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 변경 (1)
* * *
“강 대리? 어떻게 생각해?”
“…….”
“다른 대안 없잖아? 설수민 사장 제안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황당한 제안이지만,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마도 사랑산성과 임대계약을 유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네, 다른 선택지는 영업장을 바꾸는 건데…….”
내 말에 변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금전적으로도 그렇고, 이만한 장소의 공유 주방을 얻기도 어렵고요.”
“맞아. 이미 우린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이 장소에서 오는 이점도 무시 못 한다고. 건물 올려서 움직일 거 아니면…… 여기 있어야 해.”
“…….”
회의 시작하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 이름 대고 장사하세요~’ 이러면 그만이다.
서비스야 흉내를 내겠지만, 내 요리의 특성상 맛은 따라 할 수가 없다.
퀄리티가 달라져 버리면 분명히 점심 영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음식 장사라는 게 입소문이 무서워서, 안 좋아지는 건 순식간이다.
원래 쌓기가 어렵지, 무너지는 건 쉬운 법이다.
잠자코 있던 최경리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도움을 좀 주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개설하게 하면 안 될까요?”
“…….”
“영업 준비라든지, 메뉴 선정 등 전체적인 컨설팅을 우리가 해주면 되잖아요. 런치 오브 제로백 말고, 그들의 이름으로 저녁 영업할 수 있게요.”
변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설 사장이 그걸 원치 않더라고. 무조건 우리의 네임드로 하고 싶대. 그러니까 우리의 영업력을 저녁까지 이어서 하고 싶은 거야.”
“…….”
“설 사장도 계산을 해봤겠지. 단란주점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지 않을 거야. 보아하니, 개업한 지도 꽤 됐고 단골손님도 있는 것 같던데.”
“…….”
“건물은 본인 소유라 임대료도 없잖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업종 변경을 하려는 건데, 확실한 게 있어야 하지.”
“…….”
“새로운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하는 건 그녀의 머릿속에 없을 거야.”
변 사장 말이 이해가 되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이니까, 설 사장의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단란주점에서 식당으로 업종을 바꾼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일하는 형태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건데.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죠.”
난 잠자코 있다가 말을 뱉었다.
“영업 현장에서 자세히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말에 변 사장은 웃으며 끄덕였다.
“강 대리 말이 일리가 있네. 어차피 우리는 지금 추측하는 거니까.”
“그렇죠.”
변 사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만 결론을 내고, 세부적인 건 현장 확인 후에 정하자고.”
그는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흠……. 영업 시간에 이 많은 사람이 다 가는 건 부담이 될 거고, 누가 대표해서 갔으면 좋겠는데.”
그때, 앤더슨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현장 확인 후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변 사장은 못 미더운 눈빛으로 앤더슨을 바라봤다.
“자네가?”
“네! 뭐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변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야. 앤더슨은 우리 레스토랑에 대해서도 아직 이해가 부족한데, 이 업무를 맡기엔 좀 일러.”
“할 수 있는데…….”
앤더슨의 아쉬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럼 누굴 보내려고 하는 걸까. 변 사장이 직접 가려 하나? 하긴 그게 가장 낫긴 할 텐데.
“강 대리.”
“네?”
“자기가 수고해 주면 안 될까?”
“네?! 제가요?”
현재 내가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날 시킬 줄을 생각 못 했다.
“내가 가는 게 좋긴 한데, 아무리 업무상 일이라 하더라도 단란주점에서 며칠 야근하기엔…… 아내 보기가…….”
단란주점은 밤에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에 가야 한다.
“앤더슨은 아직 신입이고, 최경리에게 맡기기엔……. 알잖아?”
“네, 알죠.”
나와 변 사장은 ‘최경리’라는 말에 더 얘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식하고 법리주의에 철저한 최경리를 단란주점 영업장에 혼자 두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두 분 뭡니까? 이거 유쾌한 뉘앙스가 아닌데? 제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최경리답게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변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야~. 아무래도 여자가 단란주점에 있으면 좀 그렇잖아~. 아무리 업무라고 해도.”
적절한 변명이었다.
최경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강 대리, 부탁 좀 하자. 자네만 한 적임자가 없어. 사업 확장한다는 건 신사업 런칭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
“자네한테 맡기고 싶어. 주도적으로 해봐. 자네가 제안하는 건 웬만하면 다 OK 할 테니까.”
변 사장은 신뢰가 가득 담은 눈빛과 함께 내 어깨를 두들겼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리고 변 사장님 분부인데 어쩔 수 없다. 따라야지.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강태평과 변성준 사장.
분명 변 사장이 상사인데, 일반적인 상사와 부하직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앤더슨이 의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좀 이상해. 뭔가 좀 바뀐 거 같은데? 혹시 강 대리가 로열 패밀리인가?’
* * *
이튿날 저녁 8시.
난 오후 촬영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 사랑산성을 찾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오면 손님이 없다고 하여, 약간 늦은 시간에 찾은 것이다.
이쯤에 와야 관찰하기가 좋다고.
‘사랑산성’.
정문 앞에는 반짝이는 LED 패널이 나와 있었다.
사랑산성 전체가 번쩍였다.
항상 있던 곳인데, 밤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마치 처음 오는 곳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밤하늘 아래, 사랑산성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야……. 색다르네.”
내가 두 달간 죽어라 요리하던 곳이 맞나?
완전히 낯선 곳에 온 기분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였다.
[강태평입니다.]
[강태평?]
그리고 수화기에서 거리감 있는 외침이 들렸다.
[언니들~, 강태평이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몰라~. 손님이겠지. 일단 모셔~.]
아무래도 설수민은 아닌 듯싶다.
[네~, 잠시만요~.]
덜컹.
문이 열렸고, 한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날 맞았다.
몸에 딱 붙는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
아, 얼굴 화끈거린다.
“어서 오세요~. 혼자세요?”
“아, 네. 혼자입니다.”
“호호. 네~, 요즘 혼자 오는 손님이 많네요.”
“…….”
“따라오세요.”
그녀는 날 룸으로 안내하려 했다.
아무래도 손님으로 착각한 듯한데.
“아, 저 설수민 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오늘 약속을 했는데.”
“어머, 사장님이요?”
설수민을 찾자, 그녀는 의외라는 듯 내 몸을 위아래로 흝었다.
“사장님은 요즘 손님 안 받는데? 웬일이시지?”
“네?”
“정말이에요? 우리 사장님이랑 약속하고 왔어요?”
또각. 또각.
그때 복도 끝에서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오셨어요?”
설수민이 날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민소매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얼굴도 한껏 치장했는데……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좀 전에 날 맞이해 준 여성분도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설수민이 나타나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하지만 난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그래도 안면이 있어서일까.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많이 불편하진 않았다.
설수민은 핑크색 원피스 여성을 향해 말했다.
“나 만나러 온 손님이니까, 가서 일 봐.”
“네, 사장님.”
여성이 사라진 뒤.
설수민은 날 향해 미소 지었다.
“강 대리님, 오늘 야근하시네요? 호호.”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아~, 근데 매일 일하던 곳인데, 밤에 오니까 색다르네요. 다른 곳 같아요.”
“호호, 그래요?”
그리고 눈을 살짝 흘기며 내게 물었다.
“저는요? 저는 어때요?”
“네?”
“저도 밝을 때만 만났었잖아요.”
살며시 눈웃음을 짓는데,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우십니다.”
“어머.”
“설 사장님은 밤이 더 잘 어울리시네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내 말에 설수민의 볼이 약간 붉어졌다.
너무 솔직했나? 그냥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인데.
“어머. 직설적이시다. 근데 사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요? 신선하네요. 호호.”
“사실이니까요.”
“자꾸 그러지 마세요. 오해해요.”
“오해할 거 없는데. 진짜 아름다우세요.”
설수민한테 안 이쁘다고 하면 거짓말 아닌가?
본인 스스로도 잘 알 거 같은데?
그녀는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따라오세요. 소개해 드릴게요.”
“아, 네.”
난 그녀를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지금 손님은 없는 건가요?”
“한 팀 와 계세요.”
“아, 네.”
그녀를 따라 복도 안쪽으로 갈수록 은은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원래 이 시간쯤 되면 룸이 한 반 정도는 찼었거든요. 걔다가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네…….”
“근데 한 1년 전쯤부터 고객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왜 그럴까요?”
1년 전부터 그랬다면 설수민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을 것 같다.
“인근 경쟁업소, 음식, 가격, 상권……, 언니들 전투력.”
“전투력이요?”
“보통 퀄리티라고 말하는데, 제가 그런 표현 싫어해서요. 물건 같잖아요. 전투력이라고 표현해도……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시죠?”
“아, 네…….”
“그런 모든 요소를 두고 고민을 해봤는데, 나빠진 건 없거든요. 상권이 요즘 죽었다곤 하지만, 우린 일반 업소들과는 고객층이 다르니까요.”
“…….”
“주 고객층이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니까. 아시죠?”
“네, 아마 그렇겠죠.”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고민해 본 끝에 그나마 이유를 찾자면, 김영란법부터 해서 갑질 문화 근절하자는 등 접대 문화를 금기시하는 풍조가…….”
설수민의 얘기를 들으며 놀라웠다.
시사에 대해서 해박했고, 나보다도 뉴스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사회 현상 속에서 업소의 미래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단란주점도 AI가…….”
좀 오바스러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박식했고 그녀 나름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 시간까지 손님 한 팀이면 오늘 새벽까지 영업해도 룸이 아마 반도 안 찰 거예요.”
“아, 네.”
“그리고 우리는 2차는 안 가거든요. 이건 할인 마트가 주말 장사 안 하는 것과 비슷한 파급력이라고요. 이 또한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 네…….”
설수민은 날 바라봤다.
“혹시 2차가 뭔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그 정도는 압니다.”
단란주점은 안 가봤지만, 들은 얘기가 있어서 대충은 안다.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이제 한계에 부딪혔어요.”
설수민은 한숨을 쉬었다.
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이들이 하는 사업이 한계에 부딪힌 거고, 주저앉기 전에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 시점에 운 좋게도 런치 오브 제로백을 만난 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가장 중요한 점. ‘간절함’.
그것은 확실히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우리 세부적으로 얘기를…….”
쾅!
그때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사장 어딨어?!”
술 취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휴~.”
설수민은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진상 손님은 일상이거든요. 잠시만 실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