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6화 (56/156)

터지다 (1)

* * *

“이게 무슨 일이야…….”

난 주방 문밖을 나서려다 말고.

CCTV부터 확인했다.

초인종 소리가 반가우면서도 겁이 났다.

생각지 못하게 아는 사람들이 자꾸 와서, 이번엔 내가 먼저 확인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다른 직원들도 와서 CCTV를 확인했고,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다.

젊은 남녀 커플이었는데.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길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저 나이에 이 정도 음식 먹을 돈은 없을 텐데.”

홍지아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일단 난 인사하러 갔다 올 테니, 손님인지 아닌지 확인해. 변 사장님, 저 다녀올게요.”

“어, 그래. 빨리 와야 해.”

똑똑. 3번 룸.

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네모튜브 세 남자는 날 보자마자, 반갑게 소리를 지르며 반겼다.

“오우~, 강 셰프~.”

“하하. 네모의 신님, 영접하옵니다~.”

“맛 좋은데요?!”

나 또한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주방장 옷을 입고 그들 앞에 서 있는 게 어색하긴 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하하. 당연히 와야죠~.”

네모 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 분들은 한 분도 안 보이네요? 하긴 개업한 지 좀 지났다고 했죠? 이미 다 왔다 가셨겠지~.”

“…….”

난 이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음식 맛은 어때요?”

난 가벼운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도 32만 원짜리 음식 먹으러 와줬는데, 용건만 간단히 하고 나갈 수는 없었다.

“베리 베리 굿~.”

네모삼촌이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강태평 씨는 못 하는 게 뭐야? 이걸 진짜 태평 씨가 만들었다고?”

“하하. 네.”

정카가 웃으며 말했다.

“전문적으로 배웠나 봐요~. 어쩌면 이렇게 다재다능하세요? 그것도 좀 잘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것마다 말도 안 되게 잘해버리니까.”

네모 씨가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촬영, 종이접기, 요리……. 다음엔 뭡니까? 강태평 씨? 예고 좀 해주세요~.”

“하하. 비밀이에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나도 내가 뭘 더하게 될지 모르겠다.

“다음 사업은 우리랑 해요. 뭐든 오케이니까.”

“…….”

이 말엔 난 대꾸하지 않았다.

이 정도 대화했으면 본론을 말해도 될 거 같다.

“세 분,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내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자, 세 남자는 먹는 걸 멈추고 내게 집중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모삼촌이 물었고, 난 누가 들을까 조심해서 말했다.

“김보경 사무장님 오셨거든요.”

“으응?”

네모삼촌이 놀랐고, 네모 씨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저번에 악수를 너무 끈적하게 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둘이 그런 사이였어요? 왜 유부녀랑…….”

난 정색하고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사무장님 딸이랑 같이 왔어요.”

잠자코 있던 네모삼촌이 한마디 했다.

“네모 씨 농담이 심하네. 부럽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 들어줄 시간 없다.

어쨌든 반응을 보아하니, 이들이 알려줘서 사무장이 온 것 같지는 않다.

“사무장님이 홍보 영상 보고 온 것 같거든요?”

“…….”

“혹시 마주치면 제가 여기 셰프인 거 말하지 말아 달라고요.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예요.”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건 그렇게 하고……. 그 말 전하러 여기 온 거야? 좀 서운한데?”

너무 어투가 건조했나.

난 바로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에이~, 그뿐만이 아니죠. 감사해서 인사드리러 온 거죠. 용건만 말할 거면 전화 드렸죠.”

이 말에도 세 사람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다.

“에이~, 다들 왜 그래요~.”

미치겠다. 빨리 주방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무시하고 가기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기분 풀어요~. 미안해요.”

“그렇다면…….”

네모삼촌은 방 한쪽 벽에 걷힌 천을 내렸다.

“노래 한 곡 하고가.”

“뭐라고?”

단란주점 룸이기에 노래방 기계는 필수다.

검은 천으로 가려놨는데, 이걸 언제 본거지?

“방금 나 반말 들은 거 같은데.”

“흠! 아, 아니에요. 그리고 이 노래방 기계는 우리 소유가 아닌데.”

“무슨 소리야. 그럼 이 건물은 자기네 소유야? 낮 시간 동안 임대했다며? 임대료 낸다며?”

“…….”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빨리 노래 한 곡 하고 가~.”

네모 씨와 정카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노래해! 노래해!”

아, 울고 싶다. 갑자기 이게 뭔 상황이야.

“노래해! 노래해!”

이래서 아는 사람 오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이 와중에 노래를 하라고?

“저 지금 바쁜데.”

“아, 몰라~. 모르겠고~. 나 같으면 빨리 노래 부르고 가겠다.”

네모삼촌의 말에 네모 씨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1절만 불러도 인정! 1분이면 될걸요?”

“…….”

TC미디어 기계였다.

에이 씨, 모르겠다. 빨리 부르고 끝내자.

“360번 눌러주세요.”

“오~, 준비된 남자! 곡 번호도 외우고 있어?”

노래방 오면 부르는 노래가 몇 개 없어서, 번호 정도는 외우고 있다.

[삼육공! 유수일 ― 아파트]

12시가 좀 넘은 대낮.

단란주점을 빌려 레스토랑을 만들어 놓은 ‘런치 오브 제로백’.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가 놓인 고급스러운 테이블 앞에서.

난 마이크를 들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어이! 어이!

[언제나 너를~ 기다리는 나의 아파트~.]

으샤! 으샤!

제발 입 다물고 얌전히 들어줬으면 했지만.

세 남자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탬버린까지 흔들며, 추임새가 장난 아니었다.

1절이 거의 끝나갈 때쯤.

덜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최경리가 싸늘한 시선으로 나와 마이크를 보고 있었다.

“미치셨어요?”

“…….”

하필 이 타이밍에.

“지금 난리 났어요. 주방 폭파 직전입니다. 룸 다 찼어요.”

뭐?!

난 마이크를 내려놓고 뛰어나갔다.

“맛있게 드세요! 아까 부탁드린 거 잊지 마시고요!”

쾅!

문이 닫힌 뒤.

세 남자는 멍해 있었다.

“와……. 대단한데.”

“그러게요.”

모두 마이크를 보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거야? 마이크를 잘 다루는 거야?”

“목구멍에 뭔가 설치되어 있는 거 아닐까요?”

정카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방금 동굴에서 노래 듣는 것 같았어요. 하여간 강태평 씨 신기해.”

# 마이크

Before: 손대면 작동이 잘 안 돼서, 볼륨 대신 목소리를 키워야 했다.

After: 에코 빵빵.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

* * *

“…….”

난 CCTV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개의 각 룸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리님! 3분이면 된다더니, 어떻게 10분을 넘게 있어요!”

홍지아가 투덜대었다.

“손님 받고 음식 준비하고, 뒈지는 줄 알았어요.”

“아, 미안해. 가볍게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대화가 길어지더라고.”

“과연, 대화뿐이었을까요?”

최경리가 노래방 얘기를 할 것 같아서, 그녀를 잡아끌었다.

“최경리, 조용히 하자.”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만 봐줘. 나 열심히 하고 있잖아.”

“…….”

최경리는 CCTV에 가득 찬 손님들을 보았다.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넘어갑니다. 하지만, 추후 업무시간에 음주 가무를 한 행동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르셔야 합니다.”

“음주는 안 했어…….”

홍지아가 다가왔다.

“둘이 뭘 그렇게 속닥거려요?”

“아, 아니야.”

“강 대리님! 지금 빨리 음식 만드셔야 한다고요!”

“어. 그, 그래.”

난 프라이팬에 수비드 안심을 올려놓고 말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손님들이 왜?”

“저도 모르겠어요. 12시 넘어서부터 손님들이 밀려오네요.”

“다 모르는 사람들이지?”

난 믿기지 않아서, 재차 물었다.

“네, 근데 다들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뭔데?”

“네모의 신님이 말한 곳이 맞냐고요.”

“…….”

“진짜 신이세요?”

홍지아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은 곧바로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어쨌든 이 상황이 나도 얼떨떨했다.

네모의 신이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홍지아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너튜브에 나와서 직접 홍보 한 번 했다고, 하루 만에 이런 반응은…….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닌데.”

“…….”

꿀꺽.

홍보가 먹혀서 손님이 많이 왔다니까 다행스럽긴 하면서도.

부담이 확 느껴지네.

치이익~.

안심구이를 내려놓고, 다음 음식 재료를 바로 올렸다.

“변 사장님은?”

“밖에 계세요. 대기자분들 줄 세우고 있어요.”

하아……. 일이 커지네.

어떻게 된 게, 금손이 되면서부터 중간이란 게 없어졌다.

일단 터지면 무조건 대박이다.

“대기자? 몇 팀…… 안 되지?”

“지금 6팀 대기 중인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던데요.”

식사하려고 줄 서서 대기 중인 사람들까지 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자자. 음식 나왔다. 최경리 씨 서빙해.”

“알겠습니다.”

“홍지아 씨도 같이.”

“네!”

두 사람은 열심히 음식을 날랐고.

난 왼손으로는 볶고, 오른손은 지지며.

양손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속도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손은 점점 더 빨라졌다.

“우와아……. 이 정도였어?”

손이 진짜 빠르다.

난 분명 오른손잡이인데, 급하니까 왼손도 오른손으로 변신한 것 같다.

왼손을 쓰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서빙을 하고 온 홍지아가 양손이 따로 노는 내 모습을 보며.

“우와……. 대리님 서커스 보는 거 같아요.”

“외계인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최경리도 한마디 했다.

내 손은 빠르게 밀린 요리들을 처리해 내고 있었다.

1시쯤 되었을 무렵.

먼저 온 손님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다음 손님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헉헉.

변 사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방에 들어왔다.

“음식 좀 더 빨리 안 되겠어?”

“왜요?”

“지금 오래 기다리신 분들이 많은데. 이러다가 식사 못 하고 가시겠어!”

난 양손으로 노룩(NO LOOK) 조리를 하며 대답했다.

“사장님! 이제 더 이상 대기 받지 마세요. 화구도 4개밖에 안 되고 아무리 빨리한다 해도 한계가 있어요. 재료도 얼마 안 남았어요.”

“아, 알았어.”

* * *

사랑산성 정문 앞.

― 와, 대박! 진짜 맛있어~.

― 네모의 신님께서 추천해 주실 만해~.

대기 중인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애가 달았다.

― 빨리 먹고 싶다.

― 아무래도 코스 요리다 보니 시간이 걸리나 봐.

그때 변 사장이 나왔다.

“지금 대기 중인 분들까지만 받겠습니다. 영업 끝났습니다!”

그때 막 줄을 서려던 사람이 물었다.

“저희까지만 받아 주시면 안 돼요?”

변 사장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 공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요. 재료 문제도 있고요.”

“아……. 멀리서 왔는데.”

“죄송합니다.”

그 사람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여기 영업시간이 몇 시부터예요?”

“오전 11시입니다, 손님.”

“오케이, 알았어요. 자기야, 우리 내일 일찍 다시 오자.”

남자는 옆에 있던 애인에게 말했고, 애인은 아쉬워하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변 사장은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 정말 죄송한데, 저희가 내일은 영업을 안 합니다.”

“네에?!”

남자는 황당해서 물었다.

“왜요? 내일이 토요일인데요?! 토요일에 식당 영업을 안 한다고요?”

“네……. 저희가 휴일엔 영업을 안 합니다.”

“…….”

남자는 황당한 듯 바라봤고.

변 사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우리 회사가 주 5일제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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