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67화 (67/156)

협의 조건 (1)

* * *

“사랑산성에 주방장이 따로 있습니까?”

“주방장이요?”

설수민은 웃으며 말했다.

“호호. 당연하죠. 저희도 베테랑 주방장 있어요.”

아무리 베테랑 주방장이라도 나처럼은 못 할 텐데.

“런치 오브 제로백이 손님들에게 인기 많은 가장 큰 요인이 맛이거든요.”

“강 대리님이 너무 맛있게 해주셔서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니까 말할 수밖에 없다.

“뭐, 손님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네요. 근데…… 제가 하는 음식 맛이라는 게.”

레시피도 안 보고 만든다. 레시피라는 거 자체가 없다. 요리 배워본 적 없고, 음식 맛이 매번 다르다. 근데도 아주 맛있다.

사실이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흉내 낼 수가 없는 맛입니다.”

“레시피 없어요?”

“네.”

“가르쳐 주시는 건요?”

“가르치는 것도…….”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천천히 보여 주면, 그게 가르치는 거겠지.

“그건 가능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거예요. 매일 맛이 다르거든요. 제 요리를 따라 하고자 배웠는데, 내일은 요리 맛이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매일 다르다고요?”

“그게 우리 레스토랑 특징이에요. 전 프리스타일 즉흥 요리를 합니다.”

설수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매일 배우면 되잖아요.”

“엇…….”

그렇네?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알려줄 여유는 없다.

“호호.”

설수민은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서 그냥 관찰만 하게 해주시면 돼요.”

“…….”

“우리 주방장님 베테랑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네, 완성된 음식 보고도 따라 하는데, 조리하는 걸 보고 못 따라 하겠어요.”

“…….”

흠……. 요리를 오래 하신 분이라면 그게 가능하려나.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네, 점심에도 나와서 음식 만드는 거 관찰하려면, 근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겠네요.”

“어쩔 수 없죠. 월급 좀 더 드려야지.”

“좋습니다. 그럼 맛의 유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다음은.”

# 디너 오브 제로백: 비밀 유지

“저희 회사는 비밀 유지를 매우 중시합니다.”

“흠……. 음식 맛에 대해서 말인가요? 근데 레시피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

난 가만히 설수민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레스토랑이 레시피 말고 비밀 유지할 게 또 있나요?”

“네, 우리는 있습니다.”

“뭔가요?”

“저의 존재에 대해서입니다.”

설수민은 눈을 멀뚱히 뜨다가 반문했다.

“네?!”

그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국정원 요원도 아니고, 일개 음식점 셰프인데.

하지만 변 사장이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었고, 나 또한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

“제가 셰프를 하고 있다는 건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

“셰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설 사장님과 주방장님뿐이어야 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몰라야 합니다.”

이 말에 설수민은 처음엔 당황해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대답했다.

“좀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그거야 뭐, 그렇게 하면 되죠.”

“비밀서약서까지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

“훗. 알겠어요. 철저하시네요. 회사 방침이라고 하시니 뭐.”

설수민은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근데…… 강 대리님 대단한 분이신가 봐요?”

“왜요?”

“그렇잖아요. 인적 정보에 대해 비밀 유지를 한다는 게…… 무슨 전략 무기 일급 비밀로 해놓는 것 같잖아요. 호호.”

“…….”

“그리고 우리가 첫 프랜차이즈이고 꽤 중요한 일일 텐데, 강 대리님께 일임하는 것도 그렇고요.”

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프랜차이즈가 될 겁니다.”

“그래요?”

“네, 저희가 어쩔 수 없어서, 설 사장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니까요.”

“…….”

“하지만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설 사장 덕분에 약간의 가능성을 봤다.

매번 음식 맛이 바뀌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사업 확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점심때 내 음식 만드는 걸 옆에서 지켜본 후, 똑같은 맛으로 저녁 장사를 한다?

얼마나 맛이 같을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꽤 괜찮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잘만 발전시키면 더 확장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호호. 그래요?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희가 도움이 되었다니 좋네요.”

시간이 꽤 늦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나눈 내용 토대로 사장님께 보고드리고, 최종 협의안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신 김에 노래 한 곡 하고 가시지?”

설수민은 노래방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고.

난 그녀의 농담에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지금 너무 맨정신이라서요. 다음에 부를게요. 하하.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태평은 깍듯이 인사하고 룸을 나갔고.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설수민을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나랑 단둘이 있으면서,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진짜 일만 딱 하고 가네?”

설수민은 거울로 자신의 외모와 옷매무시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내가 매력이 없나? 괜찮은데.”

* * *

다음 날.

변 사장을 만나서 설수민과의 협의 내용을 보고했다.

키워드별로 정리된 내용을 보고했고, 당시에 정해지지 않았던 세부 사항은 내 의견을 참고로 얘기했다.

“로열티 퍼센트 비중은 안 정했었는데요. 저는 매출의 5%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5%?”

“네.”

변 사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좀 높은 거 아니야?”

그 또한 알아본 것 같다.

통상 프랜차이즈 로열티는 3%이거나, 30만 원 50만 원 이런 식으로 고정되어 있다.

“네, 좀 높긴 합니다만, 저희는 음식 맛을 매일 가르쳐 줍니다.”

“아……. 그렇지.”

사랑산성의 주방장이 매일 점심때 조리하는 모습을 참관할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레스토랑 특성상 맛의 유지를 위해, 사업하는 동안은 조리 참관을 계속해야 할 것 같거든요.”

“…….”

“교육비 항목으로 매달 따로 받는 것도 좀 그렇고요. 로열티 비용에 반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설 사장님께 따로 설명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5%라…….”

변 사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강 대리 얘기 듣고 나니, 5%도 좀 적다~. 7%로 하지?!”

“양아치 소리 듣습니다. 요즘 인터넷 무섭습니다.”

“알았어. 5%로 해.”

변 사장은 모든 얘기를 다 들은 후 내게 물었다.

“비밀 유지는 확실히 고지한 거지.”

“네.”

변 사장이 이 부분을 매우 중시한다.

난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이미 설수민에게 강조해서 얘기했었다.

“그래, 그럼 이렇게 진행하자고. 다만…… 두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어.”

음?!

의왼데? 변 사장이 다른 의견을 제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사랑산성이 콘셉트를 우리와 동일하게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

“메뉴는 당연히 같아야 해. 그래야 장사가 될 테니까. 하지만 분위기를 달리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우리는 서양식 레스토랑 분위기라면, 사랑산성은 동양적 분위기로.”

“예를 들자면요?”

“서빙하는 분들이 나비넥타이 대신 치파오나 한복을 입는 거지.”

“…….”

“사랑산성이라는 장소 자체가 동양, 서양 분위기 모두 잘 어울리거든. 낮에 찾는 손님이 밤에도 찾을 수도 있는 건데. 다른 재미를 줘야 하지 않을까?”

“메뉴와 맛은 같지만, 나머지는 다르게 가는 거로?”

“그렇지.”

“흥미로운 생각인 것 같습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래. 또 하나는.”

이때 변 사장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사랑산성 근무자를 줄였으면 해.”

“……네?!”

이건 좀 심각한데.

설수민은 근무자에 대해서는 고정이라면서 확고하게 말했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니야.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우리는 로열티를 매출 기준으로 받으면 되는 거고, 비용을 어떻게 써서 사업을 운영해 갈지는 사랑산성의 몫입니다. 근로자 수에 대해서 저희가 관여할 바는…….”

설수민의 확고한 입장을 알고 있기에, 난 변 사장의 의견에 반발했다.

이해가 엇갈려 생기는 분란은 막고 싶었다.

“이건 시험이야.”

변 사장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자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만, 이건 시험이라고. 사랑산성이 우리 사업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시험.”

“…….”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면, 그 정도 아픔은 각오해야 한다고 봐. 난 무임승차는 원치 않아.”

변 사장의 의견은 확고했다.

“우리의 사업명을 빌려주는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자격도 갖출 생각이 없다면 곤란해. 실제로 지금 근무자 수가 너무 많기도 하고. 우린 4명인데, 거긴 지금 10명이라며.”

“얼마나 줄여야 하는데요?”

“음……. 한 명이면 될 거 같군.”

겨우 한 명 줄이기 위해, 이런 분란을 일으키겠다고?

문밖을 나가려는 변 사장을 향해 난 물었다.

“만약 설 사장님이 못 하겠다고 하면요?”

“그럼 없던 일로 해야지.”

“방 빼라고 하면요?”

“몰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쾅!

변 사장은 나가버렸다.

* * *

사랑산성, 밤 8시.

빈 룸에 설수민을 마주하고 앉았다.

오늘은 붉은색의 짦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선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동공을 부여잡고 있었다. 차라리 옆에 앉는 게 편하려나.

난 변 사장과 최종 정리된 내용을 설명해 주었고.

설 사장은 별 이견 없이 대부분 수긍했다.

로열티 5% 부분에서 약간 불편해했지만, 매일 조리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대한 교육비 부분을 설명하니.

결국 수긍하였다.

이제…… 할 말은 하나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근무자 수 말인데요.”

“근무자 수요?”

난 이걸 어떻게 얘기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근무자 수가 10명이죠? 주방장 포함해서 맞습니까?”

“네, 맞아요.”

“1명 줄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네에?!”

역시나 설수민은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꿀꺽.

“왜요? 우리가 왜 줄여야 해요?!”

“제가 말씀 못 드린 부분이 있었는데, 런치 오브 제로백은 점당 직원 수를 8명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

“그래서 두 명을 줄이셔야 하지만, 사정이 있으니, 1명까지만 예외로 두려고 합니다.”

“왜 직원 수를 8명으로 제한해요?”

그따위 규정은 없다.

매끄러운 협의를 위해 지어낸 것이다.

“우리는 소수정예를 지향하기 때문이고요. 규모보다는 퀄리티에 중점을 두는 사업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잘…….”

난 그녀가 더 생각하기 전에 밀어붙였다.

“죄송합니다. 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어렵게 1명까지만 예외로 둔 것입니다.”

“…….”

“아무래도 1명은…… 정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는 설수민 사장.

“반드시 사업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으니…… 사장님께서도 어려우시겠지만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아…….”

설수민은 고개를 살짝 떨구었고.

또르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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