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구름 뒤에 (2)
* * *
헉. 헉.
정문 밖으로 나온 변 사장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세 남자가 보였다.
어차피 외진 곳이라 사람도 잘 없다.
네모튜브라고 확신한 변 사장은 빠르게 뛰어갔다.
“저기요!”
“…….”
“잠깐만요!”
앞서가던 사람 중 하나가 소리를 듣고 뒤돌아봤다.
“응?”
헉. 헉.
변 사장은 어느새 그들 앞에 섰고, 네모 씨가 물었다.
“누구세요?”
“헉. 헉. 안녕하세요. 방금 직원 실수로 오해하고 돌아가시는 것 같아서요. 좀 전에 런치 오브 제로백 방문하신 분들 맞죠?”
“아……. 네, 맞습니다만.”
“혹시 네모튜브 분들 아니신가요?”
변 사장은 강태평과 함께 영상을 찍는 네모삼촌 얼굴을 기억한다.
“맞습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강태평 씨가 우리 식당 셰프 맞거든요. 네모의 신이요.”
이 말에 네모 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방금 안내해 주신 분이 아니라던데.”
“아~, 그게. 그 친구가 네모튜브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네모 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강태평 씨가 셰프인 걸 밝히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어쨌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네모 씨는 물었다.
“실례지만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강태평 대리 직장 상사인 변성준 사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네모 씨와 변 사장은 악수했다.
“오늘 식사하러 오신 거 맞죠?”
“하하. 네, 맞습니다. 우리 동료가 개업해서 직접 셰프로 일하고 있다는데, 와봐야죠.”
“…….”
이 말을 들으며 변 사장은 부끄러웠다.
‘어째 우리 회사 사람들보다 낫네.’
변 사장은 세 사람과 함께 ‘사랑산성’을 향해 걸어가며 대화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가격대가 좀 나갑니다.”
“알고 있습니다~. 강태평 씨가 얘기해주셨어요.”
“그걸 알고도…… 세 분씩이나.”
이 말에 네모 씨는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값어치를 하니까, 가격이 비싼 거 아닙니까? 하하.”
네모튜브 사람들은 너무나 쿨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이게 정상적인 걸까?’
변 사장은 며칠 전 민경원 사장이 와서 비싸다가 난리 치던 게 떠올랐다.
마지막 계산할 때 VAT는 빼달라고, 얼마나 우기던지.
그 생각이 떠오르자, 변 사장은 다시 한번 부끄러웠다.
네모튜브를 3번 룸으로 안내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3인 코스 준비하겠습니다.”
* * *
사랑산성에는 총 10개의 룸이 있다.
오늘 12시가 되기 전에 2개의 룸이 채워졌고.
총 4인분 매출을 올렸다.
부가세 포함 140만 8천 원.
CCTV를 통해 왁자지껄 웃으며 아뮤즈 부쉬를 먹고 있는 네모튜브를 보았다.
난 이들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홍보만 부탁했지, 방문해달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올 거라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인지 더 고맙고 반가웠다.
“강 대리님! 수비드 안심구이 나왔어요?”
“어~, 조금만 기다려.”
개업한 지 처음으로 주방이 분주하다. 이 또한 20여 분 뒤면 끝나겠지만.
어쨌든 5일 차에 이 정도 매출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변 사장은 들뜬 표정으로 2번 룸과 3번 룸을 보고 있었다.
“아~, 너무 기분 좋다. 장사하는 분들이 이런 심정일까? 손님이 오니까 그냥 막 웃음이 나오네.”
“하하. 그러게요. 근데 오늘 오신 분들은 지인 찬스나 마찬가지라서. 다음에는…….”
이 말에 변 사장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 좋은 기분 초치지 말자. 이분들이 맛있게 드시면 다른 지인들에게 소개할 수도 있지. 더군다나 처음 오신 분은 기자라며.”
“맞아요.”
“언론의 영향력 몰라? 기자님께서 기사만 잘 써주시면, 고객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의도로 박 기자를 오게 하긴 했지만, 설레발 치고 싶지는 않았다.
“뭐…….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쉽지 않겠죠.”
변 사장은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그래, 김칫국 마시지 말고, 일단 지금 온 분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집중!”
음식 만드는 것에 집중하려는데…….
딩동!
지금 시각 12시 1분.
“…….”
또 울리는 벨 소리에 우리 모두 얼어버렸다.
“방금 핸드폰 소리 아니지?”
딩동!
“빠, 빨리 CCTV 확인해봐.”
변 사장은 말을 더듬었다.
홍지아가 확인하는 사이, 변 사장이 물었다.
“강 대리, 혹시 더 소개한 분 있어?”
“없는데요. 변 사장님은요?”
“나야 많긴 하지. 근데 올 사람들이 아니야. 다 극서민층이라서. 최경리는?”
“전 친구가 없습니다.”
홍지아가 CCTV를 확인 후 말했다.
“손님이…… 맞는 것 같습니다.”
“뭐어?!”
음식점에 손님 온 것은 당연한 일인데, 연이은 방문에 우린 당혹스러웠다.
최경리는 음식 서빙하려고 대기 중이고, 홍지아는 날 보조하여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분위기 속에서, 변 사장이 밖을 나가며 말했다.
“내가 응대할게!”
덜컹.
현관문을 열자, 여자아이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런치 오브 제로백입니다.”
“네~, 점심 먹으러 왔습니다. 여기가 네모의 신님이 소개하신 곳 맞죠?”
변 사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어제 네모튜브 영상보고 오셨나 보군요. 네, 맞습니다.”
“와아~, 신난다!”
여자아이는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변 사장은 이 모습을 귀여운 듯 바라보다가 물었다.
“몇 살이니?”
“9살이요.”
여자아이는 손에 종이학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일반적인 학과는 좀 달랐다.
날개의 주름, 얼굴 모양 등…….
‘이상하다. 이거 분명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네모튜브?!’
범상치 않은 종이학을 알아본 변 사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야. 혹시 이거…… 신의 학?!”
“하하. 네, 맞아요!”
“우와~, 실물로는 첨 봤어~. 이게 이렇게 생겼구나. 이 귀한 거 어디서 났니?”
“헤헤. 우리 엄마가 생일 선물로 주셨어요. 우리 집에 이거 2,500마리 있는데~.”
“으잉?!”
‘2,500마리?!’
변 사장은 종이접기는 잘 모르지만, 강태평 덕분에 약간은 안다.
신의 학의 유명세와 가치에 대해서도.
‘신의 학……. 몇 마리 없는 귀한 거로 알고 있는데. 이걸 2,500마리나 가지고 있다고?! 사기꾼들 아니야?’
“호호.”
입을 가리며 웃고 있는 여자도 뭔가 좀 야시시하게 생겼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어쨌든 손님이니까, 안으로 모시자.’
“제가 모시겠습니다. 5번 룸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네~.”
5번 룸으로 안내 후 자리에 앉히고, 변 사장은 메뉴판을 열어 설명했다.
“저희는 코스 요리로 진행되고요. 1인 1 주문이 기본입니다. 죄송하지만 아이용 소량 메뉴는 없습니다.”
“훗.”
여자는 메뉴판을 덮으며 말했다.
“많으면 남기면 되는 거죠. 2인분 주세요. 고급 레스토랑이라더니, 가격이 아주 비싸진 않네요.”
“…….”
변 사장은 생각했다.
‘이 가격이 비싸게 안 느껴진다고? 단골로 만들어야 할 손님이네.’
한껏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음식 준비하겠습니다.”
* * *
덜컹.
변 사장이 주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었다.
“주문받았어요?!”
변 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 대리!”
“네! 사장님!”
“자네가 진짜 한 건 했어. 네모튜브 홍보가 효과가 있구만! 하하.”
“아, 정말요? 홍보 영상 보고 오셨대요?”
“그래~. 오자마자 네모의 신이 말한 식당 맞냐고. 그거부터 묻더라고.”
“하하.”
오……. 약간 기대는 했지만.
확실히 110만 구독자 방송 영향력이 세구나.
“아마 가격이 낮았다면 사람들이 더 많이 왔을 거야.”
“그러게요.”
“그러게 왜 홍보 영상에서 가격까지 말했어. 그건 그냥 와서 확인하게 하지.”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찾아 왔다가 가격 보고 돌아갈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 2인분 진행하면 돼!”
“알겠습니다!”
우리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바로 분주히 음식 준비를 했다.
이미 만들고 있는 4인분에, 추가 2인분까지.
한가롭게 있다가 갑자기 많은 음식을 만들려니 정신이 없었다.
“아! 맞다! 강 대리!”
“네!”
“자기 혹시 팬 서비스로 신의 학 준 적 있어?”
“아니요?”
“아……. 하긴 2,500마리를 팬 서비스로 주긴 빡세겠지. 그럼 판 건가?”
“네에?!”
2,500마리…….
그 말에 갑자기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속초행 고속버스에 이어, 나의 두 번째 트라우마.
운명이라면 피하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려 했고. 그래서 아뮤즈 부쉬에서도 그 철학을 담았지만.
그래도 2,500마리는 못 사랑한다.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하, 학은 갑자기 왜요?”
“아니, 왜 이렇게 놀래?!”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갔고.
변 사장은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얼버무렸다.
“그런 적 없어? 꼬마 애가 사기 치는 건가? 사기 치기엔 많이 어려 보이던데. 신의 학을 들고서 말하더라고. 자기 집에 똑같은 게 2,500마리 있다고.”
2,500마리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한국종이접기협회 김보경 사무장.
딸이랑 같이 온 건가?
딸에게 선물한다더니, 진짜로 했나 보네.
너튜브 홍보의 힘이 무섭구나.
그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줄이야.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겠죠. 아이들이 산타가 있다고 믿는 것처럼요.”
“아, 그래? 네모의 신이 산타야?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해는 되네. 뭐, 그럴 수도 있겠어.”
난 확인차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엄마랑 같이 왔나요?”
“응. 맞아.”
“그 여성분이요. 눈빛이 좀 야시시하고, 입가에 점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어,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뭐야…….”
변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식은 만들어야 하는데.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동방일보 박 기자는 내가 불렀다고 하지만.
네모튜브 사람들도 올 줄 몰랐고.
김보경 사무장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 내 정체에 대한 인과관계
1) 네모튜브: 셰프 O / 네모의 신 O
2) 박 기자: 셰프 O / 네모의 신 X
3) 사무장: 셰프 X / 네모의 신 O
박 기자와 네모튜브만 내가 셰프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김보경 사무장은 내가 셰프인 건 모를 것이다. 네모튜브 홍보 영상만 보고 찾아온 게 분명하다.
근데 만약…….
네모튜브 사람들과 김보경 사무장이 마주친다면?!
안 된다. 절대 내가 이곳 셰프인 걸 그 아줌마가 알게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여길 숱하게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예감…….
어떻게 하지?
네모튜브와 사무장 간에 동선을 겹치지 않게 하면 되는데.
레스토랑을 나가는 시간은 응대하면서 조정할 수 있다지만.
중간에 화장실을 가면서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
그럼 CCTV를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해? 마주치지 못하게?!
난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그래. 그냥 간단하게 가자. 믿어보는 수밖에 없어.”
네모튜브에게 김보경 사무장 왔다는 걸 알려주고, 마주치거든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건 비밀로 해달라고 해야겠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난 앞치마를 바로 벗었다.
“홍지아 씨! 수비드 안심이랑 통전복 조리 다 끝났으니까, 접시에 담아서 내어 주기만 하면 돼.”
“어디 가시게요?”
“어, 여기까지 오셨는데, 잠깐 인사 좀 하고 오려고.”
난 대충 이렇게 말하고, 빠르게 주방 밖으로 나서려 했다.
“빨리 오셔야 해요~. 바빠요!”
“알았어! 2분 내로 올 거야.”
홍지아는 중얼거렸다.
“인사를 겁나 빨리 하시네.”
벌컥.
주방 문밖을 나서려는 찰나.
딩동!
초인종이 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