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69화 (69/156)

새로운 사랑산성 (1)

* * *

헛, 이럴 수가.

맛이…… 다르다.

“왜 그러세요?”

주방장은 당황한 내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빛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조리 과정을 그대로 다 따라 했으니까. 분명 옆에서 봤다.

같은 재료와 동일한 주방 기구를 썼다.

맛이 다르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드셔보세요.”

혹시 내 입맛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어서, 일단 먹어보라고 했다.

선입견이 생길까 봐, 맛이 다른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방장은 샥스핀탕 한 숟가락 떴다.

후르릅.

“음?!”

주방장은 한 입 먹은 뒤, 표정이 굳어버렸다.

“어?!”

후르릅.

그녀는 믿기지 않는 듯, 다시 한 수저 떠먹었고.

맛이 다르다는 확신이 들자, 잠시 고민하다가.

날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예요?”

“네?”

“가르쳐 주기로 하신 거 아니었어요? 다 전수해 주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요.”

“…….”

“조리 과정 중에 저한테 안 알려준 거 있죠?”

“무슨 소리세요. 옆에서 다 봤잖아요.”

“완벽하게 다 본 건 아니죠. 잠시 한눈판 사이에 저한테 안 알려주신 뭔가를 하신 거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다소 흥분한 주방장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 절 바보로 아세요? 주방 경력이 몇 년인데? 똑같이 했는데, 맛이 다른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아하……. 이거 참.”

난감하다. 근데 상식적으로는 그녀의 반응이 이해되기도 한다.

난 두 손을 모으고 힘주어 말했다.

“정말이에요. 주방장님 몰래 한 비법 같은 건 없어요. 옆에서 관찰하신 그대로예요.”

“…….”

“보셔서 알잖아요. 1시간 가까이 바로 옆에서 관찰하셨고, 제가 같은 요리만 적어도 10번은 한 거 같은데.”

그녀의 표정이 좀 수그러들고 있었다.

“음식 만드는 거 잠깐만 보여드렸다면, 그런 수작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여러 번 음식 만드는 동안 주방장님 눈을 속일 수 있겠어요.”

“흠…….”

그제야 주방장의 미간 주름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근데, 어떻게 맛이 다를 수 있죠?”

“그러게요. 저도 이상합니다.”

난 다시 한번 맛을 보았고, 내가 만든 것과 주방장이 만든 것을 비교해 보았다.

흠…….

다르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 차이는 있다.

뭐랄까…… 내가 만든 것은 깊이가 있으며, 감탄이 우러나오는 맛이라면.

주방장의 것은 그냥 흉내 낸……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맛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그런 건 느껴지지는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만들어 보시죠.”

“그럴까요.”

주방장은 샥스핀탕을 다시 만들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세하게 달랐다.

미세하지만, 느낌은 많이 다른…… 그런 차이.

“하아―.”

맛을 보고 나서, 주방장은 한숨을 쉬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손맛인가 보네.”

“…….”

“손맛이라는 건 엄연히 존재해요. 손에서 이루는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이라고 하죠.”

손맛이라…….

난 내 금손의 특별함을 알기 때문에,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방장은 손맛의 차이를 이미 경험해 본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 음식이 그랬거든요. 아무리 똑같이 해도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치찌개 맛은 나지 않았어요.”

지금 날…… 어머니에 비유하는 건가.

“한계가 있네요. 손맛 차이는 어쩔 수 없어요.”

상식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이해 안 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어떡하면 좋을까요? 지금 한창 오픈 준비 중인데……. 음식 맛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설 사장님이 알면…….”

주방장은 걱정이 되는지, 한숨을 쉬었다.

주방장 탓이 아니다. 이건 누구도 예상 못 했던 문제다.

“글쎄요. 직접 만든 것을 맛봤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어요. 손님도 차이를 느낄만한 맛인지, 차이가 있다고 해도 판매하기 어려운 수준인지는 봐야 할 것 같아요.”

난 설 사장을 걱정하는 주방장을 안심시켰다.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이 있을 겁니다.”

* * *

난 주방장을 보내고 난 뒤, 변 사장과 설수민을 불렀다.

주방장이 본인 문제라며 자책하고 있어서, 없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샥스핀탕.

후르릅.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한 수저씩 먹었다.

맛의 차이 등은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

“흠…….”

변 사장은 신음 소리를 내었고.

설수민은 변 반응이 없었다.

“어떻습니까?”

변 사장은 약간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는 왼쪽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강 대리가 만든 거지?”

“네, 맞습니다.”

“맛이 다르네.”

아……. 역시. 차이가 많이 나나?

“난 잘 모르겠는데요?”

근데 설수민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왼쪽 것이 조금 더 깊은 맛이라는 느낌은 있어요. 근데 변 사장님 말씀 듣고, 몇 번 더 생각하면서 먹어본 뒤에야 알겠던데.”

“…….”

“처음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 때는 못 느꼈어요.”

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설수민에게 물었다.

“설 사장님은 제가 만든 음식 처음 먹어보시죠?”

“처음은 아니죠. 며칠 전에 먹어봤잖아요. 사업 미팅하러 왔을 때 맛보라고 하셔서.”

아…….

“변 사장님.”

“응?”

“혹시 오늘 점심에 음식 맛보셨었나요?”

“당연하지. 난 강 대리가 만든 음식은 매일 맛봐.”

“그러셨어요?”

본 적이 없는데? 따로 만들어 준 적도 없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자, 변 사장은 눈빛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안 만들어줘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비싼 재료로 만드는 음식인데, 아껴야지.”

“…….”

설마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맛봤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점심에 방문하신 손님들이 그날 저녁에 또 방문하시면 차이를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

이 말에 설수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변 사장은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내가 볼 때는 100%라고 봐. 분명히 차이를 느낄 거야. 하지만…….”

변 사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35만 2천 원짜리 음식을 점심 먹고, 같은 날 저녁까지 먹는 손님이 얼마나 될까?”

“…….”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거든?”

“어쨌든 가능성이 있는 거고, 이 때문에 고객이 클레임을 제기한다면요?”

변 사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죄송하다고 하면 되지. 같은 레시피지만, 주방장이 달라서 오는 차이라고. 이게 사실이고 충분히 납득 가능하잖아.”

“…….”

“그래도 손님이 난리 친다면? 음식값 안 받으면 되잖아. 이 정도 희박한 가능성이라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리스크라고 보는데?”

“…….”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설수민은 살며시 미소 지었고.

나 또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명쾌하고, 심플하다.

변 사장이 간단하게 정리해 줬다.

“강 대리~, 정리됐으니까. 이 문제는 신경 쓰지 말고, 진도 나가. 문제 생기면 나랑 설 사장님이 책임지면 되니까. 그렇죠? 설 사장님?”

“호호. 네~.”

변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하던 게 있어서 먼저 간다~. 설 사장님,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쾅.

변 사장이 나간 뒤, 설수민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변 사장님 보기와 달리 굉장히 쿨하시네요.”

달마대사를 닮은 듯한 초승달 눈매에 푸근한 인상의 변 사장.

요즘 들어서 초승달 눈매가 약간 매섭게 느껴지긴 한다.

“그러니까요. 저도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하하.”

* * *

오픈 준비는 차근히 이루어졌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주방 식기와 직원 콘셉트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님 응대할 때는 깔끔하고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

접대의 베테랑들 앞에서 고객 응대 교육을 하는 최경리의 모습을 볼 때면, 좀 민망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교육비도 받았으니,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했다.

10일 정도 지났을 때, 오픈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홍보만 하면 되는데.

“강 대리, 홍보한답시고 네모튜브나 동방일보 기자는 부르지 말자.”

“네, 저도 그럴 생각 없습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극약처방을 한 것이었고.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디너 홍보를 하면 자연스럽게 런치 홍보도 함께 될 거고.

그랬다간 지금도 소화할 수가 없는 지경인데, 더 손님이 몰릴 것이다.

약 한 달 전, 한창 이슈가 돼서 영업장에도 들어오기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홍보는 런치 고객들에게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오실 만한 분들에게는 충분히 알려져 있고, 저녁 장사도 시작했다는 걸 알리면 될 것 같거든요.”

“그렇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오픈 일주일 전부터, 사랑산성 직원들은 점심때 나와서 대기 손님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다.

고운 한복차림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전단지를 돌리니 반응이 좋았다.

[디너 오브 제로백 시작합니다~.]

[오픈 날 주류 서비스 있습니다~.]

점심 영업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디너에는 주류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음식 맛이 런치에 비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주류 판매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될 것이다.

― 아~, 너무 잘됐다. 점심 장사만 해서 아쉬웠는데.

― 오픈 날 꼭 가야지.

― 근데 직원들이 좀 야시시하네.

― 너무 좋은데?

대기 중인 남자들, 특히 아빠들은 전단지 돌리는 도우미들을 보며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설수민도 함께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했는데.

특히 그녀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지에 있던 꽃이 양지로 나온 것이다.

― 저 여자 연예인 아니야?

― TV에서 봤던 거 같은데.

― 홍보하려고 연예인 섭외했나?

그녀의 주변을 쫓아다니며 수군대는 사람들.

남자만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남, 여 상관없이 모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 사랑산성.

맑고 좋은 날씨.

양지로 나온 화사한 꽃들.

햇빛을 받으니, 꽃들은 더 아름다워졌다.

활짝 핀 꽃들.

보기가 참 좋았다.

* * *

‘디너 오브 제로백’ 오픈 날.

강태평은 점심 영업을 끝내고, 저녁 오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주방을 비워주었다.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

김지안이 조그만 상자를 들고,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다른 도우미들도 함께였다.

“지안아, 여기 왜 이러고 있어?”

김지안 앞에 다가간 강태평.

강태평은 어린 그녀를 편하게 부르고 있다.

“강 대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김지안은 수줍게 웃으며 들고 있던 상자를 강태평에게 건네었다.

조그만 하트 모양의 상자였고.

상자를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강태평을 보며.

김지안 뒤의 도우미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을 대표하여, 김지안은 말을 이어갔다.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요.”

“감사?”

“네.”

김지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 사장님과 사랑산성을 지켜주셔서…… 그리고 우리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거 나한테 감사해할 게 아닌데.”

강태평은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회사 일 한 건데, 왜들 이럴까.’

“선입견 없이 봐주셨으니까, 가능했던 일이에요.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강 대리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김지안은 고개를 숙였고, 뒤에 있던 도우미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여 강태평에게 인사했다.

“…….”

사랑산성의 어두운 복도.

조그만 상자를 들고 있는 강태평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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