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68화 (68/156)

협의 조건 (2)

* * *

“난 못 해요…….”

설수민은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아팠다.

인원을 반으로 줄이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 명 줄여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변 사장의 지침이 다시금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

“로열티를 올린다던가, 아니면 직원들 급여를 낮추든지 할 테니까요.”

변 사장은 산술적인 생각으로 제안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변 사장이 지시한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앞서 얘기했던 ‘규정’을 들먹이는 수밖에는…….

“죄송합니다. 저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규정이라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설수민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저희가 그 규정을 못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없던 일이 되는 수밖에.”

“그래요? 없던 일이 되면 귀사에 안 좋은 영향이 갈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하시죠?”

런치 오브 제로백은 낮 시간 동안 사랑산성을 임대하여 영업하고 있다.

그녀의 말뜻이 뭔지 안다.

“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아……. 정말 미치겠다.”

설수민은 한숨을 쉬었다.

직원 한 명 줄이는 거로, 대립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변 사장이 시험이라고 했고 절대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럼……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

“약속된 시간에 계약서 준비해 놓겠습니다.”

설수민은 고개를 숙인 체 한숨을 쉬었고.

난 가볍게 목례한 후, 룸을 나섰다.

그날 밤 새벽 2시.

사랑산성 영업이 끝난 후, 설수민은 전 직원을 가장 큰 룸으로 모았다.

# 사랑산성 현재 인원 구성

도우미: 6명

웨이터 겸 주방 보조: 2명

주방장: 1명

사랑산성 직원의 특이점은 남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방장만 중년이고, 모두 젊은 여성들이다.

“다 모였어?”

“네!”

직원들 앞에 선 설수민의 카리스마는 엄청났다.

그녀의 한마디에, 모두가 설수민에게 집중했다.

직원들이 설수민을 바로 보는 눈빛에서, 그녀를 대단히 신뢰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업종 변경을 하려고 해.”

“…….”

“아마 다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 거야. 우리 업소에서 점심 장사하는 런치 오브 제로백이 너무 잘되고 있고, 최근에 남성분이 계속 업소를 들락거렸었지.”

모두들 잠자코 설수민의 말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얼마 전에 파리채로 진상 손님 때려잡은 남자분이요?”

“맞아. 그분이 런치 오브 제로백의 직원이시고, 업종 변경에 대해 컨설팅 중이었어.”

그러자 도우미들이 수군거렸다.

― 파리채 스파이크 장난 아니던데.

― 도구가 좀 웃기긴 하지만 멋있었어.

― 얼굴도 귀엽게 생기셨던데.

“자자, 조용.”

설수민은 조용히 시킨 후 말했다.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고, 업종 변경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여러분과 사랑산성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니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에 도우미들이 대답했다.

― 알겠어요~. 설 사장님이 결정하신 일인데요. 당연히 따라야죠.

― 근데 우리가 레스토랑을 잘할 수 있을까요?

설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술 취한 손님들 비위도 맞추는데, 맨정신 손님들 맞이하는 게 뭐가 문제겠니.”

― 호호.

설수민의 말에 도우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휴우―.

설수민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했다.

“혹시, 이 중에 업종 변경을 반대하거나,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사람 있니?”

“…….”

“괜찮으니까, 있으면 손들어 봐. 내가 다른 업소 소개해 줄 수 있으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탬버린은 나의 숙명이라던 사람들 있잖아. 왜 아무도 손을 안 들어?!”

지원자가 없자, 설수민은 마음이 급해졌다. 없다면…… 지목을 해야 하기에.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사랑산성의 도우미들은 2차를 뛰며 인센티브를 받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철저히 월급제였다.

그저 돈이 필요했고, 가진 경력과 나이에 비해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택했을 뿐.

웃음과 노래를 파는 데 진심인 사람은 없었다.

“전 인원을 데려갈 수는 없어. 인원을 정리해야 해. 정말 없어?”

“…….”

설수민은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제발…….’

직원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남 핑계 또한 대고 싶지는 않았다.

설수민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결정하겠어. 날 원망해도 좋아. 하지만…….”

설수민은 눈물이 떨어질 듯한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반드시 잘 살아라.”

* * *

다음 날 오후 3시.

또각. 또각.

단정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설수민이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예정대로 오늘 계약한다는 연락은 어젯밤 받았었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하하.”

변 사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설수민을 맞이했다.

설수민은 그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중얼거렸다.

“참…… 두 얼굴이시네요.”

제로백 컴퍼니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한 명을 정리하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밤새 운 건지, 설수민의 눈두덩은 약간 부어 있었다.

“네?”

“제가 사람 볼 줄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변 사장님은 잘못 판단했습니다.”

“하하. 뭐가요?”

변 사장은 짐짓 모르는 척 대꾸했다.

“사장님처럼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속을 쉽게 내보이면 안 되죠~.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허허.”

변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털웃음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난 그녀를 향해 물었다.

“계약서 꺼낼까요?”

“네, 빨리하시죠.”

“좋습니다.”

난 준비된 계약서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설수민은 계약서를 찬찬히 읽었다.

변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사전에 논의된 건 외에는 특이사항 없습니다. 만약 구두로 협의된 것과 다른 부분이 추후라도 발견된다면 그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녹음하셔도 좋습니다.”

“됐습니다.”

난 펜을 꺼내어 설수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계약서 첫 페이지에 현재 사랑산성 현황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 주시고요. 계약 사항 확인하시고, 직인 및 간인 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설수민은 계약서 첫 페이지를 적다가…….

‘총 직원수’

이 항목에서 살짝 손을 떨었다.

“휴우―.”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그 옆에 숫자를 적었다.

‘총 직원수: 9명’

약속대로 한 명을 줄인 것이다.

마음이 좀 아플 수 있다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건 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녀의 성격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 걸까?

여기 아니어도 사랑산성의 아가씨는 갈 곳은 충분히 있을 텐데.

길 가다가 보기 힘들 정도의 미인인 데다가, 업무 스킬도 좋았다.

컨설팅할 때 복도를 지나가며 들었는데 옥타브도 높게 올라가고, 탬버린은 얼마나 박자를 잘 쪼개면서 치는지.

절로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였으니까.

“흠~.”

변 사장은 설수민이 작성한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며 말했다.

“인원을 한 명 줄이셨네요?”

“네?”

“맞죠?”

“몰라서 물으세요? 아니면 일부러 그러시는 건가요?”

설수민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다.

정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예민한 듯 보였다.

“하하. 진정하세요. 그냥 묻는 겁니다. 혹시 자진해서 그만둔 건가요?”

“아니요. 제가 관두게 했습니다.”

“모두가 사장님과 함께하기를 원했나 보군요.”

설수민은 짜증 난다는 듯 되물었다.

“그건 왜 자꾸 묻는 건데요? 생각하기도 싫으니, 더 묻지 말아 주세요.”

변 사장은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나이와 성별이 어떻게 됩니까?”

“참나…….”

설수민은 이제 대꾸도 안 하려 했다. 하지만 변 사장은 진지했다.

“중요한 일입니다. 대답해 주세요.”

“나이 21세. 여성이에요.”

“왜 그 친구로 결정하신 건가요?”

“…….”

설수민은 대답 대신 변 사장을 째려보았고, 변 사장은 위압적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어서요.”

휴우―.

설수민은 또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가장 어리고 똑똑한 친구라서요. 어딜 가서도 잘할 아이라서, 그 친구를 내보낸 거예요.”

“…….”

“내 눈에 안 보여도, 가장 안심이 되는 아이.”

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보통은 그런 친구를 가장 먼저 데려가려고 하지 않나요? 설 사장님은 그 반대네요?”

“나에겐 모두 단순히 직원들이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흠…….

변 사장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 물었다.

“그 친구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김지안이에요.”

“김지안 씨…….”

변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설수민에게 제안했다.

“그분을…… 제로백 컴퍼니가 채용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뭐……. 뭐어?!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설수민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동그래져서 변 사장을 바라봤다.

“저, 정말이요? 지안이를요?”

“네, 아직 다른 데 안 갔죠?”

“호호!”

설수민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이죠! 어젯밤에 얘기했는데.”

“다행이네요. 계약 끝나고, 김지안 씨 바로 봤으면 합니다. 가능할까요?”

“어머. 어머. 그럼요!”

설수민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한마디 했다.

“설 사장님~, 그만 좀 우세요. 어제부터 계속……. 하하.”

“흑……. 몰라요.”

포스는 엄청난데, 참 눈물이 많다.

한참을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수도꼭지 튼 것 마냥, 계속 울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안이 바로 준비시켜서 내려보낼게요.”

“하하. 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후다닥.

설수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설수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안아~, 손님 맞아라~. 아, 호호. 이거 아니지.]

* * *

“원래 이럴 생각이셨어요?”

“응. 티 많이 났어?”

“…….”

“설 사장도 알아챈 건 아니겠지?”

설 사장이 김지안을 부르러 간 사이. 난 좀 전의 행동에 대해서 변 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이러실 거면 저한테도 말씀을 해주셔야죠.”

“확실한 작전을 위해서는 같은 편도 속일 줄 알아야 해.”

단순히 좋은 뜻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건가? 작전?

“그냥 서프라이즈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비즈니스에 서프라이즈가 어딨어.”

“…….”

“보아하니, 자기 사람에게 약해 보였거든. 설 사장처럼 상냥하지만, 방어적인 사람들이 한번 마음을 주면 쉽게 놓질 못하거든.”

난 그의 얘기에 집중했다.

“성장 과정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뭐, 그런 성격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해서 김지안 씨를 우리 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한은…….”

변 사장의 눈빛이 빛났다.

“설 사장이 딴생각은 안 하겠지.”

“…….”

“점심 영업까지 넘본다든지, 혹은 다른 경쟁자와 손잡는 일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

“이 일로 나에게 빚진 마음을 갖게 되었을 거고, 또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우리 회사 직원으로 있으니까.”

“벼, 변 사장님…….”

난 이제 이 남자가…….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때? 전략 괜찮았어?”

꿀꺽.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전략이라니.

“하하. 이걸로 우린 사업 확장하고~, 안심하고 우리 영업도 하고~, 일거양득이지. 하하하.”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변 사장.

원래는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변 사장은 너무나 비범하다.

헷갈린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자리가 사람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갑자기 다가온 아이

* * *

“안녕하세요. 김지안이에요.”

어깨까지 오는 머리, 새하얀 피부.

이목구비는 작고 오밀조밀한데, 눈만 굉장히 컸다.

유독 동공이 새까맣고 큰데, 그래서인지 눈빛이 깊어 보였다.

전체적인 인상에서 한눈에 봐도 지혜로운 아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가워요. 앉으세요.”

“네.”

김지안은 우리 앞에 앉았다.

무릎을 모으고 다소곳이 앉는데.

그 모습에서 단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우미라고요?”

변 사장의 말에 김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한 건가?”

“아니요. 법적 자격이 될 때부터 했어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좀 지나서요.”

“아……. 그래요.”

너무 어려 보인다.

얼핏 보면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로 보일 정도였다.

“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일자리를 알아보던 당시에 투잡을 뛰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이었어요.”

“투잡?”

“네, 낮에는 카페에서 일했었거든요.”

“지금도 낮에 일하나요? 그럼 우리와 함께할 수가 없을 텐데. 설 사장님한테는 얘기 들었죠?”

“네, 얘기 들었습니다. 지금은 낮에 일하지 않습니다. 사랑산성에서만 일하고 있어요.”

“아, 그럼 지금은 투잡이 아니군요. 당시에 돈이 급했나 보죠?”

“네, 급했습니다.”

변 사장은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싶어서 물은 질문이었지만, 김지안은 간결하게 대답해 버렸다.

아마도 관련해서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인 듯했다.

“와……. 어린 친구가 대단하네. 도우미 일을 하면서 낮에도 일하고.”

김지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어요.”

“…….”

“어쨌든 그 덕분에 전 지금 대학생이 되었으니까요.”

대학생?!

그녀의 대답에 우리 놀랐다.

이번엔 내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우미를 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는 건가요?”

“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지금 대학생이 되지 않았겠어요?”

“…….”

변 사장도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하, 학교가 어딘데요?”

“Y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

“왠지 전공도 물어보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렸어요.”

대…… 대단하다.

Y대학교면 죽어라 공부해도 들어가기 힘든 학교인데. 거기다가 경영학과라면…….

다시 한번 찬찬히 김지안을 바라보았다.

말소리도 또렷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다.

자세히 보니 단순히 명석함만 담은 눈빛이 아니었다. 강인했다.

“명문대를 다니면서 도우미 일을 하는 건 자존심 상하지 않나요?”

변 사장의 물음에 김지안은 뭔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존심이요? 그냥 돈 버는 건데 그게 뭐가 필요하나요?”

“…….”

“여기서 몇 시간 탬버린 치며, 노래 부른다고 해서 제 인생이 달라지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필요에 의해서 할 뿐이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설수민 사장님 같은 좋은 분을 만났잖아요. 전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헤어지게 되어서 아쉽지만…….”

보면 볼수록 물건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의 어려 보이는 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명석함과 똑 부러지는 태도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약간 그녀가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

변 사장 또한 그런 듯 보였다.

처음엔 다리 벌리고 편하게 앉아 있던 변 사장이 지금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으니까.

“흠! 혹시 뭐 또 잘하는 거 있어요?”

“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영어와 일어 좀 할 줄 알아요.”

얘 뭐야, 도대체…….

“어, 얼마나요?”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은 돼요.”

“투잡 뛰고 입시 준비하면서, 그건 또 언제 배웠대요?”

“그냥 일하면서 틈틈이 익혔어요. 요즘은 2개 국어는 해야 한다길래.”

“잠은 도대체 언제 잡니까?”

“잠이야 죽으면 평생 자는데요.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자면 돼요.”

“…….”

“쪽잠 자는 것도 루틴이 되면, 몸이 적응되어 버려요. 괜찮습니다.”

변 사장은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숙여서 말했다.

“강 대리, 나 이 사람 좀 무섭다.”

“그러게요.”

“나중에 대통령 될 사람 아니야?”

“……글쎄요. 어쨌든 21살이 이 정도니……. 나중에 한몫할 것 같긴 합니다.”

“대단하다, 진짜…….”

변 사장은 다시 자세를 단정히 했다.

“흠!”

“…….”

“런치 오브 제로백에서 일할 생각은 있나요? 지금 학교 다니고 있는데, 낮 시간에 일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수강 시간을 조정하면 됩니다.”

김지안은 우리를 보고, 힘주어 말했다.

“기회만 주신다면, 전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묘한 힘이 있었다. 그녀의 말을 거절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급여와 처우는…….”

“그건 회사 내규에 따르겠습니다.”

이젠 돈이 급하지 않은 건가?

지금까지의 똑 부러지는 모습을 봐서는, 이 부분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 의외네요. 알겠어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변 사장의 말에 김지안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전 설 사장님과 가까이 있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합니다.”

“…….”

김지안은 살짝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

‘디너 오브 제로백’의 런칭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난 컨설팅의 주체자로서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가장 먼저 설수민은 주방장과 함께 우리 주방을 방문하여 추가로 필요한 식기부터 확인했다.

우리가 구매했던 업체 정보를 알려주었고, 설수민은 가격 비교를 해 가며 알뜰하게 주방 기구 구매 먼저 했다.

그다음으로 레스토랑의 콘셉트를 준비했다.

먼저 변 사장의 아이디어를 전해주었다.

‘점심은 서양, 저녁은 동양’

물론 아이디어일 뿐이며, 결정하는 건 설수민 사장 몫이라는 말도 전했다.

그녀는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이왕 동양이면 한국적 분위기가 좋지 않겠어요?”

“메뉴가 약간 중국풍이긴 한데.”

“상관없어요~.”

그녀는 곧바로 서빙 직원에게 입힐 한복을 제작했고, 며칠 뒤 본인이 입고 나타났다.

“강태평 씨 어때요? 한복이긴 하지만, 서빙하는 데 불편함 없도록 제작했어요.”

“…….”

난 설수민을 넋 놓고 보았다.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곱게 올리고.

연한 진주색 치마 위에 크림색 당의를 입고 있는데.

사극에서 나오는 반가의 여배우 같아 보였다.

여성스러움과 기품이 철철 넘쳤다.

“치마폭을 조금 좁게 했는데……. 많이 이상한가요?”

설수민은 내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여성을 예술 작품에 비유할 때가 이런 순간일까.

난 그냥 작품 보듯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수민은 한복이 참 잘 어울렸다.

“너무 뚫어지게 보신다~. 호호.”

설수민은 미소를 지으며 뒤돌았다.

“그럼~, 이걸로 하면 되겠네. 옷 갈아입고 올게요.”

음식 메뉴는 예정했던 대로 점심과 동일하게 가기로 했다.

다만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과연 사랑산성 주방장이 내 요리를 따라 할 수 있을지.

만약 이게 안 되면…… 많은 것들이 틀어질 수 있다.

“안녕하세요~.”

사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웃으며 점심시간에 우리 주방을 찾아왔다.

영업하는 동안 내가 따로 시간을 내어 가르쳐 줄 여력은 없을 것이다.

실전과 동일하게 준비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주방장님, 어서 오세요. 많이 피곤하시죠?”

오후 1시.

아직 사랑산성은 단란주점 영업 중이기에, 이 주방장은 밤일하고 잠깐 눈붙이고 나온 것이다.

“괜찮아요~. 당분간 어쩔 수 없죠. 일자리 사라지는 것보다야 100배 낫죠~.”

“……네.”

아마, 설수민에게 설명은 들었겠지만, 다시 한번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은 항상 같은 메뉴지만, 매일 맛이 다르거든요.”

“…….”

“조리 과정 중에 약간씩 차이가 생겨요. 그건 제가 의도하고 하는 게 아니라, 느낌 가는 대로 조리하는 거거든요.”

주방장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디테일을 잘 주의해서 봐주셔야 해요. 제가 듣기로는 웬만한 음식은 완성된 것만 봐도 다 따라 만들 줄 아신다고…….’

주방장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창작은 못 하지만, 따라 하는 건 자신 있어요~”

그때 최경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대리님~! 샥스핀탕 빨리 나와야 해요!”

한창 영업 중인 시간이라, 더 설명할 수 없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잘 보세요. 저 일 할게요.”

“네에~.”

난 음식 조리에 집중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손님은 꽉 차 있었기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옆에서 사랑산성 주방장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난 무아지경에 빠져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수비드 안심구이를 한창 굽고 있는데.

“와……. 안심을 굽는데, 생강을 넣네?”

옆에서 주방장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아~, 마지막에 마가린을 한 번 더 쳐서, 센 맛을 잡는구나.”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여유가 없었다.

오늘도 대기 줄은 100미터가 넘기에.

그저 묵묵히 속도를 냈다.

어느덧 1시간이 지났고, 오후 2시가 넘어가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사랑산성 주방장은 여전히 날 관찰하고 있었다.

“충분히 보셨을 거 같은데.”

1시간 동안 코스 요리를 여러 번 반복했기에, 난 그녀가 충분히 조리법을 익혔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 봤습니다만, 신기해서 눈을 못 떼겠네요. 호호.”

“그래요?”

“네~, 제가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주방경력이 20년이 넘거든요. 완전히 신개념으로 조리하시던데.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것도 그렇고요. 호호.”

“…….”

“외국에서는 요리를 원래 이런 식으로 하나요?”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해외의 전문 요리학교에서 배운 베테랑 셰프로 생각을 하나 보다.

사실 전혀 아니지만……. 요리라는 걸 해본 건 이제 2달 되었지만.

설명하자면 길어지니까, 그냥 얼버무렸다.

“뭐……. 그런 거죠.”

“호호. 어머~ 신기해, 증말~.”

어쨌든 중요한 건…….

“어떻게…… 똑같이 해보실 수 있겠어요?”

“제가 아는 기본을 완전히 벗어나는 조리법이라서…… 눈에 익히는데 쉽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날 향해 싱긋 웃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제발 그러길 바란다.

똑같은 방식으로 조리를 해도, 다른 맛이 나오는…… 그런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기를.

내 손이 보통 손이 아니기에 난 살짝 불안했다.

“그럼 한번 만들어 보실래요?”

“네, 대표 음식 샥스핀 탕으로 해볼게요.”

난 앤더슨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사랑산성 주방장이 조리하는 걸 지켜보았다.

역시…… 베테랑이라 그런지, 요리하는 모습이 아주 능숙했다.

눈으로만 보고 따라 하는 걸 텐데도, 소금, 설탕, 국간장의 적당량을 투하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조리 속도도 신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샥스핀탕은 완성됐다.

“자~, 완성했습니다.”

사랑산성 주방장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아마 99% 똑같을 겁니다. 호호. 맛보세요~”

“…….”

내가 봤을 때도 조리 방법, 요리 순서는 동일했고, 재료도 같다.

음식 맛이 다를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럼…….”

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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