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브리지 (2)
* * *
사각. 사각.
강태평은 무아지경이었다.
손에서 시작된 빛은 점점 번져서.
그의 온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손에서는 금색의 빛이.
푸르스름한 오라가 그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오 대리는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눈을 비비고 강태평을 다시 바라봤다.
“변 이사님, 지금 저에게만 보이는 거 아니죠?”
“분명 촛불은 4개인데, 5개가 있는 거 같네. 손이…….”
분명 두 사람의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었다.
네모의 신 추종자들은 그가 종이에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표현을 자주 했었다.
변 이사 또한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단순히 잘 접으니까, 그렇게 표현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래서…… 네모의 신이구나.”
“…….”
순간 변 이사의 머릿속에 강태평과 함께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을 살리는 촬영 실력. 감정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담아내는 사진. 매번 다르지만 소름 끼치는 맛을 내는 음식…….
‘태평이는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꿀꺽.
불현듯 다시 깨달은 것이다. 본인이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는지.
변 이사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강태평의 종이접기에 계속 집중했다.
“다 접었는데요?”
강태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변 이사와 오 대리를 바라봤다.
신의 학을 다 접는 데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몸을 더 지치게 했음에도, 분명 낮보다 두 배 정도 빨라진 것이다.
‘겨우 한 번 더 접었다고 그새 익숙해진 건가?’
변 이사는 보면 볼수록 강태평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거나…… 아니면 진짜 신이거나.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오 대리? 촬영 제대로 한 거 맞지?”
“네? 아, 네네. 잠시만요.”
오 대리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핸드폰 영상을 보았다.
이상 없이 잘 녹화되어 있었다.
“네, 완벽합니다.”
강태평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아오, 힘들다. 하하.”
강태평은 웃으며 다가왔고.
변 이사와 오 대리는 강태평이 다가오자.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이었다.
* * *
“뭐예요?”
난 황당해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웬 뒷걸음질?
킁. 킁.
땀 냄새 많이 나나?
10km 달리기 후 목욕은 했지만, 옷은 따로 가져온 게 없어서 그대로 입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뛴 건데.
난 다가가려던 걸 멈춰 서고 물었다.
“쳇. 지금 몇 시야?”
“9시 30분입니다.”
여기서 수유리까지 2시간은 봐야 한다.
변 이사가 내려준 뒤 전철 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귀찮은데……. 어차피 혼자 사는 거. 여기서 자고 갈까.
근데, 여기서는 자가용이 없으면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변 이사님~.”
“응?”
변 이사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집에 꼭 가셔야 해요?”
“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얘기 좀 하다가 주무시고 가는 건 어때요?”
어차피 1박 잡은 숙소다.
“아~.”
변 이사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야 좋지~. 근데 우리 아내가 외박을 싫어해서.”
“출장 왔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출장?”
변 이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중얼거렸다.
“그게 먹힐까. 당일 밤에 갑자기 출장 와서 못 간다고 하면…….”
“그래도 시도 한번 해보세요.”
“흠…….”
눈치를 많이 보는구나. 자녀들이 어린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니, 형수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변 이사가 통화하러 간 사이.
“강 사장님, 근데 저한테는 안 물어보세요?”
“응? 오 대리?”
난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자기는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차는 변 이사님이 갖고 계시잖아. 오 대리가 차 갖고 있었으면, 오 대리한테 부탁했지.”
“그럼 전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뭘 물어봐. 선택권이 없는걸.”
“…….”
잠시 후, 변 이사가 전화기를 들고 왔다.
“강 사장님.”
“네?”
“미안한데, 통화 한 번 해줄 수 있나? 아내가 바꿔 달라는데.”
“아……. 네.”
변 이사로부터 전화기를 받았다.
“아, 네. 형수님, 안녕하세요.”
변 이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아, 네네. 네~, 여기가 용인이거든요. 아~, 네. 아~, 알겠습니다. 네네~.”
뚝.
“뭐래? 얘기가 잘된 거야?”
변 이사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 네. 어느 정도만 잘됐습니다.”
“뭐라는데?”
“얘기 좀 나누다가 들어오라고 하시네요.”
“뭐어?!”
“용인이면 안 머니까. 늦게 와도 괜찮으니 들어는 오라고요. 외박은 안 된다고…….”
“근데 그렇게 쿨하게 대답한 거야?”
“이치에 맞는 말씀을 하셔서…….”
난 오 대리에게 카드를 건네었다.
“오 대리, 가서 캔 맥주 2개랑 커피 하나만 사 올래?”
“맥주 3개가 아니라요?”
“변 이사님은 운전하셔야 하잖아.”
“아~, 네. 알겠습니다!”
오 대리는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외박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 지금 가면 안 될까?”
변 이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님한테 이미 좀 늦게 갈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실 텐데요.”
“자기 지금 전략적으로 이러는 거 아니지?”
“하하. 설마요.”
잠시 후.
“위하여~.”
오 대리는 센스 있게 맥주 4캔을 사 왔고.
우리는 술을 비워갔다.
“강 사장님~.”
살짝 술기운이 오른 오 대리가 날 불렀다.
“응?”
“왜 진작 종이접기 안 하셨어요? 종이접기뿐만이 아니라, 미술, 공예 쪽으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실 거 같은데.”
“하하. 그래?”
난 술을 쭉 들이켜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라서. 그 정도 열정은 없었어.”
“아……. 그래요? 종이접기를 안 좋아해요?”
“어, 내가 잘하는 일이지. 좋아하진 않아.”
“그럼 지금은 왜…….”
“일이잖아.”
“…….”
“일을 꼭 좋아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잘하는 일 버텨내서, 그 결과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는 거지.”
변 이사가 커피를 들이켠 후 물었다.
“강 사장님이 좋아하는 일은 뭔데?”
“네?”
선뜻 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그, 글쎄요. 많이 있죠, 뭐~.”
“진짜? 모르는 건 아니고?”
“…….”
간혹, 변 이사는 이렇게 정곡을 찌른다.
“그래도 지금 삶이 싫지는 않은 거지?”
“그럼요. 만족합니다. 원하던 삶에 가깝죠.”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부족함도 없고,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내 손은 똥손도 아니다.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다.
“그래, 하지만 한번 생각할 필요는 있어.”
“…….”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좀 다르거든.”
변 이사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고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상향대로 살 수는 없을지라도, 그걸 잊지는 말자고. 그럼 가능성조차도 안 생기는 거니까. 자네 둘은 젊잖아.”
“…….”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고, 그걸 업으로 살아가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계속 고민하고 지향해야 해. 그것도 모르고 오십이 넘도록 살진 말라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변 이사의 자조 섞인 말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난 그의 말을 곱씹었고, 오 대리는 말없이 맥주만 홀짝였다.
* * *
무사히 촬영한 영상 업로드를 마쳤다.
일주일 뒤에 확인하기로 하고 우리는 일단 묵혀두기로 했다.
반응이 궁금했지만, 막상 확인하기 시작하면 다른 진도를 못 나갈 것 같았다.
지금은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에이~, 너무 궁금한데. 한 번만 보면 안 돼?”
변 이사가 볼멘소리로 말했지만, 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가 경험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반응이 있으면 댓글 확인하느라, 반응이 없으면 참담함 기분 때문에 정신 못 차립니다.”
“…….”
“봐야 할 필요는 있지만, 당분간만 좀 참자는 겁니다. 딱 일주일만.”
변 이사는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알았어. 경험자가 하는 말이니까.”
다음 날 런치 오브 사랑산성 영업으로 정신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영상 반응을 보고 싶은 생각도 잊어먹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오후.
점심 영업을 마치고, 나와 오 대리는 대학로에 갔다.
ABC 스터디 카페 대학로점.
“여어~, 강 사장님~.”
네모삼촌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와 오 대리 순서대로 인사를 나누었고. 네모삼촌은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어서 오시게. 이리로 앉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
공예로서의 종이접기.
즉 종이접기 공예품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20년 전문가 네모삼촌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실력에 대해서는 입증이 되어 있으니.
난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만드는 게 아닌, 창작물로서의 종이접기 공예 말이다.
“음…….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네모삼촌이 입을 열자, 오 대리는 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응? 뭐하는 거야?”
오 대리를 보며 물어보는 네모삼촌에게 난 웃으며 말했다.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네모삼촌이 말씀하시는 내용 속기해 두려 합니다. 제대로 배워야죠.”
“아……. 그래. 이거 회사 일이지.”
오 대리가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리고 있자, 네모삼촌은 약간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불편하시면 그냥 녹음할까요?”
“아니야. 그게 더 불편할 거 같아.”
네모삼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기 그때 알려줬던 거 다 기억하고 있어?”
“너무 오래전이라 좀 긴가민가하지만, 어느 정도는 기억합니다.”
“그래. 그때 용어 설명도 다 해줬었고, 기본형 응용 작품 연습까지 끝났잖아.”
기억에 당시에 ‘회오리 장미’라는 작품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신의 학을 그만 접기로 한 이후, 응용형 작품만 만들어서 방송을 해왔다.
“기본형과 응용형에 대한 연습은 더 필요 없겠지?”
“네.”
“그러면 바로 창작 과정으로 넘어가면 될 거 같은데. 태평 씨 창작은 안 해봤잖아.”
“안 해봤죠.”
그때, 오 대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뭔데요?”
네모삼촌이 바라보자, 오 대리가 말했다.
“종이 공예가 진짜 돈이 되는 겁니까? 얼마나 돈이 되는지, 어떤 유통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오 대리의 질문에 네모삼촌의 표정이 약간 불편해졌다.
오 대리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취미가 아니라, 수익을 기대하고 접근하는 거거든요.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윤곽은 잡아야…….”
오 대리의 말이 맞다.
우리는 오리가미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 종이접기를 너무 사랑해서 이 일을 해보려는 게 아니다.
“흠……. 돈이라.”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예술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
“매길 수야 있죠. ‘감정’이라는 단계를 통해서.”
감정? 감정 평가 같은 거 말하는 건가? TV쇼 진품명품에서 하는 그런 거…….
“동일한 예술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높은 감정을 받을 수 없듯이…… 뭐라고 보편적인 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걔다가 감정이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만…….”
“…….”
“이미 숙련된 기술을 갖고 계신 네모의 신께서 마음 먹고 나선 이상, 돈벌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그것보다는 어떤 역사를 만들 것이냐. 그걸 기대하는 게 좋을 거예요. 세계 종이접기 계에 한 획을 그을 거고, 역사에 남는 아티스트가 될 거니까요. 분명히.”
“…….”
“종이접기 계의 퀀텀 점프(혁신을 통한 단기간의 비약적인 성장).”
네모삼촌은 말을 마치고 나서.
책상 위에 놓인 종이 개구리 꽁무니를 눌러 뛰어오르게 했다.
폴짝.
이렇게 점프할 거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