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 오브 제로백 (3)
* * *
최경리는 난감했다.
‘어떡하지. 강 대리님이 셰프인 건 절대 보안이라고 했는데.’
그녀는 김성수 부장의 표정을 보았다.
‘혹시 강 대리님이 셰프인 걸 이미 알고 있나? 민 사장이 말했나?’
김성수 부장이 있는 앞에서 민 사장에게 얘기했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경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민 사장을 바라보았고, 민 사장은 그녀의 의중을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민 사장이 얘기한 건 아닌가 보군. 흠……. 그렇다면.’
최경리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셰프님과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잠깐이면 되는데.”
김성수 부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나게 해주세요~. 맛에 너무 탄복해서 그래요. 제가 레스토랑 와서 이런 적이 없어요.”
“네, 잘 말씀드릴게요.”
최경리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덜컹.
주방. 지금 시각은 2시.
점심시간도 거의 끝났고, 손님은 더 없을 것 같아서 걸터앉아서 쉬고 있었다.
“강 대리? 괜찮아?”
옆에 있던 변 사장이 물었다.
“당연히 괜찮죠. 겨우 한 테이블 했는데요. 힘이 남아돕니다.”
“하아……. 저걸 어쩐다.”
변 사장은 냉장고 안에 든 식재료들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샥스핀, 한우 안심, 전복, 해삼……. 30인분 사려다가 최경리가 말려서 20인분만 사길 그나마 잘했지.”
“…….”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뭐가 문제일까?”
덜컹.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최경리였다.
“어~, 최경리. 고생했어. 디저트 바로 가져가면 돼.”
난 트레이 위에 곧바로 올려주었다.
근데 최경리는 안 가고 그대로 서 있었다.
“뭐 해? 왜 안 가?”
변 사장의 물음에 그녀는 말했다.
“김성수 부장님이 셰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뭐?”
변 사장은 당황하였다.
“갑자기 왜?”
“너무 맛있게 드셨나 봅니다.”
“아…….”
“드시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이런 묘사를 이렇게 딱딱하게 말해야 하나.
“너무 맛있게 해도 탈이네.”
변 사장은 순간 고심했다.
“강 대리,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래도 오늘 첫 손님이고 사장님도 오셨는데. 찾아가서 인사드리는 게 도리이긴 한데.”
“흠……. 그렇다면 가면 되잖아요. 사장님도 저랑 같이 들어가시죠.”
“…….”
도리라고 하면서도, 변 사장은 뭐가 그렇게 걸리는지 자꾸 망설였다.
“뭐 때문에 그러세요?”
“인재 보호 때문에 그렇지.”
그리고는 날 힐끗 보았다.
“하하. 제이엠에 외식 사업부는 없어요.”
변 사장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자기가 요리만 잘하는 게 아니잖아. 김성수 부장은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
조금 더 고심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일단 가보자. 어쨌든 할 건 해야지.”
“네.”
* * *
똑똑.
[디저트 커몬~.]
민 사장의 한층 올라간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변 사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주고받은 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변 사장이 활짝 웃으며 먼저 들어갔고, 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여어~, 변 사장!”
우리를 보자마자, 민 사장과 김성수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 사장은 변 사장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오늘 아주 잘 먹었네. 성공이야! 대성공!”
“하하. 감사합니다.”
“내가 처음엔 솔직히 가격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먹을수록 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더군.”
“하하. 그래도 막상 계산하실 때는 생각이 좀 나실 겁니다.”
“…….”
변 사장은 농담으로 한 말인데.
민 사장은 이 말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럴까? 그렇겠지?”
우리는 김성수 부장과 인사했다.
“부장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그래요, 강 대리. 오랜만에 보네요?”
“하하. 네.”
그때 변 사장이 껴들었다.
“제이엠이 강 대리를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데. 오랜만에 보는 거야? 강 대리?”
“네? 하하.”
변 사장의 말에 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항의성 발언을 돌려서 한 것이다.
“다른 오더 건 뒤로 밀릴 정도로 계약 이행을 충실히 하고 있잖아. 제이엠이 너~무 불러주셔서.”
난 그만하라는 뜻으로 변 사장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김성수 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랬어요? 저야 실무는 잘 모르니까. 얘기 좀 해야겠군요. 앞으로 계획적이며 정기적으로 촬영 요청할 수 있도록 하라고.”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강 대리가 요즘 힘들어해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변 사장님.”
‘사장’이라는 말에 변 사장은 표정이 밝아졌다.
“엇……. 알고 계셨어요?”
“물론이죠. 함께 일하는 파트너인데요.”
변 사장은 의외라는 얼굴로 민 사장을 바라보았고, 민 사장은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였다.
“나 아니야.”
내가 제이엠 촬영 갔을 때 조직 개편에 대해 얘기했었고, 아무래도 그 말이 전해진 모양이다.
자회사 설립 자체를 불편해하는 민 사장이 굳이 외부에 알렸을 리가 없다.
“아, 맞다.”
난 들고 있던 트레이를 내려다보았다.
위에 놓인 디저트를 민 사장과 김성수 부장 앞에 하나씩 놓아 주며 말했다.
“홍삼 엑기스 젤리입니다. 꿀을 위에 살짝 얹어서 드시면 맛있습니다. 쓴 거 싫어하시면 많이 얹어서 드시고요.”
“와……. 어떻게 디저트까지. 여긴 평범한 게 하나도 없네요.”
김성수 부장의 말에 난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죠. 장소부터가 평범하지가 않죠.”
“하하.”
그는 내 농담에 웃어주었다.
“아, 맞다.”
김성수 부장은 변 사장을 바라보았다.
“저 셰프님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분은 왜 안 들어오세요?”
“…….”
민 사장과 나는 변 사장이 어떻게 대답할지. 눈치를 보았다.
그는 김성수 부장의 물음에 멈칫하더니.
곧바로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셰프님 저랑 같이 들어왔지 않습니까. 런치 오브 제로백 셰프 강태평입니다.”
그는 손으로 날 가리켰고.
김성수 부장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진짜요?”
김성수 부장은 민 사장을 향해 물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
“아, 근데 진짜 나도 물어보고 싶다. 셰프님!”
“네.”
난 민 사장의 부름에 대답했다.
“오늘 나온 요리 진짜 강 대리 셰프가 만든 건가?”
“네……. 제가 하긴 했습니다만…….”
뭔가 좀 어색한데.
“그냥 강 대리라고 부르시지, 뭘, 셰프라고…….”
“정말 강 대리라고 불러도 돼?”
“네?”
이 양반이 왜 이러지. 안 어울리게.
“최경리가 여기서는 본인을 매니저라고 불러 달라고 하도 강조를 하길래.”
“아…….”
최경리의 영향이구나.
“사장님, 강 대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편할 대로 하세요.”
“그렇지? 상관없지?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민 사장은 몇 번을 되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했을지 몰라도, 최경리 덕에 스트레스 좀 받았었나 보다.
김성수 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와~, 근데 강 대리~, 재주가 좋네요.”
김성수 부장은 진심으로 탄복한 듯 말했다.
“대중적인 요리들이야, 뭐, 맛도 알고 레시피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따라 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이런 요리들은 진짜.”
“…….”
“전문적으로 배운 건가요? 요리 학교 나오셨어요?”
“아,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하.”
요리를 잘하는 이유를 딱히 설명할 길이 없기에…… 난 거짓말로 둘러대었다.
“아~, 그럼 책 보고 독학하고 그런 거예요?”
“네? 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난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얼버무리며 대답했는데, 김성수 부장은 이걸 ‘겸손’으로 느낀 모양이다.
“훌륭한 인재네. 정말 다재다능하네요. 촬영 능력만 해도 말도 못 하게 대단한데. 요리 실력까지.”
“하하.”
난 멋쩍은 미소를 지었고, 민 사장과 변 사장도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근데…… 김성수 부장의 한마디에 두 남자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탐난다, 진짜.”
“…….”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김성수 부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런 직원 탐내지 않을 상사가 어딨어요? 하하.”
민 사장과 변 사장은 입만 꾹 다물고 있을 뿐, 반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식사 한번 해요. 안 그래도 강 대리님 따로 한번 보고 싶었어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할까? 이번 주 금요일 어때요?”
인사치레로 알겠다고 한 거였는데, 김성수 부장은 약속을 잡으려 했다.
“네? 아. 하하. 글쎄요. 이번 주는 신사업 런칭 때문에 바쁠 것 같은데.”
점잖고, 경우 바른 양반으로만 봤는데.
목적이 생기자 거침이 없었다.
바로 옆에 내 직속 상사 두 분이 계시는데도…….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저녁같이 합시다. 어차피 퇴근은 할 거고, 밥은 먹고 살 것 아니에요?”
“아…….”
김성수 부장은 이렇게 강제로 약속을 잡아버렸다.
김성수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 사장님 다 먹었는데, 이제 일어나시죠. 전 회사 들어가 봐야 해서…….”
“네, 그러시죠.”
툭툭.
김성수 부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봐요. 그리고 오늘 너무 잘 먹었어요. 담엔 직원들 데리고 한번 올게요.”
“네, 그때는 또 다른 맛을 느끼실 겁니다.”
“네?”
“하하.”
그때그때 맛이 다르다는 걸 미리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확실히 맛은 있으니까.
김성수 부장이 먼저 나간 뒤.
민 사장은 험악한 얼굴로 변 사장에게 물었다.
“아오, 계산은 어디서 하냐?”
카드를 쥔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 *
첫날 매출 704,000원.
그로부터 3일간 매출은 아무것도 없었다.
샥스핀, 한우, 해삼, 전복의 신선도가 떨어져 가고 있다.
우리의 의지력도 점점 떨어져 갔고.
멘탈도 점점 바스러지고 있었다.
개업 4일째가 되는 날.
우리 네 사람은 주방에서 초인종 소리를 기다리며 면벽 수련을 하다가.
결국 현타가 찾아왔다.
변 사장이 중얼거렸다.
“왜 아무도 안 올까.”
“4일 내내 오후에 전단지 돌렸습니다.”
“전화도 여기저기 막 돌렸어요. 일가친척까지도요.”
최경리와 홍지아가 대꾸했다.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재룟값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심지어 재료의 유통기한이 길지도 않기 때문에.
“김성수 부장은 직원들 데리고 온다더니…… 왜 안 올까?”
그때는 나한테 수작 부린다고 싫어하더니, 이젠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32만 원짜리 음식을 떡볶이 사주듯 할 수는 없겠죠.”
“하아…….”
변 사장은 흔들렸다.
“메뉴를 바꿔야 할까?”
아무래도 너무 높은 가격 때문인 것 같다.
하긴 나 같아도…… 점심 한 끼에 32만 원은…….
“좀 싼 거로 해볼까?”
이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비싼 게 하고 싶어서 비싼 메뉴를 선택한 게 아니다.
많은 고심 끝에 이 길이 옳다고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다.
잠깐 하고 관둘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시련은 견뎌야 한다.
희망이 보이는 시련이다.
저주받은 똥손 때문에 손만 대면 다 망하는 시련이 아니다.
“사장님.”
“응?”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선택이잖아요.”
“…….”
“이 정도에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아마, 책임감 때문에 그러신 걸 텐데, 우린 괜찮습니다.”
“강 대리…….”
홍보를 해야 한다.
효과적이며 실질적인 홍보.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런치 오브 제로백’을 봐줘야 한다.
그 사람들을 향한 핀셋 홍보를 할 수 없다면.
훨씬 더 많은 불특정 다수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방법일 것이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