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78화 (78/156)

사업계획 (1)

* * *

3일간 바쁘게 지냈다.

사업자등록 관련한 서류자료는 복잡하지 않았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서 관할 세무서를 찾아갔더니, 발급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준비해야 할 서류 중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가 약간 문제였는데, 사랑산성의 일부 공간을 임대하는 것으로 설 사장이 협조해주었다.

그리고 메뉴는 기존과 동일하게 가기로 했다.

신메뉴를 만들라고 최경리와 앤더슨에게 지시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두 사람은 지친 얼굴로 날 찾아왔다.

“사장님, 아무래도 동일 메뉴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최경리의 말에 난 물었다.

“왜?”

“32만 원짜리 메뉴를 개발하려니,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비싼 레스토랑을 참고하려 해도 그 정도 가격대의 가격은 잘 없고요.”

앤더슨이 한마디 덧붙였다.

“잠실타워에 있는 레스토랑도 30만 원이 안 넘더라고요.”

최경리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억지로 하려면 하겠는데, 해봐야 득보단 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네, 아무리 맛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 정도 가격대의 메뉴를 고객들이 많이 찾는 건 천운이 따랐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흠……. 하긴, 운이 좀 따르긴 했지.

네모튜브 홍보 효과부터 박 기자 인터뷰까지.

“그 루트를 동일하게 따라갈 수도 없는데, 여기서 섣불리 메뉴를 바꿨다가 손님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보실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가격대를 생각하면 어차피 메뉴는 한정되어 있고요. 최고급 재료를 써야 하는 요리일 테니까요.”

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경리 씨 말이 일리가 있네. 하지만, 난 진일상사가 신경 쓰여서 그렇지.”

앤더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장님, 그건 제가 알아봤는데 과한 걱정이세요. 이 메뉴에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세상에 없던 메뉴도 아닙니다. ‘신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일상사에서 특허를 낼 수도 없어요.”

“…….”

“만약 지적재산권 운운한다고 해도…… 런치 오브 제로백 요리를 만든 건 강 사장님이잖아요.”

“…….”

“걱정이 과하신 거예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지 마시고, 메뉴는 그대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더욱이 디너까지 생각하신다면요. 그들은 강 사장님 레시피를 따라가야 하니까요.”

앤더슨의 조리 있는 설명에 안심이 되었다.

최경리가 말도 일리가 있었고.

“그럽시다. 그럼 메뉴는 그대로 가기로 하죠.”

“감사합니다. 아오~, 뒤지는 줄 알았네.”

최경리는 툴툴대며 한숨을 쉬었다.

고가 메뉴를 개발한다는 게 어렵긴 하겠다.

그렇게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4일째 되는 날 아침.

워크숍을 가기 위해 우리는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먼저 와 있었고, 날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오던 직원들.

“사랑산성~, 이쪽으로 모이세요!”

이 외침 소리를 듣고는 얼굴을 숙이고 다가왔다.

* * *

부산행 KTX.

직원들은 신나 보였다.

“완전 설레요. 저 KTX도 처음 타보고~ 부산도 처음이에요!”

특히 김지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하. 부산은 제가 좀 알아요. 가서 모르는 곳 있으면 물어보세요.”

앤더슨의 자신 있는 말투에 변성준이 물었다.

“앤더슨이 부산을 어떻게 잘 알아?”

앤더슨은 군 복부를 끝내고 곧 취업했다고 말했었다.

변성준과 난 앤더슨 면접을 봤었기에 이 내용을 알고 있다.

이 인간이 혹시 면접에서 거짓말을…….

“군 복무 끝내고 두 달 정도 텀이 있었는데, 한 달가량 부산에 살았거든요.”

“왜?”

“여자 친구가 부산 사람이었어요.”

최경리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얼마나 사이가 좋았길래, 부산까지 가서 살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에 살며 좋았겠네요~. 호호.”

“응? 가까이요?”

앤더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우뚱하며 대꾸했다.

“그냥 같이 살았는데. 그러려고 부산에 간 건데.”

“…….”

이 말에 최경리의 얼굴이 빨개졌다.

“모텔비 아끼고 좋았…….”

“야야.”

급기야 변성준이 말렸다.

“굳이 사적인 얘기 디테일하게 할 필요 없다. 앤더슨도 은근히 푼수네.”

“왓? 내가 뭐 잘못했어요? 지금 편하게 얘기 나누는 자리 아닌가요?”

어색한 표정으로 애써 두리번거리는 최경리를 보며 앤더슨은 중얼거렸다.

“뭐 궁금하다고 해서 말해줘도 난리네. 아, 어려워. 컬쳐 디퍼런스.”

앤더슨 덕분에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자, 변성준이 재빨리 말했다.

“근데~ 강 사장. 새로 사업 시작하려면 돈도 빠듯할 텐데, 어째 워크숍을 부산까지 갈 생각을 했어?”

“그냥요~. 1년 전 일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공모전 한다고 부산에 갔던 게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전 영업 3팀에서 촬영 1팀으로 바뀐 시점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고 보거든요.”

이 말에 변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의 시작. 사랑산성의 뿌리인 진일상사 영업 3팀.

그때 있었던 사람 중 변성준과 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부산도 변성준과 단둘이 갔었지.

“부산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네요. 그리고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야~, 강 사장 그동안 돈 많이 모았었나 보다~.”

돈을 좀 모으긴 했지만, 그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었다.

“아껴 쓰면 됩니다.”

“응? 어떻게?”

“뭐……. 여러 가지로요. 가성비 있게 하면 되거든요. 예를 들어…….”

내게 집중하고 있는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복귀할 때는 무궁화호로 옵니다.”

* * *

ABC 스터디 카페 해운대점.

약간은 기대했었는데.

여기서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ABC 스터디 카페 가려면 굳이 부산은 왜 온 거야…….”

최경리는 투덜거렸고, 김지안도 설레던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회의할 때 화이트보드 보잖아. 바다에 글씨 쓸 것도 아닌데, 뭐하러 전망 좋은 곳을 가나? 저녁에는 좋은 데 갈 거니까, 다들 힘내자.”

좋은 데 간다는 말을 했지만,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심은 안 먹어요?”

김지안의 물음에 난 대답했다.

“컵라면이랑 김밥 시켰어. 점심은 스터디 카페 안에서 해결하려고.”

“헐~.”

김지안은 어이없어했고.

“허허. 참나. 어째 민 사장보다 더한 거 같네.”

변성준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에이~, 가성비 있게 할 거라니까요. 저녁을 기대하세요. 점심은 간단하게.”

술렁이는 가운데, 난 화이트보드를 두들기며 말했다.

탁! 탁!

“자 다들 이제 집중.”

난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5억’

다들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일 것 같아요?”

“…….”

“제 전 재산입니다. 곧 사랑산성의 자본금이죠.”

― 이야~, 돈 많네.

― 멋있어.

― 돈 자랑?

난 자본금을 설명하려고 적은 거였는데, 다들 내 재산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이 중에 3억은 부동산이니까요. 2억이 실질적인 자본금이에요.”

― 어머, 집도 있어?

― 돈 자랑이 맞네.

“자꾸 돈 자랑 말하는 사람 누굽니까?”

다들 말없이 최경리를 바라봤다.

“흠! 집 아니고요. 땅입니다. 아, 하여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꾸 딴 데로 새게 된다.

앞에서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보증금, 월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거든요.”

이제야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가 일으킨 사업이고, 제가 책임집니다. 저어도 금전적으로는 여러분에게 어떠한 책임이나 불편함을 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

“비용에 대해서 최대한 신중하게 써주세요. 아껴서 써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

“그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회사에 돈이 차고 넘치도록 빨리 성과 내주세요.”

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천천히 역량 것 해달라는 말 못 하겠습니다. 제 돈이라서요.”

이 말에 변성준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성과 내주세요. 저 쫄립니다.”

짝짝짝.

변성준이 크게 박수 치며 말했다.

“이야~, 사장 멋있다아~. 인간적이다아~.”

앤더슨과 김지안도 덩달아 웃으며 박수 쳤다.

― 걱정하지 마세요!

― 밥값은 제대로 할 테니까요! 하하.

최경리도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박수 소리가 그친 뒤.

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무실은 당분간은 영업장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지금 식당일이 주니까요……. 가끔 회의 있을 때는 ABC 스터디 카페 양재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영업 끝나고 비어 있는 룸에서…….”

“…….”

내가 생각해도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직원들 앞에서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사무실 설립 계획이 있습니다!”

이 말에 다들 눈빛이 살짝 빛났다.

“임대가 아니고 설립? 사무실을 짓겠다는 거야? 잘못 말한 거 아니야?”

변성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고, 난 웃으며 대꾸했다.

“잘못 말한 거 아닙니다. 새로 지을 거예요. 음……. 엄밀히 말하면 새로 지을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 사무실도 만들 거라는 뜻인데요…….”

빈말이 아니다.

새로운 부지로 보육원 이전을 위해 김성애 수녀님이 준비 중이다.

그곳에 사무실을 공간도 만들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 확정적이진 않으니 더 세밀하게 말할 순 없었다.

“알쏭달쏭하다. 때가 되면 자세히 얘기해 줄 거지?”

변성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화이트보드를 깨끗이 지우고, 글씨를 써넣었다.

‘사업 계획’

이 단어에 직원들은 의아해했다.

아마 제로백 컴퍼니와 동일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걸 버리지 않는 한, 더 큰 것을 가져올 수 없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고.

내 능력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위해서, 먼저 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이제 사진 촬영은 안 하려고 합니다.”

“…….”

* * *

사진 촬영.

우리 조직의 근간.

그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부산국제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던 것이 터닝 포인트였다.

“너무……급진적인 거 아닙니까?”

다들 넋 놓고 있는데, 최경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새로운 사명으로 레스토랑이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가장 확실한 캐쉬 카우(CASH COW)를 없앤다는 건 좀…….”

“최경리 씨가 말 잘했네. 말 그대로 캐쉬 카우라서 버리려는 거에요. 매출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적다는 거.”

“…….”

“시간은 한정적인데, 내 재능으로 그 정도 벌기 위해 하루의 반을 투자한다는 게…… 너무 아깝지 않아요?”

이제 쓸데없는 겸양은 피하려 한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얘기니까.

역시나, 이 말에 거부감을 갖는 직원은 없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야 해요. 그건 여러분이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제가 몇 가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일단 그중 하나는 사진 촬영만큼이나 확실한 매출이 기대되는 것이죠.”

내가 이 일 만큼은 끌어들이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제 내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이미 제 능력이 먹힌다는 게 입증도 되었고, 높은 매출 가능성도 있는 사업.”

“설마…….”

변성준은 내가 말하려는 것을 짐작하는 듯했다.

“종이접기 사업입니다.”

“…….”

― 종이접기?

― 갑자기 뭔 소리야?

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최경리, 김지안, 앤더슨은 뭔 소리인지 어리둥절했다.

“이제 회사 대 회사로 일할 수 있고, 눈치 보면서 짬 내어 시간을 쓸 필요도 없죠.”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변성준의 말에 나 또한 생각했다.

‘취미로는 별로지만, 일로써는 충분히 할 만하지.’

하지만…… 학은 안 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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