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7화 (57/156)

터지다 (2)

* * *

“…….”

“…….”

남자는 할 말을 잃었고.

그건 변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주 5일 근무제.

제로백 컴퍼니 직원들은 장사가 아니라, 회사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에 회사 방침을 따라야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변 사장 입장에서도 말을 뱉고 난 뒤, 황당하긴 했다.

근데 듣는 손님은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 5일 근무제요?”

“아……. 네, 제가 여기 사장이거든요.”

“…….”

“저희 회사는 주 5일 근무제고, 현재 모두 정직원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휴일은 쉽니다.”

“…….”

“뭐, 휴일에 근무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지향하는 방향이 아니라서요. 쉴 때 잘 쉬어줘야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현재 직원 중 가족 있는 사람은 변 사장밖에 없다.

변 사장은 쉬는 걸 참 좋아했다.

“아, 레스토랑이 아니라 회사라고요.”

남자 손님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주변에 대기하려던 사람들은 수군대고 있었다.

― 사장님이 장사 특이하게 하시네.

― 원래 잘되는 집은 특징이 있더라.

― 직원들 좋겠네.

제로백 컴퍼니의 특수한 상황을 잘 이해 못 하는 손님들로서는.

변 사장이 크게 돈 욕심 없는 마음 좋은 사장님으로 보였다.

남자 손님은 애인을 향해 말했다.

“자기야. 우리 다음 주 평일에 오자. 이러니까 더 궁금하긴 하다.”

“응, 오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네모의 신님이 홍보한 가게인데. 성지 순례해야지.”

변 사장은 이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강 대리 영향이었군.’

방금 대화 나눈 남자 손님이 떠난 후, 변 사장은 입에 손을 모으고 크게 외쳤다.

“오늘 영업은 끝났습니다! 휴일은 쉽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와주세요!”

* * *

오후 1시가 지나고, 손님들이 전환되면서.

음식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손은 다시 바빠졌다.

“뭐 해?! 빨리 음식 안 내가고!”

주방 테이블에는 주문받은 음식이 쌓여가고 있었다.

지금 서빙을 최경리와 홍지아 둘이 하고 있지만.

내가 음식 만드는 속도를 못 따라갔다.

“와……. 속도가 진짜. 미쳤어.”

홍지아는 음식을 내가면서 중얼거렸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음식 만드는 것 같네. 안 그래요? 경리 씨?”

“그러니까요. 하도 왔다 갔다 했더니 다리도 후들거리고. 음식 기다리면서 좀 쉬려고 했더니. 강 대리님은 틈을 안 주십니다. 인간미 없게.”

“…….”

최경리 입에서 ‘인간미 없다’라는 얘기를 듣다니. 안 어울린다.

“샥스핀탕 서빙!”

난 주방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소리쳤다.

“이거 식으면 맛없는 거 알지? 서둘러!”

홍지아, 최경리는 뛰다시피 움직였다.

잠시 후.

2번 방에서 빈 접시를 가지고 온 홍지아가 말했다.

“대리님~.”

“응?!”

“2번 방 손님이요. 이제 가실 거라고 하는데요. 얼굴 뵐 수 없냐고 물으시는데.”

“2번 방?”

“네, 동방일보 박인수 기자라고 하던데요.”

아, 맞다.

박 기자 왔었지.

홍보 부탁하려고 불러 놓고서는 정신없어서 신경도 못 썼다.

다행히 주문받은 음식들은 대부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데워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홍지아 씨, 아무래도 잠깐 갔다 와야 할 거 같거든?”

“네.”

“내가 변 사장님에게 서빙 좀 봐달라고 할 테니까. 홍지아 씨는 주방 맡아. 다 만들어놨고 조금만 데치기만 하면 돼. 수비드 안심구이만 겉만 살짝 구우면 되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물론이죠. 굽는 건 자신 있습니다.”

홍지아가 자신 있다고 하니까, 왠지 불안한데.

“까불지 말고, 조심해서 해. 안심구이 쉽게 탄다.”

“걱정 마세요~.”

대답이 시원시원한데?

더 불안해진다. 빨리 갔다 와야지.

“금방 갔다 올게!”

2번 룸.

똑똑. 덜컹.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 기자님~.”

“여어~, 강 셰프님! 하하.”

박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린 반갑게 악수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진작에 와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별말씀을요. 보아하니, 정신없으실 것 같던데.”

“하하.”

“개업하신 지 얼마 안 되었다면서 장사가 굉장히 잘되네요?”

“오늘따라 그렇네요. 박 기자님이 오셔서 그런가? 하하.”

“하하.”

난 자리에 앉았다.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냈죠?”

박 기자의 말에 난 웃으며 대꾸했다.

“네, 보시다시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좋아 보여요. 그때 사진공모전 대상 받으셔서 인터뷰했을 때랑은 달라 보이네요.”

“하하. 그래요? 살 좀 쪘나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때는 뭐랄까. 흠…….”

박 기자는 떠오른 말이 있는데, 머릿속으로 정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해하는 느낌?”

“…….”

난 대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어리버리해 보였다는 걸 다르게 설명해서 말하는 것 같다.

적절한 비유다. 그때는 내가 뭔 짓을 한 건지, 얼떨떨하기만 했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색해하던 시기였다.

“근데~ 지금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시고,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하네요. 흠…….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자기 확신이란 표현이 더 맞겠네요.”

“하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얼굴도 훨씬 밝아지신 것 같고요.”

우린 웃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라, 대화하면서도 난 자꾸 시계를 보았다.

“셰프님이라 바쁘시죠?”

“하하. 오늘 좀 정신이 없긴 하네요.”

박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제가 오늘 ‘특이한 이력의 회사원’이라는 주제로 취재를 해보려 했거든요. 자연스럽게 가게 홍보도 될 수 있게끔요.”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맛도 보고, 손님들 반응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박 기자는 빙그레 웃었다.

“그냥 ‘런치 오브 제로백’을 중심으로 다른 시각으로 취재를 해야겠네요. 워낙 맛이 좋아서.”

“아…….”

극찬이었다. 맛집으로 인정해 주고, 오로지 레스토랑 주제로 기사를 써준다는 게.

“지금은 바쁘시니까.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이미 음식 사진 다 찍었고 쓸 내용도 정리했어요. 몇 가지 궁금한 것만 여쭤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딱 한 가지 염려되는 게 있었다.

“기자님, 기사를 너무 크게 쓰지는 말아주세요.”

“네?!”

“자리가 부족해서 오늘 돌려보낸 손님들이 많거든요. 너무 많은 손님이 와도 저희가 받을 수가 없거든요. 공간과 시간 제약 때문에.”

“아~.”

박 기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오늘 잘되었지만, 내일도 잘되라는 법 없잖아요. 손님이 많을 경우 어떻게 수용할지 고려하시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은데요? 잘되는 집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는 내게 윙크를 했다.

“제가 아무리 강태평 씨 기호를 들어주고 싶어도, 기사량을 조절하겠다는 약속은 못 드리겠네요. 그건 제 권한 밖이라서.”

“아, 알겠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쓸데없는 소리 해서 죄송합니다.”

덜컹.

박 기자는 룸 밖을 나갔고, 난 그를 정문까지 배웅했다.

“안 나오셔도 되는데.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인사하고 보내려는데, 그때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평 씨!”

네모 씨였다.

* * *

박 기자와 헤어지려는 찰나.

네모튜브 사람들이 나타났다.

“태평 씨~, 오늘 너무 잘 먹었어요.”

“진짜 대박! 또 와도 되지?”

네모삼촌의 물음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또 와주시면 감사하죠.”

“하하. 돈 모아서 올게.”

네모 씨는 나와 인사하고 있던 사람을 보고는 말했다.

“바쁘시죠? 저희 먼저 갈게요. 나중에 얘기해요~.”

그들이 가려는데, 박 기자가 불러세웠다.

“저기요! 혹시 네모삼촌이랑 네모 씨 아닌가요?”

“…….”

박 기자가 그걸 어떻게 알지?!

이 말에 네모삼촌과 네모 씨는 가만히 박 기자를 바라보았다.

“맞군요~. 하하. 반가워요. 우리 딸이 네모튜브를 너~무 좋아해서 덕분에 저도 많이 봤거든요.”

“아~, 네~.”

네모삼촌은 웃으며 끄덕였다.

“네모삼촌~, 제 딸한테 사인 한 장만 해주세요.”

네모삼촌이 사인하는 동안, 박 기자는 물었다.

“혹시…… 네모의 신님은 함께 안 오셨나요?”

“바로 옆……. 흡!”

정카가 말하려던 걸, 난 손으로 황급히 막았다.

박 기자가 네모튜브를 알 줄이야.

무의식적으로 내가 네모의 신이라는 걸 박 기자가 알게 되면 피곤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로 옆에 뭐요? 강태평 씨는 왜 입을 막아요?”

난 정카의 입에서 손을 떼며, 눈빛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다행히 정카는 알아들었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오늘 바쁘셔서 같이 못 왔어요.”

“아……. 네.”

네모삼촌이 사인을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요.”

종이에는 사인과 함께 조그마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합니다, 네모삼촌.’

“멘트가 달달하네요. 딸이 아주 좋아하겠어요.”

반어법처럼 말했는데, 네모삼촌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좋아하겠죠.”

박 기자는 사인지를 두 번 접어서 품에 넣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박 기자는 내게 인사한 후, 네모튜브에도 덕담을 건네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드릴게요.”

“네~.”

“아! 그리고.”

박 기자는 명함을 네모 씨에게 건네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네모의 신님 인터뷰 기회 한번 주세요. 저희가 잘 담아 드릴 테니까.”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그분 의사가 중요해서요.”

“알겠습니다. 말씀 잘해주세요. 그럼.”

박 기자가 간 뒤.

휴우―.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떠난 뒤, 네모삼촌이 말했다.

“자기야. 그냥 커밍아웃 하자. 여기저기 난리네.”

커밍아웃은 안 된다.

그 순간. 내 삶은 없어지고 네모의 신만 남을 것 같아서.

영향력이 커지면, 휩쓸려 갈 수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네모의 신으로 알려지는 것만큼은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태평 씨, 그럼 갈게요. 잘 먹고 가요~.”

“네, 그리고…… 별일 없었죠?”

난 사무장을 뜻한 거였고, 네모 씨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하하. 네, 다행히 마주치지도 않았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 드릴게요.”

“네~.”

난 네모튜브 사람들을 배웅하고.

주방을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어려운 일은 거의 끝났다. 이제 사무장만 가면 되는데…….’

뚜벅. 뚜벅.

‘주방 밖으로 안 나가면 되는 거니까.’

사무장은 내가 네모의 신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셰프인 건 모른다.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끼이익―.

3번 룸이 열리고. 사무장과 마주쳤다.

“어?”

“어머! 이게 누구야?”

사무장은 내 어깨를 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강태평 씨! 네모의 신~.”

그녀는 소리치며 반가워했다.

젠장. 룸에 손님들 꽉 차 있는데.

대부분 네모의 신 때문에 온 손님들인데.

자칫하다간 얼굴까지 다 노출될 것 같았다.

“자, 잠깐!”

난 사무장의 손을 잡아채고.

“어, 어머.”

쉿―!

난 검지를 그녀의 입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제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거 몰라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얼굴이 새빨개진 사무장이 수줍게 말했다.

“미안요……. 너무 흥분해서.”

그녀의 뒤에서 딸이 날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이 아저씨 누구야?”

“응?!”

사무장은 눈을 흘기며 날 바라보았고. 난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네모의 신이라고 하기만 해봐.’

“응~, 엄마 회사 동료야.”

“아~,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사무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왜 연락 안 받았어요? 여긴 또 어쩐 일이에요.”

연락은 씹었고, 여긴 요리하러 왔다.

두 가지 다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그냥 바빴습니다.”

“어머…… 많이 바빴나 봐.”

뚜벅. 뚜벅.

그때 복도 끝에서 거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젠장, 최경리였다.

이 타이밍에 하필 최경리라니.

안 돼. 안 돼.

“강 대리님! 주방…….”

그녀는 멀리 있었고.

소리 지르는 거 말고는 그녀의 말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닥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