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9화 (59/156)

1) 단체 손님만 예약받는다 (6인 이상)

2) 가림막 및 간이 의자 설치

3) 원가 절감할 것: 퀄리티 유지

※ 원산지 변경은 절대 금지

변 사장은 날 바라봤다.

“강 대리, 오후에 촬영 있어?”

“네, 있습니다.”

“그래, 그럼 강 대리는 촬영 잘 갔다 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빨리 움직이자!”

“네!”

* * *

다음 날. 화요일.

오늘도 손님은 많았다.

―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며?

― 네모의 신님이 소개한 곳이라 확실히 다르네.

가림막과 간이 의자는 어제 바로 구매했고.

손님들은 앉아서 대기했다.

오늘도 정신없었고, 어제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며 영업을 마무리했다.

원가 절감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만 된다면 내가 나서겠는데…….

여유가 없을뿐더러, 홍지아가 스스로 해결해 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까똑!

[강 대리, 그럼 6시에 보쌈집에서 보세.]

제이엠인터내셔날 김성수 부장의 메시지.

[알겠습니다.]

지난주 런치 오브 제로백을 방문한 김성수 부장과 오늘 저녁 약속을 잡았었고.

그다지 만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서 연락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버리니 어쩔 수 없었다.

저녁 6시의 보쌈집.

난 촬영 일정 때문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여어~, 강 대리!”

“안녕하십니까. 좀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여기 앉아요.”

깔끔한 분위기의 보쌈집.

김성수 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만날 니글거리는 음식 만들잖아요? 이런 음식을 더 좋아할 것 같아서, 장소를 이쪽으로 잡았는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하하. 정확히 맞히셨습니다.”

“하하. 다행이네. 자~, 한잔 받으세요.”

어째 분위기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내가 접대를 받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드세요.”

“혹시 2차 가자고 하시는 건 아니죠?”

“네?”

진일상사 시절, 갑질을 많이 당해봐서 혹시나 해서 물었다.

바이어가 1차 밥을 쏘고, 2차는 룸에서 얻어먹는 수법.

내 말뜻을 이해한 듯, 김성수 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 가정 있는 사람이야~. 일찍 들어가야 해.”

“아, 네.”

“아, 말 편하게 해도 되나? 이미 말 놔놓고 물어보는 게 우습긴 하지만.”

“하하. 괜찮습니다. 편하게 해주십시오. 업계 선배님이신데요.”

“하하. 고맙네.”

김성수 부장은 내게 자꾸 술을 권하며 자질구레한 얘기를 했다.

달리는 분위기였다.

특히 진일상사로부터 지금 제로백 컴퍼니까지 회사에 대한 불만 사항은 없는지 계속 물었다.

“저는 만족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은 회사를 안 다녀봐서 그래. 연봉, 복지, 근속연수 이런 거 다 생각을 해봐야지. 편하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잖아.”

“…….”

“회사 명성은 또 어떻고? 자네 아마 소개팅도 잘 안 들어 올걸?”

그건 사실이다. 전혀 안 들어온다.

지금은 사명이 외국계 기업처럼 바뀌어서 좀 들어오려나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빈 소주병 2개가 쌓였을 때쯤, 김성수 부장은 슬슬 본론을 꺼내었다.

“강 대리.”

“네.”

“자네와 일 같이하면서 계속 지켜봤거든. 우리 회사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경우는 잘 없어.”

“…….”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없습니다.”

“그래, 우리 회사에 오면……. 뭐어?!”

예상했던 제안. 난 단칼에 거절했다.

거만한 표정으로 말하던 김성수 부장은 당황했다.

“지금 만족하거든요.”

그의 말이 빨라졌다.

“자네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구만, 익숙함을 편함으로 착각하는 거야~.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연봉을 들으면 마음이 달라질걸?”

연봉?!

“얼마나 주는데요?”

“자네에겐 연봉 6,000만 원 제안할 생각이네. 대리급에서 업계 최고 수준이야. 그만큼 우린 자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자,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자네가 받는 연봉의 두 배 정도는 될 텐데?”

정확하다. 딱 두 배다.

흠…….

“6,000만 원 정도면, 월 실수령액이 얼마 정도입니까?”

“응?! 글쎄…… 이것저것 다 빼면 420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현재 회사 월급 200만 원.

네모튜브에 주 2회 촬영으로 월에 800만 원.

거기에 광고 및 후원금 [email protected]

즉, 현재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을 실수령액으로 받고 있다.

연봉 6,000만 원?

월 실수령액 420만 원?

장난하나…….

“식사나 하시죠.”

질리지 않도록

* * *

“어? 식사하자고? 식사?”

김성수 부장은 당황한 듯 내 대답을 반복했다.

“…….”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보쌈을 싸 먹었다.

이미 스카웃 제의는 거절한다는 의사 표시를 했고, 반복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 회사를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대기업이고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네임드 회사라는 건데.

그게 뭐?!

어차피 내 소유의 회사도 아니고,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내 이름이 회사에 남는 것도 아니잖아?

소개팅?! 다른 사람들의 인식?!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제대로 신경 못 써주고, 깊은 대화 나눌 시간도 부족한데.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신경 써야 하는 건데?

내가 속초를 가기 전에도 이런 가치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나 보니, 뭣이 중헌지 알겠다.

난 오히려 김성수 부장의 말을 들을수록 그가 착각 속에 사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본인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그 지위가 몇년이나 갈까?

“그래, 식사하자.”

그래도 김성수 부장은 눈치는 있었다. 내 굳은 표정을 보고는, 더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는 묵묵히 쌈만 싸 먹었다.

“굴 추가해도 됩니까? 맛있네요.”

“어, 추가하게. 많이 먹어.”

“굴 2인분 추가요!”

굴보쌈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어느덧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고, 배도 꽉 찼다.

“으아~, 잘 먹었다. 하하. 김 부장님,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김성수 부장은 눈치를 보고는 살며시 물었다.

“자네 입사 제의 거절했잖아.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질척거리는 거 아니야. 정말 궁금해서 그래.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우리가 맞춰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흠…….”

잠시 생각했다.

너무 복합적인 이유인데,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진다.

스카웃 제의 거절에 있어서 가장 통상적인 이유가 연봉과 처우가 안 맞는 거겠지. 그걸로 가야겠다.

“처우 제안이 제가 기대하는 것과 차이가 큽니다.”

“그래? 어느 정도 바라는데? 우리가 맞춰줄 수 있어. 얘기해 봐~.”

김성수 부장은 자신 있다는 듯 호쾌하게 말했다.

지금 실수령이 월에 1,000만 원이 좀 넘는다.

그 정도 실수령액을 받을 수 있는 연봉에 투잡 허용을 해준다면 고려해 볼 만하지 않을까?

“연봉은 1억5천. 외부 활동 허용입니다. 외부 활동은 업무 외 시간에 수입을 얻는 활동을 말합니다.”

“잘 먹었네. 일어나지.”

이제야 김성부 부장은 깔끔하게 단념한 듯했다.

* * *

2주 차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은 궤도에 올라온 듯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수요일부터는 두 번째 방문하는 손님들도 일부 보였으며.

박 기자도 목요일 점심에 한 번 더 왔었다.

그가 다시 왔다는 소식에 난 밖에 잠깐 나가서 인사를 했다.

“엇, 또 오셨어요?”

“이번엔 식사는 안 하고요~, 취재만 하러 왔어요. 레스토랑이 워낙 특이하잖아요. 하하. 잘되고 있을 것 같긴 한데~, 궁금해서 와봤더니.”

그리고 가림막 아래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심지어 의자가 부족해서, 서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요. 취재해 보니, 왔던 손님들도 다수 보이고, 세 번째인 손님도 한 분 계시던데요.”

“와아……. 진짜 부자신가 보네.”

난 그 손님이 고맙다는 생각보다도, 35만 4천 원짜리 점심을 일주일 새에 세 번째 먹으러 왔다는 그 경제력이 더 놀라웠다.

“하하! 이것도 생각지 못한 반응인데요. 셰프가 본인 요리의 가치보다, 손님의 경제력을 더 높게 사시다니. 하하.”

“하하.”

“그럼 바쁘실 테니 들어가세요~. 전 조용히 취재만 하고 가겠습니다.”

“네~.”

주방으로 들어가니.

변 사장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강 대리, 김 부장이랑 얘기는 잘 안 된 거야?”

“네?!”

그건 어떻게 알았지? 만난다는 말도 안 했는데.

“뭘 그렇게 놀라? 이 바닥 좁아~.”

“…….”

“그리고 지난주에 김 부장이 와서, 이번 주 화요일에 보자고 했었잖아. 화요일이면 이틀 전이고.”

날짜까지 정확히 알고 있네.

“근데 왜 진작 안 물어보셨어요? 며칠 지났는데.”

“강 대리가 먼저 얘기해 줄줄 알았지.”

“…….”

난 요리를 하면서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제이엠 좋은 회사잖아. 뭐, 좋은 조건 제시받고 가는 거면…… 말릴 수 없지. 말려서도 안 되고.”

“…….”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인생 누가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

난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착한 건지, 고단수인지 헷갈린다.

“변 사장님.”

“응?”

“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이틀 전에 김성수 부장님 만나고 왔어요.”

“…….”

“근데 아직까지 제가 아무 말 안 한 거면…… 뻔하지 않아요?”

변 사장은 내 말을 잠자코 들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죠.”

이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변 사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에? 그렇게 된 거야?”

“하하. 4번이랑 7번 룸 그릇 비었네요. 어서 가보세요. 음식은 금방 나옵니다.”

“하하! 알았어!”

런치 오브 제로백은 순항 중이고.

난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들과 오래 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동방일보 박 기자는 그다음 날인 금요일에도 찾아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고, 카메라맨이 함께 왔다고 들었다.

바빠서 정신도 없었고, 난 나가보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

그날 밤 뉴스에서 ‘박 기자의 시각’을 보았고.

난……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박 기자의 시각’의 박인수 기자입니다. 요즘 공유주방이 화제죠? 그중에서도 단란주점을 공유주방으로 활용하여 놀라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런치 오브 제로백’을 소개해 드립니다.]

박 기자는 가림막을 향해 걸어가며 멘트를 이어갔다.

[공정만큼이나 상생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에 좋은 모델이 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밤에만 영업하는 단란주점의 빈 시간을 활용하여…….]

화면 속에 사랑산성의 전경과 주변 풍경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나 이곳을 기획한 회사는 정직원 4명의 제로백 컴퍼니라는 회사인데요. 주 5일제를 철저히 지키며, 주말 장사는 하지 않는 신개념 영업 전략을 보여줍니다. 그 덕에 손님들은 월요일부터 줄을 서고 있죠. 안녕하세요?]

박 기자는 사랑 산성에서 음식을 막 먹고 나오는 손님에게 다가갔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곳은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제가 네모튜브의 네모의 신님 왕 팬인데요. 처음엔 그분의 소개 영상 덕에 이곳을 찾았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 말씀은 오늘은 처음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네~, 오늘이 세 번째에요.]

여기서 박 기자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참고로 런치 오브 제로백의 메뉴는 코스 요리 단 하나며, 해당 코스 요리는 부가세 포함 35만 4천 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분은 35만 4천 원의 점심을 먹기 위해 일주일간 세 번째 방문이라는 뜻입니다.]

“대단하다. 대단해.”

나 또한 박 기자의 얘기를 들으며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정도까지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팬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박 기자는 마이크를 손님에게 갖다 대었다.

[처음엔 팬심으로 왔죠. 네모의 신님께서 먹어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요…… 제가 두 번째 먹어보고서는 다시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그래요? 왜일까요? 궁금하네요.]

카메라는 이 손님을 클로즈업했다.

그는 맛을 설명하는데,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일단 맛은 기가 막히고요. 그건 드셔보신 손님들은 다 아실 겁니다. 근데, 꼭 다시 드셔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맛이 다릅니다.]

[…….]

그의 말에 박 기자는 말을 잃었다.

[이, 이상한데요?! 이곳은 분명 단일 메뉴인데?]

[맞아요. 단일 메뉴죠. 근데 맛이 다릅니다. 오늘 세 번째 방문인데, 또 맛이 다릅니다.]

[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그때 저만치 멀리 있던 손님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맞아요! 저도 오늘 두 번째인데, 맛이 달라요! 근데 꼭 다시 올 거예요! 하하!]

박 기자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보고 멘트를 이어갔다.

[이거 참…….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데요. 단일 메뉴인데 맛이 다르며, 꼭 다시 방문하겠다는 게……. 보통 맛이 다르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요?]

박 기자 옆에 있는 손님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분명 처음 방문 시 먹었던 샥스핀탕은 얼큰했어요. 두 번째는 끈적하고 고소했죠. 오늘은 얼큰함과 고소함 사이네요. 이렇게 맛이 매번 다르지만, 한가지 명백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여전히 그를 클로즈업하고 있었고, 그는 흥분한 나머지 방송에 적절하지 않은 멘트가 나왔다.

[졸라 맛있어요!]

[…….]

화면은 재빨리 박 기자의 얼굴로 바뀌었고.

[흠! 맛 표현을 강렬하게 하시는군요. 하하. 저도 취재하면서 이 사실이 참 신기했는데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런치 오브 제로백 사장님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사장 변성준 인사 올립니다.]

어라? 변 사장님이 언제 인터뷰를 했지? 그는 화면 안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대박이 나신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손님들 얘기 들으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어떻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 맛이 매번 다를 수가 있죠?]

[…….]

카메라는 변 사장을 클로즈업했고.

변 사장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거짓말하거나, 억지로 말을 할 때 보이는 그의 버릇.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보니, 이런 디테일한 것도 알게 된다.

[전략입니다.]

헛…….

[전략이요?!]

[네, 전략입니다. 저희는 단일 메뉴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한번 오신 손님이 음식 맛에 질리지 않고 계속 오실 수 있도록, 매번 맛을 바꿉니다.]

[아하……. 그거 이상하네요. 보통은 음식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도록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략이죠. 차별화 전략.]

그의 콧구멍이 세차게 벌렁거렸다.

마치 콧방울이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았다.

[네, 그렇군요.]

화면은 다시 박 기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니,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하. 하여튼 놀랍습니다.]

박 기자는 웃으며 마지막 멘트를 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저도 이미 먹어본 사람으로서 추천은 드리고 싶지만……. 한번 맛보시려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하하.]

카메라는 가림막 아래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앵글에 담았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상, ‘박 기자의 시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벌렁. 벌렁.

런치 오브 제로백이 뉴스에 나오다니.

그것도 맛집 코너가 아니라, 사회 이슈 코너에 나왔다.

그날 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별일 없겠지. 별일 없을 거야.”

이미 지금도 충분하다.

난 여기서 더 별일 없기를 바라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택지개발예정지구

* * *

다음 날 아침. 토요일.

오늘은 쉬는 날이고, 촬영이든 요리든 일은 하지 않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바로 어제 저녁 ‘런치 오브 제로백’과 관련한 엄청난 뉴스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 밑에서 엄청난 것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쉬고 있는 동안은 그 실체를 못 느끼겠지만, 월요일이 되면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런치 오브 제로백에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너무 거대하면 부담된다.

부디 나와 동료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는데.

왜 기대보다도 걱정이 앞서는지 모르겠다.

“뭐 하지.”

지난주 주말엔 그냥 푹 쉬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딴 거 할 생각을 못 했었다.

촬영과 요리의 정신없는 스케줄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월요일부터 또 바쁘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쉼보다는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도 없고, 운동도 안 좋아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영화관을 간다든지…… 그런 청승맞은 짓은 또 싫다.

결국…… 갈 곳은 가족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어머님께 다녀와야겠다.”

‘아셀라 보육원’에 가는 길.

가능역에 내려서 버스를 탔다.

창밖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런치 오브 제로백이 잘 되고 있어서 좋긴 한데, 회사 생활에 여유가 없어졌다.

동료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 지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다들 일에 푹 빠져서는, 얼마 전 찜질방에 갔을 때도 정말 일 얘기밖에 안 했다.

예전엔 성과는 거지 같아도, 여유가 있었다.

아침에 차 한잔하면서 노가리 까고, 점심은 1시간 반이 넘도록 먹고. 툭하면 5시도 안 돼서 회식하러 가고.

놀이터인지 회사인지 모른 생활을 했었는데…….

“풉!”

그때, 변 사장이 팀장이었던 시절 그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농땡이 부려도 되냐고 물으니, 변 사장이 대답한 말.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는 거야~. 이게 월급이냐?!’

아직도 받는 건 그때와 별반 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거지? 변 팀장이 이제 사장이 되어서 마인드가 달라진 건가?

아니면…… 정말 직원들을 부자가 되게 해주려고 그러는 걸까?

“흠…….”

신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고,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제로백 컴퍼니에에서의 첫 월급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런치 오브 제로백은 순항하고 있고, 사진 촬영도 잘 되고 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난 개인적으로 변 사장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떤 수준으로 직원들에게 보상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 * *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보육원이다.

어릴 적부터 항상 다녔던 길이라, 걸으면서 추억에 잠겨 있는데.

보육원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차들이 많이 보인다.

서울과 가깝기는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인데.

심지어 수입차도 많이 보인다.

“뭔 일 있나? 가까운데 골프장이라도 생겼나?”

아니지. 골프장 생겼으면 거기다가 주차하면 되는 거잖아.

왜 이런 으슥한 도로변에…….

어느덧 보육원에 도착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이쿠! 태평이 왔니?”

김성애 수녀님. 나에겐 어머니와 같은 분이 달려 나오며 날 반기셨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니?”

“하하. 집에 연락하고 찾아오나요? 그냥 오고 싶으면 오는 거죠~.”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네. 호호. 어서 와라~. 밥은 먹었니?”

막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아니요~. 보육원 짬밥이 그리워서 안 먹고 왔어요. 밥 있어요?”

“호호. 짬밥이 뭐니? 짬밥이.”

“하하.”

“취향도 참 독특하네~. 돈도 많이 벌면서 맛있는 거 사 먹지 않고.”

“보육원 짬밥은 돈 주고도 먹을 수 없는 거잖아요.”

나에겐 이 짬밥이 집밥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먹었고, 그 시절의 내겐 전부인 음식이었으니까.

“호호. 그래. 식사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너 먹을 만큼은 있을 거다.”

“하하. 네!”

우걱. 우걱.

식판에 올려진 밥과 반찬들.

찐 밥의 구수한 향을 느끼며 난 정신없이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날 가만히 지켜보던 수녀님이 말했다.

“태평아.”

“네.”

“난 너 자주 보는 게 좋긴 한데……. 연애는 안 하니?”

수녀님은 내게 엄마나 마찬가지다.

엄마가 결혼 적령기의 아들이 염려되는 것이다. 수년째 연애를 안 하고 있으니.

“전 아직 여자에 관심이 안 생겨요.”

“왜? 결혼할 나인데?”

글쎄…… 여자한테 마음 주는 게 난 꺼려진다.

똥손 시절, 난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미움을 받았었다.

그로 인해 받은 많은 상처 중에서 이성이 준 것은 달랐다.

접시 깨지고, 사고치고, 손가락질받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날 피하고 흉보는 것보다도.

내가 좋아했던 이성 혹은 교제하던 여자 친구가 내게 등을 돌렸을 때.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 아팠었다.

가슴을 찌르고, 오래 기억되는 아픔.

그 당시 똥손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기에, 난 아픔에 익숙해져야만 했고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성 문제의 아픔만은…….

어차피 이놈의 똥손 때문에 잘될 수는 없는 일이라면. 더욱이 아픔을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멀리하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도록.’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자를 멀리했다.

“뭐~, 적당한 때가 되면 만나는 사람 생기겠죠~.”

이제는 똥손이 아니니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다.

마음가짐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굳게 닫힌 마음의 문.

그 문 앞에 바리케이드 치고 쇠사슬로 몇 번을 꽁꽁 묶어놨더니.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성에게 마음 주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그래~. 태평이는 이제 달라졌잖아.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예전의 태평이가 아니니까.”

“…….”

“여자 친구도 만들고~ 주말에 쉴 때는 놀러도 다니고~ 그렇게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네.”

“네, 어머니.”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보육원 주변에 차들이 많이 보이던 게 생각났다.

“아, 어머니.”

“응. 얘기해.”

“제가 올 때 보니까, 보육원 주변에 차가 많이 보이던데요. 수입차도 보이고. 여기 뭐 생겼어요?”

“아니?”

“그래요? 이상하네요. 평소와 다르던데.”

보통 정류장에 내려서 보육원까지 걸어올 때는 차는커녕, 사람 한 명 보기 힘들다.

보육원은 평지에 있지만, 주변에 마을이나 인가가 없다.

“아~.”

수녀님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환히 웃었다.

“땅 보러 오신 분들인가 보네. 여기 신도시 들어온다잖니.”

몇 주 전 회식 장소에서 봤던 신도시 개발 뉴스가 떠올랐다.

그 이후에 관심 있게 보다가, 신사업 준비하면서 거의 신경을 안 쓰게 됐다.

TV 볼 시간도 없었고.

하지만 굵직한 정보는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 보육원 땅은 택지개발예정지구에 포함이 안 되는 거로 확인했었고, 그로부터는 더 신경 쓰지 않았다.

“보육원이 노른자 땅인가 봐~.”

“아닐 텐데요? 개발 지구에서 벗어난 거로 알고 있는데.”

수녀님은 빙그레 웃었다.

“맞아. 보육원 땅은 택지…… 뭐라더라.”

“택지개발예정지고요.”

“어, 그래. 거기에는 포함 안 된대.”

“…….”

뭐지? 근데 왜 수녀님은 방금 노른자 땅이라고 말씀하신 거지? 그리고 인근에 있던 차들은 뭐야?

“그럼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땅 사겠다고 보육원을 몇 번을 찾아왔단다.”

“…….”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난 잠자코 들었다.

“여기가 평당 300만 원 정도 했니?”

“아니요. 150만 원에 매입했었어요.”

“어머나…….”

이 말에 수녀님은 깜짝 놀랐다.

“정말 이게 무슨 일이라니.”

“왜 그러세요?”

수녀님의 살짝 떨었고.

손으로 쉴새 없이 성호를 그었다.

“최근에 왔던 사람, 한 일주일 전이었나?”

“…….”

“평당 600만 원에 팔라고 하던데.”

“……. 네에?!”

유, 육백만 원?!

그 150만 원에 땅 매입했으니까.

그, 그러면…… 4배?!

내가 보육원 땅 산 지 얼마나 됐지?

2달도 안 된 거 같은데.

미친 거 아니야?!

“어머니, 정말이에요?”

정부 발표가 났을 때, 약간 알아봤던 바로는.

토지보상금은 공시지가의 두 배. 시세 대비로는 비슷하거나 높게 쳐봐야 1.5배도 안 되는 거로 알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싸게 매입한 게 아니라면, 신도시 택지개발예정지구에 땅 가지고 있어 봐야 별거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거였어?!

개발지구에 포함이 안 되어야 대박이었던 건가?

이유가 뭐지?!

“그 사람이 와서, 등기부등본 봤다면서…… 여기 매입하신 분 타짜시냐고 물어보더라.”

“타짜요?!”

“어떻게 개발지구 바로 옆 땅을 발표 직전에 샀냐고.”

“…….”

“뭐라더라? 직선거리로는 신도시 중심지인 정부 청사 들어오는 곳과 더 가깝고 어쩌고…….”

꿀꺽.

자세한 건 알아봐야겠지만.

또 엄청난 기회가 오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 그래서요. 어머니? 뭐라고 하셨어요?!”

“뭘 뭐라고 해~. 내 땅 아니라고 했지.”

“그랬더니요?”

숨이 가빠오고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어머니는 그런 날 보며 희미하게 웃으셨다.

“진정해라. 여기 네 땅이야. 땅이 어디 가니?”

“…….”

“호호. 그분이 땅 주인 아느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일단은…… 모른다고 했어.”

김성애 수녀님은 눈을 빛내며 말씀하셨다.

“놔두면 더 오를 것 같아서.”

“어, 어머니.”

방금 평소의 김성애 수녀님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날카로운 눈빛을 받았다.

“왜냐면 찾아오는 사람마다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거든. 올리는 폭도 점점 커지고.”

“…….”

“이왕 돈 벌 거면 내 아들이 돈 버는 게 좋지 않겠니?”

수녀님은 날 향해 환히 웃었다.

“우리 아들은 잘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나눌 줄 아는 귀한 주님의 아들이니까.”

수녀님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여긴 엄마한테 맡겨두고, 지금 네 삶을 사는 데 집중하렴. 엄마가 적절할 때가 되면 얘기할게. 내일 인근 부동산 중개인도 만나기로 했단다.”

“어머니…….”

그리고 수녀님은 살며시 말했다.

“그리고 우리 보육원 이사 갈 곳이랑 신축 건물도 알아볼까 하는데. 그래도 되지?”

수녀님은 보육원을 20년 넘게 운영해 오신 운영가이기도 하다.

난 그녀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성직자가 아니다.

“물론이죠, 어머니. 좋은 곳으로 알아보세요.”

“호호. 그래.”

* * *

월요일 아침. 주말이 지났다.

보육원 일 덕분에 잠깐 런치 오브 제로백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 촬영을 끝내고, 사랑산성을 향해 가는 길.

두근. 두근.

지난주 금요일 ‘박 기자의 시각’ 보도에 대한 생각이 계속 났고, 사랑산성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벌렁거린다.

기대가 되면서도 두려운 기분.

보통 아침에는 ‘런치 오브 제로백 단톡방’에 잡담이 많은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사랑산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왠지 사랑산성 하늘 위로 이상한 아우라가 흔들리는 느낌.

수군. 수군.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 온다.

그리고 좀 더 걸어가자, 사람 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100미터 넘게 더 가야 하는데.

내가 이들을 지나쳐가자.

“새치기하지 마세요!”

설마…….

이 줄은 사랑산성 정문까지 이어져 있었고.

사랑산성 앞에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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