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생 (2)
* * *
터벅. 터벅.
강태평이 고속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가 지나온 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그를 뒤돌아봤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강태평이 아니라, 그가 들고 있는 투명 케이스를 돌아본 것이다.
한번이라도 투명 케이스를 본 사람이라면,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분명 재질은 종이 같아 보이는데, 생동감이 너무 뛰어나서.
아이부터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아홉 난쟁이가 있는 듯했다.
― 햄스터인가?
― 분명 모습은 사람인데.
― 뭔지 모르겠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나가는 사람들은 난리인데, 강태평은 태평했다.
철컹.
그는 버스에 올라타서, 투명 케이스를 무릎 위에 놓았다.
이제 여행은 끝났고, 밤새 종이를 접어서 너무 피곤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톡톡.
누군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뭐야?’
강태평은 이제야 자세히 봤는데.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강태평이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실, 버스터미널을 오는 길에 강태평과 투명 케이스를 봤었고.
마침 그가 옆자리에 앉자, 투명 케이스를 세심하게 관찰한 것이다.
“저요?”
강태평은 흠칫 놀라서 여자에게 물었고, 여자의 시선은 아직도 투명 케이스의 아홉 난쟁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죄송해요. 쉬시는데.”
“아닙니다.”
“저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네?”
강태평은 황당해서 여자를 바라봤다.
“저도 이런 거 하나 갖고 싶어서요.”
이 말에 강태평은 피식 웃고 나서 대답했다.
“사긴요. 제가 만든 겁니다.”
“어머…….”
그녀는 깜짝 놀란 눈으로 강태평을 바라봤다.
“이, 이걸요?”
“네.”
“대박…….”
그녀는 투명 케이스에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까이하여, 종이 모형을 자세히 바라봤다.
투명 케이스는 강태평의 무릎 위에 있었고.
무릎 쪽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투명 케이스를 보는 옆자리 여성.
누가 보면 오해 살 수 있는 자세였다.
“에헤이.”
강태평은 투명 케이스를 가운데 팔걸이 위로 옮겨놓고, 몸을 왼쪽으로 빼었다.
“이거 종이로 만든 거예요?”
“네, 종이로 접은 겁니다.”
“그러니까, 종이접기요? 종이학 같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강태평은 생각했다.
‘종이접기하면 종이학부터 떠오르는구나.’
“뭐, 그렇죠.”
“더 대박.”
강태평은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졸린 척 눈을 감았다.
‘제발, 이제 그만 물어봐라. 졸려 죽겠다.’
“나도 이런 거 하나 갖고 싶다.”
쎅― 쎅―.
강태평은 대꾸하기 싫어서 일부러 잠이 든듯한 고른 숨소리를 내었다.
“혹시 파실 생각은 없으세요?”
“…….”
그래도 강태평은 대꾸를 하지 않자, 그녀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 연락처 좀.”
* * *
오후쯤 집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에 몰두하긴 했지만, 겨우 하룻밤이었다.
이 정도까지 피곤한 느낌이 드는 건 좀 의아했다.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게, 약간 몸살기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손끝에 얼얼한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손이 저린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기력이 돌아왔을 때쯤.
난 투명 케이스 속의 내 첫 작품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일생’.
부제는 ‘아홉 난쟁이’.
‘할아버지의 일생’은 정식 작품명이고, ‘아홉 난쟁이’는 작품을 봤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거참 신기하단 말이야.”
내가 봐도 참 생생하다.
대작품 류진(龍神)에 비한다면 섬세함이 좀 덜했다. 류진(龍神)은 정말 용의 비닐 하나까지 표현될 만큼 디테일한 작품이니까.
하지만 내 작품 ‘할아버지의 일생’은 류진(龍神)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흠……. 뭐랄까.
종이 같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설레발 치지 말자.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아야 진짜지.”
어쨌든 작품은 완성되었다.
종이접기 전문가를 만나서 의견을 들어보면 확실해질 것이다.
내일 퇴근 후 네모튜브를 찾아가려 다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난 수화기를 들었다.
드르르. 덜컥.
[네모삼촌~.]
[어이~, 강 사장님~. 웬일이야?]
[내일 시간 되세요?]
[응? 왜?]
만나자는 말을 하려다가, 지난주 네모삼촌이 들고 왔던 유우나 상의 바니걸 피규어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네모삼촌이 약간 어려워졌다.
[흠! 작품 완성됐거든요. 시간 괜찮으시면 내일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우왓! 진짜?! 빨리 됐네?]
네모삼촌은 갑자기 큰 환호성을 질렀다.
[아, 네.]
[오 마이 기릿기릿. 고텐구 스코이 짱나 데스요.]
흥분한 네모삼촌은 이상한 외계어를 쏟아내었다. 약간 일본어 같기도 하고. 그냥 개소리 같기도 하고.
[만나야지! 당연히 시간 내야지!]
[네…….]
외계어를 듣고 나니 더 거부감이 들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네모튜브 사무실로 올 거지? 언제 올 거야?]
[아, 아니요. 혹시 사랑산성으로 오실 수 있어요?]
[사랑산성?]
[네, 일반인들 시각도 중요할 것 같아서요. 저희 직원들도 함께 보고 의견 주고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 알았어. 그것도 좋지. 그럼 내일 갈게.]
[네, 그럼 3시까지 오세요. 시간 맞춰서 오셔야 해요. 일찍 오시면 안 돼요. 영업 때문에.]
[알았어~. 내일 봐.]
* * *
다음 날, 사랑산성.
“어이쿠야~, 잘 쉬고 오셨어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최경리가 날 반겨주었다.
말의 리듬이…… 비꼬는 투다.
“어~, 최경리도 잘 쉬었지?”
“네에~, 내 의지와 상관없지 잘 쉬었죠. 뭐. 하루 전날 강제 연차를 통보받다 보니.”
“…….”
변 이사가 지난주 금요일을 강제 연차 처리를 했나 보군.
“왜~, 금요일이라 쉬기 좋았잖아. 어디 놀러 가기도 좋고.”
“어우~, 너무 좋죠~. 근데 금요일 당일 날 예약 잡기가 쉽나요? 아무 데도 못 가고 방바닥만 긁었죠.”
“에이~, 최경리가 잘못 알아본 거야. 예약 안 하고도 갈 수 있는 곳 많아. 예를 들어…….”
‘모텔’이라고 말할 뻔하다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예를 들어 뭐요?”
“아니야……. 하여간 잘 찾아보면 있는데. 열정이 부족했구만~. 하하.”
“호호. 열정이요? 다음번에도 하루 전날 강제 연차 통보받으면 고용노동부에 연락해보려고요. 이게 맞는 건지. 그 정도 열정은 있죠.”
꿀꺽.
‘고용노동부’라는 단어에 난 바로 눈을 깔았고.
최경리는 미소지으며 날 바라봤다.
그녀가 한마디 더 할 찰나에.
“최경리야, 그냥 회사를 나가. 나가라고. 맘에 안 들면 나가면 되잖아.”
그때, 구세주 변 이사가 나타났다.
“연락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맘에 안 들면 나가면 되지. 나이도 젊은 사람이.”
“칫…….”
변 이사의 등장에 최경리는 눈을 흘기고는 사라졌다.
툭. 툭.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강 사장님, 고생했어.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이네.”
“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변 이사는 걸어가는 최경리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하하. 사장이 왜 직원을 무서워하나?”
“그러게요. 이상하게 최경리만 보면 쫄리네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째…… 목표한 건 잘 달성했고?”
“아, 네. 다행히 완성은 했습니다.”
“어디 한번 보자. 궁금하다.”
변 이사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또한 반년 전쯤부터 네모튜브 구독자다. 종이접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있었다.
“아……. 조금 있다가 보여 드릴게요.”
‘할아버지의 일생’을 들고 충주버스터미널을 향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렸다.
이유야 어쨌든 이 작품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레스토랑이 쉬어서, 오늘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할 텐데.
지금, 아침부터 작품을 꺼내면 직원들 집중력을 흩트려 놓을 것 같았다.
“그래? 왜?”
영문을 모르는 변 이사로서는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따가 보시면 아십니다. 하하. 점심 영업 끝나고 보여 드릴게요.”
변 이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노란색 보자기에 싸여 있는 케이스를 보았다.
오후 3시.
여느 때처럼 점심 영업은 정신없었고.
지난주 금요일 예약 캔슬된 손님들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더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겨우 월요일인데.
직원들은 전부 소금물에 절여지고 나온 듯한 얼굴이었다.
뒷정리가 다 되어 갈 무렵.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응? 이 시간에 누구지?”
최경리의 물음에 난 아차 싶었다.
오늘 점심 영업 후에 일정을 직원들에게 얘기 안 했구나.
“김지안 대리, 가서 문 좀 열어드려.”
“누군데요?”
“아~, 네모튜브야.”
“네모튜브?”
“우리 공통과업 있잖아. 종이접기 사업. 그거 때문에 오신 거야.”
“아……. 네.”
김지안은 피곤한 표정으로 현관을 향했고.
이 말을 들은 최경리의 얼굴은 벌게졌다.
“사장님, 잠깐 얘기 좀 해요.”
“변 이사님 어디 가셨어?”
난 최경리의 말에 대답 대신, 변 이사부터 찾았다.
이 타이밍에 어디 간 거야.
내 물음에 오 대리는 모른다고 했고.
최경리의 따발총은 시작되었다.
“지난주 강제 연차도 그렇고요. 오늘 뻔히 바쁜 하루 보낸 걸 알면서도…… 어떻게 사전에 말도 없이…….”
미안하다. 정신없었다.
이치에 맞는 말만 하니, 반박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점점 고개가 숙여가고 있을 때쯤.
“자자. 손님 오셨어. 모두 조용.”
그때 다행히 변 이사가 나타났다.
밖에서 담배 태우고 있었나 보다.
“강 사장님, 손님들 4번 룸으로 모셨는데.”
“아, 네. 가시죠.”
변 이사를 따라서 주방을 나서는데, 오 대리만 따라왔다.
“전 직원 다가는 거야. 최경리 과장, 김지안 대리도 따라와.”
덜컹.
4번 룸 안으로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방 안에는 네모삼촌뿐만이 아니라, 네모 씨와 정카까지 와 있었다.
“와 다 오셨네요?”
네모 씨도 약간 놀라운 표정이었다.
“와, 직원들 다 오시는 거예요?”
사랑산성과 네모튜브 모두가 모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 간에는 명함을 나누며 인사를 나누었다.
“엇. 로봇 누나다.”
혼자 사랑산성을 종종 방문했던 정카는 최경리를 보며 씩 웃었고.
최경리도 단골인 그를 알아본 듯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손님, 안녕하세요.”
사랑산성 5명. 네모튜브 3명.
총 8명이 4번 룸에 모였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정리되었을 때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변 이사와 오 대리 외에는 모두 지금 왜 모였는지 모른다.
“자, 다들 모이셨으니까.”
난 노란색 보자기에 쌓인 케이스를 들어서, 노래방 기기 앞에 있는 안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이 케이스에 집중했다.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는데, 특히 네모삼촌은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었고.
흥분한 그의 거친 콧김 소리가 상당히 컸는데, 노래방 안에 말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종이접기 공예를 도전하려는 건 모두 알고 계실 거고……. 첫 창작물을 완성했거든요.”
“…….”
“작품 제목은 ‘할아버지의 일생’인데요……. 일단 한번 보시죠. 보여 드리면서 설명할게요.”
촤락~!
난 케이스에 덮인 보자기를 훌렁 벗겼고.
“오…… 오…….”
투명 케이스 안의 붉은색 운용지로 만든 9명의 난쟁이.
‘할아버지의 일생’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
탄성과 정적만 가득했는데.
혹시나 해서 난 밑밥을 깔았다.
“첫 작품이니까, 영 아니다 싶으면 다시 만들 생각하고 있거든요.”
“…….”
“요상한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작업해서, 집중을 못 하기도 했고요…….”
터벅. 터벅.
그때, 네모삼촌이 홀린 듯 일어나 ‘할아버지의 일생’이 놓인 안주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음?!
“됐어……. 됐어…….”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혀 있고,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행복해……. 고맙습니다.”
그는 안주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