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브리지 (1)
* * *
“와……. 진짜네.”
난 리조트 안의 구조를 보고 감탄했다.
노란색 장판에 진갈색의 장롱.
색바랜 나무의 화장대, 그리고 조그만 TV가 벽에 걸려있다.
이게 다였다.
침대 하나 없이, 덩그러니 바닥만 넓은 방.
단양 수도원과 거의 흡사했다.
“오 대리 섭외력 장난 아닌데?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대?”
내 말에 변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유명 테마공원 리조트가 이럴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데.”
“하하. 여긴 지은 지 오래되었고, 아직도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오거든요.”
“…….”
“그러다 보니, 방 안에 이불을 넓게 깔 수 있게 되어 있고, 내부 구조는 심플한 거죠.”
음……. 테마파크니까 아무래도 학생들이 단체로 자주 오기는 하겠지.
설명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내부 집기를 이렇게 구리게 해놓을 필요는 없는데……. 고전적인 느낌 내려고 일부러 이러나 싶기도 하고요~.”
네버랜드가 돈이 없는 회사도 아닌데. 비용 아끼려고 이렇게 허접하게 해놨을 것 같지는 않다.
“근데 퀄리티에 비해 숙박비가 너무 비싸긴 하다.”
평일인데도 1박에 14만 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리조트니까 그러려니 하고 왔는데.
와서 눈으로 상태를 보고 나니, 이건 더럽게 비싼 가격이었다.
이런 방을…… 14만 원이나 받다니.
“비싸고 구리죠. 그래서 기억에 남는 거예요.”
“응? 혹시 예전에 와 본 거야?”
“네, 여자 친구랑 한번 왔었거든요.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네버랜드 가고 싶다고 해서요. 이왕이면 네버랜드 안에 숙소면 좋을 거 같아서 잡았더니……. 이 모양이더라고요.”
“아하…….”
“테마파크가 가까워서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거 말고는…….”
“좀 짜증 나긴 했었겠다. 여기 근처에 펜션 많은 거 같던데.”
“이불 여러 개 깔아 놓고 자니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자세 잡기는 좋은데, 맨바닥에서 하니까 무릎 까지고 멍들고…….”
“…….”
“리조트 룸에 침대가 없을 줄은 생각 못 했죠.”
남자들끼리 있어서 이런 얘기 해도 상관없긴 한데.
여자 친구는커녕, 그럴 껀덕지도 없는 나로서는 이런 얘기 듣는 거.
상당히 배 아프다.
“흠!”
변 이사는 헛기침하고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오 대리, 그런 얘기 그렇게 디테일하게 할 필요 없어. 상상되잖아.”
“아……. 네.”
오 대리는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변 이사도 약간 불편했나 보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네버랜드 홈브리지.
사랑산성의 첫 영상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무릎이 까질 수도 있구나.’
* * *
“자, 세팅 완료됐습니다.”
커튼을 다쳐서, 실내를 어둡게 하고.
촛불 네 개를 켰다.
켜 놓은 촛불 안에 사람 한명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들어갈 자리.
단양 수도원과 구도를 동일하게 했다.
오 대리는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촬영은 핸드폰으로 한다.
“구도 좋습니다. 사장님~, 이제 들어가서 자세 잡아보시죠.”
휴우―.
난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쓰윽―.
색종이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오랜만에 학 접는 건데, 연습 안 해보셔도 돼요?”
“2,500마리 접어봐. 아무리 오랜만에 한다고 해도 눈 감고도 접지.”
“하하. 그렇겠네요.”
굳이 연습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촬영을 위해서 하는 건데.
“준비되면 말씀 주세요.”
정사각형의 종이 하나.
그리고 나.
종이를 잡는 순간, 이미 이 종이는 학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 교감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접어주기만 하면 된다.
“준비됐어.”
“네~, 준비하시고~. 하이~, 큐!”
띵!
동영상 촬영음이 들렸고.
강태평은 곧바로 신의 학을 접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정적이 가득한 방에.
종이 접는 소리만 가득하다.
무형의 네모난 종이는 접히고, 접히고, 또 접히고.
기괴한 모형을 거쳐, 차츰 학의 형태를 갖춰갔다.
다리가 만들어지고, 날개, 눈동자, 깃털…….
큰 줄기부터 시작하여 디테일한 순서로.
대한민국 종이접기 구독자들을 열광시켰던 신의 학.
이렇게 다시 탄생했다.
“끝.”
꿀꺽.
오 대리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대박…….”
변 이사는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걸 실제 눈으로 보게 되다니.”
변 이사는 강태평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좀 전에 같은 회사 동료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었다.
“진짜 대단하네. 괜히 네모의 신이 아니구만.”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 하겠어. 그냥…… 신비로워.”
결과물인 신의 학도 놀라웠지만.
그 과정을 본 게 더 경이로웠다.
신의 학을 접을 때 강태평의 손은…… 마치 연체동물 같았다.
손가락은 피아노 연주하듯 움직였고, 그 연주는 신의 학을 탄생시켰다.
핑거 매직.
저 손이 몸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까.
절로 야릇한 상상까지 하게 만드는…… 그런 신비로운 손끝이었다.
“강 사장님은 마사지도 참 잘할 거 같아. 새로운 아이템으로 어떤가?”
“저도 그 생각 해봤는데, 가성비가 안 좋을 거 같아서요. 마사지로 아무리 많이 벌어봐야 얼마나 받겠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겠네.”
“네, 받는 손님 수도 제한이 있고요.”
강태평은 오 대리를 바라봤다.
“몇 분 촬영했어?”
“2분이요.”
“1분이면 접었었는데, 많이 느려졌네.”
“이 정도도 빨라요. 영상이 1분이면 너무 짧죠.”
“그렇네. 그럼 2분도 짧은 거 아니야?”
오 대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주인공이 누군지 밝히는 영상이니까요. 짧기는 하지만, 뭐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흠. 그래. 촬영한 거 한번 보여 줘봐.”
강태평과 변 이사는 오 대리 뒤에 서서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자, 이제 플레이합니다.”
“오케이.”
사각. 사각.
촛불 가운데에 앉아서, 열심히 접고 있는 강태평의 모습. 영상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성스러움이 강했다.
또한 평안했으며, 은혜롭기도 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꽤나 괜찮았다.
“근데…… 뭔가 좀 빠진 거 같다.”
변 이사는 1,000만 뷰를 기록한 단양 수도원 영상과 비교해보며 말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오 대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변 이사의 말에 동조했다.
“뭐가요? 똑같이 접었는데?”
강태평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말했지만.
변 이사는 오 대리의 동조에 확신이 든 듯 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확실히 달라. 뭔가 빠졌어.”
“복사해서 붙여넣기도 아니고, 당연히 좀 다를 수 있죠.”
강태평의 볼멘소리에도 변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좀 다르지만, 그 차이가 커. 이 영상에서 이건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빠졌어.”
“그게 뭔데요?”
변 이사는 오 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흠……. 글쎄요.”
오 대리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한마디 뱉었다.
“간절함?”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혹은 절박함.”
“…….”
두 사람의 말에 강태평은 생각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럼 나보고 2,500마리 다시 접으라고?’
* * *
“어쩔 수 없잖아요.”
당연한 상황을 두 사람은 못 받아들이고 있었다.
“흠……. 강 사장님.”
변 이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우리 사랑산성 첫 영상이잖아.”
“…….”
“제대로 해야지.”
“무슨 말씀이신지는 아는데, 어쩔 수 없는 건 포기해야죠.”
“…….”
“그때는 돈이 급했었고, 2,500마리 접느라 몸도 정신도 고갈된 상태였어요.”
변 이사는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 간절함과 절박함을 지금 어떻게 표현해요.”
“지금도 간절함이 있잖아.”
변 이사는 내 눈을 바라봤다.
“자네 사랑산성이 잘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나?”
“…….”
“그때와 주제는 다르지만, 지금도 간절함이 있지. 안 그래? 그 간절함을 신의 학에 담으라고.”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젠장……. 이걸 이렇게까지 감정 이입해서 해야 할 일인가?
아니, 무슨 학 한 마리 접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 오케이 좋아요. 간절함은 뭐…… 회사 성공하는 마음으로 담아본다고 해요. 정신적 육체적 고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데요?”
“왜 방법이 없어.”
변 이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0km 정도만 달리고 와봐. 효과 바로 올 거야.”
뭐어?!
순간 나도 모르게 반말할 뻔했다.
“뭘 하라고요?”
“10km 달리기. 그 정도면 1시간~1시간 반 정도면 가능하거든?”
“…….”
“어디 보자……. 지금이 5시니까. 달리고 와서 씻고 나면 밤 되겠네.”
난 그저 황당해서 변 이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단양 수도원 영상 보니까 한밤중에 찍은 거 같더만. 커튼에 의존하지 말고, 진짜 밤에 제대로 찍어보자고.”
이젠 오 대리도 황당한 표정으로 변 이사를 바라봤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뭐, 굳이 해야 한다면 하겠는데.
“변 이사님, 이거 좀 오바 아닐까요?”
“오바 아니야.”
“…….”
“정성이야, 정성.”
변 이사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그래야 하늘이 돕는 거야.”
“…….”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대충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 그게 기본이야, 강 사장님.”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다.
변 이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말이라면, 믿는다. 따라야지.
“네, 알겠습니다. 변 이사님.”
* * *
뒤질 것 같다.
내가 운동을 가끔 하는 편이긴 하지만.
10km 달리기는 처음이다.
네버랜드 주변 10km를 달리고 돌아오는데, 1시간이 좀 더 걸렸다.
“헉. 헉.”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나를 보며, 변 이사는 희미하게 웃었다.
“강 사장님, 고갈이 좀 되셨나?”
“아~, 많이 됐습니다. 자고 싶어요. 밥 생각도 안 나요. 헉. 헉.”
“하하. 준비가 됐구만. 어서 씻고 나오시게~.”
오 대리는 이런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4개의 촛불 안에 앉았다.
사랑산성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내 전 재산을 다 투자했으며.
책임져야 할 직원이 4명.
반드시 성공해다.
민경원 사장을 똥 씹은 표정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김성애 수녀님, 김레오 수사님, 보육원의 동생들.
“휴우―.”
마인드 컨트롤하며.
오른손에 잡고 있는 정사각형 종이에 간절함을 담았다.
“갑자기 도인 모드로 바뀌었는데.”
“쉿―!”
오 대리가 중얼거리자, 변 이사는 바로 조용히 시켰다.
“강 사장님, 준비되셨어요?”
흡―, 휴우―.
오 대리의 물음에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밤 8시.
이제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어, 커튼을 칠 필요도 없었다.
고요한 밤. 커다란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색종이와 나.
“하이~, 큐!”
변 이사는 오 대리를 이끌고 방 끝으로 물러났다.
동영상 촬영 시작 음이 들렸다.
띵!
사각. 사각.
사각형 종이를 접어가는 강태평의 손.
피곤할 텐데도 낮보다 손이 더 빨랐다.
낮에도 놀라웠지만.
지금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신의 학의 존재를 움켜쥔 조물주의 손이었다.
정사각형 종이는 거침없이 접혀 가고.
강태평의 손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It’s holy…….”(성스러워…….)
색종이가 모양이 잡혀갈수록.
오 대리는 입술이 떨리고 있었고.
변 이사 또한 눈을 부릅뜨고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사람 손이 아니야.”
사각. 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