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척만 노린다 (1)
* * *
스륵. 스륵.
서류를 넘기면서 내 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늘 면접 보는 세 명의 지원자.
공통점이 있었는데.
“변 사장님, 이분들이 진짜 면접 보러 온다고요?”
변 사장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갑자기 웬 황당한 소리야. 당연히 면접 본다고 했으니 자리를 잡은 거지.”
“이게…… 말이 안 되는데요? 왜 우리 회사를 오려고 하지?”
오늘 지원자는 모두 인서울의 명문대 출신이었다.
심지어 그중 나와 같은 대학 출신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이다.
변 사장은 내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00명 안에서 추린 거라고.”
“…….”
지원자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난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진일 상사에 취업했던 건 똥손 때문이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니, 사람 적은 회사에서 일하는 게 내 상황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벌 좋은 사람들이 이 조그만 회사에 취업하려 한다는 게…….
“자기 취업할 때랑 또 달라. 요즘 취업난 심각하잖아.”
내 고민을 짐작한 듯 변 사장이 먼저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정규직을 뽑는 거니까. 정규직 신입 채용하는 곳이 잘 없거든. 성과급도 주고.”
“경력직 아니라, 신입 뽑는 거예요?”
“홍지아 씨 하는 일이 꼭 경력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학력만 보고 서류 합격시킨 건 아니니까. 서류 지원자 중에 인서울 대학 출신들이 50명은 넘었으니까.”
아……. 그렇다면, 무조건 학력만 보고 추린 건 아니구나.
“아르바이트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를 먼저 보았고, 그다음 나이, 학력 순으로 보고 추린 거야.”
“학력을 보긴 봤네요?”
변 사장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엔 학력을 중시 안 했는데, 자기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
“…….”
“자기가 진일상사에서 제일 학벌이 좋잖아? 그리고 특출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그건 학력 때문이 아닌데…….
그리고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은 생존의 문제였었다.
손만 대면 사고 치는데,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고.
험한 세상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아, 그리고 나이는 많은 순이야.”
“네?”
내 반문에 변 사장은 대답 대신 찡긋 웃었다.
* *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첫 번째 지원자.
그는 자리에 앉아서 인사했다.
“자기소개할까요?”
“아니요. 됐습니다.”
변 사장 지원자에게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았다.
“내일부터 일할 수 있습니까?”
“네?”
변 사장의 질문에 지원자는 멍하니 우리를 보았다.
당황한 듯 그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일하려고 면접 보러 오신 거 아닙니까?”
“저…… 이게 면접 질문입니까?”
“당연하죠.”
지원자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쭈뼛쭈뼛 물었다.
“아직 처우도 알지 못하는데.”
“초봉은 월 150입니다. 물론 4대 보험은 되고요.”
“…….”
“주 업무는 주방 보조. 그 외에 잡다한 일도 있습니다.”
지원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뭐, 복지라던가 그 외에 다른 처우는 없습니까?”
“하하.”
변 사장은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가 무슨 대기업인 줄 아세요? 그런 건 없고, 회식할 때 맛있는 것 좀 사드립니다. 가끔 찜질방도 가고요.”
“이 회사의 좋은 점이 뭡니까?”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 있죠. 직원 수가 4명이니까. 딱 가족 구성원 같죠.”
이게 면접인지, 질의응답 시간인지.
지원자는 의심나는 것 이것저것 더 물었고.
변 사장은 그때마다 솔직하게 답변해 주었다.
하지만 지원자들이 가장 솔깃해할 만한 ‘성과급’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빠뜨리고 얘기를 하니, 지원자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면접 보러 온 것 자체를 후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궁금한 건 다 물어보신 듯한데.”
변 사장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드려보죠.”
“…….”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지원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 이후 두 명의 지원자도 마찬가지였다.
앉자마자, 다짜고짜 내일부터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고.
지원자들이 불안해하며 처우에 대해 물어보면.
변 사장은 좋은 점만 쏙 빼놓고,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해주었다.
덕분에 면접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
마지막 지원자가 나간 뒤, 변 사장은 하품하며 말했다.
“오늘은 좀 별로인 거 같은데?”
“이거 참, 면접 보고 지원 철회라니요.”
“하하. 그러게.”
난 이런 식으로 면접 보는 변 사장의 의도가 궁금했다.
“무슨 생각이세요?”
“뭐가?”
“뽑으려는 게 아니라, 나가게 하려고 애쓰시는 거 같은데.”
“하하.”
“사람 급하잖아요. 이렇게 하면 홍지아 씨 나간 뒤, 공백 생길 것 같은데요.”
“흠…….”
변 사장은 서류철을 정리하며 말했다.
“오래 다닐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서 그래. 우리 회사가 일반적이진 않잖아.”
“…….”
“성과급이라는 게 지금은 좋지만, 건 미래에 어떨지 모르는 거고.”
그는 이력서들을 가방에 넣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걸 미끼로 들면서, 헛된 기대를 품게 하고는 싶지 않아. 취업이 간절하거나, 이 일이 맞거나. 그런 사람을 뽑고 싶은 거야.”
설명을 들으니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은 외근을 매일 해야 하며, 주방, 서빙 등 몸 쓰는 일도 해야 한다.
화이트 셔츠를 입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지원자라면…… 입사하자마자 이별을 원하게 될 것이다.
“사장님, 그렇다면…… 서류 전형부터 잘못된 거 아닙니까?”
“왜?”
“명문대 출신들을 면접 보면서, 그런 걸 기대하세요?”
“아~, 글쎄.”
그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으쓱했다.
“간혹 특이한 사람 있을지도 모르잖아.”
“…….”
“난 자기 같은 사람을 기대해.”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다.
그에게 내가 똥손이어서 일부러 규모 작은 회사를 택했다는 말을 해줄 수는 없다.
변 사장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처우를 듣고, 좋은 조건을 갖춘 지원자가 취업할 리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취업한다면…… 변 사장의 말대로 분명 특이한 사람일 것이다.
특이한 사람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취업할 당시에 내가 똥손이었던 것처럼.
* * *
다음 날. 면접 2일 차.
나와 변 사장은 런치 오브 제로백 영업을 마치고, 스터디룸으로 왔다.
“아~, 하~, 오늘 월척이 걸려야 할 텐데. 하하.”
변 사장은 낚싯대에 앉아 있는 아저씨처럼 중얼거렸다.
“난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어제 지원자들 말이야.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많이 해봤다면서, 주방 보조 업무를 왜 그렇게 꺼릴까?”
면접 보는 지원자들은 최소 아르바이트 경험이 5개 이상 있다.
변 사장이 그런 사람들만 면접 대상자로 뽑았다.
“변 사장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하다고?”
“네, 아르바이트로 몸 쓰는 일 충분히 했을 텐데, 취업도 그런 쪽으로 하고 싶을까요?”
“아…….”
“아르바이트를 본인 취향 따라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기 싫은데,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흠……. 근데 그건 회사도 마찬가지인데.”
이 말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적성과 비전이 맞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글쎄, 얼마나 될까.
“어차피 우리는 소수정예로 움직이잖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뽑고 싶어. 정 못 구하면 당분간 알바를 쓸지언정, 인원수 맞추려고 억지로 사람 뽑고 싶지는 않아.”
“…….”
“피라미를 낚느니, 그냥 안 잡고 말지. 내가 원하는 건 무조건 월척이야.”
보면 볼수록 변 사장은 팀장 시절엔 자신을 안 드러냈던 게 분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히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라는 게 느껴졌다.
똑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첫 번째 지원자가 들어왔다.
“앤더슨 오입니다.”
난 그의 이력서를 살펴봤다.
# 이력서
이름: 앤더슨 오
성별: 남
나이: 31세
대학: 컬럼비아 유니버시티
특징: 3개 국어 가능(영어, 중국어, 한국어)
병역: 군필
자기소개: 저는 뉴욕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며…….
어이가 없다.
하다, 하다…….
이런 사람이 주방 보조를 하러 온다고?!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류를 덮으려 했는데.
“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습니다.”
변 사장의 대표 질문.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말에 그는 단번에 대답했다.
“정말요? 처우도 모르잖아요?”
“뭐, 줄 만큼 주시겠죠. 돈을 안 주시진 않으시겠죠.”
“…….”
앤더슨 오의 말에 우리가 살짝 당황했다.
난 처음으로 지원자에게 질문했다.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개념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전 이미 자리 잡힌 곳보다는 성장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를 아시나요?”
“물론이죠. 스튜디오와 레스토랑을 주력으로 하잖아요. 지금은 레스토랑 매출이 스튜디오 사업을 앞섰을 것 같은데.”
너무…… 매끄럽고 똑똑해 보이는데?
상황이 완벽해지고 있어서, 괜히 불안하다.
혹시 성과급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변 사장이 물었다.
“이력이 특이한데, 미국 사람이 왜 한국에 있는 거죠?”
“얼마 전에 전역했습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한국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럼 자진 입대를 하신 거라는…….”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군 복무는 어디서 마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8사단 수색대에 있었습니다.”
오……. 멋있는데?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은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왜 일은 안 하고 군대에 갔을까.
31세면 한창 일하고 있을 나이인데.
“그럼 국적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이중국적입니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한국 국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변 사장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게 가능해? 신기하다……. 나 이런 사람 처음 봤어. 국적이 두 개라니.”
“조건을 갖추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군대 갔을지도 모르고요.”
“아……. 그래?”
변 사장은 앤더슨 오를 찬찬히 보고는 말했다.
“그런 셈법을 가지고 군대 갈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봤을 때도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난 가만히 앤더슨 오를 보았다.
미국 명문대 출신, 3개 국어 가능, 군필자이며 이중국적자.
키도 크며 외모는 다니엘 에니를 닮았는데, 다른 게 있다면 피부가 좀 검다는 것. 까무잡잡한 다이엘 에니 같았다.
다만, 한국말은 약간 서툴러 보인다. 발음도 어눌하고.
하지만 의사소통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었다.
월척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앤더슨 씨.”
“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시고, 아르바이트만 하신 건가요?”
“아니요.”
“근데 왜 이력서에는 아르바이트 이력만 적으셨나요?”
“양식에 아르바이트 기재라고만 쓰여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렇군요. 어디서 일하셨습니까?”
“MS사에 있었습니다.”
MS……. MS?!
“혹시 창문 만드는 그곳 말입니까아?!”
“네, 맞습니다.”
그 엄청난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왜…… 연봉도 장난 아닐 텐데?
“그럼, 거길 관두고…… 군대를.”
“네, 맞습니다.”
그때 확신이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뽑으면 안 된다.
이 사람 나가고 나면 변 사장 뜯어말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회사를 관두셨어요?”
변 사장이 치고 들어왔다.
모든 질문에 곧바로 답하던 앤더슨 오.
이번에는 한 박자 쉬고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