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났다 (1)
* * *
‘이게 도대체가…….’
사랑산성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대기 줄은 100미터 가까이 되어 있었고, 차례대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 개시 10분 전, 10시 50분.
혹시 무슨 사고가 났나?
지붕에 원판 모양을 달은 방송 차량은 3대가 보였고, 기자 혹은 앵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와…….”
놀라운 풍경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좀 적당히 잘됐으면 좋겠는데.
이건 너무 좀…….
― 제로백! 제로백!
― 빨리 영업 개시하자~!
― 부산에서 왔십니더~
환호하는 손님들.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유명가수가 나오기 전에 환호하는 관중들 같았다.
꿀꺽.
손이 덜덜 떨린다.
‘젠장, 사랑산성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지?!’
내 영업장 안으로 들어갈 고민을 하다니.
수많은 팬을 뚫고, 방송국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돌 심정이 이럴까?
가긴 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방송국 사람들에게 잡힐 거 같고, 그러면 내 정체가 알려질 텐데.
“흠…….”
난 사랑산성 뒤쪽으로 가봤다.
여차하면 담을 넘을 생각으로 살펴보았는데.
틈이 없다.
젠장, 사방으로 싸였다.
10시 55분, 영업 개시 5분 전.
5분 새에 줄이 더 길어졌다.
빨리 들어가서 요리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변 사장에게 전화했다.
드르르.
[어! 강 대리! 왜 이렇게 안 와~.]
[들어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뭐어?]
[지금 밖에 난리에요. 대기 줄은 100미터가 넘고, 방송국은 도대체 몇 군데서 온 건지…….]
꿀꺽.
변 사장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 우리 들어올 때도 기다리시는 분들이 보이길래, 혹시나 했는데…….]
9시 출근인데, 그때부터 대기하고 있었다고?!
얼마 전 TV에서 돈까스집 들어가려고 새벽부터 줄 서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우리 레스토랑에 벌어질 줄이야…….
[진짜 못 들어오겠어?]
[정문 앞으로 접근을 못 하겠어요. 만약 들어가려는 모습 보이면 방송국에 잡힐 것 같아요. 그러면 점심 준비를…….]
[아오, 내일부터 사설 경호원 고용해야 하나.]
변 사장은 잠자코 있다가 결심이 선 듯 말했다.
[강 대리! 11시부터 손님들 안내할 거거든. 그때 내가 정문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일단 밀어붙여. 방송국에서 말 걸거나, 손님들이 새치기라고 난리 쳐도 생까고 직진하는 거야.]
[알겠어요.]
* * *
사랑산성 정문 50미터 앞.
난 정문으로 접근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덜컹.
정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최경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런치 오브 제로백입니다!”
우와아―!
여기서 환호성을 왜 지르는 건데…….
포커페이스 최경리도 손님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당황했다.
“줄 서신 순서대로 입장합니다. 다치지 않게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손님들 반응이 죽인다.
가수가 관객 반응 좋으면 신나듯이, 최경리도 신나 보였다.
“아시겠습니까아―.”
“네에―.”
굳이, 복창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최경리였다.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안내를 이어갔다.
“제가 지금 줄 서신 거 다 보고 있으니까요. 새치기하시면 바로 맨 뒷줄로 이동입니다.”
― 그런 게 어딨어요~.
― 너무 심하다~.
최경리는 이런 반응은 무시했다.
“그런 게 여깄습니다. 맘에 안 드시면 돌아가시면 됩니다. 가시는 길은 왼쪽입니다.”
“…….”
최경리의 칼 같은 안내에 웅성거리던 손님들은 조용해졌고, 방송국은 그런 최경리의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
“앞 손님으로부터…… 입장!”
손님들은 차례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새치기하려는 손님은 없었다.
다들 아우라를 느낀 것이다. 최경리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난 계속 기회를 엿보았다.
모자 등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는데.
4번째 팀이 들어갈 때쯤.
앵커들이 정문에서 떨어진, 뒷줄의 손님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때다!’
난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 어? 어!
― 이 아저씨 뭐야?!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손님들의 반응이 느껴졌고. 결국엔.
― 새치기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동시에 방송국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했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이미 늦었다.
정문까지 몇 발짝만 더 가면 된다.
― 안 잡고 뭐 해요!
― 이러는 게 어딨어요!
난 여기 직원이다.
억울했지만 대꾸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숙이고 빨리 걸어갔다.
― 야이, X새끼야!
― 줄 서라고! 10새끼야!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욕지거리까지 들릴 정도로 반응은 심해졌다.
하지만 난 무시했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이제, 한 발짝만 더 가면…….
덥석!
“동작 그만.”
고지를 코앞에 두고, 목덜미가 잡혔다.
젠장, 최경리였다.
“맨 뒤로 갑니다.”
“최경리……. 나야. 나.”
“댁이 누군지 관심 없고요. 뒤로 갑니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방송국 사람들이 점점 다가왔다.
최경리에게만 들리도록 숨죽이고 소리쳤다.
“최경리! 나 강태평이라니까.”
“강태평? 강 대리님?”
최경리는 얼굴을 숙여서, 날 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멀뚱멀뚱 날 바라봤다.
“왜 고개를 숙이고 계십니까?”
“아오~, 환장하겠네. 손발이 맞아야 뭘 하지.”
변 사장은 최경리에게 작전 설명을 안 한 건가?
“나중에 설명할게. 나 빨리 들어가게 손 치워.”
“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이미 그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 누구십니까?
― 런치 오브 제로백 직원이신가요?
한 앵커가 얼굴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 어?! 어디서 봤던 분 같은데.
앵커는 옆에 있던 카메라맨에게 말했다.
― 일단, 찍어요! 빨리!
― 네!
이렇게 맘대로 찍어도 되는 거야?!
젠장!
카메라 앵글이 가까이 왔고.
망했다고 생각한 순간…….
“비키세요!”
정문 안에서 변 사장이 보자기를 들고 나타났다.
어제 음식 재료로 들어갈 배를 살 때, 포장되어 있었던 금빛 보자기였다.
“모두 비키세요! 제로백 컴퍼니 직원입니다!”
와락.
그는 금빛 보자기를 내 얼굴에 씌었다.
“벼, 변 사장님!”
휴―. 한숨 돌렸다.
영업 개시 전부터 진이 빠진다.
“강 대리, 내일부터 경호원 붙여줄게. 고생했어.”
“…….”
“어서 들어가자! 요리해야지!”
변 사장은 앞을 헤치며 사랑산성으로 들어갔고.
난 보자기를 쓴 채,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 * *
[공유 주방, 아니죠. 레스토랑 업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런치 오브 제로백’ 현장입니다.]
“…….”
그날 영업을 마치고, 가까운 음식점에서 간단히 저녁 회식을 했다.
난 오후 촬영 일정을 취소했으며, 다른 직원들도 최대한 일정을 간소화하고 쉬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
뉴스를 보며 중얼거리는 변 사장.
우리 또한 넋 놓고 볼 뿐이었다.
다만 최경리만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사장님, 보고 드립니다.”
“어, 영업이익만 얘기해 봐.”
“참고로, 오늘 단체 손님이 많았었습니다. 단체만 예약이 되니까요.”
“그래.”
“이천팔백이십이만…….”
“일 매출액 말고, 영업이익 말이야.”
“지금 영업이익 말씀드렸습니다. 일 매출도 말씀드릴까요? 오늘 총 110명이 방문해 주셨거든요. 삼천팔백칠십…….”
“아니야. 그만.”
변 사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강 대리.”
“네, 사장님.”
“나 좀 무섭다.”
“…….”
“이렇게 돈 막 벌어도 되는 거야?”
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 3시간 영업해서 영업이익 2,800만 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좀.
“단체 손님이 많아서 그런다잖아요. 오늘이 유독 많았던 겁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
너무 많이 번다고 진정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니…….
근데 사실 변 사장뿐이 아니었다.
이런 전국적인 관심과 말도 안 되는 수익. 나와 다른 직원들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순식간에 달라졌다.
불씨를 만들기가 어렵지,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강 대리, 종이접기할 때 이런 기분이었어?”
“네?”
“큰 부수입을 얻으면서, 불편해하는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
“이제 조금 알 것 같네.”
변 사장은 소주를 한 잔 들이켜고, 웃었다.
“변화잖아. 너무 큰 변화. 그렇지?”
“그렇죠.”
“자기 힘들었겠다. 늦게 이해해서 미안해. 자, 한 잔 받아.”
변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내 빈 잔을 채워주었다.
난 그가 채워 준 잔을 쭉 들이켜고 말했다.
“사장님, 적응하셔야 하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
“바라던 상황이잖아요. 예전처럼 짐짝 취급받기 싫잖아요.”
“그래. 맞아.”
너무 큰 호조는 당사자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있다.
맞닥뜨려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시련. 그래서 더 고독한 싸움.
변 사장은 잔을 높게 들고 소리쳤다.
“자! 모두 잔 들어!”
그의 말에 모두 잔을 들었다.
“우린 묵묵히 이 길을 감당하고 가는 거야. 겸손하게! 파이팅!”
“파이팅!”
그 후로 2주가 지났다.
이슈는 어느 정도 지나갔고, 예전처럼 방송국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손님들은 영업 개시 전부터 줄을 길게 섰고. 단골손님이 생기고, 입소문은 더 커졌다.
예약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끼리 작당하여 단체 예약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매출이 더 오르기는 했지만,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단체 예약도 하루 10팀까지만 제한해서 받았다.
2주간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출근과 퇴근할 때는 정말 사설 경호업체가 날 보호해 준다.
내가 런치 오브 제로백의 전부라며, 변 사장은 실제로 경호업체를 고용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우리 직원들은 모두 얼굴이 알려졌다.
난 최대한 얼굴을 숨겼고, 변 사장도 그러길 원했다.
하지만 최경리와 홍지아는 간단한 인터뷰도 했으며, 변 사장은 사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리가 많았다.
워낙 레스토랑이 상한가를 치다 보니, 이런저런 제의도 많이 왔었고.
결국, 5일 전. 홍지아는 이직을 결심했다.
“죄송합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뭐어?”
우리는 벙 쪄서 그녀를 보았고.
홍지아는 미안한 듯 말하지만, 자랑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외식 대기업에서 좋은 제안이 와서요. 이직하려고 합니다.”
“와……. 사장한테 이직한다고 대놓고 말하네.”
변 사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한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알았어. 언제까지 나올 수 있는데?”
변 사장은 조금도 잡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흠. 3주 정도요?”
“그래? 더 시간이 필요하면 얘기해. 빨리 보내줄게.”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뭐가? 배려해 주는 거잖아.”
“…….”
“잘 가, 축하해.”
퇴사 얘기를 들은 직후, 바로 채용 공고를 내었고 지원자는 줄을 섰다.
며칠 뒤 나와 변 사장이 함께 면접 보기로 했다.
오늘은 런치 오브 제로백을 개업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영업을 마치고, 뒷정리 중인데.
띠링!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급여: 2,000,000원]
월급 들어왔구나.
어차피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제로백 컴퍼니 월급. 신경 쓰지 않았다.
띠링!
곧이어 또 알림이 들렸다.
[성과급: 25,000,000]
“성과급? 뭐야……. 공이 하나, 둘, 셋…….”
헉!
난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옆에 있던 변 사장을 바라보았다.
“뭐, 뭡니까?”
“뭐긴, 성과급이지. 자넨 그 이상 했어. 더 못 줘서 미안하네.”
“아니……. 이거 월 성과급 아니에요?”
“맞아. 다음 달도 잘되면 이만큼 줄게.”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너무 많은데?!
“금액 맞아요? 공 하나 더 붙이셨다거나.”
“하하. 아니야~, 강 대리가 2,500만 원 맞지?”
“…….”
당황한 나를 보며, 변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그때 멀리서 홍지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사장님!!”
그녀는 변 사장 앞에 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부디, 퇴사 없던 일로 해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