 날 향해 물었다.

“신청서요.”

“아~, 일행입니다.”

그제야 여 직원은 우리 네 사람을 본 후.

“그 뒤에 분도요?”

“네.”

에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온 걸 흉보는 것 같았다.

“진위 감정인가요? 시가 감정인가요?”

여 직원의 물음에 오 대리가 대답했다.

“시가 감정입니다.”

“접수비 50,000원이고요. 시가 감정료는 앞에 표 참고해주세요.”

# 시가 감정료(부가세 별도)

1,000만 원 미만: 200,000원

1,000만 원~1억 원: 500,000원

1억 원~5억 원: 1,500,000원

5억 원~10억 원: 3,000,000원

10억 원 이상: 5,000,000원

표를 보고는 선뜻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시가 감정료 책정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감정한 이후에 작품 가격에 따라서 시가 감정료가 책정되는 거예요.”

“아……. 그럼 시가 감정료는…….”

“추후에 감정서 발급 시에 계산하시면 됩니다.”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만약, 5억 원 감정 작품이면, 3백만 원 수수료 내야 한다는 소리네.”

타닥. 타닥.

“접수 끝났습니다. 감정받을 작품은 이쪽에 놓으세요.”

여 직원이 손짓한 탁자 위에 오 대리는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보자기를 걷자마자.

“어머…….”

여 직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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