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92화 (92/156)

인간의 일생 (1)

* * *

충주시 봉방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요기어때’ 어플로 최저가 검색하여 봉방동에 있는 ‘넥시’ 모텔을 찾아왔다.

모텔은 잘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일이 없다.

‘요기어때’는 작년에 변 이사와 부산 출장 시에 깔았던 어플이다.

내가 찾은 충주시 모텔 최저가.

1박에 28,000원.

내일 버스 타러 가기에 위치도 괜찮고, 어차피 혼자 자는 거 굳이 비싼 곳 필요 없어서 이곳으로 왔다.

오늘 밤을…… 불살라 볼 계획이다.

모텔에 오기 전에 문구점에 들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종이접기를 좋아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이라도 만들고 싶다.

오후에 할아버지를 만나서 느꼈던 인간의 일생. 그 감정을 고스란히 색종이에 쏟아내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프런트 앞에서 인사했다.

안은 대부분 가려져서, 직원의 손만 보였다.

“어서 오세요. 방 드려요?”

“요기어때로 예약하고 왔습니다.”

“아, 네. 성함이?”

“강태평입니다.”

직원은 안에서 뭔가를 검색해 보더니.

“여기요.”

방 열쇠와 세면도구 세트 2개를 건네었다.

“세면도구는 하나면 됩니다.”

난 하나는 두고, 열쇠 하나와 세면도구 하나만 챙겼다.

돌아서 가려는데.

“잠시만요.”

프린트 아래의 조그만 구멍으로 직원의 눈이 보였다.

“옆에 들고 계신 거 뭐예요?”

내 옆구리에는 운용지 한 묶음과 완성품을 담을 투명 케이스가 있었다.

“그냥 종이랑 투명상자입니다. 방에서 뭐 좀 하려고요.”

“혼자 오셨다고 했죠?”

“네.”

“흠…….”

덜컹.

직원은 프런트에서 나왔다.

목이 다 늘어난 후줄근한 흰색 티를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날 이리저리 살피더니.

“진짜 종이가 맞긴 하네.”

날 보는 눈빛이 수상쩍었다.

“또 뭐 있습니까?”

“네? 이게 다인데요? 근데 왜 그러시는 거죠?”

내 돈 주고 모텔에 쉬러 왔는데, 그의 눈빛이나 행동이 거슬렸다.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흠! 방 깨끗하게 써주시고요. 물건 훼손하시면 안 됩니다.”

“…….”

“내일 퇴실하실 때, 체크아웃 점검합니다. 이 점은 유의해주세요.”

모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룸 확인을 다 하나?

아무래도 내가 혼자 온 데다가, 옆에 들고 있는 운용지 때문에 오해하는 듯했다.

근데…… 이런 큰 종이로 할 게 뭐가 있다고. 도대체 뭘 오해하는 걸까?

“아니면 숙소 이용 안 하셔도 됩니다. 환불해 드릴 테니까.”

안 그래도 그냥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그 얘기를 하니 오기가 생겼다.

“방은 제가 알아서 잘 쓸 테니까요. 내일 확인을 하시든지 좋을 대로 하세요.”

난 대답은 듣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 * *

새빨간 카펫의 좁은 통로 지나 예약한 방에 도착했다.

벌컥.

오래되어 보이는 복도와는 달리 방은 깔끔했다.

빨간색 벽지, 연두색 테이블, 새하얀 침대 시트

좀 안 어울리는 색상 대비이긴 했지만, 그래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만 한쪽 벽면은 여성 실루엣 그림이 있었고, 천장에는 유리 거울이…….

침대에 잠깐 누워봤는데, 천장으로 비친 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좀 이상했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상상하지 말아야지. 내가 외롭긴 한가보다.”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지만, 오늘 밤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참았다.

“일단 씻자. 땀도 많이 흘렸고.”

모텔 방 안의 정적이 이상해서, 자꾸 혼잣말하게 된다.

물도 잘 나오고, 욕실도 깨끗했다.

28,000원짜리 방치고는, 뭐…….

건물은 오래되어 보였는데, 내부는 리모델링을 했나 보다.

저녁 8시.

모텔에 오기 전 순댓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 배도 부른 데다가, 씻고 나니 몹시 나른했다.

잠깐 누워서 쉰다는 게 눈이 감기려 해서, 난 벌떡 일어났다.

“6,000만 원짜리 하루인데. 이래서는 안 되지.”

짝. 짝.

난 두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을 켜서 할아버지의 어릴 적부터 지금 모습까지 차례대로 자세히 보았다.

쓱삭. 쓱삭.

스케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영감이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작품 생각만 했다.

이미 완성품은 머릿속에 그러져 있다. 고민하면서 그릴 필요가 없기에, 금세 끝이 났다.

그다음…… 종이를 어떻게 접을 것인가?

‘한 장의 종이로 접착, 분할, 결합하지 않고…….’

정통 방식으로 할 것이다.

며칠 전 유우나 상과 했던 창작 종이접기 과정을 떠올렸다.

‘전체 윤곽의 비율을 고려하여 등하고…….”

할아버지의 전체 일생을 담을 것이기에 가로로 긴 작품이 될 것이다.

균등한 비율 배분이 중요했다.

슥삭. 슥삭.

스케치에 어느 정도 비율 배분까지 완성된 후.

난 멀리 두고 한번 보았다.

괜찮다. 자신감이 더 생긴다.

“그래, 이대로 가면 돼.”

모텔은 적막했다.

복도의 발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카펫을 깔아놓은 영향도 있겠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숨죽이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약간 시끄럽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도서관 못지않게 조용했다.

슥삭. 슥삭.

난 운용지를 256등분으로 접었다.

등분이 많을수록 더 디테일한 작품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진의 픽셀과 비슷한 개념.

유우나 상을 만들 때 64등분으로 했었고, 만들 때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었다.

물론, 작품의 크기 때문에 종이가 더 크기도 했지만.

판매할 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이기에,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우―.

이제 모양 잡기에 들어간다.

처음 이 영감을 불어 일으켜 준 사진을 핸드폰에 띄었다.

# 작품명: 할아버지의 일생

1) 어릴 적부터의 할아버지의 일생을 다룸

2) 일생의 대표 모델 9명으로 함.

8세, 16세, 25세, 34세, 42세, 54세, 61세, 71세. 현재.

3) 눈가의 주름에 포인트. 감정선이 이어지도록.

4) 9명이 모두 이어진다. 분리, 결합하지 않는 정통 방식 종이접기.

부모님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8세 모습.

머리로부터 손으로.

몸으로부터 옷으로.

창작 접기의 배운 순서대로 접어 나갔다.

등분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디테일을 잡는 데 시간이 꽤 걸렸고.

유우나 상 접을 때처럼 빠르게 되지 않았다.

슥사. 슥삭.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휴우―. 겨우 한 명 끝냈다.

시계를 보니, 9시였다.

총 만들어야 할 인원은 9명.

“밤새워야겠네.”

종이학 접을 때도 그렇고……. 어째 자리 잡고 종이접기를 하면 하드코어로 가게 되는지 모르겠다.

슥삭. 슥삭.

작품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25세.

즉, 세 번째 할아버지 모형까지 완성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졸리지는 않았다.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으허헉.]

[커컥.]

어디선가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헛……. 뭐야 무슨 일이지?

모텔의 정적을 깨는 이상한 소리에 내 손은 멈췄다.

[으허헉.]

꿀꺽.

뉴스에서 본 모텔 살인 사건이 떠올랐다.

여차하면 신고할 생각에 핸드폰을 붙들고, 벽 너머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으허헉.]

[어이야. 나 죽어.]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남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 좀 중성적이었다.

[으허헉.]

자세히 분석하며 들어봤더니.

리듬감이 있었다.

박자감이라고 해야 할까.

뭐, 비슷한 단어지만 어쨌든…… 위급함에 부르는 비명 소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바람 빠지는 듯하면서도 숨넘어가는 소리. 왜 중성적으로 들릴까.

곰곰이 생각하며 들어봤는데.

옆집 아줌마가 김장하다가 허리 펼 때 내던 소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분이시구나.”

이제야, 좀 짐작이 되었다.

신음 소리라기보다는 숨넘어가는 소리에 가까운.

중년의 열정이었다.

[으허헉.]

자꾸 들리는데, 기분이 야릇하다기보다는…… 뭔가 좀 거북했다.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어도 오래된 모텔이라 방음이 안 되는 건가.

휴우―.

언젠간 끝이 나겠지.

무시하고 종이접기에 집중하려 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지만.

중간에 쉬는 타임은 있었지만, 끝이 나질 않았다.

조용해서 집중할 만하면 또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가 용각산을 잡수셨나.”

종이접기는 할아버지 34세에서 멈춰 있었고, 진도가 안 나갔다.

[으허헉.]

하……. 이걸 어쩐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원래 모텔이 자는 곳이지, 종이 접는 곳은 아니니까.

“모텔을 옮길까.”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면, 환경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다른 모텔로 옮긴다고 달라질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소음 체크 후 체크인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지금이 새벽 1시인데, 방이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어매~.]

“씨바.”

이제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종이접기에 손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문득, 수능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이럴 때 간단한 방법이 있었지.

난 3M 귀마개를 사러 나갔다.

귀마개를 끼어도 소리는 좀 들렸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난 다시 종이접기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고.

모텔 방 한구석에서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종이를 접고…… 또 접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왼쪽으로 접고, 삼각 접고, 돌려 접고, 꺾어 접고…….

쓱삭. 쓱삭.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설 무렵.

종이 모형의 형태는 완성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귀마개를 열어봤다가, 재빨리 다시 꽂았다.

“와, 아직까지.”

이 정도면 체력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오늘만 사실 분들인 것 같다.

이제 다듬기를 할 준비를 했다.

오른손 검지, 중지, 약지를 손톱깎이로 자르고, 파일(야스리)로 손톱 끝을 다듬었다.

공구 모양으로 만든 뒤.

꾹. 꾹.

스윽. 스윽.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할아버지의 전생을 나타내는 9명의 사람을 다듬어갔다.

눈썹, 눈매, 입 모양……. 특히 포인트로 삼은 눈가 주름의 변화에 집중했다.

내 손은 춤을 췄고, 섬세했다.

손끝이 닿는 곳에 종이 인형에 미소가 살아났으며.

생기마저 돌았다.

그에 반해 난 무언가 소진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금손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피곤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오전 10시.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으아악―!”

난 괴성을 질렀다.

해냈다.

결국…… 완성해냈다.

* * *

저벅. 저벅.

모텔 계단에서 내려오던 강태평은 어제 프런트의 직원과 마주쳤다.

“잘 쉬셨어요?”

직원은 인사를 하며 강태평의 겉모습을 살폈다.

‘뭐여? 왜 이렇게 후달려 보여? 어제 혼자 잤는데……. 화장실 휴지까지 다 쓴 거 아니여?’

“잘 쉬긴요. 아주 불살랐습니다.”

강태평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답했다.

“어제 말씀드렸던 대로, 잠시 방 체크 좀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잠시 후. 방 체크 후 직원은 내려왔다.

‘침대 옆 각 티슈도 그대로인데. 밤새 뭘 한 거지.’

“깨끗하게 쓰셨네요.”

“네, 더럽게 쓸 이유가 없죠.”

강태평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모텔 입구를 나섰다.

직원은 강태평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때…….

“저, 저건 뭐지?”

강태평의 옆구리에 낀 투명 케이스 안.

분명 어제 들어올 때는 비어있던, 투명 케이스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직원은 은은한 광채가 나는 그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뭐야? 아홉 난쟁이야?!’

사람 같이 생긴 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해서…….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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