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나서다 (2)
* * *
너무…… 정색하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혹시 제가 실례를…….”
정색한 네모 씨의 얼굴을 보니, 더 웃지 못하겠다.
자연스럽게 말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겠습니까? 저희는 좀 간절한데 방법이 없어서 그러거든요.”
“…….”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 부탁은…….”
의자에 앉아 촬영대기를 하고 있던 네모삼촌이 말했다.
“둘이 뭐 해~. 촬영 안 할 거야?”
네모 씨가 정색하고 있으니 민망하다. 하지만 민망함을 무릅쓰더라도 얘기할 생각이었으니까.
“태평 씨, 제가 물었잖아요.”
잠자코 있던 네모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런 사이냐고…… 물었잖아요.”
어려운 질문이다.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걸까.
머리를 굴려보다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대답했다.
“이런 사이가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좋은 사이죠. 안 그래요?”
“그러니까요.”
네모 씨가 고개를 들었는데, 서운함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겨우 이까짓 부탁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말하냐고요.”
“엇…….”
“거리감 느껴지잖아요. 이딴 걸로 뭘 구구절절이 설명하면서…… 눈치 봐가면서…….”
“아니, 뭐, 어쨌든 광고로도 수익 사업을 하시니까.”
“그 사람들은 남이잖아요.”
“…….”
“우린 가족이고!”
네모 씨는 네모삼촌과 정카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한 팀, 같은 편. 아닙니까?”
“아…….”
“태평 씨는 아니었나요? 그냥 가볍게 용돈 벌이하고 언제든 바쁘면 그만둘 생각하는?”
어째…… 내 속마음을 정확히 맞추네. 사실이 그런데.
“아니잖아요!”
“…….”
뭔가…… 말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기서 손님 같은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홍보 얼마든지 하세요.”
네모 씨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물어보지도 말고 그냥 해요. 종이 접다가 중간중간 얘기해도 상관없어요. 홍보는 입으로 하고, 종이는 손으로 접잖아요.”
“아……. 그렇죠.”
네모 씨는 윙크하면서 말했다.
“종이접기 다 끝나고, 따로 시간 내서 홍보해도 되고요.”
“아……. 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니까요!”
“…….”
“한 가족인데 편하게 하세요. 필요하면 네모삼촌에게도 홍보할 때 옆에서 맞장구 좀 치라고 할게요.”
“…….”
네모 씨는 손으로 네모삼촌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촬영 가셔야죠.”
“네…….”
네모삼촌을 향해 걸어갔다.
홍보하게 되서 다행이긴 한데.
지금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지금 홍보를 하고 나면, 아무리 질리는 기분이 들어도…… 당분간은 종이접기를 못 그만두겠구나.
내 출연을 담보로 홍보 기회를 얻은 것이다. 무언의 거래가 성사된 기분이었다.
대놓고 말은 안 하면서 하여간…… 네모 씨는 고단수다.
왠지 뒤돌아보면 그가 웃고 있을 것 같다.
* * *
앉아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테이블 위에는 색종이들이 놓여 있고.
내 옆에는 네모삼촌이 앉아 있다.
“네모 씨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어? 심각해 보이던데?”
“부탁 좀 하느라 그랬어요. 아! 제가 촬영하면서 홍보를 좀 할까 하거든요?”
“무슨 홍보?”
“레스토랑 홍보에요. 저희 회사 신사업인데, 제가 거기 셰프거든요.”
“오~, 셰프? 네모의 신이? 자기 촬영 기사 아니었어? 하하.”
웃기겠지. 내가 생각해도.
“태평 씨는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네모의 신이 셰프라니……. 궁금하다~. 한번 가볼까?”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데 가격이 좀 세서…….”
“얼만데?”
“32만 원이요. VAT 포함하면 35만 2천 원.”
“뭐야? 4인 한상차림 같은 거야?”
“아니요. 1인 코스 가격이에요.”
“헉! 뭐어?”
네모삼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뭐야? 음식에 금 발라놨어?”
금 바른 거나 마찬가지지. 금손으로 만드니까.
“하하. 아니요. 하지만 값비싼 좋은 재료로 만들었고, 정말 맛있습니다.”
“아……. 그래?”
네모삼촌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안 올 거라는 걸.
식사 한 끼에 32만 원 쓸 사람은 아니다.
[스탠바이~.]
정카가 사인을 보냈다.
“그래도 네모의 신이 직접 요리한다고 하면 구독자분들이 갈 텐데.”
“하지만 제가 요리한다고 홍보할 순 없죠. 신분이 드러나니까.”
너튜브에서는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난 내가 네모의 신인 걸 절대로 밝히지 않을 것이다.
“후훗. 직접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관심 가져 주실 구독자분들도 계실 거야.”
“네, 저도 그러길 바라요.”
[하이~, 큐!]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네모삼촌입니다~.”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고, 네모삼촌과 나의 손은 임과 함께 쉴새 없이 움직였다.
영상에 손만 잡히기 때문에, 말하는 중 손이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다.
네모삼촌은 멘트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라이브 방송이네요~. 오늘은 아이스크림과 꽃의 조화를 생각하다가 창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네모삼촌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활짝 피면서 말했다.
“‘아이스크림에 꽃이 피었습니다’입니다.”
댓글 창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작명 센스 봐라.
└ 작명가 한 명 붙여주면 안 되겠니?
└ 작품은 괜찮은데 왜 항상 이름에서 초를 쳐.
네모 씨는 댓글 반응이 심상치 않자, 빠르게 넘어가라며 손을 돌렸다.
네모삼촌은 작품 얘기는 더 하지 않고, 바로 넘어갔다.
“오늘도 네모의 신 함께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네모의 신입니다.”
└ 우왓! 네모의 신이다!
└ 네모! 네모!
└ 아~, 벌써부터 힐링되는 기분.
댓글 창의 뜨거운 반응.
내 이름만 나와도 열렬히 환호해 준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창작 작품을 네모의 신께서 만들어 주실 겁니다. 잘 감상하시면서~ 따라 해주시면 됩니다~.”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멘트는 이렇게 한다.
어디선가, 누군가, 한 명쯤은 따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면서.
“네, 그럼 지금부터 아이스…….”
작품명을 말하려 했는데, 네모 씨가 넘어가라는 손짓을 격렬하게 보냈다.
“흠! 그럼 지금부터 오늘 작품 만들어보겠습니다.”
사각. 사각.
내 손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10여 분 정도 지나고.
아이스크림 밑부분이 완성되고 있을 때쯤.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서초구 내곡동 113―1번지. 런치 오브 제로백이 런칭했습니다.”
사각. 사각.
“사랑산성이라는 업소를 점심시간에만 공유하여 운영하는 레스토랑인데, 중식과 프랑스식이 혼용된 코스 요리. 단 한 가지 메뉴입니다.”
사각. 사각.
“아뮤즈 부쉬부터 시작하여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 그리고 마지막…….”
사각. 사각.
“샥스핀탕이 이 식당의 메인디쉬인데. 등 지느러미가 아닌 값비싼 꼬리지느러미를 활용하여 식감이 무너지지 않고…….”
정카는 카메라를 잡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네모 씨 또한 손에 땀이 배기고 있었다.
“네모 씨, 오늘 태평 씨 왜 이래?”
“어, 홍보 부탁을 하셔서……. 사전에 협의된 거야.”
“이게 홍보야?”
“…….”
“구독자분들이 우리가 레스토랑 차린 줄 알겠는데.”
“…….”
“지금 음식 얘기만 몇 분 째야?”
“그러게. 이 정도로 하실 줄은 몰랐는데.”
사각. 사각.
이제 아이스크림 위로 꽃이 올라가고 있었다.
“코스 요리 중간에 오미자 소르베와 홍삼 푸딩 디저트로 입맛을 돋워 줍니다. 과히, 최고급 레스토랑이라 할만합니다.”
홍보는 이 정도면 됐고, 가격을 얘기해야 한다.
[적당히 좀 하세요.]
그때 네모 씨가 팻말을 들었다.
거의 다 끝났다. 조금만 더…….
“메뉴를 들어보셔서 예상하셨겠지만. 고급 레스토랑이다 보니 가격은 좀 나갑니다. VAT 포함 1인 코스 35만 2천 원입니다.”
사각. 사각.
“여러분에게 지상 최대의 맛과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드릴 겁니다. 런치 오브 제로백. 문의 번호는 010―4343…….”
댓글 창이 난리가 났다.
네모의 신이 오늘 뭐 잘못 드셨냐부터 해서.
투 잡이냐, 네모튜브 신장개업하냐, 난 한 달에 알바로 100만 원 번다 등등…….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중 가장 많은 댓글은…….
└ 네모의 신님이 직접 드셔보셨어요?
내가 만든 음식인데, 당연히 먹어봤다.
하지만 식당 운영하는 사람이 마치 손님처럼 먹어봤다고 할 수는 없다.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아이스크림 위에 화사하게 핀 장미.
오늘 작품도 대성공이다.
댓글 창엔 찬양 일색이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네모삼촌이 먼저 인사했고, 그다음 나도 마무리 인사를 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오늘 댓글로 직접 먹어봤는지 많은 분이 문의 주셨는데요.”
네모 씨와 네모삼촌이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먹어봤다고 말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맛 보증하니까요. 한번 가보세요. 내곡동 113―1번지……. 대표번호 010―4343……. 혹은 TE맵에 ‘사랑산성’으로 검색하시면 쉽게 찾아오실…….”
이렇게 촬영을 마쳤다.
└ 어쨌든 네모의 신이 갔었다는 거잖아? 그럼 가봐야지.
* * *
“오늘 감사했습니다.”
난 인사를 꾸벅하고 네모튜브를 나섰다.
“별말씀을요. 들어가 보세요.”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조심히 들어가세요!”
쾅!
네모 씨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충분히 홍보하려고 노력했는데. 잘됐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밤 8시. 집에 가는 길.
참……. 요즘 열심히 살고 있다.
속초에서 살아 돌아온 뒤부터.
내 삶에 여유가 없어졌다.
물론 몸은 그 전이 더 편했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니 편했던 거고.
정신없고 바쁘지만 지금이 더 좋다.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주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성취감 느끼고.
너튜브를 통한 홍보는 했고.
그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약간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이 남자의 직업상 괜찮을 것 같다.
날…… 기억하려나.
드르르. 덜컥.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강태평입니다.]
[네~, 압니다. 하하, 잘 지내셨어요?]
동방일보 박인수 기자.
국제사진공모전 대상 탔을 때, 박 기자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했었다.
[박 기자님도 잘 지내셨죠?]
[네~, 요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뭐, 문화부 쪽은 너무 조용해서 좀 심심하긴 하지만요. 하하.]
[쉬고 계시는데…… 제가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 드린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한창 일하는 중이었어요. 하하.]
우리는 안부를 물으며 가볍게 대화했다.
[근데,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어요? 강태평 씨 연락받고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아……. 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언론사 기자한테 대놓고, 홍보 얘기를 부탁할 수는 없고.
[제가 주 종목을 바꿨습니다.]
바꾼 게 아니라, 추가된 거지만.
일단은 임팩트 있게 들리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사진 안 찍으신다는 건가요?]
[아, 아니요. 찍기는 합니다. 집중하는 쪽이 달라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와~, 요즘 촬영 업계가 그렇게 안 좋은가요? 국제공모전 대상 수상자인데도 일거리가 없어요?]
역시 기자답게 파고들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래서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계시는데요?]
[요리합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요리? 요리요?!]
난 목소리를 깔고 대답했다.
[네, 셰프입니다. 강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