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73화 (73/156)

어떤 제안 (1)

* * *

‘아니…… 이 자식이. 어떻게 알았지? 혹시 설수민이 다 얘기했나?’

민 사장의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었다.

강태평을 만나면 어떻게 구워삶을지 계획하고 왔는데.

그 계획은 처음부터 다 틀어졌다.

이미 다 짐작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왜 말이 없으세요? 설마 제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건가? 하하.”

“…….”

‘강태평도 예전하고는 달라. 민 사장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기억하는 강태평은 말수가 적고, 본인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리는 스타일이었다.

묻는 말에도 잘 대답하지 않아서 답답할 정도였고, 간혹 대답해봐야 무조건 단답형이었다.

지금의 강태평은…… 민 사장을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고, 가지고 놀고 있었다.

본인을 숨기기는커녕, 눈빛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말도 조리 있게 잘했다.

‘이 정도에 당황해서는 안 되지.’

그래도 민 사장은 짬밥이 있었다. 재빨리 상황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하하. 이거 대화하기가 편해지겠네~.”

“…….”

“자네 말이 맞아. 변 사장을 내치려고 하네.”

“왜죠? 이유도 제가 짐작한 게 맞나요?”

“어느 정도는 맞긴 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강태평의 얼굴에 어려있던 미소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민 사장은 마음을 먹고 나니,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강태평이 짐작하고 있으니, 말하기 더 편했다.

“자네 말대로 변 사장이 잘되고 있는 거 배 아픈 것도 맞고, 제로백 컴퍼니가 이렇게 잘 되는데 수익의 20%만 가져오는 것도 짜증 나는 건 사실이야.”

“…….”

“하지만 변 사장이 잘하니, 제로백 컴퍼니가 잘되고 있는 거고. 20% 수익을 얻는 것 또한……. 난 경영에 아무것도 관여 안 하고, 비용 들이는 것도 없으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

그의 말을 들으며 강태평은 생각했다.

‘사리 분별은 하는데…….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지?’

“제로백 컴퍼니가 잘되고 있잖아. 내 생각에는 자네만 있어 준다면 앞으로도 잘될 거 같거든?”

“…….”

“자회사가 아닌 진일상사로 합쳐지고, 만약에 변 사장의 부재로 인해 매출이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강태평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었다.

“지금의 수익 20% 얻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 같거든.”

“…….”

“그렇지 않겠나? 단순히 계산을 해봐도…… 최악의 경우 지금보다 매출의 50%가 꺾인다고 해도, 수익 20% 받는 것보다 그게 더 이익이거든?”

“…….”

강태평은 묵묵히 그의 말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국엔…….”

“…….”

“욕심인 거네요?”

“흠……. 그게, 뭐.”

민 사장은 턱을 들고 말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욕심을 부리는 게 잘못인가?”

“…….”

“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게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건데?”

강태평은 민 사장의 이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저도 이 말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호오, 그래?”

“네. 하지만…… 결국엔 키워놓은 거 뺏는 거잖아요.”

강태평은 말을 뱉기 전 민 사장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비즈니스에서 신의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엔 꼬꾸라진다고 배웠거든요.”

“누구한테?”

“변 사장님에게요.”

* * *

“변성준이? 걔가 그런 말을 해?”

민 사장은 기가 찬다는 듯 어이없어했다.

“방금 강 대리가 한 말 있지? 그것도 내가 막 하려던 거였어.”

“…….”

“신의?! 참나. 제일 못 믿을 사람이 그런 말을 해?”

“…….”

“내가 이래서 그 인간을 더 싫어한다니까? 위선 덩어리. 아주 수백 년 묵은 능구렁이야.”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아니야! 자네도 제발 눈을 뜨라고.”

“…….”

“지금 제일 많이 손해 보며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인 걸 모르나?”

얼마 전에 회식 자리에서 김지안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비슷한 얘기를 민 사장도 말하고 있었다.

“자네도 함께 일하면서 느꼈을 텐데. 변 사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진일상사에서 함께 일했던 변성준 팀장과 동일인 같아?”

“…….”

“물론 사람이 달라질 수 있지. 하지만…… 정도가 있지. 변 사장이 진일상사에 있을 때 지금처럼 일했어 봐……. 아오~, 생각하니까 또 짜증 나네.”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분명 많이 달라지긴 하셨죠. 그건 저도 일하면서 놀랄 때가 있긴 한데요. 그래도 기본적인 성향은 바뀌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변 사장은 내 말을 끊었다.

“기본적인 성향이 안 바뀌긴 뭐가 안 바뀌어. 지각도 안 한다며? 아침마다 가던 시장 조사도 안 하고, 엄청나게 성실해졌다며?”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다 알아! 사장이 모르는 게 어딨어!”

제로백 컴퍼니 내부에 민 사장 끄나풀이 있나? 같이 일하지 않고는 모를 얘기인데.

점점 민 사장은 본인 말투가 나오고 있었다.

어쨌든 난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어찌 됐든지 간에 민 사장님께서 자회사 설립을 승인하셨고, 저희가 잘 운영해 가고 있잖아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지금 와서…….”

“아! 얘기했잖아! 민 사장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

“이렇게 일 잘하는 줄 알았으면 독립 안 시키고, 내 아래서 일 시켰지. 당시에 강 대리를 제로백 컴퍼니로 보내는 것도 속 쓰려 죽을 뻔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어서 승인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퇴사를 얘기하니, 궁여지책으로 자회사 설립을 했었다.

“어쨌든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민 사장은 불리한 얘기가 나오자,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

“내가 자기한테 하고 싶은 말은…… 자네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는 변성준이 생각보다 그리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

“변 사장 아래서 자신을 숨기며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강 대리야말로 제로백 컴퍼니의 핵심이니까.”

민 사장은 내 눈치를 보다가, 한마디 더 했다.

“더 이상…… 이용당하지 말게.”

“…….”

난 대꾸하지 않고.

방금 그가 한 말을 묵묵히 생각했다.

변성준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일단, 변 사장님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 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지?”

“사람이 어떻게 만인에게 좋을 수 있겠습니까. 민 사장님께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저에게는 좋은 사람입니다.”

“허허. 내 말뜻을 이해 못 하는군. 난 보편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거야. 자기가 변 사장을 몇 년 봐왔지?”

“…….”

“한 3년 됐나? 난 변 사장을 몇 년 봐왔다고 생각하나? 진일상사 창립 멤버야. 무려 20년을 넘게 봐왔다고.”

민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내가 지금 급하니까 자네 마음을 돌리기 위해 험담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

“하지만 현상을 봐. 왜 회사 창립 멤버가 20년 가까이 회사 생활 하면서, 부장도 못 되고 차장으로 팀장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는 내 눈을 뚫어질 듯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창립 멤버는 어디 갔을까? 자네 보거나 들어본 적 있나?”

진일상사의 창립 멤버는 변성준 사장 말고는 못 들었다.

분명 민경원, 변성준 단 두 사람이라서 진일상사를 세운 건 아닐 텐데.

“내가 더 자세한 얘기는 안 하겠네. 어쨌든 내 오래된 동료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해온 사람이니까. 굳이 지나간 얘기 꺼내서 험담하고 싶지는 않아.”

“…….”

“현상을 보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말 잘 새겨들어.”

주변에서 자꾸 비슷한 얘기를 하니…… 약간 헷갈린다.

하지만 난 변 사장을 신뢰한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중 한 가지는 바로 짚고 싶었다.

“그리고 잘못 알고 계시는 게 있는데, 제로백 컴퍼니는 제가 핵심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자네가 빠지면 제로백 컴퍼니는 사라지지.”

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겸양을 떠는 게 아닙니다. 설립 초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

“제로백 컴퍼니의 핵심은 변성준 사장님이죠. 지금의 변 사장님이라면 굳이 제가 없더라도…….”

이 말은 진심이다. 그는 탁월한 전략가이며,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남자다.

나도 처음엔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어쨌든 지금의 변 사장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

“제로백 컴퍼니를 잘 유지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제로백을 나가서 다른 사업을 시작하셔도 잘하실 겁니다.”

“…….”

“민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거물입니다. 이건 제가 보증합니다.”

“하아……. 젠장.”

턱.

난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하나 올려놓았고.

민 사장은 놀라서 날 바라봤다.

“그러니까…… 괜히 그분과 척 지지 마십시오.”

“…….”

“욕심부리시다가, 몽땅 날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

.

.

.

하아―.

민 사장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뭔가 반박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는 말이 가볍지 않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한 회사를 수십 년 동안 운영해 온 사람이다. 이 정도면 분위기 파악을 했을 것이다.

난 민 사장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변 사장 또한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강 대리, 어떡하지.”

“…….”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영 아니네.”

“…….”

“변 사장을 그 자리에 두기가 싫어.”

냉수를 들이켜고 말했다.

“설령, 제로백 컴퍼니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뭐가 그렇게 안 내키는 걸까?

두 사람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흠…….”

난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변 사장이 곤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함께 일하고 싶다.

“정 그렇다면…….”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변 사장을 진일상사로 발령내고, 회사를 다시 병합하는 건 어떨까요?”

“…….”

“변 사장님을 직속 부하로서 그대로 제로백 컴퍼니 사장으로 두시는 겁니다. 그리고 수익은 로열티가 아닌 매출액 그대로 받으시면 되는 거죠.”

“그게 될까?”

“회사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협의를 해야겠죠. 특히 인사에 관련해서요. 지금 제로백 컴퍼니 직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회사 병합한다면서 처우를 낮추면 반발이 심하겠죠.”

“아니, 내 말은…….”

민경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과연 변성준이 받아들일까?”

“네?”

책임지는 거 싫어하는 변 사장이라면 당연히 땡큐라고 외칠 것 같은데.

처음에 본인이 사장 되게 했다고, 내게 엄청 뭐라고 했었다.

가늘고 길게 회사 생활 하다가, 부장 직급에 정년퇴직하는 게 꿈이라면서.

내가 자기 꿈을 망쳤다고.

“하하. 그건 염려 마십시오. 변 사장님이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잘 알아요.”

“…….”

“도리어 쌍수를 들고 환영할지도 몰라요. 하하.”

하지만 민 사장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사실 이 독립체 운영하는 것도 제가 제안했던 거잖아요. 변 사장님은 등 떠밀리듯 사장이 되셨던 거고요.”

이 말에 민 사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안은 자기가 했지만, 계획은 변성준이 짠 거 아니었어?”

“네?”

엇……. 그걸 어떻게…….

당시에 퇴사를 고민하던 내게, 변 사장이 준 전략이었다.

‘내가 강 대리라면…….’이라는 말로 시작했었지.

당혹스러운 내 표정을 보고, 민 사장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자네 제안처럼 되나 보자고.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재고해 볼 여지가 있지.”

“…….”

“하지만, 과연…… 변 사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할까? 그럼, 연락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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