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산성 (2)
* * *
“하아…….”
설수민의 거칠어진 숨소리.
난 그럴수록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누구든 나와 악수를 하면 표정이 밝아지며 우호적으로 변했었다.
지금.
제로백 컴퍼니로서 첫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임대 계약만 잘 체결되면 70% 이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음식 맛은 이미 보장되어 있고, 메뉴는 그냥 개발하면 되는 거니까.
“그만…….”
얼굴이 새빨개진 설수민의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난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놔…… 줘요.”
“…….”
그녀가 놓아달라고 했지만, 난 더 꼭 손을 잡았다.
“하아……. 놔줘요…….”
가만히 지켜보던 홍지아가 말했다.
“뭐야……. 이상해.”
“강 대리님, 지금 악수만 하는 거 맞습니까?”
최경리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화들짝 놀란 나는 손을 놓았다.
“무슨 소리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온 마음과 열정을 담아 악수한다는 게, 좀 길어졌나 보다.
간절한 마음이 닿았으면 좋겠는데.
“아니에요…….”
설수민의 볼은 여전히 홍조가 어려 있었다.
“인사가 좀 길었죠? 하하!”
어색함에 난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고.
설수민은 부끄러운 듯 살짝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녀는 정신 차리려는 듯, 헛기침하고는 눈에 힘을 줬다.
“하실 말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진 못했다.
“아, 맞다. 네.”
손 하나로 온몸이 교감한 느낌.
노곤한 기분이 들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난 말했다.
“한창 잘 시간인데, 소란스러울까 봐 염려된다고 하셨죠.”
“네.”
“절대로 주무시는 데 방해되지 않을 겁니다. 괜한 걱정이세요.”
“어떻게요?”
난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업무 시간에 모든 직원이 일하는 구조는 아닐 것 같은데……. 맞습니까?”
“뭐, 그렇긴 하죠. 대기 타는 언니들도 있으니까. 금요일이나 주말은 정신없고요.”
“그러니까, 호출 안 돼서 대기 타는 언니들…….”
이 말에 설수민의 표정이 굳었고, 난 재빨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업계 용어인 줄 알고. 사장님도 언니들이라고 하길래요.”
“그건 여자끼리 쓰는 표현이죠.”
“네, 다시 얘기할게요. 여 직원분들…….”
“그것도 이상하다. 그냥 아가씨라고 하세요.”
“네, 아가씨들…….”
말문이 막혔다. 호칭 정리하다가 무슨 말 하려는지 까먹었다.
설수민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기억나면 천천히 하세요.”
“아……. 네.”
아, 젠장. 무슨 말 하려고 했더라.
“아~, 아! 그러니까 평일 근무시간에 대기 타는 아가씨들은 2층 숙소에 계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많이 시끄럽던가요?”
“좀 쿵쾅 소리는 들리죠. 노래방 베이스 소리.”
“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죠?”
“…….”
“이곳은 룸 형태잖아요. 룸과 홀이 연결되는 문. 홀과 복도가 연결되는 문. 복도와 2층이 연결되는 문. 2층 거실과 각 방이 연결되는 문.”
“…….”
“이렇게 업장에서 쉬는 공간까지 문 4개로 연결되어 있어요. 노래방 베이스 소리만 들릴 정도라면…… 아무리 점심 식사를 소란스럽게 한다고 해도 그 소리가 숙소까지 닿지는 않을 겁니다.”
“아…….”
“진정으로 단란주점을 이해하시는 분이 이곳 사랑산성을 설계하신 것 같네요.”
설수민은 수긍하는 얼굴이었다.
중요한 것이 내 말로 인해 풀리고 있다. 난 자신감이 올라갔다.
멘트를 멈출 수가 없었다.
“건축가님이 휴머니스트죠.”
변 사장, 홍지아, 최경리가 이 멘트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건 괜히 말했나…….
하지만 설수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전히 홍조 띤 얼굴.
그녀는 날 바라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렸다.
난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테스트 한번 해볼까요? 2층 방에 가 보실래요? 제가 큰소리로 노래 한번 불러 볼 테니까요.”
“…….”
“아무리 고객들이 시끄럽게 밥 먹어도 노래 부르는 소리보다 크진 않겠죠? 확실하게 하기 위해, 샤우팅 있는 곡으로 부를게요. She’s gone.”
이상하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설수민 앞에서 말이 흘러넘쳤다.
“아니요. 됐어요.”
설수민은 수줍은 듯 말했다.
“임대 계약할게요. 조건은 아까 변 사장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괜찮죠?”
헛……. 된 건가?
난 놀라서 동료들을 돌아보았고.
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게 속삭였다.
‘강 대리,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자네 물건만 잘 다루는 게 아니었어?’
변 사장과 속닥거리고 있는데.
설수민은 염려스러운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왜요……. 맘 바뀌셨어요? 계약 안 하실 거예요?”
난 변 사장과의 대화를 멈추고, 크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합니다! 할 거예요! 하하.”
“호호.”
최경리는 준비해둔 계약서를 꺼냈다.
그녀는 모든 행정서류를 항상 들고 다닌다.
“말 나온 김에 지금 서명하시죠.”
“네에~.”
설수민은 서명하려다 말고, 날 바라봤다.
“근데…… 강 대리님도 여기서 일하시는 거죠?”
“네?”
“그냥요~. 궁금해서요. 다른 직원분들만 오는 건 아닌가 해서.”
“하하. 당연히 저도 여기서 일하죠.”
설수민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난 이어서 말했다.
“제가 셰프인데, 없으면 안 되죠.”
“아~, 셰프시구나. 회사 오너시라면서. 호호. 능력자시네요~.”
“네? 아, 네~.”
우리는 서명을 완료하였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홍지아와 최경리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 * *
그로부터 일주일간.
제로백 컴퍼니는 분주했다.
개인 사업이 아니라, 회사의 신사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차피 근무 시간에 하는 일이기에 여유를 부릴 이유는 없었다.
메뉴를 정하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원가율을 계산하고, 이런 것들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적정 마진과 기대 매출.
고객 유입과 대중성.
모든 요소를 계속 저울질하면서 계획을 수립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메뉴 선정과 적정가 책정이었다.
“메뉴는 단일화로 하자. 어차피 우리는 고급 요리점을 지향하는 거라서 코스로 가야 돼.”
변 사장의 말에 난 동의했다.
“맞습니다. 뭘 해도 맛있는 반면 맛에 일관성은 없습니다. 고객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안 됩니다. 주는 대로 먹게 하고, 만족하고 돌아가게끔 하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진 공모전 때문에 부산에 갔을 때도 느꼈었지만.
변 사장과 나는 죽이 잘 맞는다.
이전에 비해 변 사장이 많이 주도적으로 바뀌긴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 런치 오브 제로백 코스 (32만 원)
아뮤즈 부쉬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
오미자 소르베
샥스핀탕
디저트
변 사장은 화이트보드에 코스에 들어갈 요리를 적었다.
일주일간 고심해서 정한 메뉴들이다.
“와……. 참 생소하다.”
“왜? 맛봤잖아.”
며칠 전 고급 레스토랑 가서 맛은 봤다.
레시피는 모른다. 그냥 한번 맛보았고, 맛에 대해 약간의 기억만 있을 뿐이다.
“강 대리, 할 수 있지?”
“글쎄요.”
“주재료는 알잖아. 디테일한 건 필요 없어. 강 대리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면 맛있으니까.”
“…….”
“예를 들어, 샥스핀탕에 샥스핀 대신 메기 안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런 실수는 안 할 거 아니야.”
“네……. 물론 안 하겠죠. 정상인이니까요.”
“주재료만 맞추자고. 그럼 돼.”
우리의 철학은 맛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비싼 재료로 만들면 비싸게 맛있는 거고.
싼 재료로 만들면 싸게 맛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만들면 맛있으니까.
다만, 점심시간 동안만 장사한다는 ‘시간의 한계’.
룸은 8개 밖에 없다는 ‘장소의 한계’.
사랑산성 주변에 회사는 없다는 ‘고객의 한계’.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르다는 ‘일관성의 한계’.
이런 이유들로 인해 32만 원짜리 ‘고급 코스 요리’를 선택했을 뿐이다.
곧 개업일은 다가왔다.
개업일을 앞두고 난 너무나 바빴다.
사진 촬영을 몰아서 해야 했기 때문에.
내게 개업 준비는 필요 없었다. 준비된 재료로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저 촬영 밀리지 않도록, 일만 바싹 했다.
D―day.
오전 9시, 사랑산성.
제로백 컴퍼니는 텅 빈 주방에 모였다.
사랑산성은 고요했다.
사랑산성 여 직원들의 오전 9시면 일반인들에게는 새벽 1시 정도의 밤시간.
아침이지만, 새벽 1시의 고요함을 느끼며, 조용히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사각. 사각.
정적을 깨는 야채 써는 소리.
이 소리가 그렇게 비장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오전 11시가 될 무렵.
재료 손질은 끝이 났다. 그리고…….
덜컹.
강태평은 오전 촬영을 끝내고, 사랑산성 주방으로 들어왔다.
“준비는 다 됐습니까?”
“네.”
강태평은 양팔을 펼쳤고.
홍지아는 하얀색 가운을 강태평에게 입혀주었다.
최경리가 장갑도 끼워주려 했는데.
“최경리 씨, 장갑은 됐어. 난 맨손으로 해.”
“네, 알겠습니다.”
우두둑.
강태평은 손가락 스트레칭을 했다.
어두운 주방에서 강태평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흐뭇한 미소로 이를 바라보고 있는 변 사장.
“강 대리, 컨디션 어때?”
“괜찮습니다.”
“오전 촬영은 어땠어?”
“네. 백일 콘셉트 사진이라 동요를 좀 많이 부르긴 했지만, 아기가 순해서 그리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변 사장은 제로백 컴퍼니 직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셰프 강태평.
주방 보조 홍지아.
홀 서빙 최경리.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되네.”
* * *
2시간 뒤.
“하아,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 시각 오후 1시.
점심 피크 시간은 지났다.
‘런치 오브 제로백’의 영업 시간은 오전 11:30분부터 오후 2시.
지금까지 단 한팀의 고객도 오지 않았다.
변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젠장…… 재료비만 해도…… 무려 안심 한우에 샥스핀인데.’
“홍지아 씨!”
“네.”
“강남역 인근 회사에 전단지 돌린 거 맞아?”
“네, 확실히 돌렸습니다.”
“정말이지?”
“네, 회사에서 출입 제한을 해서, 역 주변에서 돌렸는데. 그중 회사원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
“최경리 씨! 전화 홍보는?!”
“불특정 다수로 하긴 했습니다. 근데 듣지도 않고 전화 끊으시는 분들이 90% 정도?”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최경리는 눈을 멀뚱멀뚱 떴다.
“그 뻔한 얘기를 꼭 해야 돼요? 그럼 음식점 홍보 전화를 잘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아니, 그래도.”
“사장님이 한번 보여 주실래요. 비결 좀 보게. 그대로 다시 할게요.”
“…….”
변 사장은 대꾸하지 못했다.
강태평은 변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회사 직원들에게 홍보한 거 맞아요?”
“당연하지! 내가 문벅스 커피까지 쏘면서 홍보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개업일이라고 전체 문자도 보냈어!”
“하아……. 역시.”
“뭐가 역시야? 동료들 너무 한 거 아니야? 개업일만이라도 와서 팔아줘야지!”
강태평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월급 200도 못 받으시는 분들이, 32만 원짜리 점심을 드시기가…… 쉽지 않겠죠.”
“그, 그래도…….”
뭐라 항변하려다가, 변 사장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 하긴…… 나라도.’
아무래도 오늘은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개업일에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무래도 오늘은 연습이고, 개업일을 바꾼다는 말을 뱉으려는데…….
딩동!
“…….”
벨소리에 일동 얼어 버렸다.
쿵쿵!
[점심 먹으러 왔습니다~.]
민경원 사장 목소리였다.