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2화 (52/156)

직접 나서다 (1)

* * *

“생각?”

세 사람은 내게 집중했다.

“그렇다면 자세 잡고 들어야지.”

변 사장이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사장님~, 장난치지 마세요.”

“하하.”

그는 흐뭇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뭔데? 어서 말해봐.”

흠…….

“어쨌든 우리는 고가 전략으로 가야 하고,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잖아요. 제 요리의 특수성과 장소의 제한을 고려해봤을 때.”

“그렇지.”

“그렇다면 비싼 요리를 쉽게 먹을 수 있는…… 지갑이 두둑한 고객들이 우리를 봐줘야 하거든요.”

홍지아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야 알죠. 근데 그 고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요? 그리고 돈 많은 고객들이 우리 얘기를 들어줘야 말이죠.”

“거절 받는 것도 지쳤습니다…….”

로봇 멘탈을 가진 최경리도 이렇게 말할 정도다. 우리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알아. 홍지아 씨랑 최경리 씨가 고생한 거.”

“…….”

“두 사람이 못 했다는 게 아니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거야. 전단지와 전화 홍보로는 한계를 느꼈잖아.”

홍지아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훗. 혹시 인터넷 홍보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거 고려 안 해봤을까요? 우리 중에 파워 블로거가 있길 해요~, 아니면 초록창 전면에 광고 띄울 예산이 있어요?!”

말끝이 살짝 올라가는 게, 불쾌하다는 투였다.

“알겠는데,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속상해서 그렇죠!”

홍지아는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장소도 맛도…… 우리 레스토랑 뜰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나만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고…….”

“뭐야, 알고 있었어? 난 신경도 안 쓰는 줄 알았는데. 하하.”

“…….”

홍지아의 싸늘한 눈빛.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구나.

홍지아는 마케팅/홍보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홍보 전략으로 ‘전단지’를 택했을 때 황당하긴 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말하기에 두고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홍지아는 홍지아였다.

홍지아가 홍지아했다.

“여기 역할 제대로 하는 사람은 강 대리밖에 없어.”

변 사장은 홍지아를 달래주었다.

“홍지아 씨 우리 다 외식업은 처음이잖아. 아마추어라고. 한 사람의 미숙함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야.”

“…….”

“물론 전단지를 택한 건 아니긴 했어.”

최경리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전화 홍보도 마찬가지야. 자기들은 보험 전화 오면 잘 들어주나?”

잠자코 듣고 있던 홍지아가 말했다.

“왜 진작에 안 말리셨어요?”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값어치가 있으니까.”

변 사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더 간절해졌잖아.”

우리는 멍하니 변 사장을 바라봤다.

전략적인 건가. 긍정적인 건가.

“우리 겨우 3일밖에 허비 안 했어. 다시 길을 찾으면 돼.”

* * *

홍지아는 전단지를 분리수거 통에 버리고 왔다.

“강 대리님, 그래서 전략이 뭔데요?”

“그냥 좀…… 부탁을 해볼까 해.”

“부탁이요?”

“응, 네모튜브.”

“헉!”

‘네모튜브’라는 말에 변 사장과 홍지아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외에 한 가지 방법을 더 고려 중인데……. 일단 네모튜브부터 접촉해 보려고.”

“…….”

“지갑을 쉽게 열 수 있는 타깃 고객에게 접근할 수 없다면…… 일단은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수밖에 없어. 그것에 가장 효과적인 매체를 활용해야지. 인터넷, 유튜브, 신문, TV 등.”

“원하는 물고기를 선별해서 잡을 수는 없으니, 낚싯대를 여러 개 놓자는 거지?”

“맞습니다.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가는 거죠.”

“그래.”

“…….”

괜찮은 생각이라고 보는데, 입만 달싹일 뿐 다들 말을 아꼈다.

“반응이 왜 이래요? 혹시 더 좋은 생각 있으세요?”

“아니……. 강 대리 생각은 좋은데.”

변 사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 강 대리 힘을 빌려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도 많은 걸 감당하고 있는데.”

“맞아요. 이것까지는 좀…….”

홍지아도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이런 반응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어렵게 생각해요. 그냥 있는 사람이 쓰는 거죠.”

“…….”

“맛있는 거 먹으러 갔을 때, 돈 많은 사람이 쓰는 게 이상한 거예요? 다 같이 갔으니까, 꼭 더치페이를 해야 하나요?”

“…….”

“저한테는 이게 전혀 무리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차피 주중에 두 번 네모튜브에서 촬영하고 있고, 그때 얘기해 보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세 사람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한테 빚진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 내가 불편했다.

난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쌓였던 말을 하다 보니, 길어지고 있었다.

“도리어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필요한 시기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여러분은 나한테 고마워하잖아요.”

홍지아와 최경리는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듣고 있었고, 변 사장은 고개를 조금씩 끄덕였다.

“제발 부탁인데……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고마워하세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맞네!”

변 사장이 밝은 목소리로 홍지아와 최경리를 향해 말했다.

“들어보니, 강 대리 말이 맞네. 둘 다 고개 들어. 이것도 괜한 자격지심이야. 오늘만 사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우리가 큰 도움 줄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그게 맞아.”

“알겠습니다.”

두 여 직원은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변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도 그런 마음 갖지 않도록 노력할게. 고마워, 강 대리.”

“고맙긴요.”

짝! 짝!

변 사장은 손뼉을 치고는 활기찬 목소리로 물었다.

“자~, 그래서 네모튜브가서 어떻게 할 건데?”

“간단합니다. 촬영할 때 홍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 한번 하죠. 제 일에 대해 홍보하는 거니까. 얘기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 구독자 100만 유튜브면 광고 수익이 따로 있을 텐데. 그렇게 쉽게 허락을 해줄까?”

“해줄 겁니다. 저도 요즘 흥미 떨어진 거 억지로 나가고 있거든요. 네모 씨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허락 안 해주고는 못 배길 겁니다.”

“협박이네?”

“전략이죠.”

변 사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촬영 중에 ‘네모의 신’께서 직접 홍보한다는 거잖아.”

“그렇죠.”

“부담스럽지는 않아? 그 홍보 영상을 보고 찾아온 고객들이 실망한다면, 네모의 신을 탓할 텐데.”

무슨 소리야?

지금 이게 할 소리인가?

강태평은 변 사장을 불렀다.

“사장님?”

정색하고 부르는 소리에, 변 사장은 살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으응?”

“자신 없으세요?”

“…….”

“전 하나도 걱정 안 되는데요. 맛보고서 너무 좋아 난리가 나지 않을까…… 도리어 전 그게 염려가 되는데요.”

“…….”

강태평의 눈은 변 사장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 정도 자신 없이 사업하자는 거였어요?”

“…….”

변 사장은 강태평을 걱정한다고 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강태평에게는 실망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변 사장은 오늘따라 강 대리가 달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난 강 대리가 걱정돼서.”

강태평은 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맙시다.”

덜컹.

강태평은 주방 밖으로 나갔고, 변 사장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강 대리…… 은근 무섭네.”

* * *

그날 저녁.

종각의 네모튜브 사무실.

덜컹.

“저, 왔습니다~.”

촬영 준비로 분주한 네모 씨, 정카, 네모삼촌.

세 사람은 내가 들어오자 현관 앞까지 마중 나왔다.

“강태평 씨, 오셨어요?”

“어서 와~, 태평 씨~.”

“식사는 하셨사옵니까?”

극진하다 못 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 반기는 네모튜브 사람들.

요즘은 항상 이런 식이다.

네모튜브는 현재 나와 네모삼촌 듀엣 체제로 활동 중이고.

구독자 수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지난주에 110만을 넘겼다.

“태평 씨~, 오늘부터 출연료 150 받는 거로 해요.”

“아니요. 됐다니까요. 왜 자꾸 그래요.”

“왜에~. 더 준다고 해도 왜 안 받는다고 하는 거야~.”

일주일에 두 번 출연. 회당 출연료는 100만 원.

2주 전부터 회당 출연료를 자꾸 올려주겠다며 네모 씨가 날 설득 중이다.

난 한사코 사양했다.

“설명드렸잖아요. 전 이게 취미 이상 되는 건 싫다고요.”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지. 왜 그러는 거야. 출연을 더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네.”

돈에 지배당하면 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걸 신의 학 2,500마리 접을 때 깨달았다.

난 분명 종이접기를 취미 혹은 머리 식히는 용도로 하고 있지만.

쉽게 큰돈을 벌게 된다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종이접기에 집중될 것 같았다.

난 그걸 경계한다.

네모 씨는 내가 마음이 뜨려는 것도 알고 있고, 돈을 경계하는 것도 눈치채고 있다.

자꾸 내게 출연료를 올려주겠다는 건 그 나름대로 목적이 있는 것이다.

“네모삼촌! 오늘은 뭐 만든다고 했었죠?”

“저번 주에 얘기했잖아. 제목이 길어서 까먹었구나? ‘아이스크림에 꽃이 피었습니다’.”

아……. 맞다.

제목 들으니 기억이 확 난다.

동시에 오글거림으로 팔에 소름도 돋았다.

‘아이스크림에 꽃이 피었습니다.’

“만들어 오신 거 보여 주실래요?”

“자.”

아이스크림 위에 카네이션이 있다.

내가 출연한 이후, ‘따라 하기’보다는 ‘감상’으로 채널의 성격이 바뀌면서.

고난도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나 그거 접는데, 이틀 걸렸어.”

“흠…….”

난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네모삼촌에게 돌려주었다.

“잘 만들었네요.”

“자기는 더 잘 만들 거면서.”

통상 네모삼촌이 만들어 오면, 그걸 눈으로 딴 후 내가 만드는 걸 영상으로 녹화하는 형식이다.

“자~, 태평 씨! 준비됐죠? 위치하세요.”

“아, 잠깐만요.”

네모삼촌은 먼저 자리에 위치했고, 난 그 전에 네모 씨에게 다가갔다.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부탁 하나만 할게요.”

“부탁?! 태평 씨가?”

부탁이라는 말에 네모 씨는 긴장했다.

지금까지 네모 씨에게 부탁이란 걸 말해본 건, 3억 땡겨 달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어우 씨. 왠지 긴장되는데. 촬영 끝나고 얘기하면 안 돼요?”

“안 돼요. 촬영 전에 말씀드려야 해요.”

네모 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빨리 얘기하세요.”

“저 촬영 중에 홍보 하나만 해도 될까요?”

“네에?!”

네모 씨는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네모의 신이 홍보를 한다고요?”

“아……. 네. 그게.”

난 부탁을 해야 한다면,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회사에서 자회사로 분가되어 나왔고.

지금 신사업 추진 중인 것과 그로 인한 한계.

현재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까지.

난 숨김없이 말한 후, 간곡히 부탁했다.

“저도 웬만해선 네모 씨에게 이런 부탁 안 드리려고 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근데 네모 씨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서…….”

“…….”

네모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물론! 공짜로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광고수수료가 얼마인지 알려주시면 저희가 참고해서 결정할게요. 물론 스페셜 프라이스로 부탁드려요. 헤헤.”

“…….”

이들과 일할 때 난 항상 슈퍼 갑이었는데.

부탁하는 입장이 되니까, 나도 모르게 억지 웃음소리가 나왔다.

아……. 마지막에 ‘헤헤’는 하지 말걸.

“와……. 이거 너무하네요.”

묵묵히 듣고 있던 네모 씨가 입을 열었다.

“저를 너무 물로 보신 거 아니에요?”

네모 씨의 눈빛이 날 쏘고 있었다.

“우리가…… 이런 사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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