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88화 (88/156)

창작의 길 (1)

* * *

“와……. 이건, 뭐.”

오 대리는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탄성만 내지를 뿐이었다.

우리 세 사 사람 사이에는 종이로 접은 개구리, 토끼, 학이 있었다.

네모삼촌은 한껏 진지하게 말했지만.

이런 종이모형을 앞에 두고, 역사와 세계를 운운하는 네모삼촌의 모습이…….

오 대리의 눈에는 신기하다 못해 제정신으로 안 보이는 듯싶었다.

“네모삼촌, 진정하세요. 지금 너무 감정 이입하신 거 같아요.”

급기야 난 그를 말렸다.

종이접기 얘기만 나오면 쉽게 흥분하는 그였다.

“아, 흠흠. 미안.”

그러면서 네모삼촌은 오 대리 눈치를 살짝 보았고,

오 대리는 여전히 기괴하다는 표정으로 네모삼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어쨌든 작품만 좋으면 충분히 돈이 된다는 얘기에요. 유통 과정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네…….”

네모삼촌은 유통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오 대리는 돈 버는 데 네모삼촌 자신을 제외시킬까 봐 일부러 말을 아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네모삼촌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게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저 지금 아트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한시바삐 재능 있는 지원자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

“태평 씨, 우리는 정통 방식으로 가기로 했었잖아. 그거 기억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자, 다시 얘기해 줄 테니 잘 기억해 봐.”

# 정통 종이접기의 법칙

1) 정사각형의 종이를 사용.

2) 접착, 분할, 결합해서는 안 됨.

3) 완성된 작품을 어느 각도에서 봐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함.

네모삼촌은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는 창작을 할 것이기 때문에 참고할 다이어그램은 없어.”

“다이어그램이요?”

내가 반문하자 네모삼촌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아……. 미안. 기본 중의 기본이라서. 태평 씨 같은 실력자에게 들을 질문이 아니긴 한데, 절대 차로 배운 게 아니니까. 하하.”

기본 따위는 모른다.

처음부터 그냥 접었을 뿐이다.

“종이접기 책 같은 거 보면 종이 접는 순서가 나와 있거든. 그걸 다이어그램이라고 해.”

“아……. 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용어였다. 책은커녕 접는 모습을 따라서 접어본 적도 없다.

“다이어그램은 창작물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개념이긴 하지. 실력 있는 아마추어들이 류진(龍神) 같은 고급 창작 작품을 따라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복잡한 작품은 다이어그램이 없거든.”

약간 의미가 어려워서, 그의 말을 곱씹은 후 난 되물었다.

“그럼 아마추어들은 류진(龍神)을 어떻게 만들어요? 그게 눈대중으로 보고 만들 수준은 아니던데.”

네모삼촌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거기서 CP(Crease Pattern)가 필요한 거지.”

* * *

CP(Crease Pattern).

난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네모삼촌을 바라봤다.

“응? 아, 이 용어도 모르겠구나.”

네모삼촌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한 용지를 꺼내었다.

정사각형 종이였는데, 세로로 무수한 선이 있고 그 선위로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류진(龍神)의 CP(Crease Pattern)야. 아카네 아다미가 전체 공개한 유일한 하나의 CP.”

“…….”

“그러니까 CP라는 건 완성한 작품을 폈을 때 남은 자국을 표시한 것이거든.”

“아…….”

그러니까 류진(龍神)의 접힌 자국이라는 뜻이구나.

한국종이접기협의 전시장에서 봤던 류진(龍神)을 떠올려봤다.

용의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수염, 발톱, 눈매, 심지어 비닐 한 조각까지 모두 표현이 된 정교한 대작이었다.

CP(Crease Pattern)라는 걸 처음 보긴 했지만, 네모삼촌이 펼친 것은 정말 복잡했다.

“어때? 이런 걸 어떻게 다이어그램을 만들겠어. 만든 사람도 다시 만들기 쉽지 않을 텐데.”

류진(龍神)을 보지 못했던 오 대리는 우리 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오 대리, 뭔 얘기하는지 모르겠지?”

“네.”

“자, 이거 봐봐.”

난 핸드폰으로 류진(龍神)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우왓! 대박!”

디테일하며 기괴한 류진(龍神)의 모습을 보고, 오 대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걸 사람이, 그것도 종이로 만든 거라고요?”

네모삼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류진(龍神)과 네모삼촌을 번갈아 보고는, 오 대리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진짜 잘만하면 돈 되겠구나…….”

오 대리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생각했다.

다이어그램도 알겠고, CP(Crease Pattern)도 뭔지는 알겠다.

근데…… 이게 창작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

“네모삼촌. 근데 어차피 CP(Crease Pattern)도 남의 것 따라 하는 거 아닙니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지.”

“…….”

“이런 복잡한 창작물을 만들어내려면 CP(Crease Pattern)를 분석하고, 내 작품의 설계도를 구상해볼 필요가 있어.”

그런 의도에서 설명한 거였군.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겠나?”

“류진(龍神)을요?”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왜? 아무래도 무리인가?”

난 자세히 CP(Crease Pattern)를 보았다.

세로로 도대체 몇 등분으로 접은 건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위에 기하학적 모양은 어떻고.

“차라리 실물 보고 따라 만들라고 하면 하겠는데, 이런 도형 보고는 도저히 모르겠네요.”

“아~, 우리 녹화 준비하듯이 말하는 건가?”

“네.”

“흠……. 하긴 자네가 기가 막히게 따라 만들긴 했지. 그것도 업그레이드해서.”

울부짖는 공룡, 회오리 장미 등 이미 수많은 작품을 완성품만 보고 따라 만들어봤다.

하지만 류진(龍神)의 실물은 구할 수가 없다. 전시장 옆에 쭈구리고 앉아서 접을 수도 없고.

“그래, CP(Crease Pattern) 따라 접기 훈련은 할 필요 없겠네. 자네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맞는 방식이 아니겠어.”

“…….”

“그럼 바로 박스 플릿(Box pleat)으로 가기로 하지.”

* * *

# 박스 플릿(Box pleat)

주름접기 혹은 등분접기를 말함.

많은 주름을 잡아서 원하는 형태를 잡는 창작 종이접기 기법.

네모삼촌으로부터 박스 플릿에 대한 개념 설명을 들으며,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러니까 종이를 여러 등분으로 접은 후, 원하는 형태를 잡아가는 가는 창작기법이라는 뜻인데.

“그게 가능해요?”

“…….”

“류진(龍神)도 박스 플릿을 통한 창작인가요?”

“아마 그럴 거야. 작가마다 약간 스타일의 차이만 있을 뿐, 원리는 비슷하니까.”

오 대리는 옆에서 중얼거렸다.

“와……. 신기하네. 원하는 형태를 그리면서 종이를 구긴다는 건데……. 그렇게 해서 이런 정교한 작품이 가능하다고요?”

그의 중얼거림에 네모삼촌이 대꾸했다.

“그러니까, 아티스트 아니겠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고, 많은 훈련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거죠.”

“…….”

“일반인이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창작물을 하려면, 5년은 꾸준히 접어야 해요.”

“헤헷. 전 10년 해도 못 할 거 같아요. 손재주가 없어서.”

오 대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강 사장님.”

“네.”

“바로 창작해 보자. 내가 모델을 가지고 왔거든. 이 모델을 종이접기로 따라 하는 거야.”

지금 바로?

“네모삼촌이 좀 도와주실 거죠?”

“하하. 난 그만한 실력도 못 되기도 하고, 창작이란 건 혼자 하는 거지.”

“…….”

“하지만 원리와 이론은 옆에서 알려줄게.”

“네.”

“태평 씨의 첫 작품이 될 텐데. 내가 가장 최애하는 거로 가져왔지.”

네모삼촌은 가방에서 먼저 종이 한 묶음을 꺼냈다.

“운용지라는 건데, 공예용 한지라고 생각하면 돼.”

“네.”

“그리고~ 오늘의 모델이 될~.”

이어서 가죽 케이스를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내가 정말 아끼는 피규어거든.”

“피규어요?”

찰칵.

가죽 케이스를 열고, 네모삼촌은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내었다.

머리에 기다란 토끼 모양 머리띠를 하고 있는 바니걸.

핑크색 머리카락.

어깨가 훤히 보이는 아이보리 튜브톱.

하의가 거의 다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에 검은색 망사스타킹을 신은…….

눈동자가 얼굴의 반만 한 여자 캐릭터 피규어였다.

“이, 이게 뭐야.”

“헛……. 이런 감성이셨어요?”

오 대리도 야릇한 모양의 피규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피규어가 가죽 케이스 밖으로 나왔을 때부터 네모삼촌의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어서 와……. 유우나 상. 많이 답답했지.”

네모삼촌은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유라기장 알지? 거기 나오는 유우나 상이야.”

난 오 대리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게 뭐야? 알아?”

“몰라요. 만화 영화겠죠.”

유우나 상이 나왔을 때부터 네모삼촌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이쁘지?”

“…….”

“맞아. 이뻐. 이쁘게 만들어줘.”

혼자 물어보고 대답하는 수준.

오 대리는 네모삼촌을 이상하게 보며 수군거렸다.

“혹시 저분 결혼하셨어요?”

“미혼이야.”

“다행이네요.”

네모삼촌은 유우나 상을 조심스럽게 탁자 중앙에 올려두었다.

“근데 대상이 왜 이거에요?”

난 궁금해서 물었다.

“종이접기 창작의 기본은…… 자신이 진정으로 접고 싶어 하는 것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거든.”

“제가 얘를 진정으로 접고 싶어 한다고요? 처음 보는 앤데?”

“태평 씨의 취향을 모르기도 했고, 온 정성을 들여서 알려주기 위해서…… 내가 진심으로 접고 싶어 하는 대상을 가져온 거지.”

그럴듯하다.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나만큼이나 네모삼촌의 동기부여가 중요하기도 하다.

“자, 이제 시작하자.”

강태평은 표정을 굳히고, 네모삼촌의 말에 집중하였다.

“가장 먼저 간단한 구상 및 스케치를 해줘야 해.”

네모삼촌은 빈 종이와 연필을 내게 건네었다.

“종이접기로 구현될 모양을 스케치하고, 정사각형을 등분해서 신체의 어느 부분이 들어가게 할 것인지를 구상해줘야 해.”

그의 얘기를 들으며 강태평은 피규어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일단 그리려면 자세히 봐야 하니까.

“이 과정에서 작품의 비율과 전체적인 형태가 결정되게 되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종이접기 완성 형태를 잘 떠올리면서 그려보는 게 중요해.”

피규어를 자세히 관찰할수록 강태평은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리 피규어라도 의상 참 거시기하네……. 이걸 또 자세히 봐야 하니…….’

피규어 신체 구석구석을 살피기에 민망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피규어 참 리얼하네요.”

“하하. 그래서 행복해.”

“…….”

강태평은 뭐가 행복한지는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 그려봐. 등분 배분은 구도를 잡은 후에 해도 되니까.”

“…….”

“간단한 작품은 32등분, 퀄리티 높은 건 64등분 정도라고 보면 돼. 그 이상으로 해도 되고. 그러니까 사진에 픽셀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네……. 일단은 그려볼게요.”

슥. 슥.

강태평은 연필을 잡고 거침없이 그려갔다.

망사스타킹에 바니걸 모습의 유우나 상은 간단한 피규어는 아니었지만.

강태평의 손끝은 거침이 없었다.

“…….”

옆에서 강태평의 스케치를 바라보던 네모삼촌의 동공은 점점 커져 갔다.

오 대리도 심상치 않은 스케치 실력에 점점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림을 몇 년 만에 그려보지. 이렇게 쉬운 거였었나.’

강태평은 곧 연필을 놓았고.

네모삼촌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됐나요?”

흰 종이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유우나 상의 모습에 네모삼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거…… 나 주면 안 돼?”

# 그림 그리기

Before: 기억도 안 난다. 그려볼 생각도 안 했었다.

After: 종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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