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4화 (54/156)

한 조각의 구름 뒤에 (1)

* * *

[셰프요?]

박 기자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반문했다.

[네, 맞습니다.]

[…….]

잠시 가만히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 와~, 대박이네요. 그때 종합상사 영업 팀이 촬영 팀 되었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진짜 상상도 못 했네요.]

[하하. 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이제 촬영은 안 하시고요?]

[아니요. 그건 그거대로 합니다. 사업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래요?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었던 거로 생각하는데…….]

코딱지만 한 회사가 어울리지 않게 문어발 경영을 하냐는 의미겠지.

[근데 강태평 씨 재주가 대단하시네요~. 어쨌든 요리 실력이 있으시니까 셰프를 하신다는 거잖아요?]

[뭐~, 그렇죠.]

[하하. 뭐, 가벼운 음식을 만드나요? 메뉴가 어떻게 됩니까?]

[코스 요리입니다. 주메뉴는 샥스핀탕이고요, 수비드 안심 구이,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쭉 설명해 주었고.

박 기자는 들으면서 이상한 신음 소리만 내었다.

[허……. 참. 아니, 그런 걸 만드신다고요? 그냥 떡볶이, 오므라이스 이런 게 아니라?]

[네……. 저희가 고가 전략을 택해야 해서.]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는 흥미로워했다.

처음엔 대충대충 응대하더니, 점점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물어오고 있었다.

시작단계부터 천천히 설명하며, 난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단란주점에서 공유 주방을……. 허허.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뭐, 방법을 찾다 보니, 어쩌다가 나온 겁니다.]

[오……. 손님은 있습니까?]

[음식이 워낙 고가다 보니 많지는 않습니다.]

손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지금까지 민 사장님 한 팀 왔었다.

난 박 기자가 스스로 찾아와 주기를 바랐다.

일반적인 음식점이 아니므로, 그가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괜찮으시면 제가 한번 가봐도 될까요?]

[…….]

[가서 취재하고 음식 맛도 보고 싶습니다.]

[아……. 저희야 상관없습니다만, 음식을 대접해 드리긴 좀 어려운데…….]

보통 기자들이 오면 대접해야 하는 거로 알고 있다.

[하하. 그건 염려 마세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법카로 먹습니다.]

[아……. 네.]

우리는 지금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홍보를 위해 32만 원짜리 음식을 대접할 여유는 없다.

[그럼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네, 가급적이면 11시 반 전에 와주세요. 손님들과 겹칠 수 있어서요.]

취재하러 왔는데, 피크 타임에 파리 날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래서 이른 시간에 와주길 요청했다.

[네~, 그럴게요. 영업에 지장 가면 안 되죠. 취재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감사하죠…….

[아, 근데. 뭐 할 말 있으셔서 전화하신 거 아닌가요?]

박 기자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하하. 그냥 오랜만에 안부 전화입니다. 목적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난 이렇게 목적을 달성했다.

* * *

다음 날 오전 11시.

오전 촬영을 마치고, 사랑산성으로 출근했다.

오늘도 사랑산성 주변은 한적하고, 아주 썰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저 왔습니다~. 오늘도 별일 없죠?”

“그래~, 아주 평화롭다.”

변 사장, 홍지아, 최경리.

세 사람은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워요? 바빠 보이는데요?”

내가 한마디 하고, 간이 의자에 걸터앉자.

세 사람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변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영업 준비는 좀 전에 다 끝났어~. 자기 기다리면서 쉬고 있던 거야.”

“누가 뭐래요?

사장이 직원 눈치를 보는 회사.

제로백 컴퍼니.

변 사장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강 대리~, 어제 잘 봤어.”

“뭘요?”

“뭐긴~, 네모튜브 말이지.”

“아…….”

어제 네모튜브 라이브 ‘아이스크림에 꽃이 피었습니다’ 편에서 홍보했었다.

녹화 영상이었다면 홍보 내용이 온전히 나가지 못했을 텐데.

라이브라 하고 싶은 만큼 다했었다.

눈치는 좀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사전에 허락받고 한 거였으니까.

“강 대리 진짜 적극적으로 홍보했더라.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어.”

옆에서 듣고 있던 홍지아도 말했다.

“그러니까요. 라이브 보다가 숨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거기다 댓글 반응은 또 어떻고요. 호호.”

“홍지아 씨, 응원을 해야지 숨고 싶으면 어떡하나.”

난 장난스럽게 말했고, 그녀는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당연히 응원했죠. 강 대리님이 조용한 듯하면서도 은근 할 땐 하신다니까.”

두 사람은 내 홍보 영상에 대해 신나서 말했으나, 최경리는 잠자코 있었다.

변 사장은 최경리에게 물었다.

“최경리는 홍보 영상 어땠어? 왜 이렇게 조용해?”

“저는 못 봤습니다.”

“왜?”

“종이접기 싫어하거든요.”

“…….”

우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최경리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싫어해서 안 봤다는데…… 짜증은 좀 나지만 할 말이 없다.

“흠! 강 대리~, 그거 효과 좀 있을까? 어제 댓글 반응 봐서는 좀 오실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두고 봐야죠. 한 분이라도 찾아오면 좋을 텐데. 아, 그리고.”

난 세 사람에게 신신당부했다.

“제가 네모의 신인 건 절대 보안이에요. 여기 오신 손님들. 특히 네모튜브 보고 오신 손님들께 조심해 주셔야 해요.”

홍지아는 손을 살짝 들었다.

“근데 영상 보고 오신 분들은 네모의 신에 대해서 물어볼 텐데, 그럼 어떻게 대답해요?”

“아…….”

그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건 그냥, 뭐…….”

딱히 생각이 안 떠오른다. 얼버무릴 수 있으면서도 납득이 될만한 이유.

“네모의 신이 여기 단골이라고 해.”

“영업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단골이요?”

“몰라~. 그냥 그렇게 해. 매일 왔다고 하면 되지, 뭐.”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기 전에.

손님이나 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점심 영업 개시한 지 30분이 지났지만.

언제까지 주방에서 동아리 모임 하고 있어야 하나.

딩동!

“어?!”

“누구지?”

너무 오랜만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못 들을 걸 들은 듯 우린 모두 깜짝 놀랐다.

5일 만에 종소리다.

“홍지아 씨, CCTV 확인해봐.”

“네.”

CCTV를 확인한 홍지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문 열어 주지 말까요? 초인종 씹는 거로?”

“여기가 니네 집이냐?”

변 사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아…….”

홍지아는 멋쩍은 듯 웃었고, 변 사장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 5일 만에 개시다. 손님이다. 각자 위치로.”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 * *

덜컹.

최경리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

“저…… 여기가 런치 오브 제로백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인 걸 확신한 후 최경리는 인사했다.

“강태평 씨와 약속하고 찾아왔는데.”

“그럼 식사하러 오신 게 아닌가요?”

최경리의 방어적인 태도에 박 기자는 당황하여 재빨리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식사하러 온 거 맞습니다.”

“따라오시죠.”

최경리는 박 기자를 2번 룸으로 안내했다.

“와……. 여기가 단란주점이 맞나요? 일반 요릿집 같네요.”

2번 룸이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단란주점 아니고요. 런치 오브 제로백입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최경리는 기자도 쫄게 하는 사람이었다.

“메뉴판입니다.”

‘런치 오브 제로백 코스(32만 원)’.

“흠…….”

최경리는 박 기자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시겠어요? 나가시는 문은 왼쪽인데.”

“네, 메뉴가 하나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걸로 주세요.”

박 기자는 쿨하게 주문했다.

며칠 전 민경원 사장이 보여 주었던 찌질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최경리는 약간 당황했다.

“가격 보신 거 맞죠? 아래 글씨도요. VAT는 별도.”

“네, 봤습니다. 하하.”

박 기자는 웃으며 최경리를 바라봤다.

“시키면 그냥 가져다주시면 되는데. 이곳은 고객들 주머니 사정을 살펴주시는군요. 참 사려 깊습니다.”

“……. 그럼 기다리세요.”

최경리는 문을 닫고 나갔다.

덜컹.

주방 안으로 들어온 최경리가 외쳤다.

“코스 1인분!”

“오케이!”

나와 홍지아는 곧바로 움직였다.

난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를 준비했고, 홍지아는 아침에 만들어 놓은 아뮤즈 부쉬를 트레이에 올렸다.

“강 대리님.”

최경리의 부름에 난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어, 얘기해.”

“지금 온 손님이요. 박 기자님이라고 하던데요. 강 대리님 뵈러 오셨다고.”

“아~, 그래?!”

진짜 왔구나. 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이따가 인사드릴 거라고, 일단 맛있게 드시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박 기자는 단순한 한 명의 손님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 주기 위해 지금 음식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

최경리가 아뮤즈 부쉬를 내가려 할 때쯤.

딩동!

“…….”

연이은 벨 소리?

너무 어색한데?

벌써 손님을 한 팀 받았는데?!

기대, 설렘, 두려움, 당혹 복잡한 감정이 섞인 표정.

우리 네 사람은 모두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시각 11시 40분.

12시도 되기 전에……. 이게 무슨 일이지?

“홍지아 씨…….”

변 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CCTV 확인해봐.”

“네…….”

확인 후, 홍지아가 말했다.

“무, 무려…… 세 사람입니다.”

“흡! 뭐라고?!”

세 명…… 세 명이면.

96만 원. 부가세 포함 105만 6천 원.

“월척이다.”

변 사장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진짜, 손님이 맞겠지? 그렇겠지?”

최경리는 트레이를 들고 서 있었고, 변 사장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홍지아 씨, 자기가 트레이 받아. 그리고 최경리는 지금 현관 나가서 세 분 손님 응대해.”

“알겠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최경리와 홍지아는 변 사장의 지시에 따라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최경리가 주방으로 돌아왔다.

“3인분 준비하면 돼?!”

난 최경리가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아니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왜? 뭐야?!”

변 사장은 그녀에게 다급히 물었다.

“손님들 돌아가셨습니다.”

“왜?!”

변 사장의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3번 룸으로 안내했는데. 앉자마자 네모의 신부터 찾으시더라고요. 네모의 신이 셰프인 곳 맞냐고.”

“…….”

“아니라고 했더니, 강태평 씨를 찾으시길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네모의 신이 강 대리님인 건 절대 보안으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야……. 이건…… 그거랑 다르잖아.

“세 분은 이상하다고 하시더니. 잘못 찾아온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라고요.”

내가 네모의 신인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한테 보안을 왜 지키냐!

“아쉽긴 하지만, 지침에 충실히 따라야 하기에…….”

“아이고! 이 답답아!”

변 사장은 속이 터지는지 가슴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이미 알고 온 사람이잖아! 보아하니 네모튜브 사람들 같은데!”

“네모튜브 사람이요? 제가 봤어야 알죠.”

최경리는 항상 당당하다.

본인이 실수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오~. 지금 막 나간 거지?”

“네.”

변 사장은 주방 문밖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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