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길 (2)
* * *
“네에?”
네모삼촌은 스케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우나 상…….”
꿀꺽.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 대리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러세요?”
“제발 부탁이야. 이거 나 줘.”
네모삼촌이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약간 무서웠다. 크레이지 모드.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해야겠다.
“아…… 알았어요. 일단 종이접기 끝나고 나면요.”
“약속한 거야.”
“네.”
휴우―.
네모삼촌은 한숨을 내쉬었다.
“널…… 이런 하얀 도화지 속에 둘 수 없어. 너무 추워 보이잖아…….”
지금이라도 종이접기 모델을 바꿀까.
만약 유우나 상을 이상한 모양으로라도 접었다가는 살인 날 것 같았다.
네모삼촌은 과하게 몰입되어 있었다.
“와……. 사장님, 그림도 잘 그리세요?”
“응?”
오 대리의 물음에 난 반문했다.
“아니, 무슨 구상 스케치를 그리라니까, 작품을 만드세요. 하하.”
“…….”
오 대리의 말에 다시 찬찬히 내가 그린 스케치를 보았다.
흩날리는 핑크색 머릿결.
촉촉한 눈매.
망사스타킹은 촘촘했다. 절대로 뜯기지 않을 만큼.
연필 하나로 그렸지만, 연필심의 흑갈색은 유우나 상의 모든 것들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릴 때는 몰랐는데, 멀찍이서 다시 보니.
꽤 그럴듯했다.
“흠……. 그냥 스케치지, 뭐. 좀 괜찮긴 하네.”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유우나 상……. 유우나 상…….”
기다려주려 했는데, 이제 약간 거부감 들려 한다. 네모삼촌의 취향은 공감하기가 도저히 어려웠다.
“삼촌, 빨리 진도 나가시죠.”
“아……. 잠깐만.”
“저 시간 끄는 거 싫어합니다. 안 따라주시면 선생님 바꿉니다.”
“힉. 알았어.”
네모삼촌은 종이접기로 완성된 유우나 상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 심리를 알기에 난 약간 협박성으로 말했고, 역시 잘 통했다.
“종이접기 다 끝나고 나면, 에밀리아도 한번 그려주면 안 될까?”
에밀리아가 뭔지 모르겠지만, 유우나 상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오 대리, 안 되겠다. 선생님 바꿔야겠다.”
“자! 다음은!”
네모삼촌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등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하거든. 인간형 종이접기는 32등분 혹은 64등분을 많이 해.”
“아까 등분 수가 높을수록 퀄리티가 높다고 했죠?”
“맞아. 등분이 높을수록 더 디테일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까다롭고 어렵지.”
“알겠습니다. 그럼 32등분으로 하겠습니다. 연습이니까요.”
“오케이, 유우나 상이니까 64등분으로 하기로 하고…….”
뭐야? 왜 물어본 거야?
“뭐해? 어서 접어. 종이부채 접듯이 64개로 쪼개어 접으면 돼.”
“네…….”
사각. 사각.
일단 운용지를 시키는 대로 접었다.
최대한 빨리 접었다.
지금의 네모삼촌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오래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얼굴 부분부터 만들어 보자고. 일단 머리카락이 비대칭이잖아. 그런 대칭감도 고려해야 해.”
“네…….”
“그다음 팔. 종이 끝 혹은 안쪽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
막상 작업에 돌입하니, 네모삼촌은 진지해졌다.
그의 지시에 따라서 열심히 만들어 보았다.
팔―가슴―다리―장식 순으로 작업을 했는데.
아주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규어의 모습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종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뼈대와 구조는 어느 정도 만들어져 가는데, 원 모델과 비슷해질 거라는 기대가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근데 의외로 네모삼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지막이 치마야. 이렇듯 전체적으로 보면,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안에서 바깥 순으로 만들어 간다고 보면 돼.”
“네…….”
조물. 조물.
어느덧 치마도 만들어졌다.
아주 짧은 치마여서, 만드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네모삼촌.”
“응?”
“아직 더 있는 거죠?”
“이게 거의 다 한 거야. 95% 정도 끝났다고 볼 수 있지.”
“네?!”
겨우…… 이거라고?
너무 투박했다.
종이접기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비교하자면 대작품 류진(龍神)과의 디테일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걸 어떻게 팔아요?”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오 대리도 한마디 했다.
유우나 상이라고 설명해줘야 알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수준.
그냥 종이접기를 떠올렸을 때 딱 상상되는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잘못 집었나? 가장 확률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여 종이접기를 신사업의 집중과업으로 삼은 건데.
“이걸로는 못 팔지.”
네모삼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다듬기’.”
다듬기?!
“예술이라는 걸 원래 한 끗 차이라고. 마무리를 어떻게 다듬느냐가 중요해.”
네모삼촌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 * *
“어떻게 다듬는데요?”
“그건 나도 몰라.”
“…….”
“알기는 하지만 안 알려줄래. 그게 태평 씨한테 좋을 거 같아.”
난 네모삼촌을 한참을 바라봤다.
갑자기 뭔 소리인지.
“다듬기라는 건 작가마다 특색이 너무 달라. 그리고 딱히 정해진 것도 없지.”
“…….”
“지금 자네가 만든 큰 뼈대를 목적에 맞게 디테일만 잘 잡으면 되는 거야.”
네모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고정용 본드를 쓰든, 뾰족한 것으로 압력을 가하든. 손이든 도구든 상관없다는 거야. 다만, 정통 방식을 고수하겠다면, 자르거나 혹은 접착제를 이용하여 붙이는 걸 하면 안 되겠지.”
만들어 내가 만들어 놓은 종이 모형을 보았다.
지금 모습은 유우나 상보다는 에일리언에 더 가깝다.
이걸 다듬어서 디테일을 잡아가면 된다는 거지. 방식은 상관없고.
“강 사장님, 이해되나?”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할 수 있겠지?”
“일단, 해보는 거죠.”
음……. 그렇다면.
“오 대리.”
“네.”
“미안한데, 손톱깎이 세트 하나만 사다 줄래?”
“네? 그건 갑자기 왜요?”
“이유는 묻지 말고, 나 지금 집중해야 하니까.”
“알겠어요.”
오 대리가 나간 뒤, 난 유우나 상 피규어에 집중했다.
살의 굴곡. 망사의 크기. 무릎 뒤의 힘줄. 피규어에 표현된 모든 디테일에 집중했다.
작품으로 다가서니, 민망함이 사라졌다.
“네모삼촌.”
“응?”
“유우나 상 옷 벗겨봐도 됩니까?”
“미쳤어?”
네모삼촌은 정색했고.
덜컹.
그때 오 대리가 들어왔다.
“강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땡큐.”
옷의 굴곡은 속살을 통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피규어의 옷 속이 궁금했지만……. 네모삼촌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여 관두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난 손톱깎이로 오른손의 검지, 중지, 약지 깎았다.
세 손가락 모두 뾰족한 각이 생기도록 잘랐다.
그다음에 파일(야스리)를 들어, 문대기 시작했다.
슥삭. 슥삭.
그렇게 각 손톱의 모양을 잡아갔다.
검지는 삼각 모양.
중지는 원형 모양.
약지는 톱니 모양.
“흐음…….”
네모삼촌은 신음 소리를 내며, 이 모습을 지켜보았고.
오 대리는 눈쌀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표정만 봐도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뭐 하는 짓거리야.”
손톱을 내가 필요로 하는 공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어느 정도 완료되었을 때쯤.
“일단 제 맘대로 해볼게요.”
네모삼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핑거 매직은 예고 없이 시작됐다.
투닥. 투닥.
치익. 치익.
꾹. 꾹.
톡. 톡.
검지, 중지, 약지의 손가락 공구는 종이 유우나 상을 사정없이 다듬기 시작했다.
엉덩이 아래로 회오리치는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살아나기 시작했고.
피규어처럼 얼굴의 반만 한 눈도 생겨났다.
바니걸 복장 뒤꽁무니에 달려 있는 솜사탕 모양 장식도 생겨났으며.
허벅지와 종아리의 굴곡. 검은색 망사스타킹의 구멍까지
“아~, 미치겠네.”
무슨 이유에서인지 네모삼촌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유우나 상의 모습은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흠…….”
난 유우나 상 종이 모형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았다.
꿀꺽.
그때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네모삼촌의 조용히 내게 물었다.
“다 된 거야?”
“쉿―.”
“…….”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와 완벽한 교감 상태다.
“아……. 이래서 그렇구나.”
뭔가 하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스윽. 스윽.
꾹. 꾹.
유우나 상 입안에 검지 손톱을 넣어서, 꾹꾹 찍어눌렀다.
마지막으로…… 혀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야 생기가 제대로 도는 것 같다.
“완성됐습니다.”
종이 공예로서의 내 첫 작품.
유우나 상이 완성되었다.
“맙소사…….”
네모삼촌은 유우나 상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해했다.
“고맙네. 고마워…….”
* * *
전철 안. 집에 돌아가는 길.
네모삼촌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더 가르칠 거 없네. 이제 자네가 접기를 원하는 대상만 찾으면 될 거 같아.’
창작이 끝난 후, 네모삼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한참 걸렸었다.
많은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러지 말고, 상품이 될 만한 모델 하나 알려주시는 게 어떠세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의미 없어.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드는 예술은 한계가 있어. 내 말을 믿고, 그냥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대상을 찾아. 무엇이든지 간에.’
옆에 있던 오 대리가 물었다.
“혹시 생각나는 대상 있으세요?”
“그러게…… 계속 고민을 해보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오 대리는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영감이란 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지 억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
“MS사에 있을 때도 그랬거든요. Planning Team(기획실)에서 성과발표 하는 거 보면, 혁신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더라고요. 하지만 사전 작업은 반드시 있어야 하죠.”
“사전 작업? 그게 뭔데”
오 대리는 두 팔을 활짝 펴며 말했다.
“마음을 열어놔야 하죠. 기회를 기회라고 느낄 수 있도록.”
“흠…….”
“그리고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하는 사람한테 기회는 찾아옵니다. 고민은 영감의 열쇠거든요.”
오 대리 데리고 오길 잘했네.
큰 회사에 있었던 사람이라 뭔가 좀 아는 듯했다.
“그럼 뭐…… 계속 고민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하나?”
“좀 더 빠르게 효과를 보고 싶으시다면, 전 여행을 추천드립니다.”
“…….”
“강 사장님 한 번도 쉬신 적 없잖아요? 제로백 컴퍼니 때부터요.”
주말에 김성애 수녀님 뵈러 간 것 말고는……. 하긴 거기 가서도 청소기로 일했었지만.
“연차 하루만 내고, 머리 좀 식히십시오. 집에서 쉬시지 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 보고 풍경도 보시면서요.”
“…….”
“제가 장담하는데, 분명 놀라운 영감이 떠오를 겁니다.”
피식.
그의 말이 재밌었다.
이런 걸 어떻게 장담한단 말인가?
“영감 못 떠오르면? 어떻게 그리 쉽게 자신하지?”
오 대리. 즉 앤더슨 오는 자신의 눈을 두들기며 말했다.
“봤으니까요.”
“…….”
“지난 일주일간 사장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걸 직접 봤으니까요.”
오 대리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 사장님께 필요한 건 오로지 약간의 여유입니다. 무조건 영감 떠오릅니다.”
“…….”
“확신합니다. 떠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