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났다 (3)
* * *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갑자기 최경리는 변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가 회사 다니면서 일하는 보람을 처음 느껴보고 있습니다. 성과로 보답을 받으니, 확실히 느낌이 오네요.”
아무리 영업이 잘되어도 최경리는 무덤덤했었다.
성과급 받을 때부터 표정이 살아났다.
변 사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보람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지.”
“네, 돈 들어오니까, 힘이 솟구칩니다.”
“참 솔직하다.”
“감사합니다.”
“좋은 뜻으로 말한 거 아닌데…….”
그런 대화를 들으며 홍지아는 계속 표정이 어두웠다.
어차피 이직할 사람이면 이런 자리는 피해도 되는데, 홍지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태평은 홍지아가 어떤 생각인지 알기에, 변 사장과 홍지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 그럼 이걸로 정리하고 마칠까? 서로의 성과급이 궁금하겠지만, 서로 물어보거나 알려주는 건 절대 금지야. 이건 계약 사항이기도 하고, 성과급 비밀 유지는 반드시 지켜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변 사장은 생각했다.
‘강 대리의 성과급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어. 다른 직원들이 강 대리가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겠지만, 그래도 금액 차이를 알게 되면 불쾌해할 수 있어.’
변 사장이 산정한 성과급은 아래와 같다.
# 성과급 기금 5,200만 원
1) 강태평: 2,500만 원
2) 변성준: 1,500만 원
3) 홍지아: 600만 원
4) 최경리: 600만 원
변 사장은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경영 보고는 이것으로 마친다. 그동안 고생했던 보상 받은 거니까. 오늘 같은 날은 기분도 좀 내고 그래. 너무 악착같이 모으지만 말고.”
강태평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변 사장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알겠어? 강 대리? 자네 들으라고 한 말이야.”
“아, 그래요? 하하.”
강태평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저 그렇게 악착같은 사람 아닌데. 모으는 게 아니라요. 그냥 쓸데가 없어서 안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써. 이 세상에 돈 쓸 데 얼마나 많은데~. 자기 자신을 위해 좀 쓰라고.”
강태평은 피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디 쓸 데 없나 고민해 볼게요.”
최경리는 이미 회의실 밖으로 나가고 없었고, 홍지아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사장님.”
홍지아가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나가려던 변 사장을 불렀다.
변 사장은 나가려던 걸 멈추고, 싸늘하게 대꾸했다.
“얘기해.”
“죄송합니다…….”
“뭐가?”
“저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린 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뭔가에 씌었나 봅니다.”
“…….”
변 사장은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듣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당신이 선택한 길이잖아? 선택했으면 입증을 해야지.”
“사, 사장님…….”
“거기 가서 잘해 봐.”
강태평은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 * *
홍지아가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하면, 난 당연히 변 사장이 받아줄 줄 알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차가운 모습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홍지아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장님, 저 이 회사에 있고 싶어요. 남게 해주세요.”
“갑자기 왜?”
변 사장은 싸늘하게 물었다.
“갑자기 왜 남고 싶어졌냐고. 나한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떠나겠다고 통보했잖아? 그리고 이제 와서 번복하겠다고?”
변 사장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아닙니다.”
변 사장은 홍지아를 지나쳐 회의실을 나가려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
“성과급 때문이잖아.”
“…….”
“그거 때문에 지금 번복하겠다는 거잖아. 아닌가?”
“맞긴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홍지아가 소리쳤다.
“두 분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소중합니다. 영업이 잘되고, 관심을 받다 보니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회사와 선배님들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하하. 의리?!”
변 사장은 홍지아를 바라봤다.
“최근 며칠간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 있는데, ‘의리’라는 말을 쓰는 건 너무 뻔뻔하지 않나?”
“…….”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성과급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는 거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홍지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나도 홍지아 씨를 ‘직원 가치’로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
휴우―.
변 사장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했다.
“눈치껏 알아채기를 바랐는데, 명확하게 말하는 게 낫겠군. 새로운 곳 가서 적응해야 하는데, 미련이 남으면 안 되니까.”
“…….”
“난 굳이 홍지아 씨를 잡고 싶지 않아.”
주르륵.
이 말과 동시에 홍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놀라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 사장님! 말씀이 너무…….”
덜컹!
홍지아는 얼굴을 감싸고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고.
변 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남자…… 변 사장이 아닌 거 같은데?
그 사람 좋은 변성준 사장 맞나?
“뭘 그렇게 보나?”
난 넋 놓고 변 사장을 보고 있었고.
휴우―.
그는 깊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강 대리, 담배 한 대 피울까?”
* * *
회사 길 건너 CS25시.
변 사장은 한 손에는 레쯔비를 잡고, 담배를 깊이 빨았다.
벌써 3대째다.
“사장님, 홍지아 씨 어리잖아요.”
“…….”
“왜 그러세요? 그 친구가 퇴사 운운한 건 큰 실수이긴 하지만, 홍지아 씨라면 그러고도 남잖아요?”
“…….”
“덜렁대고 푼수라서 그렇지,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잖아요. 이번 일도 그렇고요.”
“…….”
“가족이라면서요. 아무리 자식이 못났어도 가장이 자식을 버리면 어떡해요.”
“버린 거 아니야.”
잠자코 듣기만 하던 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자식이 나가겠다고 해서, 출가시킨 거지. 버린 거 아니라고.”
“…….”
“맞잖아. 내가 나가라고 했어?”
내가 아는 변 사장은 부족해도 감싸는 스타일이었고, 큰 실수도 웬만하면 넘어가 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건 업무상 실수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하여 발생된 일이 아니야. 본인이 떠나겠다고 한 거라고.”
그의 눈빛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스스로 이 조직을 나가겠다고 한 거야.”
“…….”
변 사장의 큰 그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홍지아 씨를 성장시키시려고.”
“무슨 소리야. 왜 홍지아 씨를 성장시켜. 내 직원도 아닌데.”
아……. 적응 안 된다. 너무 칼 같은데?!
“강 대리, 난 팀장이 아니라, 사장이야.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변 사장은 내게 잘 들으라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자선 사업 하는 거 아니잖아. 그치?”
“…….”
“난 강 대리를 단순한 직원 이상의 사업 파트너라고 생각해. 마인드를 좀 달리 가졌으면 좋겠어.”
“…….”
“홍지아가 좋은 직원인지 아닌지. 우리 사람인지 바깥사람인지.”
“…….”
“잘 판단해야지.”
그는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회사를 향해 걸어갔다.
“나라고 마음 편한 건 아니야. 하지만 서로 갈 길을 가야지. 홍지아 씨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변 사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고는 말했다.
“어차피 갈 사람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면접 준비 잘하라고.”
회사에 들어가 난 홍지아를 따로 보았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홍지아가 나가겠다고 한 건데, 분위기는 권고사직하는 것 같았다.
홍지아는 억울해하고, 울고불고하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자기가 퇴사하겠다고 한 거잖아.”
“마치 기다린 거 같잖아요!”
“몰라~. 그러게 사표를 왜 냈어. 첫 월급 받을 때까지는 기다려 보지.”
“우앙―!”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홍지아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본인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이직하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이런 유사한 실수를 하진 않겠지.
“다 울었어? 불변의 상황은 받아들여야 돼. 안 되는 것에 자꾸 미련 가지면 마음만 힘들어지는 거야.”
“…….”
홍지아는 한참을 훌쩍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눈에 힘을 주었다.
“칫. 이제 안 울 거예요.”
홍지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11시에 맞춰서 난 사랑 산성에 도착했고.
변 사장과 홍지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들어왔다.
“강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이 싸늘한 분위기에서 최경리만 평화로웠다.
최경리다웠다. 두 사람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홍지아 씨, 언제까지라고 하셨죠?”
큰 소리로 뜬금없이 홍지아에게 묻는 최경리.
그의 물음과 동시에 분위기는 더 싸늘해졌다.
“다음 주 수요일이요. 그날이 마지막 출근이에요.”
“네?!”
최경리는 멀뚱히 홍지아를 바라봤다.
“아니요. 해삼 언제까지 오는지 물어본 거였는데. 배달받기로 했다면서요.”
‘하아―. 젠장.’
분명 홍지아의 입 모양은 분명 이 뜻이었다.
“11시까지 온다고 했어요.”
“아슬아슬하네요.”
“늦지 않게 올 거예요. 오토바이로 온다고 했으니까.”
최경리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에 집중했다.
그녀의 질문에 식겁했던 건 우리 셋뿐이었다.
“풉!”
이 상황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하하! 하여간 최경리답다. 질문 타이밍하고는 하하.”
“호호.”
급기야, 변 사장과 홍지아도 웃음을 터뜨렸다.
최경리만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해삼이 재밌어요?”
최경리의 질문으로 인해 어색했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오후 3시.
오늘도 손님은 많았고, 정신없었다.
주방 정리가 끝나 갈 때쯤.
“강 대리!”
“네.”
“어서 나갈 준비해. 최경리 씨가 맡아서 마무리 좀 해주고.”
“어딜 가는데요?”
내 반문에 변 사장은 홍지아 쪽 눈치를 보고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면접 보기로 했잖아. 잊었어?!”
“아…….”
그게 오늘이었나.
정신없어서 깜빡했다.
홍지아는 주방 식기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면접 얘기를 들으니 그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저도 꼭 가야 합니까?”
“가야지. 셰프인데.
변 사장은 홍지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가서 하지. 여기서 얘기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알겠습니다.”
강남역에 있는 한 스터디룸.
나와 변 사장은 테이블에 앉아서 면접 대상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지아 씨, 아직 있는데 면접을 본다는 게 좀 불편하긴 하네요.”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안 그래도 지금 정신없는데.”
변 사장은 서류철을 내게 건네었다.
“자, 강 대리, 오늘 면접 볼 대상자들이네.”
난 변 사장이 건넨 서류를 받았다.
“참나. 누가 사장이고 직원인지. 이런 건 강 대리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혼자 면접 보시라니까요.”
“알았어. 입 다물 테니까, 자세히 봐봐.”
난 서류들을 훑었고, 옆에서 변 사장이 브리핑했다.
“오늘 세 명, 내일 세 명, 이렇게 총 6명 볼 거야.”
“한 명 뽑을 거 아니에요? 뭘 이렇게 많이 봐요?”
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지원자가 300명이 좀 넘었었어. 면접 기회라도 많이 줘야지.”
“300명이요?!”
아니, 무슨 공유 주방 주방 보조 뽑는데, 지원자가…….
“요즘 취업이 어렵기도 하고, 최근 우리 회사가 매스컴 좀 탔잖아.”
“……. 설마 성과급 많이 받는 거 소문난 건 아니겠죠?”
변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처우 조건에 성과급 지급이라고만 썼지, 구체적인 내용은 적지 않았어.”
“…….”
“너무 돈만 보고 오는 지원자는 피하고 싶어. 우리 일이 힘들기도 하고, 성과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싶으세요?”
“흠……. 글쎄? 사회 경험 많고, 나이도 좀 있는……. 무엇보다도 말수가 좀 적으며 진중하고…….”
그의 말을 곰곰이 들으며 정리가 되었다.
홍지아와 딱 반대되는 사람을 원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