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74화 (74/156)

어떤 제안 (2)

* * *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난 오전 촬영을 마치고, 사랑산성으로 향했다.

어제 민 사장과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변 사장에 대한 불신과 제로백 컴퍼니에 대한 욕심.

그의 두 가지 이유로 변 사장을 내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그의 자리에 대신하려는 생각인데…….

[이번 역은 양재역, 양재역입니다.]

양재역에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역 밖을 향해 걸었다.

‘변 사장에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보상도 받고 일 좀 하는가 싶었는데.

제로백 컴퍼니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너무 잘 되는 게 탈이었을까?

사업을 시작할 때 너무 잘되지는 않기를 변 사장과 종종 대화했었다.

잘 되면 얻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시기하며 배 아파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민 사장처럼 제로백 컴퍼니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면 가만있을 수 없겠지.

“음?!”

양재역 앞 문벅스 창 안으로 변 사장이 보였다.

어느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또 인터뷰인가?”

오픈 시간 전에는 웬만해선 인터뷰는 잘 안 하는데.

그냥 먼저 갈까 하다가, 오픈 시간도 다 되어 가고.

변 사장이 차를 가져왔을 거라는 생각에, 얻어타고 갈 생각으로 좀 기다렸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곧 일어났다.

문벅스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그럼 변 사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저희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업 제안을 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그럼…… 긍정적인 회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네. 처남 친구분이신데, 잘해 드려야죠.”

남자는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고. 변 사장은 살짝 목례한 후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난 변 사장의 뒤를 따라 걸었다.

사업? 긍정적인 회신?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별다른 얘기는 못 들었는데.

변 사장은 모퉁이를 돌 때쯤 뒤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히이익―! 깜짝이야!”

“사장님, 안녕하세요.”

“강 대리, 뭐야? 왜 여기 있어?”

“가던 길에 우연히 봤어요. 변 사장님 차 좀 얻어타려고 기다렸죠.”

“…….”

“그러는 사장님은 왜 여기 있어요? 오픈 시간 다 되어 가는데?”

변 사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강 대리 언제부터 있었어?”

“변 사장님 문벅스에서 나오기 전부터요.”

문벅스라는 말을 하자, 변 사장은 당황했다.

“혹시 문벅스 안에 있었던 거야?”

“아니요. 밖에 있었는데요. 근데, 그게 중요해요? 뭘 그렇게 세세하게 물어봐요?”

“흠, 그게…….”

변 사장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늦었으니까, 빨리 가지.”

삑!

변 사장은 차 문을 열었다.

* * *

변 사장의 차 안.

난 조수석에 앉아 있고, 변 사장은 운전 중이다.

“하하. 마을버스 타고 가기 빡센데, 변 사장님 만나서 좋네요.”

“…….”

“앞으로 이 시간에 양재역 부근에 있으면 톡 좀 주세요. 같이 좀 가게.”

“응……. 그래.”

변 사장은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고, 어딘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응?”

“표정이 안 좋으셔서요.”

항상 여유 있고, 특히 날 만나면 반가워서 재잘거리던 변 사장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아까 말이야.”

변 사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봤지?”

“네.”

그 때문에 그런 건가?

자꾸 간 보듯이 말하는 게 나 또한 신경 쓰여서, 그냥 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문벅스 앞에서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운전하고 있던 변 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다른 사업 구상 중이신가 봐요? 보아하니, 아시는 사이 같던데.”

변 사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야~. 아는 사람 아니야. 오늘 처음 봤어.”

“처음이요?”

“그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지인이 소개해준 사람도 아니고요?”

“아니야.”

어라? 왜 거짓말을 하지?

분명 처남 얘기가 나왔었는데.

난 이 말도 할까 하다가, 사정이 있겠지 싶어서 관두었다.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다는데, 사업장 위치도 괜찮고, 사장님 경력도 좋아 보여서……. 그냥 한번 보자고 한 거야. 결정한 건 없어.”

“아, 네.”

“미리 얘기 못 해서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아닙니다. 굳이 저한테 얘기하실 필요 있나요. 비즈니스 확장하는 건 사장님 역할인데요.”

“…….”

“과정 중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저한테 시키시면 되는 거죠. 뭐가 미안합니까.”

“…….”

진심이다. 전혀 서운한 거 없다.

도리어 이런 일로 내 눈치를 보고, 어려워하는 변 사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혹 이럴 때는, 도대체 누가 상사인지 헷갈린다.

“강 대리, 딱 잘라서 말하지 마. 거리감 느껴지잖아.”

“…….”

“내가 얘기했잖아. 난 자기를 단순한 부하 직원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사업 파트너…….

“그래서 미안한 거야. 좀 사정이 있었어.”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는 변 사장이 나한테 거짓말한 게 더 신경 쓰인다.

왜…… 거짓말을 할까.

내비게이션을 보았다.

아직도 10여 분 정도는 더 가야 했다.

서로 바쁘기도 하고, 마침 단둘이 있으니 어제 민 사장 만난 얘기를 지금 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얘기해~.”

변 사장은 평소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어제저녁에 민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

“할 말이 있다고 잠깐 좀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얘기가 대부분 변 사장님과 관련된 거라서요.”

끼이익.

변 사장은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

“그 사람이 뭐라는데? 왜 강 대리를 따로 보자고 한 건데?”

변 사장의 눈빛이 무시무시하게 변해 있었다.

난 약간 당황했다.

“지금 그 얘기 하려고 말씀드리는 거잖아요.”

“어서 얘기해 봐.”

“네……. 근데, 일단 운전은 하시죠. 오픈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변 사장은 시계를 보고서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래.”

차는 다시 출발했다.

* * *

난 다 말해 주었다. 심지어 변 사장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내용까지도.

물론, 민 사장의 말 중간에 섞인 욕설이나, 변 사장의 과거 얘기를 들먹인 것은 말하지 않았다.

“흠…….”

흥분할 만한 내용임에도, 변 사장은 그저 신음 소리만 낼 뿐 별말이 없었다.

너무 차분했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강 대리는 어때? 자기가 사장 할 기회인 거 같은데.”

“기회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변 사장님께 말씀드리지도 않았겠죠.”

“……. 자긴 정말 욕심이 없나?”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욕심이 없는데, 세상이 내게 자꾸 욕심을 가지라고 한다.

난 그저 잘 먹고 잘살고 싶을 뿐.

골치 아프게 살고 싶지 않다.

내게는 금손이 있는데, 왜 골치 아프게 리더를 맡아서 사람들을 책임지며 살고 싶겠는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흠……. 고민이 되네.”

변 사장은 검지로 핸들을 톡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제로백 컴퍼니를 진일상사 직속으로 편입시킨다……. 그걸 받아들이면 내 자리를 유지시켜 주겠다는 거지.”

“…….”

변 사장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강 대리, 자네가 생각하는 변성준은 어떻게 할 것 같나?”

“글쎄요. 예전 같으면 당연히 받아들이셨겠죠. 자리 보존할 기회인데.”

“하하. 그래?”

“네,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

“제가 알던 변성준 팀장님과 제로백 컴퍼니의 변성준 사장님은 좀 다른 것 같아서요.”

변 사장은 날 바라봤다.

“자네는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나?”

“…….”

신호대기 중.

변성준은 날 뚫어지게 보고 있었고.

나 또한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빵― 빵―.

신호가 바뀌었는지,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전 그저…….”

하지만 변성준은 출발하지 않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제로백 컴퍼니의 직원들이 지금과 같이 일하고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제야 변 사장은 출발했다.

“민 사장님과 잘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변 사장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나 또한 지금이 좋네.”

“…….”

“그러려면 지금을 유지시켜야 하는 거잖아.”

“유지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변수가 생긴 거니까요. 아니면 뭐…… 위협이라고 해야 할까요?”

진일상사 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가? 그랬다가는 민 사장이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변 사장을 내칠 것 같은데.

“내가 장담하는데, 민 사장의 제안을 따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끼이익―. 사랑산성에 도착했다.

지금 시각 10:55분(10시 50분).

오픈 5분 전이다.

더 얘기 나눌 시간은 없었다.

“변수와 위협에 대처하는 것보다는, 그 원인을 없애는 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지.”

변 사장의 차가운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싸워볼게.”

“…….”

“절대로 진일상사 아래로 들어가는 일은 없다.”

변 사장에게서 강렬한 눈빛이 쏘아지고 있었다.

“…….”

이게 과연 최선일까?

변 사장의 모습이 왠지 좀 불안하다.

* * *

우리는 주방을 향해 걸어가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적으로 삼기로 했다면 확실하게 밟아야지.”

“누굴요? 민경원 사장님을요?”

“…….”

“변 사장님이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칼자루 드신 분은 민 사장님 아니에요?”

“방법을 찾아봐야지.”

진일상사는 오너 회사다.

경영권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오너가 스스로 내려가거나, 쇠고랑 차는 것 말고는 없다.

민 사장이 스스로 내려갈 일은 없으며, 그는 장사가 안 돼도 법 하나는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민 사장님과 잘 협의하셔서 처우 조건과 제로백 컴퍼니 운영 방침을 협의하시는 게…….”

“아니야, 강 대리.”

“…….”

“내가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이미 경험해 본 이상…… 더 이상 그 사람 밑에선 일하고 싶지 않다.”

“…….”

“걱정할 거 없어.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자네는…….”

변 사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저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

약간 오글거리는 멘트였는데, 이상하게 등골이 싸늘해졌다.

“혹시…… 변 사장님도 욕심이 생기신 건가요?”

그게 보였다.

예전에 변 사장에게서 보이지 않던 욕심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휘적휘적 회사 생활 하던 변 사장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욕심.

“그래. 맞아. 부정 못 하겠어.”

“…….”

“나와 내 조직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아.”

그때 최경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사장님! 빨리 옷 갈아입고 나가서 손님 받으세요!”

하루 중 오픈 시간이 가장 바쁘다.

김지안과 최경리가 홀 세팅을 하고, 변 사장이 정문에서 손님 맞는 일을 하는데.

변 사장이 오지 않으니, 최경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하하. 알았어~. 미안해.”

최경리의 짜증을 변 사장은 웃으며 받았다.

“뭡니까? 왜 웃으십니까? 놀리십니까?”

최경리가 따지려고 하자, 변 사장은 도망치듯 안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민 사장님한테 그 제안은 거절한다고 전해주게~.”

눈치 좀 챙겨라

* * *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런치 오브 제로백은 여느 때처럼 정신없었고, 일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사히 영업을 마치고 직원들은 사무실로, 난 사진 촬영을 하러 움직였다.

사진 촬영까지 잘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민 사장에게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까.’

이제야 점심때 나눴던 변 사장과의 대화가 머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전해야 할 말은 심플한데, 쉽게 꺼낼 수는 없는 말.

‘민 사장님에게 그 제안은 거절한다고 전해주게~.”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은 말 그대로 선전포고다.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할지…… 짐작이 가지를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일방적인 관계였으니까.

민 사장에게 맞설 생각을 하는 변 사장의 모습 자체가 난 신기했다.

‘이 정도로 간 큰 양반이 아니었는데…….’

더군다나, 자리를 유지시켜 준다고 하는데도…… 왜 무리수를 두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변 사장답지 않다.

[이번 역은 수유역. 수유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내리는 문은 왼쪽이라고?

“풉.”

툭 하면 나가는 길은 왼쪽이라고 말하던 최경리 말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철에서 내리려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

위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최경리 경리.’

음? 이 시간에 웬일이지?

지금은 오후 5시 40분.

최경리라면 정각에 퇴근하기 위해 가방 다 싸놓고 대기하고 있을 시간인데.

웬만큼 급한 일 아니면, 최경리는 퇴근 30분 전에는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위이잉―.

“약간 쎄한데…….”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 대리님! 헉헉.]

왜 이렇게 숨을 헐떡이지?

[자기 사무실 맞아? 왜 이렇게 숨소리가 거칠어?]

[사무실에서 숨소리 거칠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 그냥…… 장소랑 안 어울려서.]

헉. 헉.

말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계속 들렸다.

거북해서 수화기를 귀에서 살짝 떼어놨을 때쯤.

[강 대리님! 혹시 공지 메일 못 보셨어요?]

[공지 메일?]

[네!]

핸드폰으로 메일 확인이 가능하지만, 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그런 거 확인할 여유가 없다.

[못 봤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헉. 헉.]

[일단 숨소리 좀 어떻게 해봐.]

[지금 큰일 났어요!]

[…….]

― 와, 이게 무슨 일이야.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이거 놔~!

수화기 너머로 별소리가 다 들렸다.

확실히 무슨 일이 난 것 같기는 했다.

[어서 얘기해 봐. 공지 메일은 끊자마자 확인할 테니까.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헉…… 헉…… 변성준 사장님…… 인사발령 났어요.]

* * *

# 발신 ― 인사명령 공지

전보: 변성준, 제로백 컴퍼니 사장 ―> 영업 2팀 팀원

난 최경리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이메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확실했다.

변 사장은…… 갑자기…… 팀원이 됐다.

영업 2팀.

민 사장 동생인 민경수 팀장의 아래 팀원으로.

“아니…… 이런 미친…….”

말도 안 되는 처사에 난 기가 막혔다.

차라리 자르던지.

이게 뭐 하는 짓거리지?!

스스로 나가라는 건가?

그래도 사장이던 사람을…… 이렇게.

그 아래에 덧붙인 인사명령이 날 더 황당하게 했다.

# 발신 ― 인사명령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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