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 오브 제로백 (2)
* * *
펑! 펑!
김성수 부장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입속으로 들어간 학은 폭죽이었다.
혓바닥과 입천장을 두드리더니.
식도부터 위장까지 끝도 없이 두들겨댔다.
겨우 한입 거리의 ‘아뮤즈 부쉬’.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은 핵폭탄 하나가 한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하듯이.
한입의 아뮤즈 부쉬, ‘에콜 블러셔’는 크기는 작지만, 순식간에 김성수 부장을 점령해 버렸다.
무조건 항복이었다.
“와~, 하하.”
이미 입속에 음식은 녹아서 사라졌지만.
아쉬운 듯 계속 입맛을 다셨다.
“대박이네! 민 사장님?! 이런 셰프를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아직 에콜 블러셔를 먹지 않은 민 사장.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김성수 부장을 바라봤다.
“셰프야, 뭐……. 그런데 그 정도예요?”
민 사장은 셰프가 강태평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김성수 부장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아~, 일단 드셔보시라니까요! 셰프를 프랑스에서 모셔 온 거예요? 맛을 어떻게…… 표현을 못 하겠는데요?!”
민 사장은 은빛 함 안에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는 ‘하얀 학’ 에콜 브러셔를 바라보았다.
학은 민 사장 입속에서 비상하기를 바라며, 어서 먹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꿀꺽.
‘이상하네. 왜 긴장되지.’
김성수 부장의 반응을 보고 나니, 더 그랬다.
‘70만 4천 원…….’
“에이 씨!”
돈 생각을 하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음식 구경이나 하려고 그 돈을 지불한 건 아니다.
덥석.
거칠게 학을 잡고서는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어…… 어?!”
씹을수록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분명 하얀 슈일 뿐인데…… 식감이 어쩌면 이렇게 바삭하지? 달콤하면서도 청량감이 있고…… 입안에서 터지는 것 같아.’
하얀 학이 민 사장 입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꿀꺽.
다 씹고 삼켰을 때.
민 사장은 부르르 떨었다.
‘이건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닌데.’
셰프가 누구인지를 알기에…… 더 놀라웠다.
‘강 대리가…… 이 정도였나?’
“어때요? 맛 좋죠? 민 사장님은 맛있는 거 알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네? 하하. 뭐, 그렇죠.”
민 사장은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두고 봐야죠. 코스는 이제 시작이니까.”
* * *
똑똑.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최경리는 딱딱한 어조로 말함과 동시에.
아뮤즈 부쉬가 있던 함을 치우려 했다.
“저…… 최경리?”
“죄송합니다만, 매니저님이라고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민 사장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했다.
“최 매니저.”
“네.”
“좀 전에 준 거, 너무 적은데…… 리필 좀 안 될까?”
“그게 원래 한입 거리입니다. 그래서 아뮤즈 부쉬입니다.”
“어쨌건~ 좀 더 줘. 우리가 첫 손님 아닌가? 그 정도 서비스는…….”
“손님, 죄송합니다만, 그건 어렵습니다.”
최경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야! 고민도 안 해보고! 너무 한 거 아니야? 내가 그래도 당신 사장인데.”
“아니요. 손님이시죠.”
김성수 부장은 이 놀라운 대화를 옆에서 입을 벌리고 지켜봤다.
“더 드시고 싶으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뭔데?”
“추가 비용 3만 원만 내시면 됩니다. 그래도 아뮤즈 부쉬가 코스 요리 중 제일 저렴한 편이라…….”
‘추가 비용’이라는 단어에 민 사장은 기겁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 됐어! 어서 가져가!”
“…….”
최경리는 아무 말 않고, 빈 접시를 치웠다.
그리고 룸을 나가며, 중얼거리는데 다 들렸다.
“말이 자꾸 짧네. 신고할까.”
최경리가 나간 뒤.
민 사장과 김성수 부장은 두 번째 음식인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를 맛보았다.
통해삼은 돌기가 바짝 서 있었다.
해삼이 좋을수록 돌기가 바짝 서 있다. 즉 좋은 식재료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옆에 있는 건전복은 정말 쫄깃했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소스도 맛있었지만, 좋은 재료로 인한 풍미가 엄청났다.
“재료만 봐도…… 가격이 높을 만하네요. 이런 통해삼 꽤 비쌀 텐데.”
“흠……. 어차피 배 차는 건 똑같은데.”
민 사장은 엄청난 맛에 눈을 까뒤집힐 정도였지만.
입은 계속 투덜거렸다.
약 5분 뒤.
숟가락을 놓자마자, 최경리가 들어왔다.
똑똑.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 나왔습니다.”
“최경리 오늘 자주 보네?”
연이은 만족스러운 맛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민 사장은 농담을 건네었다.
“매니저라고 불러주세요.”
민 사장은 잠시 멈칫했다가, 한마디 더 던졌다
“와~, 근데 개업하기 전에 전문 교육이라도 받은 건가? 어떻게 코스 요리가 딱 맞춰서 나와?”
“CCTV로 보이잖아요.”
민 사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 말을 말자. 너희들은 나중에 두고 보자.’
최경리가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를 세팅하고 빈 그릇을 치우는 사이.
김성수 부장이 물었다.
“한우 안심구이는 알겠는데, 수비드는 뭔가요?”
“수비드(Sous vide)는 프랑스어로 진공 상태를 말합니다. 진공 상태로 고기를 숙성시켜서, 저온 상태로 오랜 시간 굽는 조리법을 말합니다.”
최경리는 백과사전처럼 술술 말했다.
“하하. 준비 철저히 하셨네. 진짜 전문 매니저 같으신데요?”
“네, 매니저입니다.”
“근데 왜 수비드 조리법을 하나요?”
“고기를 연하고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조리법은 5~10분 정도면 충분히 굽습니다. 하지만 수비드 조리법은 저온 구이라서 최소 1시간은 걸리죠.”
“아…….”
김성수 부장은 고기를 썰어보더니.
“오~, 확실히 뭔가 다르네.”
통상 두꺼운 구이의 가장자리는 회색으로 확실히 익혀 있고, 그다음은 핑크빛, 가운데는 붉은빛이 도는 레어 상태로 겹겹이 쌓여있다.
수비드 구이는 모두 균등하게 핑크빛이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최경리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나갔고.
닫힌 문 뒤로 김성수 부장의 감탄사가 들렸다.
[식감 대박! 육질 완전 부드러워요! 하하.]
* * *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 다음에 오미자 소르베 내주었다.
이제 메인 디쉬. 샥스핀탕만 남았다.
덜컹.
최경리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때?”
“이번에도 좋아하시네요. 뭐, 소르베야 아이스크림이니까. 웬만해선 맛있어 하시겠죠.”
지금 시각은 오후 1시 30분.
민 사장이 온 이후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런치 오브 제로백은 단 한팀을 위한 식당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식회 하는 것 같았다.
샥스핀탕도 거의 준비가 끝났고, 이제 적절한 타이밍에 나가기만 하면 된다.
“CCTV 보고 올게요.”
“자꾸 그걸로 손님 봐도 되나?”
변 사장의 말에 최경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쁜 용도로 쓰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요. 그리고 지금까지 같이 보셨으면서 왜 그래요? 새삼스럽게.”
“…….”
최경리가 나간 뒤.
난 변 사장에게 말했다.
“제가 사장님의 눈을 의심했었는데, 확실히 최경리가 장점이 있네요.”
사실 우리도 CCTV를 통해 2번 방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경리가 민 사장을 어떻게 응대했는지.
그녀는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본인 길을 꿋꿋하게 갔다.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젊다 못해 어린 친구인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히, 민 사장이 갑질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냉철하게 응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갑질을 싫어하는 내가 그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내가 일은 잘한다고 했잖아.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야. 요즘 이런 젊은 친구 보기 힘들어.”
보글보글.
변 사장과 대화 나누는 사이 샥스핀탕이 끓고 있었다.
“내가 맛본 적은 없지만, 분명 맛있겠지.”
“미리 맛볼 수가 없죠. 재료들이 너무 비싸서……. 하지만 지금까지 코스 요리들 다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맛은 별로 걱정되지는 않아요.”
“응, 내 생각도 그래.”
“하하.”
황당하고 신기한 상황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이런 일을 겪을수록 내 금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근데 사장님은 룸에 안 가보셔도 돼요?”
“룸은 왜?”
“그래도 두 분한테 인사드려야 하지 않아요? 아마 온 거 아실 거라고 생각하실 텐데.”
변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글세……. 일단 식사 다 끝나고 상황 봐서.”
그때 주방 옆에서 최경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미자 소르베 다 드신 것 같아요.”
“그래. 2분 뒤에 가자. 홍지아 씨! 준비하자!”
“네!”
난 곧바로 홍지아와 함께 샥스핀탕을 세팅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민 사장이 말했다.
최경리가 요리를 들고 들어왔다.
“샥스핀탕 나왔습니다.”
“오케이~, 커몬~.”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들로 배가 채워지면서, 민 사장은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이곳에 막 들어왔을 때, 가격보고 짜증 났던 기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런치 오브 제로백 코스의 메인 디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기대됩니다, 최 매니저님.”
최경리는 차분한 표정으로 샥스핀탕을 내려놓았다.
진한 노란색 국물 위에 보이는 하얀색 물채.
얼핏 보면 가오리 살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젓가락으로 들어보니 투명한 빛을 띠는 게 좀 다르다.
“보통 샥스핀은 상어 등지느러미를 씁니다. 그게 더 싸기 때문이죠. 우리 레스토랑은 꼬리지느러미를 씁니다. 씹는 질감이 살아 있고 두툼합니다. 드셔보시면 차이를 아실 겁니다.”
김성수 부장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샥스핀을 먹어봤어야 차이를 알죠. 최 매니저님은 드셔보시고 얘기하는 건가요?”
“아니요. 저도 오늘 처음 봤습니다.”
“…….”
“꼭 먹어봐야만 아는 건 아니죠. 우리에겐 책도 있고, 초록창이 있으니까요.”
최경리는 마지막 요리라 긴장이 풀렸는지 말이 좀 많아졌다.
김성수 부장은 쾌활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어쨌든 재료를 좋은 거로 썼다는 거죠? 먹어볼까요? 민 사장님?!”
“좋습니다!”
후루릅~.
민 사장은 국물부터 맛을 보았다.
진한 향과 함께 깊이가 느껴지는 탕의 맛.
국물은 진득하고, 든든했다.
보약 같은 느낌이었다.
“아~, 좋다!”
아삭!
국물 안에 있는 숙주와 함께 샥스핀을 씹었다.
잘근잘근 식감이 느껴지는 샥스핀.
마치 곤약 면 같았다.
일반적인 샥스핀은 탕 속에서 무뎌져 있는데.
이건…… 살아 있었다.
상어 지느러미가 탕 속에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와……. 진짜 기가 막히게 했다.”
지금껏 예의를 지키던 김성수 부장도 절로 반말이 나오게 하는 맛이었다.
순식간에 두 남자는 국물까지 싹 다 비웠다.
최경리가 룸 밖으로 나가기도 전이었다.
“…….”
영혼이 빠져나간 듯.
두 남자는 멍하니 텅 빈 그릇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격이 조금만 더 저렴했다면, 몇 번은 더 시켜 먹을 텐데.’
민 사장은 아쉬운 듯 숟가락을 핥았고.
‘혼자 알기 아깝네. 값어치를 하는 곳이야.”
김성수 부장도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짜사이만 계속 집어먹었다.
“빨리 드셨네요. 탕 그릇도 함께 치우겠습니다.”
그릇을 모두 트레이에 올려놓고.
“마지막 디저트 내오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김성수 부장이 최경리를 불렀다.
“매니저님.”
“네.”
“보통 고급식당 오면, 손님이 원할 경우 셰프가 나오시기도 하던데…….”
“…….”
“제가 음식에 감명을 받아서, 뵙고서 인사를 드리고 싶거든요? 실례가 안 된다면 팁도 좀 드리고 싶고요.”
김성수 부장은 흐뭇한 미소로 최경리를 바라보았고.
난감한 듯…… 처음으로 최경리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꼭 그러셔야 합니까?”
“네.”
김성수 부장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지었다.
“셰프님을 꼭 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