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84화 (84/156)

싫지만 해야 하는 일 (1)

* * *

수 싸움.

나와 네모 씨가 이럴 줄은 몰랐다.

항상 내게 협조적이기만 하던 네모 씨와.

이렇게 강렬하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수 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오 대리 그리고 정카와 네모삼촌은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나와 네모 씨는 일대일로 싸우는 장수 같았다.

난 웃으며 입을 먼저 열었다.

“허허. 제가 사업한다고 하니까 태도가 싹 바뀌시네요.”

“‘사업하니까’가 아니고, 이 업계에 들어오신다고 하니 경계하는 거죠.”

“서로 윈윈할 수도 있을 텐데.”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어떤 계획이신지에 따라서.”

“제가 말씀드렸는데, 공예로서의 종이접기에 집중해 볼 계획이라고.”

“속뜻은 본인 외에 아무도 알 수가 없죠. 전 계약서만 믿습니다.”

난 살짝 눈썹을 올리고 네모 씨를 바라봤다.

“그 말인즉슨…….”

“네, 계약서를 써주세요. 네모삼촌의 노하우는 네모튜브의 콘텐츠입니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갑자기 계약서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너무 칼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 업계에서는 뒤통수 맞는 경우가 허다해서요.”

“…….”

“의심을 가지고 강 사장님과 함께 일하느니, 깔끔하게 문서로 정리하고 진행하는 게 서로 좋을 것 같습니다.”

“계약서에 들어갈 내용이 뭡니까?”

“흠…….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네모 씨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너튜브 채널 개설이나, 다른 유사 너튜브 채널과는 일하지 않겠다는 게 들어가야겠죠.”

“독점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에 대한 대가는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시는 거죠. 노하우도 받으시고, 네모튜브에서 자유롭게 녹화도 하고 후원금도 받으시면서.”

“…….”

아무래도…….

네모 씨가 너무 방어적인 생각에 뭔가를 망각한 거 같다.

이렇게 고자세로 나올 게 아닐 텐데.

지금 네모튜브에서 네모의 신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잊고 있는 것 같다.

좀 흔들어 볼까.

“됐습니다. 관둘게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거야, 원……. 황송해서 노하우 전수 못 받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네모 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정카와 네모삼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협업하려고 왔더니, 협박하시네. 허허.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난 오 대리를 향해 말했다.

“오 대리, 일어나지.”

“아, 네.”

네모 씨는 덜덜 떨리는 손이 허공을 잡았다.

“자, 잠깐만…….”

“오늘은 제가 기분이 영 별로여서 녹화 못 하겠고요. 이번 주에 약속한 일정은 채울게요. 최소한의 책임은 집니다.”

“아……. 강 사장님.”

네모 씨의 목소리가 떨렸고, 네모삼촌 또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평 씨, 왜 그래.”

난 네모삼촌을 향해 말했다.

“네모삼촌께는 제가 조만간 연락 드릴게요. 자유인이시잖아요.”

“으응?”

네모삼촌은 네모 씨의 눈치를 살짝 보고서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응……. 그렇긴 하지.”

그렇게 문을 나서려는 찰나.

바지 끝에서 간절한 손길이 느껴졌다.

네모 씨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다.

“강 사장님…… 왜 그래요.”

“왜요? 뭐 잘못됐습니까? 계약이란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잖아요.”

“에이~, 너무 정 없다.”

네모 씨는 비굴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웃었다.

“깔끔한 거 원하신다면서요? 이런 거 아니에요?”

“아니죠오~.”

네모 씨의 콧소리가 작렬했다.

“자자, 이리 와서 좀 앉아 봐용~.”

난 네모 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다시 소파에 앉혀졌다.

* * *

네모 씨는 소파 맞은편에 무릎을 모으고, 공손하게 앉아 있었고.

정카와 네모삼촌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 사장님…… 일단 원하는 걸 말씀해 보시죠. 저희가 들어보고 웬만한 건 다 OK 하겠습니다.”

“…….”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저희와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갑자기 가버리시면…… 저희는 정말.”

네모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방금 나가려고 했던 모습에 충격이 좀 컸나 보다.

난 네모 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너튜버로 성공할 계획도 아니고, 전 사업가인데……. 뭐 하러 이제 와서 채널을 만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종이접기 분야에서 최고는 네모튜브인데, 다른 곳 갈 이유도 없고요.”

이제야 네모 씨는 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너튜브는 사업에 도움만 좀 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강 사장님 말씀 믿겠습니다.”

“믿기 싫으면 마시고요.”

네모 씨가 또 식겁한 표정을 짓길래, 난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장난이에요, 장난. 하하.”

사실, 너튜브 영상으로 수익 창출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네모 씨와 눈치싸움을 벌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독점 조건으로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은…… 일단 종이접기 관련된 노하우를 적극 협조해 주시면 좋겠고요.”

“노하우요? 이미 신급인데?”

네모 씨의 물음에 난 웃으며 답했다.

“공예로서의 종이접기요. 전 종이만 접을 줄 알지, 이쪽 세계에 대해선 깊숙이 잘 모르잖아요. 네모삼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

“그리고 네모튜브 재생목록 안에 저희 사랑산성 클립(Clip)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이 요청은 의외였는지, 네모 씨는 즉각 반응했다.

“영상을 따로 만드실 건가요?”

“네, 네모튜브 촬영 매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회사 홍보 겸 가능하다면 약간의 수익도 노려보려 합니다. 하하.”

“…….”

“어쨌든 네모튜브 채널 안에서 하는 거니까. 사랑산성 클립이 잘 되면 네모튜브 구독자 수도 느는 거고……. 저희는 네모튜브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이런 게 바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런 제안을 할 줄은 생각 못 했는지, 네모 씨는 약간 당황했고.

그는 곧바로 정카와 네모삼촌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네모 씨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네. 그리고 클립 영상에서 오는 부가 수익은 모두 사랑산성이 가져가는 거고요.”

“…….”

네모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이상은 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하. 끝입니다. 더 없습니다.”

휴우―.

끝이라는 말에 네모 씨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네모튜브 입장에서도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겁니다. 사랑산성 클립 영상은 온전히 저희 힘으로 만들 거니까요.”

네모 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는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저희 외에 다른 곳과 하시면 안 됩니다. 네모의 신과 사랑산성은 무조건 네모튜브입니다.”

“하하.”

난 웃으며, 그가 원하는 확실한 대답을 해주었다.

“원하시면 계약서 쓸게요.”

# 네모튜브 독점 조건

1) 종이 공예 노하우 적극 협조.

2) 사랑산성 재생목록 클립 생성.

3) 사랑산성 제작 영상으로 인한 부가 수익은 모두 사랑산성 몫임.

* * *

무사히 그날 종이접기 녹화 영상을 마쳤다.

그거야 매주 하던 일이니 내게는 특별할 일도 아니었지만.

“우와……. 대박.”

오 대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제가 미국에서 elementary school 다닐 때 이후 처음 봤는데…… 확실히 다르네요.”

그는 마치 연예인 보는 것처럼 날 우러러봤다.

“하하. 그래?”

“네~, 괜히 네모의 신이 아니던데요. 종이접기해서 돈이 벌리는 이유가 있었네~. 하하. 오늘부터 저도 구독~.”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이접기 공예 관련해서는 네모삼촌과는 평일 낮에 따로 시간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다.

“강 사장님~.”

네모 씨가 다가왔다.

“그냥 태평 씨라고 부르셔도 돼요~. 사랑산성 직원도 아니신데.”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난 짐을 마저 싸는데 네모 씨는 계속 옆에 서 있었다.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사랑산성 클립 만드신다고 했잖아요. 혹시 생각해둔 아이디어 있으세요?”

오늘 그와 대화하다가 생각나서, 미래를 위해 운을 띄었을 뿐.

지금 세세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하하. 아니요~.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그냥 말씀드린 거예요.”

“아~, 그래요?”

네모 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게 선물이 될 수 있겠네요.”

“네?”

그는 대답 대신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깜깜한 실내.

어둠을 밝히는 노란색 촛불이 있었다.

4개의 촛불 안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사각. 사각.

마술을 부리듯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종이 접는 소리만 가득하다.

그리고 그 남자 주변은 온통 학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치 학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했다.

사각. 사각.

“이게 뭐야.”

이상하다. 몹시 익숙한 장면이다.

“하하. 뭐긴 뭡니까. 강 사장님이죠.”

“…….”

네모 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종이학 접으러 단양으로 전지훈련 가셨을 때, 제가 캠코더 건넸던 거 기억하세요?”

아……. 그래. 그랬었지.

“근데, 네모튜브에서는 이 영상 못 봤던 것 같은데요?”

네모 씨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어떻게 쓰겠습니까? 네모의 신님의 온몸이 다 나왔는데.”

“아…….”

“제가 분명히 그때 손만 나오게 찍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전신이 다 나와 있더라고요.”

그때는 이런 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종이학 2,500마리를 접기 위한 사투 중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쉽지만 네모튜브에서는 못 썼죠. 보시다시피 대박 영상인데.”

난 다시 핸드폰 화면을 유심히 봤다.

사각. 사각.

그냥 계속 종이학만 접고.

남자 주변에 점점 커져 가는 학 구름.

어둠 속에 흔들리는 촛불.

‘이게 뭐가 대박이라는 거지?’

내가 이해 못 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네모 씨는 웃으며 말했다.

“힐링되지 않습니까? 힐링 영상+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요.”

“…….”

“국내에서는 네모의 신님이 워낙 유명하니까, 묵히기 아까워서 해외 계정으로 풀어봤거든요.”

“어떻게요?”

“그거야, 뭐. 이렇게 저렇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하하.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느새 정카와 네모삼촌, 오 대리도 함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해외에서 대박이 난 거예요. 그것도 그냥 대박이 아니라, 초대박이요.”

꿀꺽.

난 침을 삼키고 물어봤다.

“어느 정도나요?”

“조회 수 1,000만.”

.

.

.

.

“네에?!”

난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단독 영상 조회 수가 1,000만 뷰라고?

이 영상이 강북 스타일이야? 마더 파더 젠틀맨이야?

기껏 골방에서 종이학 접는 영상이 뭐 어쨌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난 할 말을 잃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개의치 않고, 네모 씨는 할 말을 계속했다.

“어차피 제 수익으로 올릴 수 있는 영상도 아니고 해서요.”

“…….”

“빠른 효과를 보려면, 시작할 때 화제성이 필요하거든요?”

네모 씨는 목소리를 죽여서 말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이 네모의 신이라는 영상을 하나 만들어서 올려보세요. 사랑산성의 첫 영상으로.”

“…….”

“단언컨대, 터질 겁니다. 아주 제대로. 제 창업 선물입니다.”

120만 구독자 네모튜브의 유튜버 네모 씨.

그런 그가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꽤 확실한 거다.

근데…… 어떻게?

“고맙습니다. 근데 주시는 김에 좀 더 힌트를 주시죠. 저인 걸 어떻게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까요?”

“간단해요.”

그는 검지를 하나 펴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딱, 학 한 마리만 접으시면 끝납니다.”

난 조용히 그의 핸드폰 영상을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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